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도 전통 악기 '시타르' 연주자, 한샘바위

2023-07-18

한국에서 인도의 전통 악기 '시타르'로 인도 전통 음악을 펼쳐보이는 것은 물론, 국악과 록 등 다양한 뮤지션, 창작자들과 콜라보레이션도 하고 있는 뮤지션 한샘바위. 인도에서 10년 넘게 시타르를 배우며 음악을 하던 그는 2019년 귀국한 이후 국내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한샘바위의 시타르 선율과 함께 잠시 인도로의 여행을 떠나보세요.


시타르 연주자 한샘바위


Q. ‘시타르’는 어떤 악기인가요?

시타르는 인도, 넓게 보면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등에서 쓰이는 전통 현악기입니다. 18세기 정도에 현재의 모습을 갖췄고요, 기타처럼 생겼지만 화음은 낼 수 없는 단선율 악기입니다. 한국으로 보면 거문고와 비슷해요.

 한샘바위의 시타르

 

Q. 어떻게 시타르를 배우게 되셨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사물놀이 교육원에서 장구를 배우며 자랐어요. 학교도 대안학교를 나와서 남들보다 1년 정도 일찍 졸업했고요. 검정고시를 보고 나니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여러모로 답답하고 회의감도 들어 2006년 무작정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1년 반 정도 여행을 다니면서 의식적으로 음악을 무시했어요. 그러다가 바라나시의 벵갈리 토라라는 여행자 거리에서 어떤 선율에 이끌린 거예요. 여행자들 상대로 불법 복제한 음악 CD를 파는 음반 가게였는데, 그 앞을 자주 지나가면서도 가만히 서서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게 ‘시타르’ 소리였지요.

 

마침 음반 가게 옆에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한두 달 시타르를 가르쳐 주는 악기 교습소가 있었어요. 수업비도 저렴해서 무작정 수업을 들었지요. 시타르는 연주를 하는 자세도 그렇고 연주법도 그렇고 되게 불편하고 고통스러워요. 그런데 점점 이 악기에 익숙해지는구나, 소리가 점점 예뻐지는구나,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남들보다 수업 진도가 좀 빨랐어요. 선생님도 혹시 시타르를 제대로 배워볼 생각이 있느냐고, 본인이 아는 유명한 시타르 연주자 선생님이 계시는데 음악으로도, 삶으로도 굉장히 지혜로운 분이시니 소개를 해 주겠다 하셨지요. 실제로 바라나시에서 영향력이 큰 분이셨고, 지금까지도 스승님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알고 보니 음반 가게에서 제 발길을 멈추게 했던 연주가 바로 스승님의 연주였더라고요. 그렇게 시타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시타르

 

Q. 타악기를 연주하다 현악기로 넘어가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처음에는 낯설었어요. 독학으로 기타를 좀 배우긴 했는데 코드 몇 개만 잡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시타르는 일단 코드가 없고요, 멜로디 악기인데도 비트, 리듬감 있는 악기로도 쓰여요. 어떻게 보면 드럼의 하이햇 같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고요. 인도 음악 자체가 리듬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리듬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타악기인 장구를 배운 게 도움이 됐지요. 지금도 시타르 연주법에서 가장 자신 있는 방식이 비트감 있게 멜로디 곡조를 연주하는 거예요.


시타르 연주자 한샘바위


Q. 인도에서 얼마나 지내셨나요?

처음 간 것이 2006년이고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온 게 2019년이었어요. 중간에 군 복무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인도에서 지냈습니다. 인도에서는 학교를 세 군데 다녔어요. 첫 학교는 음대였는데, 졸업을 6개월 앞두고 군 복무를 하느라 자퇴를 했어요. 인도는 휴학 제도가 없어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죠.

 

군복무 후에는 인도에서 인문대를 다녔는데요, 따로 시타르를 배우는 선생님이 계셔서 굳이 음대를 가지 않아도 됐어요. 인도 역사, 인도 철학, 영문학, 아랍 역사, 아랍어 이렇게 다섯 개 전공수업을 들었는데, 교재가 없고 교수님이 읽어주시는 걸 그대로 노트에 받아 적어서 달달 외우는 수업 방식이었어요. 이건 아니다 싶어 6개월 만에 그만두었지요.

 

마지막으로 다시 음대를 가서 졸업했어요. 제가 한량 기질이 있고 어떤 꽉 정해진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번 학교도 잘 맞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지금껏 중간에 그만두는 인생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물놀이도, 학교도 그랬고, 끝까지 한 건 운전면허증과 군대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를 끝까지 다녀 보기로 한 거예요. 물론 그동안 스승님께 계속 시타르를 배웠고요.

