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턱시도 고양이 노자와 함께 살며 읽는 동양 철학의 정수 노자의 〈도덕경〉
다른 사람들은 희희낙락 잘들 살아가는데 나만 왜 제자리걸음인가 회의감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오늘 저녁 모임에서 누구보다 빛나던 잘 나가는 그 친구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는 저만의 불안에 빠져 있을지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막막함, 내가 지금 잘 살고 있긴 한 건지,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게 없는 것 같다는 회의감, 불확실한 마음은 모두가 마찬가지다.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는 이런 의문에 답을 찾고 싶어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정리해 온 사람,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글을 읽고 고치고 쓰는 사람이 되어 있는 사람의 에세이이다. 그러다 의도치 않게 길에서 구조된 코리안 숏헤어 검은 고양이 노자와 아메리칸 숏헤어 회색 고양이 초희가 사뿐사뿐 그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왔고, 이들 곁에서 책을 읽은 것은 이제껏 책을 읽어 온 방식과 달랐다. 책을 책이라는 이상적 결과물이 아닌 말썽꾼 고양이 곁이라는 현실 세계에서 읽게 해 준 것이다.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를 쓴 이주호 작가는 막막하기만 한 미래와 달리 유일하게 확실한 건 지나온 과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하고, 그렇게 새롭게 정의된 나로부터 미래를 향한 수직선을 긋기로 한다. 물론 그 선도 훗날의 재구성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노자와 노자, 사뿐사뿐 내 삶으로 걸어오다.
이주호 작가가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는 방편으로 삼은 게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이다. 노자라는 인물이 기원전 500년 경 썼다고 알려진 〈도덕경〉은 아직까지도 해석이 분분한 동양 철학의 뜨거운 감자 같은 존재. 그렇다고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어려운 책은 아니다. 오히려 수세기 동안 혼탁하고 치열한 인간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 애쓰던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을까 싶어 읽어 왔던 책이다. 〈도덕경〉 20장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남음이 있는데 나만 홀로 모자르다. 내 마음 왜 이리도 어리석은 걸까, 혼란스럽다. 세상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 홀로 어리석다. 세상 사람들은 잘도 살피는데, 나만 유독 답답하구나.”
이주호 작가는 노자의 〈도덕경〉을 읽던 중 우연히 턱시도 길고양이를 맡아 키우게 된다. 저자는 노자에 대한 헌사의 의미로 고양이 이름을 길에서 온 아이라는 뜻의 ‘노자路子’로 짓는다. 흥미롭게도 철학자 노자는 물론, 고양이 노자로부터도 삶의 이치를 배우게 됐다. 고양이가 사람보다 더 ‘도(道)’에 가까운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도덕경〉의 한 장 한 장이 지나온 과거에 대한 설명이자 주석, 때로는 뼈아픈 충고가 되었다.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는 바로 그 깨달음에 대한 기록이다.
〈도덕경〉을 악보 삼아, 확신 없는 사람들을 위해 부르는 송가
이주호 작가는 각 장마다 〈도덕경〉의 일부를 인용하고 해석한 다음, 거기서부터 개인적인 일화를 풀어나간다. 웃픈 실패담이 한보따리요, 웃음 코드는 자조다. 때때로 저만의 세상을 꿈꾸다가 실패하고 사라진 인물들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도덕경〉에 스며들게 된다.
노자는 〈도덕경〉의 첫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를 도라고 하면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며, 이름 짓고 나면 항상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도(道)’에 관한 글이지만 도를 정의하기보다 도를 섣불리 정의하지 말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도덕경〉은, 그래서 확신보다는 의심, 확언보다는 둘레둘레 돌아가는 화법으로 쓰인 책 같다.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 역시 확신 없는 사람이 확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다.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채널에서 자기 말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세상. 그 속에서 우리의 불안은 더욱 커져가지만, 결국 끝없이 의심하고 의문을 가지는 것만이 이 어리둥절한 정보 홍수 세상을 헤쳐 나가는 방편이 된다. 그리고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는 이처럼 머뭇머뭇 확신은 없어도 사부작사부작 멈추지 않고 걸어나가는 우리 모두에게 공감과 응원이 되어줄 책이다.
