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완서 글·이인아 그림, 『 카메라와 워커 』, 창비, 2024. 1.
‘한국문학의 거목’으로 후대의 여성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세밀한 묘사와 예리한 관찰력으로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작가 박완서. 그의 타계 13주기를 맞은 이때 초기 작품인 『카메라와 워커』가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로 출간됐다. 이 소설은 전쟁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사회 속에서 조카를 꿋꿋이 키워 내려는 고모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에게는 조카가 하나 있다. 6·25 전쟁 때 세상을 떠난 오빠가 남긴 조카 ‘훈이’다. 부모 없이 자라는 조카를 안타까워하며 주인공은 어머니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훈이를 자기 자식처럼 아끼며 돌본다. 훈이가 허황된 꿈을 좇거나 사상에 물들지 않기를, 실패를 겪지 않고 평범한 중산층으로 자라기를 바라기에 훈이의 진로와 인생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의 바람과 달리 훈이는 자꾸만 다른 길을 선택하려 한다. 늘 속마음을 알 수 없었고 변변한 직장을 가져 본 적 없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닮으려는 듯한 모습에 주인공은 초조해한다. 결국 훈이는 주인공의 설득대로 이과에 진학해 공대를 졸업하지만, 이후의 삶은 순탄치 않다. 훈이가 안정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주인공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아니, 훈이가 정말로 원하는 자기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6·25 전쟁 이후 한국은 전쟁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할 시간도 없이 반공주의와 성장 만능주의의 기치 아래 맹목적으로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다음 세대는 좀 더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교육에도 열을 올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의 삶은 내팽개쳐지고 소외되기도 했다. 워커를 신은 훈이의 열악한 모습은 성장의 이면에 놓인 이들의 지난한 삶을 상징한다. 경제 성장과 풍요를 강조하는 기성세대와 힘겨운 처지에 놓인 젊은 세대 사이의 갈등을 드러낸 이 소설은, 세대 간 격차와 불평등이 커져 가는 오늘날 더욱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손쉬운 위로나 희망을 건네지 않으며, 무책임한 허무나 냉소로 빠지지도 않는 『카메라와 워커』에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고통 받는 삶의 모습과 현실에 발을 붙이며 살아가겠다는 굳건한 마음이 핍진하게 그려진다. 이인아 일러스트레이터의 차분하면서도 감각적인 그림은 인물들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면서 소설을 새롭게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자료제공 l 창비
박완서 글·이인아 그림, 『 카메라와 워커 』, 창비, 2024. 1.
‘한국문학의 거목’으로 후대의 여성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세밀한 묘사와 예리한 관찰력으로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작가 박완서. 그의 타계 13주기를 맞은 이때 초기 작품인 『카메라와 워커』가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로 출간됐다. 이 소설은 전쟁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사회 속에서 조카를 꿋꿋이 키워 내려는 고모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에게는 조카가 하나 있다. 6·25 전쟁 때 세상을 떠난 오빠가 남긴 조카 ‘훈이’다. 부모 없이 자라는 조카를 안타까워하며 주인공은 어머니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훈이를 자기 자식처럼 아끼며 돌본다. 훈이가 허황된 꿈을 좇거나 사상에 물들지 않기를, 실패를 겪지 않고 평범한 중산층으로 자라기를 바라기에 훈이의 진로와 인생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의 바람과 달리 훈이는 자꾸만 다른 길을 선택하려 한다. 늘 속마음을 알 수 없었고 변변한 직장을 가져 본 적 없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닮으려는 듯한 모습에 주인공은 초조해한다. 결국 훈이는 주인공의 설득대로 이과에 진학해 공대를 졸업하지만, 이후의 삶은 순탄치 않다. 훈이가 안정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주인공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아니, 훈이가 정말로 원하는 자기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6·25 전쟁 이후 한국은 전쟁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할 시간도 없이 반공주의와 성장 만능주의의 기치 아래 맹목적으로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다음 세대는 좀 더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교육에도 열을 올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의 삶은 내팽개쳐지고 소외되기도 했다. 워커를 신은 훈이의 열악한 모습은 성장의 이면에 놓인 이들의 지난한 삶을 상징한다. 경제 성장과 풍요를 강조하는 기성세대와 힘겨운 처지에 놓인 젊은 세대 사이의 갈등을 드러낸 이 소설은, 세대 간 격차와 불평등이 커져 가는 오늘날 더욱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손쉬운 위로나 희망을 건네지 않으며, 무책임한 허무나 냉소로 빠지지도 않는 『카메라와 워커』에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고통 받는 삶의 모습과 현실에 발을 붙이며 살아가겠다는 굳건한 마음이 핍진하게 그려진다. 이인아 일러스트레이터의 차분하면서도 감각적인 그림은 인물들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면서 소설을 새롭게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자료제공 l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