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신간]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은 경로를 이탈한다, 차현진 장편소설 『드라이브 피플』

2025-12-09


『드라이브 피플』, 차현진, 한끼, 17,000원


1.
퇴직을 앞둔 마지막 비행. 암스테르담에서 레이오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2주 후는 결혼, 한 챕터가 닫히고 새로운 챕터가 열립니다. 디올에서 맞춘 한정판 드레스 가봉 날이 지난날에 대한 보상이자 앞날에 대한 축복처럼 기다리고 있지요. 그런데 아이슬란드에서 화산이 폭발해 모든 항공이 멈춰버렸군요. 한국으로부터 급한 전갈도 날아옵니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고. 최대한 남쪽으로 내려가 화산재를 피해 비행기를 타기 위해 렌터카를 빌리기로 합니다.


2.
중요한 인터뷰가 화산 폭발로 취소되고 암스테르담에 발이 묶였습니다. 편집장은 어떻게든 펑크 난 지면을 메우라고 하네요. 애증이 담긴 도시 파리로 가야하는데 갈 수 있는 길은 육로뿐. 렌터카를 빌려서 차 앞에 서자 똑같은 키를 들고 서 있는 여자가 보입니다. 직원의 실수, 더블 부킹, 누가 차를 쓸지는 두 사람이 알아서 결정하세요. 그런데 이 여자 낯이 익습니다. 여자도 나를 알아보는 것 같군요.


3.
차현진 작가의 소설 『드라이브 피플』은 화산 폭발로 유럽에 고립(?)된 남녀가 렌터카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사실 이 두 사람은 이미 만난 적이 있습니다. 유럽으로 날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암스테르담의 밤거리에서. 사랑보다는 안정을 위한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와 어릴 적 프랑스로 입양되었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잡지사 에디터로 고군분투하는 남자는 서로에 대한 호감과 경계를 감추지 못합니다. 아무튼 각자의 이유로 렌터카가 꼭 필요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동행은 시작됩니다. 유럽, 사연 있는 남녀, 로드 트립 중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사고. 무언가 로맨틱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나요? 잘 짜인 여행 소설이 그렇게 시동을 겁니다.


드라마작가이자 예능작가인 차현진 작가는 그의 첫 장편소설에서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필치로 운명처럼 한 차에 타게 된 남녀의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드라마의 ‘클리프행어’처럼 크고 작은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 두 사람의 감정도 차곡차곡, 속도감 있게 쌓여가지요. ‘차곡차곡’과 ‘속도감’이라는 두 단어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은 작가 특유의 작법 덕분인데요, 극적으로 꽤 중요한 상황도 담백하고 간결하게 서술하면서 두 인물의 감정 묘사에 집중하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두 권짜리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의 남자 편과 여자 편을 한 챕터씩 번갈아 읽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드라이브 피플』은 꼭 그처럼 두 남녀의 시점이 번갈아 서술되는데요, 이런 구성이 감정이입에 도움이 됩니다. 뭐랄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드라마 같다고 할까요? 전통적인 소설의 화법을 비트는 이런 방식에는 역시 작가의 이력이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4.
모든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엇갈림으로 완성되듯, 『드라이브 피플』도 중반 이후부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사실 책 전반에 걸쳐 불법 해외 입양, 성소수자, 마약, 대기업 제조사의 결함 은폐 등 여러 사회 이슈를 언급하고 있고, 거기에 힘을 받은 결말부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차현진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인생을 걸고 지키고 싶은 사랑이 있는가?”라고 묻고 있는데요, 이런 결말의 의외성 때문에 책을 덮으면 이 질문을 소설 속 등장인물 누구에게 대입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소설에 올라 드라이브를 하며 어떤 풍경을 보게 될지 궁금하네요.




글 | 신태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