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는 이지영 작가는 팬데믹과 전쟁 등 여러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도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러시아의 소도시를 여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떠난 러시아 소도시 여행은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자 체험이 되었고 삶에 변화를 일으켰지요. 그리고 이지영 작가는 그 과정을 『러시아에서는 여행이 아름다워진다』로 담아냈습니다.
브릭스 매거진에서는 이지영 작가를 만나 모스크바에 살게 된 과정, 그곳에서의 생활, 그리고 여행에 관해 물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아름다워진 여행이 어떻게 이지영 작가의 삶도 아름답게 만들었는지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지영 작가의 에세이 『러시아에서는 여행이 아름다워진다』
Q. 한국에서는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는데, 현지 일상생활은 어떤가요?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전쟁에 대한 체감도는 다를 듯합니다. 회사에 다니는 신랑의 입장에서는 많은 제재가 가해질 뿐만 아니라 수시로 바뀌는 시스템에 난감하다고 해요. 저는 항상 아이들 안전에 대해 긴장하고 있기는 하지요. 이제는 ‘모스크바까지는 별일 없겠지.’라는 마음으로 애써 긴장을 낮추려 하지만 아무래도 두 아이가 어려 여전히 걱정은 됩니다. 작년까지 두 아이를 국제 학교에 보냈었는데 좋은 선생님들은 다 고국으로 돌아가시고, 외국 친구들도 대부분 돌아갔기 때문에 학교 교육의 질적인 차원에서 실망감이 커져 학교를 옮겼습니다. 저희 경우처럼 현재 자녀를 국제 학교에 보내시는 다른 분들도 대체적으로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해요. 그 외 생활적인 부분은 불편한 정도이지 깊게 체감할 정도는 아닙니다.
얼음 낚시 중 ⓒ 이지영
Q. 『러시아에서는 여행이 아름다워진다』를 출간하신 후 한국에 다녀가셨는데, 독자분들은 만나보셨나요, 어떤 이야기를 주로 나눴나요?
많은 독자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리즈로 내달라는 의견을 많이 주셨고,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눈물이 나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공감이 되었다고 이야기 해주셨어요. 전쟁 이후 불안정한 상황에서 조마조마 마음 졸이면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한 가족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과 동시에 기특함을 느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 이후, 러시아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쌓여가다가 따뜻한 이야기를 들으니 러시아에 대해 마음이 열렸다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 이지영
Q. 언제 어떤 사정으로 러시아에 정착하게 되셨고, 정착 초기와 지금 느끼는 러시아는 어떻게 다른가요?
2010년 결혼 후, 국비 유학으로 박사 과정에 합격한 신랑을 따라 러시아에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두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살다가,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들과 러시아에 거주하게 됐습니다.
정착 초기요? 겨우 10년 전인데 대형 슈퍼에서도 카드 결제가 안 됐어요. 지금은 카카오택시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택시를 이용할 수 있지만, 2010년만 해도 길거리에서 아무 차나 손 흔들어 세우면 가격을 흥정하고 탔어요. 저는 러시아어를 못하니 남편이 종이에 장소와 가격을 써 주면, 그 종이를 흔들며 택시를 세우고 남편 회사 앞까지 가곤 했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위험했던 것 같아요. 나쁜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그게 불과 10년 전이에요. 모스크바 시내 한가운데에 살았는데도 10년 전 서울 강남의 모습과 비교하면 당황스러울 정도이죠.
ⓒ 이지영
그 당시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지하철을 타고 가다 길을 잃었을 때 대학생처럼 보이는 사람을 붙잡고 영어로 길을 물었더니 젊은 학생들 수십 명이 순식간에 모여서 서로들 영어로 도와주려 애쓰는데, 말이 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지금은 식당에서도 영어가 제법 통해요. 어설픈 러시아를 쓰는 것보다 영어를 쓰는 것이 더 대우받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생활적인 면에서는 당연히 모든 것이 빠르고 앞서가는 한국에 비해 불편한 것이 있겠지만, 예전에 비해 서울과의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 이지영
Q. 모스크바 주변 소도시 여행을 주로 다니셨는데, 러시아가 광대한 대륙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한국과 ‘근교’라는 개념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정도 거리까지가 여행지에 포함되나요?
