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옥선,《 즐거운 어른 》, 이야기장수, 2024. 8
76세 이옥선은 우리에게 익숙한 할머니의 이미지에서는 사뭇 벗어나 있다. 이옥선 작가의 딸이자 <여둘톡>의 팟캐스터인 김하나 작가는 이 책을 추천하며 “까칠한 할머니”라는 표현을 썼다, 여기서의 까칠함은 세상을 향해 자신의 꼿꼿한 경계와 기준을 세워둔 자의 도통 무뎌지지 않은 감각을 의미할 것이다. 뾰족하게 살아 있는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까칠한 태도는 마치 때밀이 수건처럼 세상사에 짓눌려 있던 우리 마음의 묵은 때를 벗겨준다. 이 까칠함은 부당하고 낡은 세상의 관습을 마주할 때 무엇 하나 그러려니 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와 삶의 태도를 찾아내려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기도 하다.
1부 ‘인생살이, 어디 그럴 리가?’에는 까칠한 할머니의 호탕한 일갈이 담겼다. ‘야, 이노무 자슥들아’ ‘젖가슴이 큰 게 그리 좋은가?’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없다’ 등 1부에 속한 글의 제목만 봐도 거침없음이 느껴진다. 오랜 세월 이 한국 사회를 견뎌온 한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슴을 뜨겁게 때로는 시원하게도 만든다. 비혼을 선택하는 여성들을 쉽게 나무라는 옛 어른들의 힐난이 흔해빠진 세상에서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단다”라며 ‘사태 파악’을 빠르게 마친 현대의 여성들을 격려하는 말은 폭소와 함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이런 글들은 오랜 세월 가부장제를 견뎌낸 여자 어른이 현시대의 젊은 여자들을 지켜주고자 하는 거센 응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새로운 판을 짜야 옳다. 한국의 여자들은 너무 똑똑하고 교육도 다 잘 받았다. 사태 파악이 빨라 비혼자도 늘었다(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단다). 더러 남자들도 비혼을 선호하고, 결혼하고도 아이 없이 사는 풍조도 늘어간다. 출생률이 세계에서 제일 낮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구의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니까. 인구 정책을 논의하는 사람들은 안 봐도 알 것 같은데, 50대 중반을 넘은 고위직 남자거나 남성적 돌파력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여성일 것 같다. 아이 하나 낳는 데 돈 얼마를 지급하겠다는 얄팍한 정책 가지곤 먹혀들지 않는다. 제도적 결혼 안에서만 인구를 늘리려는 생각으로는 절대로 인구가 늘지 않는다에 500원 건다. 아니 5천 원 건다. (26~27쪽, ‘새판을 짜야 할 때가 왔다’)
* * *
이토록 유쾌하고 자유로운 어른이건만, 단 하나 죽음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 죽음을 피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도 나날이 뚜렷해진다. 이옥선 작가는 “심장마비로 고독사하기를 원한다”는 충격적인 장래희망을 밝힌다. 저세상으로 떠나는 길, 갑자기 의료시스템에 멱살 잡혀 붙들려와 의미 없는 수명 연장 끝에 누구더러 나 간병시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매정하다 싶을 만큼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독자적인 그이지만, 그러다가도 이내 죽음이 닥칠 어느 날을 상상하며 한 어머니의 목소리로 남기는 유언은 보는 이들의 코끝을 시큰해지게 한다.
그냥 나도 생각난 김에 한마디하자면, 나는 내가 인생에서 해야 할 숙제는 다 했고(남편의 장례식을 끝낸 것, 뒷정리를 다한 것이 나의 제일 큰 숙제였다) 이제까지 대충 즐겁게 잘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너희도 너무 애쓰지 말고 대충(이것이 중요하다) 살고, 쾌락을 좇는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뭔가 불편한 것이 있으면 이것부터 해결하는 방법으로 살면 소소하게 행복할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건강을 잃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한 종목의 운동을 늙어서까지 꾸준히 할 것이며 너무 복잡한 건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도록 해라. 다행히도 재산이 많지 않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아들딸 며느리 손자 손녀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했고 너희는 내가 지금도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다. 나의 장례는 그 시기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할 것이며 화장해서 유골은 너희 아빠를 장사 지낸 것처럼 하고, 제사는 지내지 말고 그날 시간이 나면 너희끼리 좋은 장소에 모여서 맛있는 밥을 먹도록 해라. 또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너희 아빠는 꽃 피는 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단풍 드는 가을에 떠나면 좋겠네. 그러면 너희는 봄가을 좋은 계절에 만날 수 있을 테니. 끝. ( 73~74쪽, ‘유언에 대하여’)
자료제공 l 이야기장수
이옥선,《 즐거운 어른 》, 이야기장수, 2024. 8
76세 이옥선은 우리에게 익숙한 할머니의 이미지에서는 사뭇 벗어나 있다. 이옥선 작가의 딸이자 <여둘톡>의 팟캐스터인 김하나 작가는 이 책을 추천하며 “까칠한 할머니”라는 표현을 썼다, 여기서의 까칠함은 세상을 향해 자신의 꼿꼿한 경계와 기준을 세워둔 자의 도통 무뎌지지 않은 감각을 의미할 것이다. 뾰족하게 살아 있는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까칠한 태도는 마치 때밀이 수건처럼 세상사에 짓눌려 있던 우리 마음의 묵은 때를 벗겨준다. 이 까칠함은 부당하고 낡은 세상의 관습을 마주할 때 무엇 하나 그러려니 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와 삶의 태도를 찾아내려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기도 하다.
