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스콰치 선셋>
개봉 : 202.07.02. / 출연 : 제시 아이젠버그, 라일리 코프
사스콰치. 인간과 다른 종의 영장류로 거대한 몸집, 온몸에 털이 나 있고, 깊은 산속에서 살아가는 상상 속 생명체. 미국에서는 빅풋이라고 하고, 사스콰치라는 말은 주로 캐나다에서 사용합니다. 수천 년 전부터 히말라야에 살고 있는 전설의 설인 예티도 빅풋과 같은 계열의 생명체입니다.
영화 <사스콰치 선셋>은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에 살고 있을지 모를 사스콰치 일족의 한해살이를 관찰하는 영화입니다. 아프리카나 아마존 오지에 살고 있는, 무선 인터넷 연결망과 동떨어져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부족의 일상을 바라본다고 해도 좋겠네요. 아프리카 오지 어떤 부족은 월드컵 축구보다 나무껍질을 벗겨 벌레 잡는 일을 더 좋아할 거라고, 그런 가정으로부터 상상해 보는 거지요. ‘마루 밑 아리에티’ 가족이나 ‘호빗’족만큼이나 자연 관찰 다큐멘터리 화면 밖의 삶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니까요.
영화는 캘리포니아의 울창하고 광활한 숲속을 비춥니다. 멀리 등성이 너머로 해가 지고 역광 속에 사스콰치 일족이 윤곽을 드러냅니다. 이어 풀잎 식사를 하는 일족.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는 모르나 먹고 자고 배설하는 건 어떤 동물이라도 어쩔 수 없을 테니 사스콰치도 그러할 겁니다. 뭐로 태어났든 태어났으니 태어나게끔 한 작용이 있었을 테고, 성욕도 이들에게 꽤나 중요한 일입니다. 사건의 시작이랄 게 따로 없지만, 그래도 이들의 일상에 균열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는 바로 성욕입니다. 갑작스레, 하지만 생태계로 보자면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살고 죽고 태어나고 하는 사건이 별일 없이 지속될 것 같던 매일 매일에 끼어듭니다.

더 지켜볼까요? 이 관찰에서 의미를 발굴하려 애써 봤자 떠오르는 건 전부 과도학 의미부여일 겁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 생명체들의 조화, 잊고 있던 순수함, 이런 의미라도 건져 내야 영화를 왜 봤는지, 왜 만들어야 했는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텐데, 저들의 하루에 의미가 있는 건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의미라는 게 정말 있어야 하는 걸까요? 벌꿀오소리와 얼룩말의 행패를 보며 거침없는 청춘을 연상하고, 호랑이의 영역 산책을 보며 꼼꼼한 영업 관리 같은 인간적 해석을 꼭 끄집어내야 하는 걸까요?
의미부여를 떨쳐 내고 사스콰치의 행로를 따라 갑니다. 대체 어딜 향해 가는지 모르겠으나, 계속 어디론가 갑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들도 어딘지 모르고 가는 듯합니다. 빅풋은 빅풋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퓨마는 퓨마대로 각자 가던 길을 갑니다. 그런 게 자연의 순환이겠지요. 그러니까 순환이란 게 엄청난 교훈을 주는 게 아니지요.

그런데 이 사스콰치들은 보면 볼수록 너무 무능력합니다. 이토록 하찮은 재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유인원이라고 꼭 거대하다거나, 인간이나 여타 동물 이상으로 뛰어난 감각을 지녔다든가, 예지 능력이라도 있다든가, 그럴 리 없지요. 무선 인터넷 연결망을 만들어 낸 인간 종보다 뛰어난 영장류가 왜 숲속에 숨어 살겠어요. 그리하여 이 사스콰치 일족은, 제시 아이젠버그가 연기하는 구성원 하나가 가족인지는 불분명하기에 일족이라 하겠습니다, 이런저런 식물 이파리와 열매, 벌레에 의지해 하루를 보냅니다. 의식적으로 하는 일은 나무를 두드려 저기 어딘가 있을지 모를 동족에게 신호를 보내는 일뿐입니다. 당연한 듯 응답은 없습니다.
사스콰치, 빅풋에 관한 영화는 전에도 있었습니다. 보통은 미스터리, 공포 장르 영화로 이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인간을 위협하는 이야기들이었지요. <빅풋 주니어>라고 빅풋의 피를 이어받은 초능력 소년이 세상을 구한다는 애니메이션도 있기는 합니다만.
사스콰치 일족과 인간의 접점이 가장 커졌다가 단번에 사라지는 장소, 윌로운 크릭 마을의 빅풋 박물관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지만, 이내 곧 떠나갈 겁니다. <윌로우 크릭>이라고, 빅풋을 찾아 나선 연인에 관한 페이크 다큐 형식의 공포 영화가 있는데, 여기서도 인간 종 상상에 맞게 인간 사냥에 꽤나 출중한 빅풋이 등장하지요. 이 박물관 역시 인간에게 10여 분치 재미를 채워주기 위해 인간적 상상력으로 전시장을 꾸미고, 이야기를 배치하고, 나름 해석도 달아 놓았습니다. 하지만 전시장 밖 살아 있는 빅풋은 끝내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빅풋과의 소통에 실패하지요.
몇 해 전 모듈러 신스 음악 공연장에 갔다가 귀가 아니라 피부로 듣는 음악도 있구나, 감명까지는 아니고 그냥 그런 생각을 하고 나온 적이 있습니다. <사스콰치 선셋>은 원하는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해석에 맞춰 보지 말고 보이는 대로 보다 보면 감동까지는 아니고, 내가 왜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스콰치, 보이는 게 전부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인간, 어떤 식으로 보고 계신가요? 생각하는 대로 보고 있지는 않나요?