처음 자동차 여행을 시작할 때는 멀미가 심한 딸아이를 배려해 1~2시간 내의 소도시로만 다녔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두 아이도 어느새 적응해 자동차에 온갖 인형을 가득 싣고 다니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더군요. 아이들의 요청으로 조금씩 거리를 늘리다 보니 지금은 8시간 정도 거리까지는 쉬지 않고 쭉 달리기도 해요. 그 이상의 거리는 기차 혹은 비행기를 이용하고 도착해서는 반드시 차를 렌트해요.
러시아에서 느낀 거리감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서울을 기준으로 전국의 모든 도시가 주변 소도시 여행에 포함이 될 수도 있겠네요. 이번 여름에 한국에 가서 3시간 거리의 춘천에 갔었는데, 예전 같았으면 큰마음 먹고 갈 거리인데 지금은 가볍게 다녀올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차로 4시간 30분~5시간 정도 떨어진 리빈스크에서 ⓒ 이지영
Q. 정말 많은 도시를 여행하셨는데, 도시를 고를 때 어떤 면을 고려하시나요? 다음 여행지를 고를 때는 안 가 본 도시가 우선인가요?
맞아요. 안 가본 도시 중에 살펴봅니다. 첫째는 안전, 둘째는 풍경, 셋째는 아이들의 컨디션입니다.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아이들이 안전한 코스인지, 좋아할 것인지, 가슴에 담을 만한 것이 있는지를 늘 생각합니다. 행여나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도시라고 해도 차는 꼭 렌트합니다. 추위 속에 걷다 지쳐서 많은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을 원치 않거든요. 아무래도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여행하다 보니 컨디션 조절이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 걷고 또 걷는 여행은 신랑과 2~30대 때 충분히 해 두었으니까요.

ⓒ 이지영
Q. 여러 번 방문한 도시도 있나요? 그런 도시가 있다면 어떤 면 때문에 다시 찾게 되셨나요?
좋은 추억이 담긴 곳은 한 번씩 더 가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서 잘 기억을 못하는 곳도 아쉬워서 다시 들르기도 해요. 하지만 새로운 도시가 늘 먼저예요. 몇 년을 다녔어도 고작 모스크바 근교만 돌아다녔을 뿐이니 앞으로 가 보고 싶은 가지각색 도시들이 러시아 안에 너무나 많습니다.
다음 주에는 ‘알타이(Altai)’라는 곳으로 열흘간 여행을 갑니다. 지금까지 다녔던 소도시 여행 중에 가장 모험적인 곳이 되겠지만 반면 엄청난 자연이 펼쳐지리라는 기대가 가득하기도 해요. 모스크바에서 4시간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차를 렌트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소련식 차를 타고 산길을 달려 산꼭대기 위의 호수를 보러 갑니다. 인터넷도 안 터지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만큼 보고 느낄 것이 많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이지영
Q. 한국만 해도 소도시, 특히나 지방 소도시는 호텔을 비롯한 여행 기반 시설이 많이 부족합니다. 러시아 소도시의 여행 사정은 어떤가요?
+ 러시아 내수 여행 시장, 러시아 사람들의 여행 방식도 알려주세요.
러시아도 마찬가지예요. 도시의 편의 시설과 모던하고 최신식 수영장 딸린 호텔을 원한다면 소도시 여행은 힘들 수도 있어요. 대신 거대한 자연을 몸소 느낄 수 있죠. 그림 속에서도, 사진 속에서도 보지 못한 경이로운 자연이 가슴에 쾅쾅 박히는 순간이 쌓이는 게 러시아 소도시 여행의 매력이에요.
