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과 사람들] 역경 끝에 뉴욕에서 살아남은 아티스트, 이승진 작가

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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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은정과 사람들 #6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교포들의 삶을 엿보는 시간. 그 여섯 번째로 소개해 드릴 분은, 뉴욕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로 활동 중인 이승진 작가입니다. 그의 놀라운 인생 이야기와 이민 생활, 앞으로의 꿈을 함께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83b59d59f3315.jpg뉴욕의 아티스트, 이승진


Q.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이승진이라고 합니다. 1988년생 남자이고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습니다.


Q. 뉴욕에 와서 정착하게 된 계기, 동기가 궁금합니다.

‘아트(Art)’와 연관이 된 삶을 살고 싶어서 뉴욕에 왔습니다. 저는 일본의 미술 대학을 졸업했는데 일본, 한국에서 아트와 연관된 삶을 살기에는 보수적인 느낌이 들었고, 한 번뿐인 인생인데 세계 최고의 아트 씬(Art Scene)이라는 뉴욕에 뿌리를 내려보자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20대 중반의, 현실감보다는 꿈과 야망으로 가득한 젊은 청춘이어서 거의 무계획으로 온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제 머릿속은 온통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아티스트가 되지 못해도 죽지 않을 만큼 살면서 아트에 연관된 삶을 살고 싶다, 영어를 배우고 싶다, 서양 문화권에서 생활해 보고 싶다, 미국 여자 친구 한번 사귀고 싶다, 뉴욕 스트리트 현장을 느끼고 싶다’ 같은 생각뿐이었습니다.


01881bf8aaf74.jpg소호에서 스트리트 아트 중인 이승진 작가


Q. 세상 최고로 물가 비싼 뉴욕에서 삶을 지속하는 게 녹록지 않았을 듯합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오셨나요?

학생비자로 입국해 가장 저렴한 어학원을 찾아 매달 $400~600을 지불하면서 지냈습니다. 가지고 온 돈은 금방 바닥이 났고, 유학비자로 일을 하는 게 불법이지만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른 사람이 집 주방에 커튼을 친 공간에서 생활하며 최저 렌트비로 생활했습니다. 그 후 뉴욕에 거주 중인 유명 일본 아티스트 토모카즈 마쓰야마의 스튜디오 인턴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거기서도 보수는 없었습니다. 다른 아르바이트로 3개월을 버틴 뒤에야 정식 직원 입사 제안을 받고 그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매주 주말이 오면 20달러를 손에 쥐고 마트에 가서 일주일 치 식량을 구입했고 종종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어서 피우기도 했습니다. 길거리 쓰레기통의 피자도 먹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마약에 취해 식칼을 휘두르면서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던 룸메이트, 커다란 쥐들이 가득하던 집, 1년에 대여섯 번씩 이사를 다니면서 살았습니다. 지하철로 왕복하면서 이삿짐을 옮기다 보니 동네 거지들에게 살림살이를 뺏기도 했고요. 그 와중에도 쓰레기를 주워서 캔버스를 만들어 그림을 그리고 길거리나 동네 카페에서 전시회를 하고, 뉴욕 로컬 아티스트들과 이벤트를 기획해 퍼포먼스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일한 지 1년 반 정도 되었을 때 마쓰야마 씨가 아티스트 비자 취득을 제안해 주셨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부탁해 비자 진행용 변호사 비용 3,000달러를 받았습니다. 지금껏 제가 작업했던 작품 활동과 기사, 업계 전문가들의 추천서 열 장 등을 모아 아티스트 비자를 취득했습니다. 그 후 생활이 안정되면서 당시 일본에 있던 여자 친구가 건너와 뉴욕에서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90f93bac5e83e.jpg퍼포먼스 공연 중인 이승진 작가


아트 스튜디오에 직원들이 늘어나고 스튜디오의 규모도 커지고 저 역시 매니저로 승진하면서 이제 탄탄대로를 걷는 건가, 잠시 행복해하던 때에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쓰야마 씨가 갑자기 저를 해고하면서 아티스트 비자가 취소되었던 거지요. 제가 미국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때 왜 해고당했는지 지금은 이야기해 드릴 수 없지만 저는 아직도 마쓰야마 씨를 스승으로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는 비자가 없어지면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주는데 그 기간 중 다른 비자로의 대체가 안 되면 바로 출국을 해야 합니다. 다행히 주변 아티스트 친구들과 새로운 변호사를 통해 두 번째 아티스트 비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그중 한 친구는 지금도 저의 아티스트 매니저로서 제 예술 활동을 지원해 주고 있답니다. 


