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토록 낯선 사람, 춘자

브릭스에서 만나다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는 삶.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때 누구나 한 번씩 꿈꾸는 일이지요. 여기, 끊임없이 그 노마드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춘자가 있습니다. 춘자는 개인의 필명이자 창작 공동체의 이름입니다. 일 년 열두 달, 열두 도시에서 일하고 놀고 창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춘자 님을 만나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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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돌아다니면서 살 거니까 집을 여기저기 만들어 놓으면 되지 않을까? 혼자서 다 사는 건 불가능하니까 사람을 모아야겠다, 그래서 몰타 섬에 집을 알아 봤어요. 중정이 있는 2층 집, 방이 4개인데 3억 정도 되더라고요. 나는 천만 원 정도 모을 수 있으니까 스물아홉 명이 더 있어야 하고, 방이 네 개니까 한 달에 4명씩 돌아가면서 살 수 있겠네. 그런 집이 12개가 되면 한 달씩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낼 수 있잖아요.



라다크에 연 카페


제 노마드 삶은 아주 오래됐어요. 대학 졸업하자마자 인도 여행을 떠나서 라다크에 처음 발을 디뎠어요. 그때 라다크에 완벽히 매료됐어요. 한국에 돌아와 2년간 기간제 교사를 하는 동안에도 방학마다 라다크를 찾을 정도였죠. 여름에도 가고 겨울에도 가고 하니까 라다크 친구들이 너는 올 만큼 온 것 같은데 왜 자꾸 오냐, 이왕 올 거면 놀지 말고 뭔가 해 봐라 그래서 카페를 열기로 했어요.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이랑 이런저런 집기류를 들고 라다크로 가서 다 쓰러져가는 전통 가옥을 빌렸어요. 상하수도 시설도 없어서 마실 물은 길어 오고 설거지는 개천에 나가서 했지만 너무 아름다운 집이었어요. 그게 2010년이네요.



라다크가 고원의 사막이에요. 비가 안 오는 곳인데, 카페 문을 연 그 해에 홍수가 났어요. 여행자들이 싹 다 빠져나가고, 완전히 망했어요. 망했으니까 한 번 더 해 봐야지 싶었어요. 다음해는 장사가 잘 됐고, 유명한 인도 가이드북 저자께서 우연히 카페에 오셨다가 인연이 되어 홍보도 해 주시고 라다크 이야기를 책으로 내 보라고 출판사도 연결해 주셨어요. 『한 달쯤 라다크』라는 책인데, 지금은 절판돼서 전자책으로만 볼 수 있어요. 그분이 2012년 개정판 가이드북에 카페 이야기를 실으셨는데 카페가 그 해 문을 닫아서 독자들의 원성을 샀던 해프닝도 있네요.




창작 공동체 공간을 그리며


지속가능한 노마드로서의 삶을 위해 제가 그리는 집은 최소 3층은 되어야 할 거 같아요. 1층엔 바나 카페를 열고, 위에서는 작업하고 잠도 자고. 집에 머무는 사람이 카페, 바를 운영하면서 개인 작업을 하면 생활이 가능하겠지요.


2021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어느 바에서 ‘창작자 공동체를 위한 공간’을 운영하며 그 가능성을 시험해 봤어요. 코로나로 운영이 힘들어진 바에서 낮에는 카페를, 밤에는 펍을 운영하면서 작업실로도 이용했죠. 일하는 사람들에게 얼마간 수익이 돌아갔어요. 여기에 ‘레지던스’만 결합할 수 있으면 제가 꿈꾸는 모델이 완성되는 거지요.


장충동 '20세기의 여릉'에서


그래서 작년 말, 파리에 그 첫 번째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날아가 물색하다가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찾아냈어요. 하지만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어 일단 보류한 채 귀국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이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도 찾고 있고요.


작년 말 파리에서



노마드 삶을 꾸리는 법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사니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프리랜서 작가뿐이었어요. 글 쓰는 사람과 클라이언트를 매칭해 주는 플랫폼에서 일을 받으며 돌아다녔지요. 기상천외한 글을 많이 썼어요. 조선업계의 친환경 선박 기술, 인공지능이나 지능형 반도체처럼 쓰면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과학 분야의 글도 집필했죠. 그렇게 다른 사람의 글을 쓰다 보니까 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낯선 여행, 이 낯선 세계』는 ‘글쓰기 유랑단’의 네 번째 책이에요. 각자 여행을 하던 네 사람이 피렌체 산동네에 함께 숙소를 잡고 공장처럼 글을 뽑아냈어요. 저는 글을 쓰는 대신 요리하고 먹고 자고 멍하게 지냈어요. 유럽 수도원 여행기 『배낭영성』, 크루즈 여행기 『어쩌다, 크루즈』, 일본을 거쳐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한 『개새끼 소년』에 이어 제 책이 마지막으로 나오게 된 이유지요.



『이 낯선 여행, 이 낯선 세계』에 기록된 여행을 갔던 건 2019년이었어요. 일본에서 아메리카, 유럽을 거치며 ‘춘자’라는 이름을 떠올리고, 「매거진 춘자」, 도서출판 춘자, 보부상 춘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았어요. ‘춘자’는 독립출판을 넘어 창작자들, 노마드들이 스팀이라는 암호화폐를 실물 경제에 적용하려고 시도한 ‘스팀 시티’ 프로젝트의 일부예요.


공동체에 속한 창작자들이 만든 창작물의 가치가 올라가면 다 같이 돈을 벌게 되고, ‘글쓰기 유랑단’의 책도 그런 과정에 있는 거지요. 현재로서는 암호화폐의 가치가 너무 불안정하지만 창작자들이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자신의 콘텐츠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지리라 믿어요.



「매거진 춘자」는 오프라인 잡지예요. 구독자분들에게 구독료를 받고, 제가 여행 다니는 도시에서 직접 인쇄해 보내드리는 방식이었어요. 콘텐츠를 만들고 인쇄하고 현지에서 산 작은 기념품을 보내드리지요. 도시마다 상황이 다르니까 어떤 곳에서는 번듯하게 책 형태를 갖출 수 있지만, 어떤 데서는 브로슈어가 되기도 하고, 사정이 너무 안 좋은 곳에선 A4 종이를 출력해서 파일에 끼워 보내기도 했어요. 서울까지 총 열 개를 만들었는데, 볼리비아의 수크레라는 도시에서 만든 잡지는 1년 뒤에야 받아 보신 분도 있어요.


사실 노마드라고 해도 혼자 일하고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는 공동 작업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이에요. 누군가와 함께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게 좋아요. 물론 그렇게 살아오면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무엇을 시도해 보고 싶어져요. ‘춘자 프로젝트’와 함께하는 창작자분들도 “우린 같은 배를 탔어!” 하는 마음가짐이어서 힘이 되고요. 이렇게 사는 게 제 인생 목표인가 봐요.





인터뷰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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