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과거로 향한 사회와 미래로 향한 사회 - 『낙타의 눈』의 작가 서정 #2

『낙타의 눈』의 작가 서정 인터뷰 #1


10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질서가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충돌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소비에트 시절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을 러시아가 계속해서 유지하려는 의도가 무력행사로 표출된 건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친러 세력과 친서방 세력 간의 오랜 갈등, 네오나치 이슈 같은 우크라이나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 연합을 총알받이로 삼아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미국의 의도를 짚어 주는 언론은 한국에 거의 없지요. 베트남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이어 대만이나 이란이 세력 다툼의 장이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 문화예술까지 폄훼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러시아의 문화 수준이 의심스럽다면 더욱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에서는 시장이 좁으니 안전한 19세기 문학을 거듭 새 번역으로 내놓고 있습니다만 (물론 클래식의 재발견도 중요하죠) 20세기 러시아 문학과 현존 작가들의 최근 작품들도 두루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고리키와 플라토노프, 불가코프나 나보코프 같은 작가들은 그래도 이름이 크게 낯설지는 않을 것 같고요. 이사크 바벨, 칭기스 아이트마토프, (벨라루스 국적이지만 러시아어로 글을 쓰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 최근 노벨문학상 후보에 꾸준히 오르고 있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또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보돌로스킨,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SF 소설들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한국에서 박경리 문학상을 받으면서 『소네치카』로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저는 올해 『행복한 장례식』이라는 그의 장편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과거로 향한 사회와 미래로 향한 사회

매년 연말이면 러시아 사람들은 구소련 시절의 영화 〈운명의 아이러니〉를 의식처럼 챙겨 봅니다. 그런 러시아 사람들을 보며 저는 엄격한 평등주의 시절이 그리워질 만큼 가혹한 자본주의에 내던져진 사람들이 몰개성 시대의 영화를 감상하며 어떤 로맨스를 취하려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모스크바에서 공부하던 시기는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져 내린 후입니다. 계획 경제가 물러가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입니다. 평등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요. 


구소련 시절의 로맨틱 코메디 영화 〈운명의 아이러니〉


이후 거주하게 된 노르웨이에 대해서는 절충주의를 취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은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의 자구책, 그 일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중반 노르웨이는 급진적 혁명을 두려워한 나머지 사회보장의 기초라 할 만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산업 분야별로 독과점 성향이 두드러집니다. 한국 사람들은 흔히 노르웨이의 폭넓은 복지 혜택을 부러워하지만 노르웨이 국민이 부담하는 복지비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노르웨이는 에너지 강국입니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대금으로 국부펀드를 운영하지만 이는 철저히 미래를 위해 투자되고 저장됩니다. 전력은 수력발전으로 국내 수요가 충족되고도 남아 유럽 인근 국가에 수출합니다. 노르웨이는 복지비용에 대한 국민부담률이 매우 높습니다. 소득세가 최고 67%에까지 이르고 전체 근로자 중 국가에서 고용한 비중 또한 OECD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지요. 


노르웨이 오슬로의 아스트룹 피언리 현대미술관 ⓒVidar Iversen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한 노르웨이의 고소득은 거의 전적으로 천연자원에 힘입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연자원에 힘입은 모든 국가가 사회적 불평등 요소를 줄여 나가고 사회안전망을 확보해 나가면서 지속가능한 체제를 모색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은 아닙니다. 중동과 남미의 이름난 산유국들을 떠올려보면 석유, 천연가스가 풍부하다는 건 알겠지만, 그 사회를 살기 좋은 사회라고 말하기는 망설여질 겁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천연자원으로 얻어진 부가 어느 정도 고르게 분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데 어떤 진전과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노르웨이의 송유관 ⓒKjetil Alsvik @ConocoPhillips


물론, 노르웨이의 경제 구조는 화석 연료 수출에 대한 전폭적 의존과 발트해 연안 국가들에 대한 금융 식민지화라는 큰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화석 에너지를 팔아 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에 전폭적으로 투자하는 그들의 정책 방향은 미래적으로 보입니다. 2023년을 맞으며 살기 좋은 사회를 바라는 우리의 사회적 합의는 어디까지 와 있는지 다시 묻게 됩니다. 


오슬로 아스트룹 피언리미술관, 후각 예술가 시셀 톨라스 전시 중 ⓒ서정


※ 작가 서정은 에세이를 쓰고 번역을 하며 다양한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모요사, 2016)>, <낙타의 눈(소명출판, 2022)>을 썼고,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장편 <행복한 장례식(마르코폴로, 2022)>을 번역했다.




인터뷰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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