그 후 뉴욕에서의 제 삶은 트럼프 정책, 코로나 확산,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 등의 미국 내 굵직굵직한 이슈들을 배경으로 흘러갔습니다. 가끔 작품을 판매하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총 다섯 번의 아티스트 비자 연장을 한 뒤 올해 드디어 미국 영주권을 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개인적으로 예술 활동을 하면서 뉴욕미술관과 스트리트 아트의 도슨트, 아트 스튜디오 운영 등의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d4360929a4650.jpg작품 앞에서


Q. 뉴욕에 겪었던 수많은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뉴욕에 처음 왔을 때 브루클린 남쪽의 집에 입주했는데 첫날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도중 천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천장 위에 쥐가 여러 마리 있었는데 아마 그 무게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 날 바로 이사하면서 ‘참 지독히 뉴욕스러운 경험을 제대로 하고 있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2년 정도 거의 매일 ‘프리 아트(Free Art)’라는 거리 예술을 했었습니다. 맨해튼의 거리나 지하철역에서 엽서 크기의 그림을 행인들에게 무료로 나눠 주는 행위 예술이었는데, 종종 돈을 주는 사람들 덕분에 대략 월 1,000달러 정도를 벌면서 생활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거리 부랑자들에게 이유 없이 구타를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뉴욕공립도서관과 ‘테크프레셔니즘(Techpressionism)’이라는 아트 단체에서 공동 프로젝트 제안을 받아 5천여 개가 넘는 작품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덕분에 올해 9월에는 스위스의 아트 페어(Art Fair)에 초청받아 그곳에서 프리 아트(Free Art)를 다시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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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56f3919ff3.jpgcdb90b8fd1f7d.jpgf94f6005de2b4.jpg뉴욕 곳곳에서 펼친 '프리 아트'


Q. 힘에 부친다고 생각될 때는 어떤 생각으로 견뎌 냈나요?

명상, 운동, 산책을 하면서 저를 다독였습니다. 살다 보면 노력해서 되는 일, 노력해도 안 되는 일, 노력도 안 했는데 되는 일, 노력을 안 했으니 안 되는 일들이 항상 제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제 몸 밖의 일은 제가 제어할 수 없으니까 하루하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 자신의 기준점을 잘 파악하고 흔들리지 않도록 앞으로도 명상, 운동, 산책을 빠트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Q. 지금의 일상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교통이 편해서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뉴욕의 롱 아일랜드 시티(Long Island City)에 ‘디지아나 스튜디오(DigiAna Studio)’라는 아티스트 단체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관계성을 추구하는 콘셉트로, 이와 관련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이벤트도 많이 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맨해튼의 아트 갤러리 중심지인 로어 이스트(Lower East) 쪽으로 장소를 옮기고 싶어서 비용 마련을 위해 여행사에서 일하며 돈을 모으는 중입니다. 직장 생활, 개인 작품 활동, 스튜디오 운영, 세 가지 일의 밸런스를 조정하면서 생활해 나가고 있습니다. 


5523d02988a87.jpg1ef61239da943.jpg디지아나 스튜디오의 퍼포먼스 공연과 롱 아일랜드 시티에 있는 스튜디오 내부(오른쪽 아래)


저의 개인 작품도 스튜디오의 콘셉트와 동일하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 위주인데 그림,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태를 통해 이를 알리고, 이를 통해 작품 판매까지 연결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5b41c3709cdcc.jpg이승진 작가의 Regenerated painting(RGP) 연작 중 하나인 <Tear> | ⓒ이승진


b436bd824d369.jpgRGP - <Marilyn Monroe> | ⓒ이승진


Q. 한국에는 종종 가시는지?

2023년부터는 제 미국 비자, 생활 환경이 이전보다는 많이 안정되면서 일 년에 한 번은 한국을 방문하려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뵙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에서의 예술 활동 기회를 만들어 보려고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 감사하게도 올해 5월에는 일본과 한국에서 다른 아티스트들과 오디오 비주얼 공연 투어를 했고, 부산예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aad084e1655a5.jpgWeSA 서울에서의 퍼포먼스