저희 부부는 둘 다 호캉스도 좋아하지만,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휴양지 여행은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요. 모든 여행의 기준은 아이들이에요. 아이들도 이제 알아요. 자연 앞에서 사람은 얼마나 겸손해져야 하는지, 욕심을 부리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그러면서 드넓은 세상 앞에 움츠러들고 미리 포기할 필요도 없다는 것도 배웠어요. 펼쳐진 길은 다방면으로 많으니까요. 편하게 다 차려진 도시 여행으로는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소도시로의 여행은 매 순간 예측할 수 없는 삶과 닮아 있어요.
ⓒ 이지영
물론 소득 수준에 따라 여행의 의미가 다르겠지만 한국과는 여행의 개념이 조금 다를 수 있어요. 러시아 사람들은 비교적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그들만의 작은 여행을 떠나요. 물론 유럽과 근접해 있어 해외로도 많이 나가지만 대부분 책 한 권 들고 며칠을 오로지 쉬기 위해 떠나요. 해변가에 앉아 하루 종일 햇볕을 쬐고, 배낭 하나 메고 겨울 산을 오르고, 시골집에서 유유자적하며 쉬는 날들, 그게 이들이 여행하는 방식이에요. 매년 같은 나라를 가는 친구들도 있어요. 이유는 별것 없어요. 좋아서요. 자기가 좋았던 곳에 가서 또 쉬다 오는 거죠. 이곳에서의 여행은 경쟁, 혹은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편하게 느끼고 자기 방식대로 즐기는 여행이라고 느껴져요.
ⓒ 이지영
Q. 러시아 사람들에게 별장은 소련 시절부터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한데요, 러시아 사람들의 별장 문화를 소개해 주세요.
다차(дача)라고 해요. 다차는 예전에 귀족들에게 할당된 땅을 의미했대요. 소련 시대에는 지방 정부가 시민들에게 정원을 가꾸라는 의미로 주었는데 지금은 거의 개인 소유가 되었죠. 러시아인 중 60퍼센트 이상이 다차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아이들의 러시아 친구들은 대부분 모스크바에 남아 있지 않아요. 시골 다차에 내려가 개학을 코앞에 두고 올라오죠.
저희도 일반 서민의 다차부터 고급 다차까지 초대받아 다녀봤지만, 목적은 다 비슷했어요. 시골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좋은 것을 해 먹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에요. 그리고 도시를 떠나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의미를 두더라고요. 방학이 끝나면 아이들 친구들이 자기네 다차에서 가져온 거라며 사과나 감자 등을 나눠줘요. 모양은 삐뚤빼뚤이지만 손수 농사 지은 것들이니 주는 아이들도 받는 아이들도 서로 고마워합니다. 다차는 어른들에게는 쉼을, 아이들에게는 나눔을 알려주는 곳인 것 같아요.

여름의 다차, 겨울의 다차 ⓒ 이지영
Q. 책에 소개된 내용만 해도, 러시아에는 특색 있는 박물관이 정말 많은데요, 러시아에서 박물관이란 한국과 비교해 무엇이 다른가요?
+ 러시아의 박물관 문화라든가, 박물관을 대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남다른 정서가 있나요?
면적이 큰 나라이다 보니 대형 박물관과 미술관도 당연히 많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 혹은 모스크바의 트레챠코프 미술관을 보면 규모가 상당해요. 그만큼 한국 사람들 정서에는 실망스러울 만한 작은 박물관도 많아요. 대부분 개인 소장품을 전시해 놓는 곳이지요.
박물관 관리자들을 만나보며 느낀 것은 삶에서 가치를 두는 부분이 다르다는 거예요. 돈이 되는 것을 좇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하지 않은 나라인 것 같아요. 한국은 아이들의 희망 직업 1위가 돈 잘 버는 유투버였다는 기사를 접하고 씁쓸했거든요. 지금 러시아의 아이들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지만, 제가 10년 동안 본 러시아는 돈보다 낭만을 꿈꾸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남들이 볼 때는 하찮은 것이 그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어요. 어쩌면 깰 수 없는 벽을 향해 무리한 도전을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Q. 여행 계획은 주로 어떤 식으로 세우시나요?
