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평일도 인생이니까』,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등의 에세이를 내며 많은 독자층을 사로잡은 김신지 작가. 최근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책을 낸 김신지 작가를 만나 시간, 글쓰기, 기록, 어머니 등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김신지 작가의 다정다감한 이야기로 지친 하루를 위로 받아 보세요.
김신지 작가
Q. 나를 위한 ‘시간’을 내게 된 삶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여백’과 ‘자율성’이란 단어부터 떠오르는데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에 쓴 다음 문장들이 요즘 저의 일상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로소 여백 있는 일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여백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그러니까 ‘내가’라는 분명한 주어를 가지고 사는 삶. 탓할 남도 없고 댈 핑계도 없다. 잘 보낸 하루도 못 보낸 하루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은 누구도 시키지 않는 삶 속에서, 선택한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 애쓴다.”
퇴사 전에는 막연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컸는데 시간이 생긴 뒤에야 깨달았어요. 아, 내게 필요했던 게 이런 삶의 여백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진다는 자율성의 감각이었구나 하고요.
김신지 작가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Q. ‘글쓰기’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번 책을 쓰면서 에세이를 쓴다는 일이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한 시절 가장 몰두했던 내밀한 생각을 정제된 글의 형태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으니까요. 저에게 쓰는 일은 ‘한 번뿐인 삶을 조금 더 잘 살아보려는’ 마음을 글로 옮겨두는 일에 가까운 것 같아요.
어떤 글을 쓰든 내가 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내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내가 쓴 글을 내가 다시 읽으며 영향을 받는 작업 같아요. 에세이집에 쓴 제목들은 어떻게 보면 제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성이기도 하고요. 하루가 모여 평생이 될 테니까 매일을 아끼며 살고 싶어서 『평일도 인생이니까』를 썼고,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가 나왔어요.
당연히 글에 담긴 백 퍼센트를 살아내진 못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해버린 사람이니까 그렇게 살려고 계속 노력하게 되고, 글로 쓴 삶의 모습에 가까워지고자 일상을 가다듬게 돼요. 제가 쓴 글과 제가 협업해서 살아가는 느낌입니다.
김신지 작가의 『평일도 인생이니까』
Q. 이번 책에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이었어요. 이해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다 보니까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최근에 하재영 작가의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나와 가장 가깝고 내가 거의 모르는 한 여성, 엄마를 기록하다.”라는 표현이 나와요.
저에게도 그래요. 한평생 나에겐 ‘엄마’이기만 했던, 가장 가깝지만 거의 모르는 한 여성의 삶에 대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형태로 ‘기록’해두는 일이 엄마에 대한 글쓰기예요. 동시에 그건 엄마가 살아온 삶에 대한 제 나름의 헌사이기도 해요. ‘지금 선 자리가 당신이 최선을 다한 자리’라고, 짧게 말했을 때 옮겨지지 않는 것들을 글에 담으려고 애써요.
고향으로 가는 길 ⓒ김신지
Q. 작가님은 세상을 ‘관찰’하는 데 오랜 시간을 쓰시지요. 작가님처럼 프로 관찰러가 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보물찾기 쪽지 같은 거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어렸을 때 소풍 가면 선생님들이 소나무 가지 위에, 덤불 속에, 조그만 바위 뒤편에 쪽지를 숨겨두었잖아요. 그걸 찾아낼 때 우리가 얼마나 기뻤던가요. 세파에 많이 찌들어 있지만(웃음) 그 맘으로 돌아가 보는 거예요.
삶의 아름다움이 어디 먼데 있는 게 아니라, 내 주변에서 숨죽이고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도 한 번 더 보게 되고, 출근길에 나무도 한 번 더 보게 되더라고요. 매일 누가 내 하루에 보물찾기 쪽지를 두어 개쯤 숨겨놓았다고 생각하고 일상을 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마음속으로 “찾았다!” 외치는 순간을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이왕이면 그걸 기록해보면 더 좋겠죠.