글 | 이주호 에디터
<사스콰치 선셋>
개봉 : 202.07.02. / 출연 : 제시 아이젠버그, 라일리 코프
사스콰치. 인간과 다른 종의 영장류로 거대한 몸집, 온몸에 털이 나 있고, 깊은 산속에서 살아가는 상상 속 생명체. 미국에서는 빅풋이라고 하고, 사스콰치라는 말은 주로 캐나다에서 사용합니다. 수천 년 전부터 히말라야에 살고 있는 전설의 설인 예티도 빅풋과 같은 계열의 생명체입니다.
영화 <사스콰치 선셋>은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에 살고 있을지 모를 사스콰치 일족의 한해살이를 관찰하는 영화입니다. 아프리카나 아마존 오지에 살고 있는, 무선 인터넷 연결망과 동떨어져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부족의 일상을 바라본다고 해도 좋겠네요. 아프리카 오지 어떤 부족은 월드컵 축구보다 나무껍질을 벗겨 벌레 잡는 일을 더 좋아할 거라고, 그런 가정으로부터 상상해 보는 거지요. ‘마루 밑 아리에티’ 가족이나 ‘호빗’족만큼이나 자연 관찰 다큐멘터리 화면 밖의 삶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니까요.
영화는 캘리포니아의 울창하고 광활한 숲속을 비춥니다. 멀리 등성이 너머로 해가 지고 역광 속에 사스콰치 일족이 윤곽을 드러냅니다. 이어 풀잎 식사를 하는 일족.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는 모르나 먹고 자고 배설하는 건 어떤 동물이라도 어쩔 수 없을 테니 사스콰치도 그러할 겁니다. 뭐로 태어났든 태어났으니 태어나게끔 한 작용이 있었을 테고, 성욕도 이들에게 꽤나 중요한 일입니다. 사건의 시작이랄 게 따로 없지만, 그래도 이들의 일상에 균열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는 바로 성욕입니다. 갑작스레, 하지만 생태계로 보자면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살고 죽고 태어나고 하는 사건이 별일 없이 지속될 것 같던 매일 매일에 끼어듭니다.
더 지켜볼까요? 이 관찰에서 의미를 발굴하려 애써 봤자 떠오르는 건 전부 과도학 의미부여일 겁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 생명체들의 조화, 잊고 있던 순수함, 이런 의미라도 건져 내야 영화를 왜 봤는지, 왜 만들어야 했는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텐데, 저들의 하루에 의미가 있는 건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의미라는 게 정말 있어야 하는 걸까요? 벌꿀오소리와 얼룩말의 행패를 보며 거침없는 청춘을 연상하고, 호랑이의 영역 산책을 보며 꼼꼼한 영업 관리 같은 인간적 해석을 꼭 끄집어내야 하는 걸까요?
의미부여를 떨쳐 내고 사스콰치의 행로를 따라 갑니다. 대체 어딜 향해 가는지 모르겠으나, 계속 어디론가 갑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들도 어딘지 모르고 가는 듯합니다. 빅풋은 빅풋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퓨마는 퓨마대로 각자 가던 길을 갑니다. 그런 게 자연의 순환이겠지요. 그러니까 순환이란 게 엄청난 교훈을 주는 게 아니지요.
그런데 이 사스콰치들은 보면 볼수록 너무 무능력합니다. 이토록 하찮은 재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유인원이라고 꼭 거대하다거나, 인간이나 여타 동물 이상으로 뛰어난 감각을 지녔다든가, 예지 능력이라도 있다든가, 그럴 리 없지요. 무선 인터넷 연결망을 만들어 낸 인간 종보다 뛰어난 영장류가 왜 숲속에 숨어 살겠어요. 그리하여 이 사스콰치 일족은, 제시 아이젠버그가 연기하는 구성원 하나가 가족인지는 불분명하기에 일족이라 하겠습니다, 이런저런 식물 이파리와 열매, 벌레에 의지해 하루를 보냅니다. 의식적으로 하는 일은 나무를 두드려 저기 어딘가 있을지 모를 동족에게 신호를 보내는 일뿐입니다. 당연한 듯 응답은 없습니다.
사스콰치, 빅풋에 관한 영화는 전에도 있었습니다. 보통은 미스터리, 공포 장르 영화로 이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인간을 위협하는 이야기들이었지요. <빅풋 주니어>라고 빅풋의 피를 이어받은 초능력 소년이 세상을 구한다는 애니메이션도 있기는 합니다만.
사스콰치 일족과 인간의 접점이 가장 커졌다가 단번에 사라지는 장소, 윌로운 크릭 마을의 빅풋 박물관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지만, 이내 곧 떠나갈 겁니다. <윌로우 크릭>이라고, 빅풋을 찾아 나선 연인에 관한 페이크 다큐 형식의 공포 영화가 있는데, 여기서도 인간 종 상상에 맞게 인간 사냥에 꽤나 출중한 빅풋이 등장하지요. 이 박물관 역시 인간에게 10여 분치 재미를 채워주기 위해 인간적 상상력으로 전시장을 꾸미고, 이야기를 배치하고, 나름 해석도 달아 놓았습니다. 하지만 전시장 밖 살아 있는 빅풋은 끝내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빅풋과의 소통에 실패하지요.
몇 해 전 모듈러 신스 음악 공연장에 갔다가 귀가 아니라 피부로 듣는 음악도 있구나, 감명까지는 아니고 그냥 그런 생각을 하고 나온 적이 있습니다. <사스콰치 선셋>은 원하는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해석에 맞춰 보지 말고 보이는 대로 보다 보면 감동까지는 아니고, 내가 왜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스콰치, 보이는 게 전부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인간, 어떤 식으로 보고 계신가요? 생각하는 대로 보고 있지는 않나요?
글 | 이주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