계획은 가족회의로 이루어집니다. 이런 곳에 한번 가보자고 큰 그림을 주면 아이들이 볼거리 위주로 찾아보고요, 그러고 나면 남편이 세세한 계획을 짜서 가족회의 시간에 모니터에 틀어 브리핑해 줍니다. 아이들은 그 시간을 참 좋아해요. 질문도 많고요.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는 거죠. 브리핑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계획표를 세워요. 가지고 갈 물품 목록부터 이번 여행에서 보고 싶은 것, 먹어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빼곡히 적어서 저녁마다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합니다.
ⓒ 이지영
Q. 책에 수록된 글들은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신 건가요? 일기, 메모, 기억. 여행 에세이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자동차로 여행하다 보니 차에서 생각하거나 가족들과 이야기 나눌 시간이 많아요. 그러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장면이나 대화, 혹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에 핸드폰에 간단히 적어 놓습니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온 직후나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메모한 내용으로 간략히 글을 써요. 아니면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글을 정리해 두거나 날 것 그대로 묵혀두기도 하죠. 그렇게 쓴 글들이 모아져 여행책을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목적을 둔 건 아니었고, 여행의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 기록하다 보니 책으로 엮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아이들에게도 선물할 수 있었어요.
Q. 택시 기사분이 푸시킨 시를 읊어 준다든가 하는 에피소드에서 러시아 사람들이 문학, 미술,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푸시킨, 톨스토이, 안톤 체호프, 차이콥스키 같은 클래식 작품들이 아직도 일반적으로 향유되고 사랑받는 예술인가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K-POP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블랙핑크, 여자아이들, 르세라핌 등의 한국 가수들 노래를 러시아 친구들에게 배워올 정도예요. 그럼에도 그 부모 세대는 여전히 대문호를 지닌 나라의 국민임에 자부심이 있어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면 고맙다고 인사하며 뿌듯해합니다. 러시아의 음악가 이야기가 나오면 쉴 새 없이 토론이 이어져요.
학교에서는 문학에 대한 비중이 상당히 높아요. 저학년부터 작가들에 관해 공부하고 시와 문학 작품을 끊임없이 외우고 읽고 발표하고 토론해요. 한국이 수학을 중시하는 것처럼요. 세 달간의 긴 방학 동안 숙제라고는 작가별 추천 도서를 읽어오는 것뿐이에요. 선행 학습은 없어요. 엄격히 시키는 교육은 독서와 운동뿐이란 생각이 들어요.
또한 학교 선생님들이 미술과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으시다 보니 수업 중에도 예술 분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모를 만한 음악가 이야기들이 나와 물어보면 선생님께 듣고 왔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더라고요.
이렇게 예술을 중시하는 경향은 몇몇 마니아들만이 아닌 대부분의 러시아인 정서에 깃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 이지영
Q. 반면 러시아의 현대 문화는 거의 내수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면 한국에만 유독 번역이 안 되고 있거나요. 고전이 아닌 현대 러시아 예술의 동향은 어떠한가요?
+ 한국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동시대의 예술가나 작품이 있으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러시아 작품들이 한국으로 알려지기에는 몇 가지의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소비에트 정권이 붕괴되면서 문화적으로 한국은 러시아에 큰 관심이 사라졌다고 봐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악의 장벽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소련에 대한 호기심과 그 시절의 사람들이 겪던 생활고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니 러시아 현대 문학에 나오는 소재나 이야기들이 더 이상 주목받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또한 번역할 전문가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러시아 문학의 미세한 표현을 번역하려면 언어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굉장한 수준이 요구되는데, 러시아 전공자들은 국내에 많지 않거든요. 저도 러시아어를 할 줄 모르니 번역본으로만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데요. 러시아어와 지역학 및 경제학을 전공한 남편의 지인들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알 만큼 전문가들이 많지 않아요. 아마 수요자가 있다면 그들 중 누군가가 나서 열정적으로 소개하겠지만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고 있어서 문학은 순서에서 밀리지 않을까 해요.
저는 음악, 미술, 문학 대부분 클래식한 작품을 좋아해서 현대 문학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요. 러시아 친구를 따라 매년 열리는 도서 박람회에 다녀온 딸 말로는 러시아 사람들은 각자 선호하는 작가들도 분명하고 인기 있는 작가들이 많아 큰 박람회장이 며칠 동안 열광적인 독자들로 가득 메워졌다고 합니다.

