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도서] ‘악의 성자’ 주네가 어두운 감방에서 쓴 첫 걸작,《 꽃피는 노트르담 》출간

장 주네 지음·성귀수 옮김,《 꽃피는 노트르담 》, 문학동네, 2024. 8


한 죄수의 고독과 자유가 꿈꾼 진실 ‘존재의 관능’
악의 형이상학과 범죄의 현상학 사이의 엑스터시


“나는 내 욕망을 포기한 사람이다. (...) 사람 사는 평생을 나 이 벽들 사이에서 지내게 하라. 내일 누구를 판결할 것인가? 한때 내 것이었던 이름을 가진 어느 낯선 자겠지. (...) 진짜든 가짜든 내가 디빈의 어깨에 올려놓은 것은 나의 운명이다.” _장 주네




감방에 갇힌 죄수 ‘나’. 그는 교도소 생활 수칙이 적힌 패널 뒷면에 신문에서 오려낸 20여 명의 살인자 사진을 간수들에게 보이지 않게 붙여두고, 밤이면 그들을 하나하나 몽상으로 불러내 자신만의 왕국을 펼친다. 주네는 교도소에서 이 첫 소설을 쓰면서, 모리스 필로르주에게 헌사를 바쳤다.(첫 장시 『사형수』 헌사에도 등장하는 이 인물은 애인을 살해하고 푼돈을 훔치다 법정에서 재판부를 조롱하며 이십대 때 처형된 실제 인물이다.) 소설 초반부에서 “내가 이 책을 쓰는 것은 그들 모두의 범죄 행각을 기리기 위함이다”라고 밝힌바, 여기서 ‘그들’은 살인과 반역죄로 사회로부터 격리당해 감금되었다가 법정 단두대에서 처형된 범죄자들, 제도권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낙오자들로, 소설 초반부터 “이미 죽은 몸들”이다. 데리다로부터 사사하고 주네 연구를 하기도 한 우카이 사토시는 주네의 작품세계의 핵심이자 시원이 “사자死者에게 바치는 공물”이라고 했다. 공포에 떨며 재판과 형을 기다리는 죄수 주네는 자신의 분신이자 “자신이 혐오하는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성자처럼 제 사랑의 운명을 의탁한 디빈이라는 트랜스젠더 주인공을 내세워, 그들 죽음의 제단에 바치는 희생제물처럼 (여성도 남성도 아닌, 선의를 제거한 채 신에 쉬이 호명당하지 못할 무의미 또는 반의미로서) 그녀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장례식에 모두 모인 ‘그들’은 디빈의 삶과 사랑의 비극을 수놓았던 인물들로, 죽은 디빈의 삶의 행적을 따라가며 이 살인자들(미뇽, 알베르토, 고르기, 가브리엘 등) 하나하나와의 만남이 그려진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인물들의 별칭과 실명 사이의 간극이 자아내는 시적 긴장이다. 어쩌면 여기 나오는 모든 별명이 이 땅에서 더이상 죄인으로 호명당하지 못하도록, 이름하지 못하도록 신성의 화환을 둘러놓은 셈. 그는 머릿속에서 인물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어떻게 그들이 관계하고 서로 무슨 대화를 하는지를 독자에게도 상상해보라 건네면서, 자신이 쓰는 이야기 전개 과정과 독자가 읽는 행위의 흐름을 동시적으로 상호적으로 자극하며 서사를 짜나간다. 독자와 저자의 눈을 하나씩 달고 인간의 손을 타지 않는 텅 빈 하늘의 왕좌를 악의 에너지로써 찬탈해나가는 주네. 그리하여 필사적으로 매달린 그의 상상 속에서 터져나오는 것은 황홀과 공포, 가장 밑바닥에 있는 벌거숭이 ‘인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이 아름다움은 선악의 세계 저편에 있는 존재의 자유이기에, 주네는 결박당한 자신을 대신해 디빈의 어깨에 자신의 운명을 올린 것이다. “오직 그만을 위해 작성된 시, 다른 어느 누구도 열쇠를 소지할 리 없는 난해한 시”로써.


한편 이 책의 표제로 내세운 ‘꽃피는 노트르담’은 마약 딜러이자 살인자로, 디빈의 연인인 기둥서방 미뇽과의 사이에 연적으로 등장하며 그를 본 모든 이를 황홀한 매혹으로 이끄는 자다. 주네는 이 인물을 통해 디빈의 고독한 사랑을 파국으로, 무한과 교류하는 존재의 가능성으로, ‘존재의 관능’ 그 자체로 이끈다. 주네가 “필로르주를 향한 나의 사랑으로부터 태어났다”고 고백한 인물 ‘꽃피는 노트르담’은, 사방에 아무것도 없고 오직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몸뚱어리밖에 없는 감방의 한계상황에서, 디빈과 ‘나’의 운명을 짊어지고 세계의 저편으로 나아가게 하는 돛인 셈이다.


자료제공 l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