Q. 지금 사는 곳은 어떤 곳인가요?

지금은 퀸즈(Queens)의 큐 가든(Kew Gardens)이란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지도상으로만 보면 맨해튼과 많이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뉴욕 지하철로 30분이면 맨해튼을 오갈 수 있고, 브루클린에서 예술적으로 가장 손꼽히는 부시윅(Bushwick)과도 가까운 거리입니다. 제가 사는 집 근처에는 유대인들이 소유한 대저택, 별장들이 많아 길이 넓은 데다가 정원과 잔디가 많고, 포레스트 힐스 가든(Forest Hills Garden) 같은 공원도 있어서 언제나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디지털 관련 작업을 주로 하다 보니 집에서는 주로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편인데 기분 전환 삼아 운동이나 산책하기에 참 좋습니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로컬 맛집도 많고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거주하는 인구가 적은 편이라 조용하고 치안도 좋습니다. 치열하게 경쟁을 하는 예술 세계와 상반되는 차분한 생활 환경이 조화가 잘 맞아서 꽤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Q. 브루클린을 꽉 잡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브릭스 매거진> 독자들에게 특별히 추천할 장소 몇 곳을 알려주신다면?

브루클린의 감성 가득한 ‘찐’ 언더그라운드 장소 두 곳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술집 ‘원더빌(Wonderville)’은 저와 여러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게임 아트, 디지털 컨셉 관련 공연을 자주 하는 아케이드 바입니다. 방문 시 예상 못한 재미 또한 느낄 수 있는 곳이고요.


원더빌: https://www.instagram.com/wondervillenyc


8년 전부터 꾸준히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부시윅의 갤러리 ‘Synesthesia47’도 추천합니다. 실험적인 음악, 영화 및 문화 워크숍을 제공하는데 예술을 통해 더욱 발전하는 지역 사회의 구축을 모토로 하는 곳입니다. 뭔가 특별한 나만의 브루클린 감성과 예술의 세계를 접해보고 싶다면 이 두 곳으로의 방문을 추천합니다. 


- Synesthesia47: https://www.instagram.com/synesthesia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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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진 작가의 Synesthesia47에서의 퍼포먼스


Q. 뉴욕에서의 삶을 후회한 적 있나요? 뉴욕에서 활동하고 싶은 예술가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후회는 없습니다. 저는 10년간 ‘디지아나(DigiAna)’라는 오리지널 콘셉트의 작품 활동을 하면서 아티스트 그룹을 운영해 왔습니다. 기존 예술과 요즘 유행하는 디지털 아트에 바로 반응하는, 대중적이고도 알기 쉬운 예술 콘셉트가 아니기 때문에 치열한 뉴욕 예술 세계에서 경쟁하며 살아남는 게 아직도 벅차게 느껴지고는 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방향성의 작품과 제 활동을 접하는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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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진 작가의 Glitch painting 연작 중 하나인 <Pika Glitch> | ⓒ이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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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eepare Manhattan 매장에 설치된 이승진 작가의 Glitch painting | ⓒ이승진 


뉴욕만의 특별한 분위기라 한다면 역시 룰이 있지만 없는 듯한 느낌 아닐까 합니다. 자유롭게 예술을 즐기면서도 그걸 비즈니스로 엮어 이 철저한 자본주의 체제에 끼워 맞춰 살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뉴욕에 오기 전 저는 학생비자만 취득하고 왔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리 학생비자에서 아티스트 비자로의 변경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대와 제도가 달라져도 뉴욕은 언제나 새로운 창작을 해 나가는 끈기 있는(!) 아티스트들을 반긴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 보셨으면 합니다.  


더불어 저 역시 작품 주문은 항상 받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a407f7b3ed5de.pngRGP - <Heaven> | ⓒ이승진 


이승진 작가: https://www.instagram.com/seungjin888




인터뷰 | 조은정
사진 | 이승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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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2개월에 한 번은 비행기를 타줘야 제대로 된 행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여행교 교주. <미국 서부 셀프트래블>, <뉴욕 셀프트래블>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는 베스트셀러 직딩 여행작가. 현재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https://eiffel.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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