ⓒ 이지영
인터뷰 이주호
10년째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는 이지영 작가는 팬데믹과 전쟁 등 여러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도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러시아의 소도시를 여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떠난 러시아 소도시 여행은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자 체험이 되었고 삶에 변화를 일으켰지요. 그리고 이지영 작가는 그 과정을 『러시아에서는 여행이 아름다워진다』로 담아냈습니다.
브릭스 매거진에서는 이지영 작가를 만나 모스크바에 살게 된 과정, 그곳에서의 생활, 그리고 여행에 관해 물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아름다워진 여행이 어떻게 이지영 작가의 삶도 아름답게 만들었는지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Q. 한국에서는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는데, 현지 일상생활은 어떤가요?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전쟁에 대한 체감도는 다를 듯합니다. 회사에 다니는 신랑의 입장에서는 많은 제재가 가해질 뿐만 아니라 수시로 바뀌는 시스템에 난감하다고 해요. 저는 항상 아이들 안전에 대해 긴장하고 있기는 하지요. 이제는 ‘모스크바까지는 별일 없겠지.’라는 마음으로 애써 긴장을 낮추려 하지만 아무래도 두 아이가 어려 여전히 걱정은 됩니다. 작년까지 두 아이를 국제 학교에 보냈었는데 좋은 선생님들은 다 고국으로 돌아가시고, 외국 친구들도 대부분 돌아갔기 때문에 학교 교육의 질적인 차원에서 실망감이 커져 학교를 옮겼습니다. 저희 경우처럼 현재 자녀를 국제 학교에 보내시는 다른 분들도 대체적으로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해요. 그 외 생활적인 부분은 불편한 정도이지 깊게 체감할 정도는 아닙니다.
Q. 『러시아에서는 여행이 아름다워진다』를 출간하신 후 한국에 다녀가셨는데, 독자분들은 만나보셨나요, 어떤 이야기를 주로 나눴나요?
많은 독자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리즈로 내달라는 의견을 많이 주셨고,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눈물이 나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공감이 되었다고 이야기 해주셨어요. 전쟁 이후 불안정한 상황에서 조마조마 마음 졸이면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한 가족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과 동시에 기특함을 느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 이후, 러시아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쌓여가다가 따뜻한 이야기를 들으니 러시아에 대해 마음이 열렸다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Q. 언제 어떤 사정으로 러시아에 정착하게 되셨고, 정착 초기와 지금 느끼는 러시아는 어떻게 다른가요?
2010년 결혼 후, 국비 유학으로 박사 과정에 합격한 신랑을 따라 러시아에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두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살다가,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들과 러시아에 거주하게 됐습니다.
정착 초기요? 겨우 10년 전인데 대형 슈퍼에서도 카드 결제가 안 됐어요. 지금은 카카오택시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택시를 이용할 수 있지만, 2010년만 해도 길거리에서 아무 차나 손 흔들어 세우면 가격을 흥정하고 탔어요. 저는 러시아어를 못하니 남편이 종이에 장소와 가격을 써 주면, 그 종이를 흔들며 택시를 세우고 남편 회사 앞까지 가곤 했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위험했던 것 같아요. 나쁜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그게 불과 10년 전이에요. 모스크바 시내 한가운데에 살았는데도 10년 전 서울 강남의 모습과 비교하면 당황스러울 정도이죠.
그 당시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지하철을 타고 가다 길을 잃었을 때 대학생처럼 보이는 사람을 붙잡고 영어로 길을 물었더니 젊은 학생들 수십 명이 순식간에 모여서 서로들 영어로 도와주려 애쓰는데, 말이 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지금은 식당에서도 영어가 제법 통해요. 어설픈 러시아를 쓰는 것보다 영어를 쓰는 것이 더 대우받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생활적인 면에서는 당연히 모든 것이 빠르고 앞서가는 한국에 비해 불편한 것이 있겠지만, 예전에 비해 서울과의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Q. 모스크바 주변 소도시 여행을 주로 다니셨는데, 러시아가 광대한 대륙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한국과 ‘근교’라는 개념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정도 거리까지가 여행지에 포함되나요?
