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인물들과 삶을 들여다보는 이래은 연출가 #1

2023-02-16

2005년 〈고양이가 말했어〉로 데뷔한 이후 〈고등어〉,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 〈묵적지수〉 등 지금까지 약 20여 편의 작품을 연출한 이래은 연출가. 그는 최근 〈서울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라는 작품으로 제59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았습니다. 이래은 연출가를 만나 작품에 관해, 연극 예술의 의의에 관해 들어보았습니다.


c1712e21f2de2.jpg이래은 연출가


Q. 〈서울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라는 연극으로 제59회 동아연극상 연출상과 작품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서울도심의 개천에서도…〉는 동화 작가 영원이 작은발톱수달이 나오는 동화를 쓰면서 지금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기억, 사람, 삶 속을 모험하는 이야기예요. 각자 최선을 다해 자신을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등장해서 그런 의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구요. 그래서 관객 분들도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묻고 생각해 주었으면 했는데, 고맙게도 보신 분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그렇다고 수상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요.

 


d03bf62ac3964.jpg〈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의 포스터 / 국립극단 제공



Q. 이번 수상작도 그렇고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다루어 오셨어요. 그래서 전통 있는 연극상 수상을 기대하시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연극은 워낙 옛날부터 노동자,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제가 하는 작업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에요. 지금 여러 공연장에서 올라가고 있는 많은 공연이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인물들과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어요. 수많은 매체들이 자본주의, 능력주의 사회에서 보고 싶고 되고 싶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넘쳐나게 다루고 있잖아요. 연극까지 남들 다 하는 이야기를 하면 재미없잖아요. 연극동네는 자본, 성과, 차별, 혐오로 꽉 찬 세계를 흔들어 보고 균열을 내 보려 하는 시도에서 예술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모인 곳 같아요. 저도 그중에 하나이고요. 그러니까 연출상 수상은, 제가 운이 좋았던 거지요. 꾸준히, 치열하게 연극을 만들어가는 연출가들이 현장에 많으니까요. 그래도 작품상 수상은 많이 뿌듯합니다. 같이 작업한 수많은 동료들과 함께 받는 거라서요.

 

df90091dd10f5.jpg〈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의 공연 장면 / 국립극단 제공



Q. 관객 수가 신경 쓰이시지 않나요?

신경이 많이 쓰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요. 저는 왜 이런 작업을 이어가고 있나, 그런 힘을 어디서 끌어 모아 오나, 생각해 봤어요. 결국 내가 여기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따지고 보면 그 정도의 책임감으로 작업해 오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책임감의 뜻을 찾아봤어요.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


책임감, 임무, 맡은 일. 저는 제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제 스스로를 북돋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나 봐요. 한 사람 안에는 수많은 약자성이 강자성과 교차하고 뒤엉켜 있잖아요. 그런 복잡함을 복잡한 관점으로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저한테 힘을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몰랐던 사람과 세계를 알게 되고, 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알아차리는 것. 그게 연극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인 것 같아요.


저는 한국에서 한국 국적을 갖고 있고, 비장애인이고, 결혼을 했어요. 강자성과 다수자성을 갖고 있지요. 더불어 수많은 약자성/소수자성도 갖고 있어요. 내가 갖고 있기 때문에 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몰랐던 세계가 있고, 또 알려고 하지 않았던 세계, 그리고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세계가 있는데 연극을 하면서 그런 세계를 계속 만나게 돼요. 그러면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럴 때마다 충전이 되는 것 같아요. 세계가 커진다고 할까.

 

 

Q. 처음 연극을 봤을 때가 기억나시나요? 연극을 해야겠다 생각한 때도요.

스무 살 때 학교 극회 연극을 봤어요. 대학에 가면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고 너무너무 재밌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재미없더라고요. 무료하고 괴로웠어요. 그래도 집에는 가기 싫어서 학교 앞을 어슬렁거리다가 어느 날 학교 극회 동아리 연극포스터를 봤어요. 어슬렁거리며 들어가 봤더니 손튼 와일러의 〈우리 읍내〉란 공연이었어요. 무대에 소품이 하나도 없이 텅 비어 있는데, 배우가 찬장을 열고 컵을 꺼내더라고요.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데, 있었어요. 제 눈에 찬장이랑 컵이 보였어요, 충격이었어요.

 

배우가 울고 웃으며 연기하는데, 연기이고 가짜인데 거기에서 진실이 느껴지고, 혼란스러우면서 아름다웠어요. 심장이 막 뛰었어요. 집에 돌아오면서 지하철 창에 어둑하게 비쳤던 제 모습이 기억나요. 나도 연극을 하고 싶다, 나도 연극을 하고 싶다, 그런 말을 되뇌었어요. 이후로도 연극을 계속 할 수 있었고 하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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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예종 연극원에 들어가 아동청소년극을 전공하셨어요.

저는 연극을 하며 많이 다쳤어요. 수많은 층위의 폭력의 피해자였고 동시에 가해자였어요. 예술이란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되었고, 창작은 그래야만 한다고 배웠어요. 그러니 연극이 괴롭기만 했지요. 그러다 한 워크숍에 참가하게 됐는데, 신문에 있는 사진 한 장에서 이야기를 상상하고 장면을 만들고 이어붙이면서 두세 시간 동안 짧은 연극 한 편을 만드는 워크숍이었어요. 유명한 극작가의 희곡, 연출가의 카리스마,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싶은 간절한 예술혼. 그런 거 없이도, 심지어 극장이 아니어도 연극은 가능하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고, 내가 하고 싶은 연극이 무엇인지 깨달았어요. 그런 연극 공부를 어디서 할 수 있을까 찾아 봤더니 거기가 한예종 연극원 연기과 전문사 아동청소년연극전공이었어요.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역할이 있고, 연기를 하고 있잖아요. 아동청소년극 전공에서는 어린이들의 놀이에서 연극성을 발견하고 연극의 여러 기술로 확장하는 훈련을 받아요. 어린이, 청소년 관객과 연극, 연극 교육으로 소통하는 훈련도 받고요. 저는 그것이 다른 예술과는 다른, 연극의 본질이 뭔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데뷔를 어린이극으로 했어요. 제가 처음으로 쓰고 연출한 게 〈고양이가 말했어〉인데요, 11살 아이의 고독과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예요. 지금까지 제가 쓰거나 구성을 함께한 이야기 속 인물들을 살펴보면 11살부터 천천히 나이를 먹고 있어요. 이제 19살까지 온 것 같아요. 청소년이 등장하는 가장 최근 공연은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와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인데요, 이 두 작품 다 청소년의 섹슈얼리티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사회에서 성인에게만 허락된 섹슈얼리티, 이 불허가 청소년기의 섹슈얼리티를 더 왜곡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드러내고 질문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어 논의하며 섹슈얼리티에 대한 감각을 두껍고 깊고 넓게 만드는 것이 연극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de804a9f55595.jpg2007년 공연 당시의 〈고양이가 말했어〉 포스터



이래은 연출과의 인터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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