 

오른손 검지, 왼손 약지에 골무처럼 낀 것이 일종의 피크인 '미즈랍'


Q. 스승님과의 도제 방식 수업은 어떠셨나요?

수업에 가면 스승님과 마주 앉아 악기를 들어요. 스승님이 먼저 연주나 시범을 보여주시면 저는 그걸 따라 치는 거예요. 주거니 받거니 이런 식으로 1시간 정도를 계속 서로 호흡하며 연주를 해요. 그런데 도제 방식은 사물놀이에서 장구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고, 특징적인 부분이나 액션을 포착하는 게 제가 남들보다는 아무래도 빨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쉽게 적응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도제 방식으로 전해질 때 무슨 무슨 ‘유’라고 하잖아요. 인도에서는 그걸 ‘가라나’라고 말합니다. 가라나는 직역하면 ‘지붕’이라는 뜻인데 ‘한 지붕 안에 속해 있다’는 의미가 돼요. 스승에서 스승으로, 혹은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데 각 가라나에는 특유의 연주 테크닉과 풍류가 있어요,

  

Q. 스승님의 가라나는 어떤 스타일인가요?

제 스승님의 ‘마이하르 가라나’는 기악적이에요. 솔리스트로 느리게 연주되다가 점점 템포를 끌어올리며 현란한 테크닉이 나오지요. 흔히 인도 음악의 신이라 불리는 라비 샹카르, 저희가 잘 아는 노라 존스의 아버지인데요, 그분의 스타일과 동일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 스승님은 굉장히 고고하세요. 학 같은 느낌이랄까, 자세가 꼿꼿하시고 흰 머리를 항상 단정하게 빗으세요. 학이 화려하진 않지만 멋이 있잖아요. 연주 스타일도 화려하진 않은데 깊은 멋이 있어요.

 

시타르

 

Q. 인도 음악은 즉흥적인 면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인도 음악에는 ‘라가’라고 하는 멜로디 선율 체계와 ‘딸라’라고 하는 박자 체계가 있어요. 인도는 변박도 많고 박자가 엄청 다양해요. 그런 박자 안에 멜로디 선율 체계가 들어와 인디안 클래식 앙상블을 이루지요. 그런데 그게 기본적으로 클래식 폼 안에서 즉흥으로 이루어져요. 그래서 신경 쓸 것도 많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아요.

 

보통 한 시간 동안 연주자가 즉흥으로 연주합니다. 그러다 보니 연주에서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 사람이 무의식 속에서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고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인도 음악을 공부하다 보면 보이게 돼요. 저도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수련 기간이 길어지면서 새삼 저희 스승님이 굉장히 대단하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한샘바위의 시타르 연주

 

Q. 최근 시타르로 거문고와 합주를 하는 공연 영상을 봤습니다. 시타르와 함께 연주하기에 좋은 악기가 있나요?

거문고는 옛날부터 제가 좋아하던 악기인데, 시타르와도 잘 맞아요. 시타르는 소리가 좀 날아가는 경향이 있어요. 가벼운 느낌이랄까. 거문고는 울림 자체가 단단하고 묵직해서 서로 보완이 돼요. 둘 다 단선율 악기이고요, 거문고도 박자 악기가 됩니다. 그래서 함께 작업해 보기도 했고, 거문고 곡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다양한 악기, 뮤지션과 함께 작업하려 하고 있어요. 록 밴드, 국악 관현악단과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서양 클래식 오케스트라와도 작업해 보고 싶어요. 무용, 미술 같은 다른 장르의 예술인과도 소통하고 싶고요.

 

시타르와 거문고 합주 영상

 

Q. 잠깐 언급하셨던 라비 샹카르는 비틀스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고 노라 존스, 아누쉬카 샹카르의 아버지이기도 한 인도의 음악가이지요. 실제로 인도에서 그의 영향력은 어떤가요?

인도에서는 흔히 라비 샹카르를 ‘음악의 신’이라고 표현해요. 인도에서 길 가다가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라비 샹카르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음악을 안 듣는 사람이라도요. 인도 내에서 남긴 족적도 그렇고, 서양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어마어마했습니다. 인도 사람들이 영화를 많이 보잖아요? 발리우드 영화의 음악감독으로도 오래 활동하셔서 인도 사람들에게는 이래저래 친숙했던 음악가입니다.

 

아까 ‘가라나’라고 각 풍류가 다르다고 말씀드렸는데, 라비 샹카르의 캐릭터는 정말 독보적입니다. 전통인 것 같기도 하고 모던인 것 같기도 하고. 라비 샹카르는 원래 ‘까딱’이라는 인도 전통 무용수였어요. 까딱은 탭댄스처럼 발을 가지고 하는 춤인데 그래서인지 라비 샹카르의 연주는 굉장히 비트감이 있습니다. 어떻게 박자를 이런 식으로 가지고 놀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인도에 라비 샹카르의 음악성에 도달하는 분들은 꽤 많이 있습니다만 라비 샹카르만큼 대중적인 분은 없어요.