처음 자동차 여행을 시작할 때는 멀미가 심한 딸아이를 배려해 1~2시간 내의 소도시로만 다녔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두 아이도 어느새 적응해 자동차에 온갖 인형을 가득 싣고 다니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더군요. 아이들의 요청으로 조금씩 거리를 늘리다 보니 지금은 8시간 정도 거리까지는 쉬지 않고 쭉 달리기도 해요. 그 이상의 거리는 기차 혹은 비행기를 이용하고 도착해서는 반드시 차를 렌트해요.
러시아에서 느낀 거리감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서울을 기준으로 전국의 모든 도시가 주변 소도시 여행에 포함이 될 수도 있겠네요. 이번 여름에 한국에 가서 3시간 거리의 춘천에 갔었는데, 예전 같았으면 큰마음 먹고 갈 거리인데 지금은 가볍게 다녀올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Q. 정말 많은 도시를 여행하셨는데, 도시를 고를 때 어떤 면을 고려하시나요? 다음 여행지를 고를 때는 안 가 본 도시가 우선인가요?
맞아요. 안 가본 도시 중에 살펴봅니다. 첫째는 안전, 둘째는 풍경, 셋째는 아이들의 컨디션입니다.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아이들이 안전한 코스인지, 좋아할 것인지, 가슴에 담을 만한 것이 있는지를 늘 생각합니다. 행여나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도시라고 해도 차는 꼭 렌트합니다. 추위 속에 걷다 지쳐서 많은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을 원치 않거든요. 아무래도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여행하다 보니 컨디션 조절이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 걷고 또 걷는 여행은 신랑과 2~30대 때 충분히 해 두었으니까요.
ⓒ 이지영
Q. 여러 번 방문한 도시도 있나요? 그런 도시가 있다면 어떤 면 때문에 다시 찾게 되셨나요?
좋은 추억이 담긴 곳은 한 번씩 더 가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서 잘 기억을 못하는 곳도 아쉬워서 다시 들르기도 해요. 하지만 새로운 도시가 늘 먼저예요. 몇 년을 다녔어도 고작 모스크바 근교만 돌아다녔을 뿐이니 앞으로 가 보고 싶은 가지각색 도시들이 러시아 안에 너무나 많습니다.
다음 주에는 ‘알타이(Altai)’라는 곳으로 열흘간 여행을 갑니다. 지금까지 다녔던 소도시 여행 중에 가장 모험적인 곳이 되겠지만 반면 엄청난 자연이 펼쳐지리라는 기대가 가득하기도 해요. 모스크바에서 4시간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차를 렌트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소련식 차를 타고 산길을 달려 산꼭대기 위의 호수를 보러 갑니다. 인터넷도 안 터지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만큼 보고 느낄 것이 많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한국만 해도 소도시, 특히나 지방 소도시는 호텔을 비롯한 여행 기반 시설이 많이 부족합니다. 러시아 소도시의 여행 사정은 어떤가요?
+ 러시아 내수 여행 시장, 러시아 사람들의 여행 방식도 알려주세요.
러시아도 마찬가지예요. 도시의 편의 시설과 모던하고 최신식 수영장 딸린 호텔을 원한다면 소도시 여행은 힘들 수도 있어요. 대신 거대한 자연을 몸소 느낄 수 있죠. 그림 속에서도, 사진 속에서도 보지 못한 경이로운 자연이 가슴에 쾅쾅 박히는 순간이 쌓이는 게 러시아 소도시 여행의 매력이에요.
저희 부부는 둘 다 호캉스도 좋아하지만,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휴양지 여행은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요. 모든 여행의 기준은 아이들이에요. 아이들도 이제 알아요. 자연 앞에서 사람은 얼마나 겸손해져야 하는지, 욕심을 부리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그러면서 드넓은 세상 앞에 움츠러들고 미리 포기할 필요도 없다는 것도 배웠어요. 펼쳐진 길은 다방면으로 많으니까요. 편하게 다 차려진 도시 여행으로는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소도시로의 여행은 매 순간 예측할 수 없는 삶과 닮아 있어요.