집앞 산책로에서 ⓒ김신지
Q. 전작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는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한다고 하셨어요. 기록에 관한 강연도 하고 계신데, 기록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 시간에 끝이 있다는 걸 알기에 매순간을 진심으로 대하게 되는 그 마음이 좋아서예요. 삶을 긴 여행으로 두면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 시간이 끝난다, 언젠가 이 사람을 잃는다, 그런 것을 생각했을 때 두렵거나 허무해지는 사람이 있고,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뭘 해야 할까 찾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언제나 후자예요. 두려움과 허무함에 잠겨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요.
죽음이나 상실은 우리에게 애먼 데 애쓰지 말고 지금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 여행이 언젠가 끝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기억해 두고 싶은 순간과 사람을 기록하는 일 아닐까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연습을 하게 되고요. 기록이 그 마음을 잊지 않고 계속 실천하게 해주어서 좋아요.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Q. 이번 책에는 작가님의 ‘청춘’ 시절에 관한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자기 삶을 옮겨 놓는 에세이라는 게 결국 ‘돌아보면서’ 쓰는 기록일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청춘의 한가운데를 지날 때는 청춘이 좋은 줄 전혀 모르잖아요. 저도 20대를 통과할 때는 뭐랄까… 촌스럽고 막막하고 늘 웃풍 드는 방처럼 마음이 스산했던 느낌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 멀찍이서 돌아보니까 아 푸릇했던 시절이구나, 한 번밖에 없는 순간이 지나는데 좋은 줄도 모르고 다녔구나 싶어요. 그러고 보면 이상은의 〈언젠가는〉은 정말 명곡 아닌가요?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그렇다면 훗날 멀찍이서 돌아볼 때 지금의 제 나이도 그렇겠죠?
Q. 작가님에게는 ‘여행’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하셨죠. 특히 제주와 치앙마이를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예전엔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지금은 가보니 좋았던 곳을 다시 찾아가는 여행도 그만큼 좋아졌어요. 그런 시간을 더 이상 ‘아깝지 않다’고 여기게 된 것 같아요. 제주와 치앙마이는 좋아하는 만큼 특별히 반복해서 찾는 여행지 중 하나고요. 초록이 많고, 언제든 발길 닿는 곳으로 산책을 할 수 있고, ‘자연 멍’을 할 수 있는 곳이어서 좋아요.
이번 책에서도 「멍문가의 작은 세계」라는 글에서 멍 예찬을 했는데요. 제주에 가면 파도 멍, 구름 멍, 오름 멍, 귤밭 멍을, 치앙마이에 가면 나무 멍, 커피 멍, 노을 멍을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바삐 살다가도 두 곳에만 가면 ‘아, 그래 이런 삶이 전부가 아니지’ 하며 한숨 돌리고 호흡을 가다듬게 되는 것도 좋아요.
치앙마이에서 ⓒ김신지
Q. 반려인 강 님과 여러 면에서 죽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 반대로, 함께 살면서 서로 “아니, 이 녀석이!” 싶은 부분은 없는지 궁금하네요.
비슷한 부분보다는 다른 부분이 더 많은데요, 책에는 비슷하거나 즐거웠던 순간만 쓰니까 착시효과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번 책의 초고를 읽고 나서 강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너는 ‘강’이라는 세상에 없는 남자와 살고 있구나…?” 그래도 농담과 맥주와 산책은 잘 맞는 편에 속하고, 이 세 가지가 제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기 때문에 다행이에요.
오래 만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 것들도 있어요. 저는 20대 내내 잠을 줄여가며 치열하게 사는 타입이었는데 강을 만나면서 늦잠의 달콤함을 알아버렸고 이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습니다…. 반대로 강은 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고객 맞춤형 1인 여행사인 저를 만난 후로 여행을 꽤 좋아하게 되었고요. 나머지 안 맞는 영역은 어른이니까 각자 해결합니다. 전시 보러 가는 친구는 따로 있다거나 혼자서 영화를 보거나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해먹거나 하는 식으로요.
