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두진,《 미인 1941 》, 이정서재, 2024. 5
1941년,
충칭(重慶)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극심한 재정난과 고질적인 무기 부족에 시달렸다. 대한독립을 위해 많은 투사들이 한국광복군에 자원했으나 그들에게 지급할 무기가 없었다. 무기가 없으니 투사들도 하나둘 임정을 떠나갔다.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 소련군은 맥없이 무너졌다. 모스크바 함락은 시간문제였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은 동부 국경을 지키는 30개 사단 병력 중 절반을 서부전선으로 이동 배치해 독일군에 맞설 생각이었다.
문제는 독일과 동맹국인 일본이었다.
소련 동부 국경에 배치된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돌리면, 그 공백을 노려 일본 관동군이 침공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의 전면 공격을 받는 마당에, 동부에서 일본군의 대규모 공세를 받는다면 소련 멸망은 자명했다.
그 무렵, 독일 언론인으로 위장해 일본에서 암약 중인 소련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가 극비 첩보를 소련 정보부에 암호 무선 타전했다.
‘일본 대본영이 천연자원 확보를 위해 군대를 남방으로 진출시키기로 결정했다.’
소련 동부 국경에 배치된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돌리더라도 일본이 침공하지 않는다는 정보였다. 〔대본영(大本營)은 전시(戰時) 일본 제국 육군 및 해군 최고 통수 기관이었다.〕
“하지만, 조르게가 보낸 정보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스탈린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존망이 걸린 문제였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스탈린의 그 딜레마를 파고들었다.
일본 대본영의 군사정보를 소련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에게 넘긴 일본 고위 관료 오자키 호츠미(尾崎秀実)를 일본에서 데리고 나와 스탈린에게 넘기겠다는 작전이었다.
“임정이 오자키 호츠미를 스탈린 앞에 데려가 일본군 동향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겠다. 대신 소련 동부 국경 부대를 서부전선으로 이동 배치할 때 남기는 무기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넘겨 달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 같은 계획과 요구에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오자키를 일본에서 빼내 오기 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도쿄 납치조’가 1941년 10월 도쿄로 급파됐다. 정예 전투 요원 3명과 오자키를 꾀어 중국 충칭까지 데려올 여성 미인계 요원 1명으로 구성된 특공대였다. 하지만 미인계 요원으로 차출된 김지언과 전투요원 서우진이 사실은 연인 사이임을 임정 지도부는 몰랐다. 미인계 작전과 연인 간의 사랑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화인(火因)을 안고 납치 특공대가 출발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임무와 질투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납치조는 일자리를 찾는 조선인들 행색으로 일본에 도착했다. 현지 상황은 납치조가 출발할 당시와 판이했다. 독일 언론인으로 위장해 활동하던 리하르트 조르게는 소련 스파이 혐의로 일본 특별고등경찰에 긴급 체포됐고, 도쿄 납치조의 목표인 오자키 호츠미는 일본 특별고등경찰의 삼엄한 감시 속에 가택연금 상태였다. 미인계는 써보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예상과 다른 상황에서 도쿄 납치 특공대는 손아귀(당초 작전 계획, 예상)에서 달아나려는 운명을 붙들어 두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과정에서 결코 운(運)에 맡겨서는 안 될 일을 운에 맡기는 상황도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납치 특공대는 오자키 호츠미를 일본 도쿄에서 빼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시모노세키를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 하지만 도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음에도 난관은 끝이 없다. 일본 열도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경찰의 추적이 시작됐고 위험은 갈수록 커진다. 그렇게 납치조는 일경의 추적을 따돌리며 달아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불행과 결단의 순간을 맞이하는데….
자료제공 l 이정서재
저자 소개 조두진
기자이면서 소설을 쓰는 한국의 대표적인 언론인 작가이다. 임진왜란 때 순천 왜교성에 주둔했던 한 일본군 하급 장교의 눈으로 본 ‘임진왜란 마지막 1년’을 그린 장편소설 『도모유키』로 한겨레 문학상을 받았다. 경북 안동의 400년 전 무덤에서 나온 ‘원이 엄마의 편지’를 모티브로 쓴 장편소설 『능소화』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을 주인공으로, 회사 창사 기념 잔칫날 하루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 『게임』으로 근로자문학제 대통령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몽혼』, 『유이화』, 『아버지의 오토바이』, 『결혼 면허』, 『북성로의 밤』등과 소설집 『마라토너의 흡연』과 『진실한 고백』을 펴냈다. 텃밭 농사를 오랫동안 지었고 도시농부학교 강사로도 활동했다. 도시농업과 관련한 책 『텃밭 가꾸기 대백과』를 펴냈다. 그는 부모님께 웃는 모습을 자주 보여드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얼굴빛이 밝은 사람, 목소리가 선한 사람을 좋아하고, 길거리에 담배꽁초나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했다. 조두진의 소설을 읽으면, 기자이면서 소설가인 사람의 글은 어떤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사회를 보는 시선은 날카롭고 문장은 담백하다. 이번 작품은 사랑과 조국 독립, 둘 모두를 지키고자 안간힘 쓰며 각자의 길을 걸어간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조두진(지은이)의 말
1.