1부 ‘인생살이, 어디 그럴 리가?’에는 까칠한 할머니의 호탕한 일갈이 담겼다. ‘야, 이노무 자슥들아’ ‘젖가슴이 큰 게 그리 좋은가?’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없다’ 등 1부에 속한 글의 제목만 봐도 거침없음이 느껴진다. 오랜 세월 이 한국 사회를 견뎌온 한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슴을 뜨겁게 때로는 시원하게도 만든다. 비혼을 선택하는 여성들을 쉽게 나무라는 옛 어른들의 힐난이 흔해빠진 세상에서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단다”라며 ‘사태 파악’을 빠르게 마친 현대의 여성들을 격려하는 말은 폭소와 함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이런 글들은 오랜 세월 가부장제를 견뎌낸 여자 어른이 현시대의 젊은 여자들을 지켜주고자 하는 거센 응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새로운 판을 짜야 옳다. 한국의 여자들은 너무 똑똑하고 교육도 다 잘 받았다. 사태 파악이 빨라 비혼자도 늘었다(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단다). 더러 남자들도 비혼을 선호하고, 결혼하고도 아이 없이 사는 풍조도 늘어간다. 출생률이 세계에서 제일 낮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구의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니까. 인구 정책을 논의하는 사람들은 안 봐도 알 것 같은데, 50대 중반을 넘은 고위직 남자거나 남성적 돌파력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여성일 것 같다. 아이 하나 낳는 데 돈 얼마를 지급하겠다는 얄팍한 정책 가지곤 먹혀들지 않는다. 제도적 결혼 안에서만 인구를 늘리려는 생각으로는 절대로 인구가 늘지 않는다에 500원 건다. 아니 5천 원 건다. (26~27쪽, ‘새판을 짜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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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유쾌하고 자유로운 어른이건만, 단 하나 죽음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 죽음을 피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도 나날이 뚜렷해진다. 이옥선 작가는 “심장마비로 고독사하기를 원한다”는 충격적인 장래희망을 밝힌다. 저세상으로 떠나는 길, 갑자기 의료시스템에 멱살 잡혀 붙들려와 의미 없는 수명 연장 끝에 누구더러 나 간병시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매정하다 싶을 만큼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독자적인 그이지만, 그러다가도 이내 죽음이 닥칠 어느 날을 상상하며 한 어머니의 목소리로 남기는 유언은 보는 이들의 코끝을 시큰해지게 한다.
그냥 나도 생각난 김에 한마디하자면, 나는 내가 인생에서 해야 할 숙제는 다 했고(남편의 장례식을 끝낸 것, 뒷정리를 다한 것이 나의 제일 큰 숙제였다) 이제까지 대충 즐겁게 잘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너희도 너무 애쓰지 말고 대충(이것이 중요하다) 살고, 쾌락을 좇는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뭔가 불편한 것이 있으면 이것부터 해결하는 방법으로 살면 소소하게 행복할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건강을 잃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한 종목의 운동을 늙어서까지 꾸준히 할 것이며 너무 복잡한 건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도록 해라. 다행히도 재산이 많지 않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아들딸 며느리 손자 손녀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했고 너희는 내가 지금도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다. 나의 장례는 그 시기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할 것이며 화장해서 유골은 너희 아빠를 장사 지낸 것처럼 하고, 제사는 지내지 말고 그날 시간이 나면 너희끼리 좋은 장소에 모여서 맛있는 밥을 먹도록 해라. 또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너희 아빠는 꽃 피는 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단풍 드는 가을에 떠나면 좋겠네. 그러면 너희는 봄가을 좋은 계절에 만날 수 있을 테니. 끝. ( 73~74쪽, ‘유언에 대하여’)
자료제공 l 이야기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