Q. 혹시 시를 써 보신 적 있거나, 쓰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지금의 저는 에세이로 말하는 게 가장 편한 것 같아요.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 또 잘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에세이 안에 있다고 느낍니다. 시나 소설은 늘 동경의 대상이자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온 영역인데 언젠가는 쓰게 될지 저도 궁금해요. 뭐든 단정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Q. 이번 책에서 ‘신지도-생일도-평일도’ 여행 에피소드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이처럼 멋진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실행할 수 있는 용기와 팁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작가와 이름이 같은 ‘신지도’를 비롯한 ‘생일도’, ‘평일도’는 전남 완도에 있는 섬들입니다. 작가는 생일에 맞춰 이 섬들을 여행했습니다. 그는 『평일도 인생이니까』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행복이 다른 게 아니라 내게 즐거움을 주고 내가 천진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늘리고, 반대로 나를 시들게 하는 시간을 줄이는 데에 있다고 생각해요. ‘신지도-생일도-평일도’에 간 일은 거기 가면 분명 제가 좋아할 걸 알아서 오랜 시간에 걸쳐 제가 저에게 마련해준 이벤트였어요.
그런 특별한 여행이 아니어도 매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저는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마다 ‘올해의 예정된 기쁨’을 한 해 여기저기에 심어둬요. 계절마다 내가 좋아할 게 분명한 풍경을 품은 숙소를 예약하거나 어떤 장소에서 만날 약속을 잡아두는 거예요. 올해로 예를 들자면 4월에는 작년에 우연히 발견한 벚나무가 있는 정원을 가진 에어비앤비에 갈 예정이고요, 5월에는 차박을 떠나고, 6월에는 담양 관방제림에 가서 평상 위에 앉아 국수를 먹고 올 예정입니다. 제철 음식만큼 제철 행복을 챙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에게 더 나은 시간을 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니까요, 스스로를 좋은 순간에 자주 데려가면서 살기로 해요.
제주 바다 ⓒ김신지
인터뷰 신태진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평일도 인생이니까』,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등의 에세이를 내며 많은 독자층을 사로잡은 김신지 작가. 최근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책을 낸 김신지 작가를 만나 시간, 글쓰기, 기록, 어머니 등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김신지 작가의 다정다감한 이야기로 지친 하루를 위로 받아 보세요.
Q. 나를 위한 ‘시간’을 내게 된 삶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여백’과 ‘자율성’이란 단어부터 떠오르는데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에 쓴 다음 문장들이 요즘 저의 일상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로소 여백 있는 일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여백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그러니까 ‘내가’라는 분명한 주어를 가지고 사는 삶. 탓할 남도 없고 댈 핑계도 없다. 잘 보낸 하루도 못 보낸 하루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은 누구도 시키지 않는 삶 속에서, 선택한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 애쓴다.”
퇴사 전에는 막연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컸는데 시간이 생긴 뒤에야 깨달았어요. 아, 내게 필요했던 게 이런 삶의 여백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진다는 자율성의 감각이었구나 하고요.
Q. ‘글쓰기’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번 책을 쓰면서 에세이를 쓴다는 일이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한 시절 가장 몰두했던 내밀한 생각을 정제된 글의 형태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으니까요. 저에게 쓰는 일은 ‘한 번뿐인 삶을 조금 더 잘 살아보려는’ 마음을 글로 옮겨두는 일에 가까운 것 같아요.
어떤 글을 쓰든 내가 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내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내가 쓴 글을 내가 다시 읽으며 영향을 받는 작업 같아요. 에세이집에 쓴 제목들은 어떻게 보면 제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성이기도 하고요. 하루가 모여 평생이 될 테니까 매일을 아끼며 살고 싶어서 『평일도 인생이니까』를 썼고,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가 나왔어요.