어린 시절 산골 마을에 살았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산자락을 따라 난 길을 따라 10리쯤 가야 했다. 어느 날 혼자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늑대를 만났다. 늑대와 나는 30미터쯤 거리를 두고 마주 서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평소 “늑대를 만나면 벽에 기대어 서 있거나 나무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늑대는 일단 먹잇감을 넘어뜨린 후에 잡아먹는데, 넘어지지만 않으면 살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여덟 살이었다. 겁을 먹어 나무 위로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소나무를 꼭 붙들고 서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늑대가 더 나타나 다섯 마리로 불어났다.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했는데, 갑자기 늑대들이 숲속으로 순식간에 달아났다.
2.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충 보기에도 몸무게 80kg이 넘어 보이는 여성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왼쪽으로 걸어갔다가 돌아와서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왼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그래서 “어디를 찾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곳도 찾지 않는다”고 했다. “길을 잃어버린 것이냐”고 물었더니 “길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찾는 곳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살펴 가시라”고 했더니 내게 욕을 했다.
3.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길에서 마주쳤다. 한 사람이 다짜고짜 다른 사람의 뺨을 때렸다. 뺨을 맞은 사람이 따졌다. “왜 때려?” 그러자 때린 사람이 말했다. “왜긴? 너 잘 되라고 때렸지.” 맞은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나를 아세요?” 때린 사람이 대답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알아. 생판 남이지만 서로 도와야지.”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황당한 이야기지만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있다.
‘미인 1941’의 인물들은 위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조두진,《 미인 1941 》, 이정서재, 2024. 5
1941년,
충칭(重慶)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극심한 재정난과 고질적인 무기 부족에 시달렸다. 대한독립을 위해 많은 투사들이 한국광복군에 자원했으나 그들에게 지급할 무기가 없었다. 무기가 없으니 투사들도 하나둘 임정을 떠나갔다.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 소련군은 맥없이 무너졌다. 모스크바 함락은 시간문제였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은 동부 국경을 지키는 30개 사단 병력 중 절반을 서부전선으로 이동 배치해 독일군에 맞설 생각이었다.
문제는 독일과 동맹국인 일본이었다.
소련 동부 국경에 배치된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돌리면, 그 공백을 노려 일본 관동군이 침공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의 전면 공격을 받는 마당에, 동부에서 일본군의 대규모 공세를 받는다면 소련 멸망은 자명했다.
그 무렵, 독일 언론인으로 위장해 일본에서 암약 중인 소련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가 극비 첩보를 소련 정보부에 암호 무선 타전했다.
‘일본 대본영이 천연자원 확보를 위해 군대를 남방으로 진출시키기로 결정했다.’
소련 동부 국경에 배치된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돌리더라도 일본이 침공하지 않는다는 정보였다. 〔대본영(大本營)은 전시(戰時) 일본 제국 육군 및 해군 최고 통수 기관이었다.〕
“하지만, 조르게가 보낸 정보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스탈린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존망이 걸린 문제였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스탈린의 그 딜레마를 파고들었다.
일본 대본영의 군사정보를 소련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에게 넘긴 일본 고위 관료 오자키 호츠미(尾崎秀実)를 일본에서 데리고 나와 스탈린에게 넘기겠다는 작전이었다.