 
라비 샹카르


Q. 인도에서도 공연을 하셨나요?

저랑 친하게 지내던 인도의 전통 타악기 타블라 연주자가 있어요. 그 친구 집안이 ‘뮤직 아쉬람’을 운영하는데 전통 가옥이고 1층이 홀처럼 되어 있어요. 거기에서 매 여행자 시즌에 음악 콘서트를 열었어요. 저희 스승님과 유명한 연주자분들을 비롯해 저도 그곳에서 연주를 많이 했어요.

 

바라나시의 ‘아시 가트’에서 힌두인들이 아침마다 몸을 씻어요. ‘뿌자’라고 하는데 동이 틀 무렵에 뿌자를 하고 나면 엄청나게 많은 인파 앞에서 연주를 해요. 전통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인기 관광 상품이기도 하죠. 거기서도 연주를 많이 했어요. 그때마다 아, 내가 이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들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지요.

 

제가 정확히 그 수는 모르는데 수만 명, 10만 명 이상이 되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한 적도 있어요. 인도의 자르칸트 주가 다른 주에서 자치주로 독립을 했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 초청받은 적이 있어요. 무대에 섰는데 여기서 끝도 보이지 않는 저 멀리까지 사람이 꽉 찬 거예요. 인도 음악에도 기승전결이 있어서 막 치고 올라가 뻥하고 터트리며 엔딩을 맞이하는데 수만 명의 사람이 환호성을 지를 거 아니에요. 그 에너지가 어마어마했던 기억이 나요. 말씀드리는 지금도 소름이 돋을 정도네요. 아마 웬만한 록스타보다 많은 청중들 앞에서 연주했을 겁니다.

 

한샘바위의 공연

 

Q. 한샘바위 님 외에도 인도에서 음악을 배우는 한국인들이 많았나요?

꽤 있습니다. 한국에서 저 이전에 활동하셨던 분들이 꽤 있으시고요. 대부분 재야의 고수처럼 지내세요. 인도 음악이 한국 음악 씬에서는 대중적이지 않다 보니 덜 드러나는 면이 있기도 하고요. 인도에서도 전문 음악인이 아니더라도 인도가 너무 좋아 살면서 겸사겸사 악기를 배우시는 분들, 인도 음악 마니아 분들을 종종 뵈었어요.

 

만약 영국인이 한국에 와서 거문고를 배워 굉장히 잘 친다고 하면 우리는 와, 대단하다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그걸 편견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아무튼 인도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요. 어, 너도 시타르를 배웠구나, 잘하네, 그러지요. 사실 서양은 물론이고 일본이나 대만만 하더라도 ‘인도 음악’ 씬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인도는 외국인들이 그들의 전통 음악을 배우는 데 익숙해요. 


시타르 연주자 한샘바위


Q. 음반 활동도 하시나요?

제가 2014년과 2015년에 한국에서 한두 달씩 잠깐 머문 적이 있어요. 그때 서아프리카에서 젬베를 공부하는 친구, 말레이시아에서 블루스 베이스를 치던 친구, 삼바나 보사노바 같은 라틴계 플루트를 연주하던 친구, 보컬까지 다양한 멤버와 아이즘(IJM)이라는 팀을 결성해서 앨범을 낸 적이 있어요. 아이즘은 ‘It Just Music’이라는 뜻인데, 우리의 음악이 그냥 ‘제3세계 음악’으로 분류되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이건 월드 뮤직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음악이다, 팀 이름으로 보여줬던 것이지요. 지금 들으면 부족한 면이 많지만, ‘날 것’의 느낌은 분명 살아 있어요.


아이즘(IJM)의 칼리탠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우선 개인적으로 인도 클래식 음악, 시타르 연주를 널리 알리고 싶어요. 타블라를 연주하는 분과 인도 음악을 대중들에게 더 많이 소개하려 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어떤 특정 채널이나 단체에 초청을 받을 때 커버 음악을 하는 걸 꺼렸어요. 하지만 요즘은 약간의 타협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말씀드렸듯 인도 음악은 본질적으로 즉흥 음악이고, 그래서 가능하면 순수한 창작곡으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어요.

 

대외적으로는 다양한 창작자들과 교류하고 협업하려 해요. 국악 연주자들과 콜라보를 준비하고 있고, 그래서 국악 공부도 하고 있어요. 록 밴드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기타, 베이스, 드럼, 신스, 보컬, 그리고 저 시타르가 한 팀인데, 베이스, 드럼, 보컬은 ‘경기남부 재즈’ 팀이고, 신스와 기타는 ‘고래야’라고 국악 퓨전 밴드의 멤버들이에요. 워낙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아직 밴드 이름은 못 정했습니다. 정해지면 알려 드릴게요.


 



인터뷰 신태진 이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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