당연히 글에 담긴 백 퍼센트를 살아내진 못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해버린 사람이니까 그렇게 살려고 계속 노력하게 되고, 글로 쓴 삶의 모습에 가까워지고자 일상을 가다듬게 돼요. 제가 쓴 글과 제가 협업해서 살아가는 느낌입니다.
Q. 이번 책에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이었어요. 이해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다 보니까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최근에 하재영 작가의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나와 가장 가깝고 내가 거의 모르는 한 여성, 엄마를 기록하다.”라는 표현이 나와요.
저에게도 그래요. 한평생 나에겐 ‘엄마’이기만 했던, 가장 가깝지만 거의 모르는 한 여성의 삶에 대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형태로 ‘기록’해두는 일이 엄마에 대한 글쓰기예요. 동시에 그건 엄마가 살아온 삶에 대한 제 나름의 헌사이기도 해요. ‘지금 선 자리가 당신이 최선을 다한 자리’라고, 짧게 말했을 때 옮겨지지 않는 것들을 글에 담으려고 애써요.
Q. 작가님은 세상을 ‘관찰’하는 데 오랜 시간을 쓰시지요. 작가님처럼 프로 관찰러가 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보물찾기 쪽지 같은 거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어렸을 때 소풍 가면 선생님들이 소나무 가지 위에, 덤불 속에, 조그만 바위 뒤편에 쪽지를 숨겨두었잖아요. 그걸 찾아낼 때 우리가 얼마나 기뻤던가요. 세파에 많이 찌들어 있지만(웃음) 그 맘으로 돌아가 보는 거예요.
삶의 아름다움이 어디 먼데 있는 게 아니라, 내 주변에서 숨죽이고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도 한 번 더 보게 되고, 출근길에 나무도 한 번 더 보게 되더라고요. 매일 누가 내 하루에 보물찾기 쪽지를 두어 개쯤 숨겨놓았다고 생각하고 일상을 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마음속으로 “찾았다!” 외치는 순간을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이왕이면 그걸 기록해보면 더 좋겠죠.
Q. 전작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는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한다고 하셨어요. 기록에 관한 강연도 하고 계신데, 기록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 시간에 끝이 있다는 걸 알기에 매순간을 진심으로 대하게 되는 그 마음이 좋아서예요. 삶을 긴 여행으로 두면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 시간이 끝난다, 언젠가 이 사람을 잃는다, 그런 것을 생각했을 때 두렵거나 허무해지는 사람이 있고,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뭘 해야 할까 찾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언제나 후자예요. 두려움과 허무함에 잠겨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요.
죽음이나 상실은 우리에게 애먼 데 애쓰지 말고 지금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 여행이 언젠가 끝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기억해 두고 싶은 순간과 사람을 기록하는 일 아닐까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연습을 하게 되고요. 기록이 그 마음을 잊지 않고 계속 실천하게 해주어서 좋아요.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Q. 이번 책에는 작가님의 ‘청춘’ 시절에 관한 에피소드도 많았습니다.
자기 삶을 옮겨 놓는 에세이라는 게 결국 ‘돌아보면서’ 쓰는 기록일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청춘의 한가운데를 지날 때는 청춘이 좋은 줄 전혀 모르잖아요. 저도 20대를 통과할 때는 뭐랄까… 촌스럽고 막막하고 늘 웃풍 드는 방처럼 마음이 스산했던 느낌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 멀찍이서 돌아보니까 아 푸릇했던 시절이구나, 한 번밖에 없는 순간이 지나는데 좋은 줄도 모르고 다녔구나 싶어요. 그러고 보면 이상은의 〈언젠가는〉은 정말 명곡 아닌가요?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그렇다면 훗날 멀찍이서 돌아볼 때 지금의 제 나이도 그렇겠죠?
