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신간] 완벽을 강요하는 세계에서 벗어나기 - 하정의 <이상한 나라의 괜찮은 말들>

2025-06-19


<이상한 나라의 괜찮은 말들>

하정 지음 / 좋은여름 출판사 / 가격 25,000원

 

정해진 순서대로,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고 강요받던 익숙한 세계를 떠나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삿짐 버금가는 이민가방을 끌고 도착한 곳이, 완벽은 언감생심, 원하는 방식으로 어찌어찌 겨우 해 내고 만족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 아일랜드 캠프힐입니다. 캠프힐은 1940년 스코틀랜드에서 장애 아동을 위한 학교로 시작하여 장애인들이 봉사자들과 함께 장애를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마을로 현재 전 세계 100여 개 공동체가 운영 중입니다.

 

저자는 이곳에서 빵을 굽는 자원봉사로 살아 보기로 합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베이킹과 몇 가지 조리사 자격증을 따 놓았고, 카페 운영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머릿속에 그리고 계획했던 계량, 시간, 알맞은 재료는 첫날부터 완전히 무너져 내립니다. 온갖 실수에 조바심, 누구도 그렇게 대하지 않는데 스스로 부적응자가 되어 점점 더 무력하고 움츠러든 시간에 빠져듭니다.

 

그러다 잘하는 것 말고 다 어설픈 한 친구를 만나게 되고, 오래된 봉사자들이 그간 건네 왔던 말의 의미를 서서히 알아차리게 되면서 타인에게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안전한 사람이 되어 보기로 합니다. 이 책은 경쟁과 완벽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나고 자란 저자가 조금 이상해 보이는, 허술해 보이기도 하는 아일랜드 캠프힐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회복하고, 편안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가 전반부라면 후반부에는 다시 발견한 자신을 이끌고 또 다른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를 누빕니다. 이 여행 역시 캠프힐의 연장선입니다. 캠프힐 동료들이 소개한 집, 동네를 찾아가 그들의 친구 가족을 만나고, 캠프힐 동료와 재회하여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맺어갑니다. 만남과 이별이 연속되지만 이별은 곧 만남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하게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닥치기 몇 해 전 한국에도 카우치 서핑이 유행했지요. 저자는 철저히 모르는 이의 소파를 찾아다니며 '주관 세계의 나'와 '객관 세계의 그'가 우리라는 새로운 관계로 접어드는 경험을 반복합니다. 규칙 없이, 모범 답안 없이, 실패와 성공을 염두에 두지 않고, 차곡차곡 나의 경험과 생각을 쌓아가며 백지를 백과사전으로 만들어 갑니다.




글 | 이주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