[인터뷰] 대한민국 위스키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남자, 김창수위스키의 김창수 대표

대한민국에 불고 있는 위스키 바람.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증류한 위스키는 없었습니다. 그 불모의 역사를 뒤집은 주인공이 바로 김창수위스키입니다. 100% 국내 몰트를 사용하여 100% 국내 오크통에 숙성한, 말 그대로 대한민국 위스키의 시발점이었지요. 브릭스 매거진에서는 올해 숙성 3년을 넘긴 정식 제품을 출시 예정인 김창수위스키의 김창수 대표를 만나 그가 한국에 위스키 양조장을 세우게 된 계기와 과정을 들어보았습니다.


dc5c87d2a82e1.jpg김창수위스키의 김창수 대표


위스키에 빠지게 된 계기

가장 큰 이유는 맛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피트 위스키인 ‘라프로익 10년 캐스크 스트렝스’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전까지 마셨던 위스키들과는 전혀 달랐거든요. 인간이 평소 느낄 수 없는 맛이라고 할까요. 단맛, 짠맛 같은 맛이 나는 음식을 인간이 맛있다고 인식하는 이유는 그 음식이 인체에 필요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피트 위스키에서 나는 향은 결코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할 만한 맛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라프로익은 독극물과도 같은 화학적인 맛이었는데, 그런 화학적인 맛과 향을 ‘맛있게’ 느꼈다는 데 놀랐던 것이지요. 그 경험이 위스키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만의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생각

스무 살부터 술을 만드는 게 꿈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전통주를 만들려고 했지요. 맥주, 와인, 위스키, 다양한 술을 마시며 공부했고, 집에서 취미로 전통주와 맥주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대 중반 위스키에 매력을 느꼈는데, 가까운 일본과 대만만 해도 위스키를 직접 생산하고 인기도 끄는데 국산 위스키가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위스키를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이지요.


저는 한 가지에 빠지면 끝을 보는 성격입니다. 관심이 가는 대상을 완전히 이해하는 수준까지 가는 과정을 즐깁니다. 술을 잘 알기 위해서는 마시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양조를 해 봐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술 외에 좋아하는 다른 분야도 있어서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도 했지만 어느 수준까지 가면 더 알고 싶은 욕구가 해소되고는 했습니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빠져들고 아직도 모르는 게 많은 분야는 술이 유일합니다. 술의 세계는 끝이 없다고 느낄 만큼 깊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세계를 알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이 강렬하게 이는 것 같고, 그런 마음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0f86dfc616253.jpg


한국은 위스키를 만들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대한민국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조사해 보니 다들 우리나라에서는 위스키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더군요. 세금도 높고, 환경도 적합하지 않다 보니 돈이 많은 사람이나 대기업도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자본도 없는 제가 그 일에 뛰어 들었으니 어떻게 해낼 수 있겠느냐는 의심의 눈길이 많았지요.


20대 초 중반이었던 저는 아주 길게, 멀리 보았습니다. 실제로 스코틀랜드에는 30여 년에 걸쳐 위스키 증류소를 만든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순수하게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자본이나 환경이 어떠하더라도 결국 해낼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준비를 해 왔던 것입니다.


위스키 양조장을 만들기 위한 과정

위스키 공부를 지속할 돈을 벌기 위해 스물여덟 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술과 관련 없는 일을 했습니다. 10개월 정도 지났을 때, 평생 하고 싶지 않을 일을 하며 살 수는 없고, 술 공부를 위해 다른 직업을 병행한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나머지 모든 삶을 위스키에 바치기로 했습니다.


바텐더로 일하며 위스키 양조 기술을 배울 수 있을 만한 관계자들에게 수소문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일본의 소규모 양조장인 치치부 증류소(秩父蒸溜所)에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벤처 위스키로 유명한 치치부 증류소가 제가 만들려는 증류소와 흡사하다고 생각해서 연수라도 받을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는데, 역시 이곳에서도 거절을 당했습니다.


결국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코틀랜드 헤리어트 와트 대학(Heriot-Watt University, HWU)에 양조 대학원이 있지만, 유학 생활을 시작할 형편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현장에서 일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당시 스코틀랜드에는 싱글 몰트 위스키 증류소가 102곳이 있었는데, 그곳을 모두 다니며 견학을 하고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때까지 모은 돈을 들고 무작정 스코틀랜드로 향했습니다. 텐트와 중고 자전거를 들고서요. 돌이켜보면 터무니없는 계획이지만, 당시 스물아홉이었던 저는 부딪치면 뭐라도 될 것 같았습니다.


ad9f921723c12.jpg


현실은 만화나 영화가 아니더군요. 아니면 제가 주인공이 아니었던 것이겠지요. 어느 양조장에서도 일을 하도록 받아들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이미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증류소가 대기업 소유로 통폐합이 되어 있었고, 제가 만날 수 있었던 사람도 인사권과 무관한 말단 직원밖에 없었습니다. 영어도 잘 못했기 때문에 진득하게 설득을 할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중간에 그만두지도 않았습니다.


4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102곳의 증류소를 모두 다니는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위스키에 관해 정말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고요. 102번째 증류소를 다녀온 후 이제 집에 갈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기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글래스고에 있는 바에 갔습니다. 기분이 좋아서 술을 많이 마셨는데 바에 동양인 한 명이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말을 걸었습니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일본 치치부 증류소의 직원이었습니다. 나이도 저와 동갑이라 금세 친구가 되면서 치치부 증류소와 연이 닿게 되었지요.