Q. 작가님에게는 ‘여행’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하셨죠. 특히 제주와 치앙마이를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예전엔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지금은 가보니 좋았던 곳을 다시 찾아가는 여행도 그만큼 좋아졌어요. 그런 시간을 더 이상 ‘아깝지 않다’고 여기게 된 것 같아요. 제주와 치앙마이는 좋아하는 만큼 특별히 반복해서 찾는 여행지 중 하나고요. 초록이 많고, 언제든 발길 닿는 곳으로 산책을 할 수 있고, ‘자연 멍’을 할 수 있는 곳이어서 좋아요.
이번 책에서도 「멍문가의 작은 세계」라는 글에서 멍 예찬을 했는데요. 제주에 가면 파도 멍, 구름 멍, 오름 멍, 귤밭 멍을, 치앙마이에 가면 나무 멍, 커피 멍, 노을 멍을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바삐 살다가도 두 곳에만 가면 ‘아, 그래 이런 삶이 전부가 아니지’ 하며 한숨 돌리고 호흡을 가다듬게 되는 것도 좋아요.
Q. 반려인 강 님과 여러 면에서 죽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 반대로, 함께 살면서 서로 “아니, 이 녀석이!” 싶은 부분은 없는지 궁금하네요.
비슷한 부분보다는 다른 부분이 더 많은데요, 책에는 비슷하거나 즐거웠던 순간만 쓰니까 착시효과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번 책의 초고를 읽고 나서 강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너는 ‘강’이라는 세상에 없는 남자와 살고 있구나…?” 그래도 농담과 맥주와 산책은 잘 맞는 편에 속하고, 이 세 가지가 제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기 때문에 다행이에요.
오래 만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 것들도 있어요. 저는 20대 내내 잠을 줄여가며 치열하게 사는 타입이었는데 강을 만나면서 늦잠의 달콤함을 알아버렸고 이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습니다…. 반대로 강은 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고객 맞춤형 1인 여행사인 저를 만난 후로 여행을 꽤 좋아하게 되었고요. 나머지 안 맞는 영역은 어른이니까 각자 해결합니다. 전시 보러 가는 친구는 따로 있다거나 혼자서 영화를 보거나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해먹거나 하는 식으로요.
Q. 혹시 시를 써 보신 적 있거나, 쓰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지금의 저는 에세이로 말하는 게 가장 편한 것 같아요.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 또 잘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에세이 안에 있다고 느낍니다. 시나 소설은 늘 동경의 대상이자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온 영역인데 언젠가는 쓰게 될지 저도 궁금해요. 뭐든 단정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Q. 이번 책에서 ‘신지도-생일도-평일도’ 여행 에피소드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이처럼 멋진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실행할 수 있는 용기와 팁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작가와 이름이 같은 ‘신지도’를 비롯한 ‘생일도’, ‘평일도’는 전남 완도에 있는 섬들입니다. 작가는 생일에 맞춰 이 섬들을 여행했습니다. 그는 『평일도 인생이니까』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행복이 다른 게 아니라 내게 즐거움을 주고 내가 천진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늘리고, 반대로 나를 시들게 하는 시간을 줄이는 데에 있다고 생각해요. ‘신지도-생일도-평일도’에 간 일은 거기 가면 분명 제가 좋아할 걸 알아서 오랜 시간에 걸쳐 제가 저에게 마련해준 이벤트였어요.
그런 특별한 여행이 아니어도 매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저는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마다 ‘올해의 예정된 기쁨’을 한 해 여기저기에 심어둬요. 계절마다 내가 좋아할 게 분명한 풍경을 품은 숙소를 예약하거나 어떤 장소에서 만날 약속을 잡아두는 거예요. 올해로 예를 들자면 4월에는 작년에 우연히 발견한 벚나무가 있는 정원을 가진 에어비앤비에 갈 예정이고요, 5월에는 차박을 떠나고, 6월에는 담양 관방제림에 가서 평상 위에 앉아 국수를 먹고 올 예정입니다. 제철 음식만큼 제철 행복을 챙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에게 더 나은 시간을 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니까요, 스스로를 좋은 순간에 자주 데려가면서 살기로 해요.
인터뷰 신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