물론 소득 수준에 따라 여행의 의미가 다르겠지만 한국과는 여행의 개념이 조금 다를 수 있어요. 러시아 사람들은 비교적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그들만의 작은 여행을 떠나요. 물론 유럽과 근접해 있어 해외로도 많이 나가지만 대부분 책 한 권 들고 며칠을 오로지 쉬기 위해 떠나요. 해변가에 앉아 하루 종일 햇볕을 쬐고, 배낭 하나 메고 겨울 산을 오르고, 시골집에서 유유자적하며 쉬는 날들, 그게 이들이 여행하는 방식이에요. 매년 같은 나라를 가는 친구들도 있어요. 이유는 별것 없어요. 좋아서요. 자기가 좋았던 곳에 가서 또 쉬다 오는 거죠. 이곳에서의 여행은 경쟁, 혹은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편하게 느끼고 자기 방식대로 즐기는 여행이라고 느껴져요.
Q. 러시아 사람들에게 별장은 소련 시절부터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한데요, 러시아 사람들의 별장 문화를 소개해 주세요.
다차(дача)라고 해요. 다차는 예전에 귀족들에게 할당된 땅을 의미했대요. 소련 시대에는 지방 정부가 시민들에게 정원을 가꾸라는 의미로 주었는데 지금은 거의 개인 소유가 되었죠. 러시아인 중 60퍼센트 이상이 다차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아이들의 러시아 친구들은 대부분 모스크바에 남아 있지 않아요. 시골 다차에 내려가 개학을 코앞에 두고 올라오죠.
저희도 일반 서민의 다차부터 고급 다차까지 초대받아 다녀봤지만, 목적은 다 비슷했어요. 시골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좋은 것을 해 먹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에요. 그리고 도시를 떠나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의미를 두더라고요. 방학이 끝나면 아이들 친구들이 자기네 다차에서 가져온 거라며 사과나 감자 등을 나눠줘요. 모양은 삐뚤빼뚤이지만 손수 농사 지은 것들이니 주는 아이들도 받는 아이들도 서로 고마워합니다. 다차는 어른들에게는 쉼을, 아이들에게는 나눔을 알려주는 곳인 것 같아요.
Q. 책에 소개된 내용만 해도, 러시아에는 특색 있는 박물관이 정말 많은데요, 러시아에서 박물관이란 한국과 비교해 무엇이 다른가요?
+ 러시아의 박물관 문화라든가, 박물관을 대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남다른 정서가 있나요?
면적이 큰 나라이다 보니 대형 박물관과 미술관도 당연히 많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 혹은 모스크바의 트레챠코프 미술관을 보면 규모가 상당해요. 그만큼 한국 사람들 정서에는 실망스러울 만한 작은 박물관도 많아요. 대부분 개인 소장품을 전시해 놓는 곳이지요.
박물관 관리자들을 만나보며 느낀 것은 삶에서 가치를 두는 부분이 다르다는 거예요. 돈이 되는 것을 좇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하지 않은 나라인 것 같아요. 한국은 아이들의 희망 직업 1위가 돈 잘 버는 유투버였다는 기사를 접하고 씁쓸했거든요. 지금 러시아의 아이들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지만, 제가 10년 동안 본 러시아는 돈보다 낭만을 꿈꾸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남들이 볼 때는 하찮은 것이 그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어요. 어쩌면 깰 수 없는 벽을 향해 무리한 도전을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Q. 여행 계획은 주로 어떤 식으로 세우시나요?
계획은 가족회의로 이루어집니다. 이런 곳에 한번 가보자고 큰 그림을 주면 아이들이 볼거리 위주로 찾아보고요, 그러고 나면 남편이 세세한 계획을 짜서 가족회의 시간에 모니터에 틀어 브리핑해 줍니다. 아이들은 그 시간을 참 좋아해요. 질문도 많고요.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는 거죠. 브리핑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계획표를 세워요. 가지고 갈 물품 목록부터 이번 여행에서 보고 싶은 것, 먹어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빼곡히 적어서 저녁마다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합니다.