7f2477fbc172a.jpg


치치부 증류소와의 인연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와 일본의 여러 양조장을 다녔고, 치치부 증류소와도 계속 교류했습니다. 그러면서 102개 증류소를 다닌 경험을 책으로 쓰기 위해 원고를 정리하고, 조그마한 설비를 사서 집에서 위스키를 증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했는데, 일본 NHK에서 제 블로그를 보고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닛카 위스키의 설립자 타케츠루 마사타카(竹鶴政孝, 1894-1979)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맛상〉의 영향으로 위스키 붐이 일고 있었는데, NHK에서 그런 시류를 타고 한국에도 위스키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주제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취지였습니다. 


제게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NHK 담당자에게 제가 치치부 증류소에서 연수를 받는 모습을 찍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거꾸로 치치부 증류소에는 NHK에서 나에 관한 특집 방송을 하고 싶어 하는데 내가 그곳에서 증류를 배우는 걸 촬영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때까지 계속 위스키 연수를 거절하던 치치부 증류소가 드디어 문을 열어주게 되었던 것이지요. 


외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치치부 증류소에서 일주일간 연수를 받았습니다. 연수를 통해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자신감을 많이 갖게 됐습니다. 치치부 증류소에서도 계속 그런 이야기해 주더군요. 완벽하게 공부하고 증류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증류소를 열면 거기에 맞는 새로운 걸 배워야 하며, 자기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배우며 온 거다. 저도 위스키에 관해 공부가 많이 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위스키를 만들 수 있는 단계에 충분히 도달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입니다.


c378ad5e9b508.jpg


‘김창수 위스키’라는 이름

처음부터 제 이름을 걸고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어떤 이름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업자등록증을 만들 때에야 증류소 이름을 정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다른 후보도 있었지만, 10년 가까이 위스키만 준비하다가 세운 증류소이니만큼 증류소 자체가 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증류소 설립 자금

투자자 없이 위스키 증류소를 세우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위스키를 만든다고 하면 그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해도 좋았고, 투자자가 오면 투자자 뜻대로 만들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목표는 우리나라에서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었으니까요. 국산 위스키 증류소로 투자를 받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외국계 주류 회사를 다녔습니다. 근무 환경도 좋고 처우도 좋았습니다. 다만 이렇게 안주하다가는 영원히 꿈과 멀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나와 바를 열었습니다. 공간이라는 게 주는 어떤 특수함이 있더군요. 인터넷으로만 위스키를 만들겠다고 할 때와는 달리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그 공간으로 모여 들더군요. 그렇게 아이디어도 주고받고, ‘증류소’라는 비즈니스를 어떻게 운영 할지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투자를 받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가진 돈 안에서 저 혼자 운영할 수 있는 1인 증류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제가 만든 위스키를 선보이고 실력이 입증되면 투자가 따라올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세운 증류소가 바로 지금 김포에 있는 김창수 위스키입니다. 처음 낸 제품들이 반응이 좋았고, 결국 3년 정도 지나 투자를 받았습니다. 그 투자로 지금 안동시에 새로운 증류소를 짓고 있고 내년 상반기에 완성될 예정입니다. 저에게는 지금부터가 또 다른 시작인 셈입니다.


06cf6f3a76195.jpg김포 증류소에서의 김창수 대표 | 김창수 제공


안동 증류소의 위스키

한국과 스코틀랜드는 기후 환경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한국에서 우리가 흔히 아는 ‘스카치위스키’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에 맞는 위스키를 찾아야 합니다. 현재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 것,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위스키상을 적절히 섞으려고 합니다. 국내 생산 위스키인 만큼 국내 재료를 많이 쓰려고도 합니다. 안동 증류소를 위해 경북에서 보리농사를 지을 계획입니다.


안동에 증류소를 지은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안동은 흔히 한국 소주의 발상지라고 알려진 곳입니다. 그런 안동에서 또 다른 증류주인 위스키를 생산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환경도 좋을 것이고요. 안동 증류소에서는 위스키뿐만 아니라 소주도 생산할 계획입니다. 한국의 소주와 위스키의 교집합에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는, 한국적인 위스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위스키를 위해 갖춰야 할 환경

술을 만드는 데는 지역 산물, 기후, 환경 등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은 바로 법입니다. 현재 한국의 주류 문화는 우리가 좋아서 선택했다기보다는 국가가 정한 주세 제도에 따라 형성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주조는 국가 통제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술의 가격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종가세’로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위스키를 대중화시키기 어렵습니다. 일본 위스키 시장이 발전하게 된 것도 고도수의 증류주에 붙는 세금이 낮아지고 난 이후입니다. 


온라인 거래가 제한되어 있다거나 RFID 사용 등의 경직된 유통 구조 개선도 필요합니다. 위스키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스키를 만들기 위한 법적 환경을 바꾸어 나가는 것 또한 앞으로 대한민국 위스키 발전을 위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스키와 친해지는 방법

‘위스키’ 하면 독하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조금 큰 잔에 소량 따라놓고 잔에 차오르는 향을 음미하는 술입니다. 한 잔을 1시간을 두고 천천히 마실 수도 있습니다. 위스키는 향을 갖고 있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향과 함께 조금씩 마시는 습관을 들이시면 위스키의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e77522f894559.jpg




인터뷰 | 이주호, 신태진
사진 | 신태진
장소협조 | 톤 아날로그


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