편집 | 신태진 에디터
턱시도 고양이 노자와 함께 살며 읽는 동양 철학의 정수 노자의 〈도덕경〉
다른 사람들은 희희낙락 잘들 살아가는데 나만 왜 제자리걸음인가 회의감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오늘 저녁 모임에서 누구보다 빛나던 잘 나가는 그 친구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는 저만의 불안에 빠져 있을지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막막함, 내가 지금 잘 살고 있긴 한 건지,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게 없는 것 같다는 회의감, 불확실한 마음은 모두가 마찬가지다.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는 이런 의문에 답을 찾고 싶어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정리해 온 사람,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글을 읽고 고치고 쓰는 사람이 되어 있는 사람의 에세이이다. 그러다 의도치 않게 길에서 구조된 코리안 숏헤어 검은 고양이 노자와 아메리칸 숏헤어 회색 고양이 초희가 사뿐사뿐 그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왔고, 이들 곁에서 책을 읽은 것은 이제껏 책을 읽어 온 방식과 달랐다. 책을 책이라는 이상적 결과물이 아닌 말썽꾼 고양이 곁이라는 현실 세계에서 읽게 해 준 것이다.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를 쓴 이주호 작가는 막막하기만 한 미래와 달리 유일하게 확실한 건 지나온 과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하고, 그렇게 새롭게 정의된 나로부터 미래를 향한 수직선을 긋기로 한다. 물론 그 선도 훗날의 재구성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노자와 노자, 사뿐사뿐 내 삶으로 걸어오다.
이주호 작가가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는 방편으로 삼은 게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이다. 노자라는 인물이 기원전 500년 경 썼다고 알려진 〈도덕경〉은 아직까지도 해석이 분분한 동양 철학의 뜨거운 감자 같은 존재. 그렇다고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어려운 책은 아니다. 오히려 수세기 동안 혼탁하고 치열한 인간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 애쓰던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을까 싶어 읽어 왔던 책이다. 〈도덕경〉 20장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주호 작가는 노자의 〈도덕경〉을 읽던 중 우연히 턱시도 길고양이를 맡아 키우게 된다. 저자는 노자에 대한 헌사의 의미로 고양이 이름을 길에서 온 아이라는 뜻의 ‘노자路子’로 짓는다. 흥미롭게도 철학자 노자는 물론, 고양이 노자로부터도 삶의 이치를 배우게 됐다. 고양이가 사람보다 더 ‘도(道)’에 가까운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도덕경〉의 한 장 한 장이 지나온 과거에 대한 설명이자 주석, 때로는 뼈아픈 충고가 되었다.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는 바로 그 깨달음에 대한 기록이다.
〈도덕경〉을 악보 삼아, 확신 없는 사람들을 위해 부르는 송가
이주호 작가는 각 장마다 〈도덕경〉의 일부를 인용하고 해석한 다음, 거기서부터 개인적인 일화를 풀어나간다. 웃픈 실패담이 한보따리요, 웃음 코드는 자조다. 때때로 저만의 세상을 꿈꾸다가 실패하고 사라진 인물들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도덕경〉에 스며들게 된다.
노자는 〈도덕경〉의 첫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道)’에 관한 글이지만 도를 정의하기보다 도를 섣불리 정의하지 말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도덕경〉은, 그래서 확신보다는 의심, 확언보다는 둘레둘레 돌아가는 화법으로 쓰인 책 같다.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 역시 확신 없는 사람이 확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다.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채널에서 자기 말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세상. 그 속에서 우리의 불안은 더욱 커져가지만, 결국 끝없이 의심하고 의문을 가지는 것만이 이 어리둥절한 정보 홍수 세상을 헤쳐 나가는 방편이 된다. 그리고 『사뿐사뿐, 노자가 걸어왔다』는 이처럼 머뭇머뭇 확신은 없어도 사부작사부작 멈추지 않고 걸어나가는 우리 모두에게 공감과 응원이 되어줄 책이다.
편집 | 신태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