Q. 책에 수록된 글들은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신 건가요? 일기, 메모, 기억. 여행 에세이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자동차로 여행하다 보니 차에서 생각하거나 가족들과 이야기 나눌 시간이 많아요. 그러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장면이나 대화, 혹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에 핸드폰에 간단히 적어 놓습니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온 직후나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메모한 내용으로 간략히 글을 써요. 아니면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글을 정리해 두거나 날 것 그대로 묵혀두기도 하죠. 그렇게 쓴 글들이 모아져 여행책을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목적을 둔 건 아니었고, 여행의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 기록하다 보니 책으로 엮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아이들에게도 선물할 수 있었어요.
Q. 택시 기사분이 푸시킨 시를 읊어 준다든가 하는 에피소드에서 러시아 사람들이 문학, 미술,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푸시킨, 톨스토이, 안톤 체호프, 차이콥스키 같은 클래식 작품들이 아직도 일반적으로 향유되고 사랑받는 예술인가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K-POP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블랙핑크, 여자아이들, 르세라핌 등의 한국 가수들 노래를 러시아 친구들에게 배워올 정도예요. 그럼에도 그 부모 세대는 여전히 대문호를 지닌 나라의 국민임에 자부심이 있어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면 고맙다고 인사하며 뿌듯해합니다. 러시아의 음악가 이야기가 나오면 쉴 새 없이 토론이 이어져요.
학교에서는 문학에 대한 비중이 상당히 높아요. 저학년부터 작가들에 관해 공부하고 시와 문학 작품을 끊임없이 외우고 읽고 발표하고 토론해요. 한국이 수학을 중시하는 것처럼요. 세 달간의 긴 방학 동안 숙제라고는 작가별 추천 도서를 읽어오는 것뿐이에요. 선행 학습은 없어요. 엄격히 시키는 교육은 독서와 운동뿐이란 생각이 들어요.
또한 학교 선생님들이 미술과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으시다 보니 수업 중에도 예술 분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모를 만한 음악가 이야기들이 나와 물어보면 선생님께 듣고 왔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더라고요.
이렇게 예술을 중시하는 경향은 몇몇 마니아들만이 아닌 대부분의 러시아인 정서에 깃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Q. 반면 러시아의 현대 문화는 거의 내수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면 한국에만 유독 번역이 안 되고 있거나요. 고전이 아닌 현대 러시아 예술의 동향은 어떠한가요?
+ 한국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동시대의 예술가나 작품이 있으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러시아 작품들이 한국으로 알려지기에는 몇 가지의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소비에트 정권이 붕괴되면서 문화적으로 한국은 러시아에 큰 관심이 사라졌다고 봐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악의 장벽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소련에 대한 호기심과 그 시절의 사람들이 겪던 생활고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니 러시아 현대 문학에 나오는 소재나 이야기들이 더 이상 주목받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또한 번역할 전문가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러시아 문학의 미세한 표현을 번역하려면 언어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굉장한 수준이 요구되는데, 러시아 전공자들은 국내에 많지 않거든요. 저도 러시아어를 할 줄 모르니 번역본으로만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데요. 러시아어와 지역학 및 경제학을 전공한 남편의 지인들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알 만큼 전문가들이 많지 않아요. 아마 수요자가 있다면 그들 중 누군가가 나서 열정적으로 소개하겠지만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고 있어서 문학은 순서에서 밀리지 않을까 해요.
저는 음악, 미술, 문학 대부분 클래식한 작품을 좋아해서 현대 문학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요. 러시아 친구를 따라 매년 열리는 도서 박람회에 다녀온 딸 말로는 러시아 사람들은 각자 선호하는 작가들도 분명하고 인기 있는 작가들이 많아 큰 박람회장이 며칠 동안 열광적인 독자들로 가득 메워졌다고 합니다.
ⓒ 이지영
인터뷰 이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