“임정이 오자키 호츠미를 스탈린 앞에 데려가 일본군 동향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겠다. 대신 소련 동부 국경 부대를 서부전선으로 이동 배치할 때 남기는 무기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넘겨 달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 같은 계획과 요구에 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오자키를 일본에서 빼내 오기 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도쿄 납치조’가 1941년 10월 도쿄로 급파됐다. 정예 전투 요원 3명과 오자키를 꾀어 중국 충칭까지 데려올 여성 미인계 요원 1명으로 구성된 특공대였다. 하지만 미인계 요원으로 차출된 김지언과 전투요원 서우진이 사실은 연인 사이임을 임정 지도부는 몰랐다. 미인계 작전과 연인 간의 사랑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화인(火因)을 안고 납치 특공대가 출발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임무와 질투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납치조는 일자리를 찾는 조선인들 행색으로 일본에 도착했다. 현지 상황은 납치조가 출발할 당시와 판이했다. 독일 언론인으로 위장해 활동하던 리하르트 조르게는 소련 스파이 혐의로 일본 특별고등경찰에 긴급 체포됐고, 도쿄 납치조의 목표인 오자키 호츠미는 일본 특별고등경찰의 삼엄한 감시 속에 가택연금 상태였다. 미인계는 써보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예상과 다른 상황에서 도쿄 납치 특공대는 손아귀(당초 작전 계획, 예상)에서 달아나려는 운명을 붙들어 두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과정에서 결코 운(運)에 맡겨서는 안 될 일을 운에 맡기는 상황도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납치 특공대는 오자키 호츠미를 일본 도쿄에서 빼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시모노세키를 거쳐, 부산에 도착한다. 하지만 도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음에도 난관은 끝이 없다. 일본 열도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경찰의 추적이 시작됐고 위험은 갈수록 커진다. 그렇게 납치조는 일경의 추적을 따돌리며 달아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불행과 결단의 순간을 맞이하는데….
자료제공 l 이정서재
저자 소개 조두진
기자이면서 소설을 쓰는 한국의 대표적인 언론인 작가이다. 임진왜란 때 순천 왜교성에 주둔했던 한 일본군 하급 장교의 눈으로 본 ‘임진왜란 마지막 1년’을 그린 장편소설 『도모유키』로 한겨레 문학상을 받았다. 경북 안동의 400년 전 무덤에서 나온 ‘원이 엄마의 편지’를 모티브로 쓴 장편소설 『능소화』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을 주인공으로, 회사 창사 기념 잔칫날 하루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 『게임』으로 근로자문학제 대통령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몽혼』, 『유이화』, 『아버지의 오토바이』, 『결혼 면허』, 『북성로의 밤』등과 소설집 『마라토너의 흡연』과 『진실한 고백』을 펴냈다. 텃밭 농사를 오랫동안 지었고 도시농부학교 강사로도 활동했다. 도시농업과 관련한 책 『텃밭 가꾸기 대백과』를 펴냈다. 그는 부모님께 웃는 모습을 자주 보여드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얼굴빛이 밝은 사람, 목소리가 선한 사람을 좋아하고, 길거리에 담배꽁초나 쓰레기 버리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했다. 조두진의 소설을 읽으면, 기자이면서 소설가인 사람의 글은 어떤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사회를 보는 시선은 날카롭고 문장은 담백하다. 이번 작품은 사랑과 조국 독립, 둘 모두를 지키고자 안간힘 쓰며 각자의 길을 걸어간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조두진(지은이)의 말
1.
어린 시절 산골 마을에 살았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산자락을 따라 난 길을 따라 10리쯤 가야 했다. 어느 날 혼자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늑대를 만났다. 늑대와 나는 30미터쯤 거리를 두고 마주 서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평소 “늑대를 만나면 벽에 기대어 서 있거나 나무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늑대는 일단 먹잇감을 넘어뜨린 후에 잡아먹는데, 넘어지지만 않으면 살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여덟 살이었다. 겁을 먹어 나무 위로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소나무를 꼭 붙들고 서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늑대가 더 나타나 다섯 마리로 불어났다.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했는데, 갑자기 늑대들이 숲속으로 순식간에 달아났다.
2.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충 보기에도 몸무게 80kg이 넘어 보이는 여성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왼쪽으로 걸어갔다가 돌아와서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왼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그래서 “어디를 찾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곳도 찾지 않는다”고 했다. “길을 잃어버린 것이냐”고 물었더니 “길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찾는 곳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살펴 가시라”고 했더니 내게 욕을 했다.
3.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길에서 마주쳤다. 한 사람이 다짜고짜 다른 사람의 뺨을 때렸다. 뺨을 맞은 사람이 따졌다. “왜 때려?” 그러자 때린 사람이 말했다. “왜긴? 너 잘 되라고 때렸지.” 맞은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나를 아세요?” 때린 사람이 대답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알아. 생판 남이지만 서로 도와야지.”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황당한 이야기지만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있다.
‘미인 1941’의 인물들은 위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