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도서] 여성, 화가, 지식인 나혜석이 그린 여러 정체성의 나날, 《 경성에서, 정월. 》 출간

2024-02-21


“내 앞에는 장차 더한 고통, 더한 희망, 더한 낙담이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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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경성에서, 정월.》, 이일상, 2024. 2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0세대 페미니스트, 최초의 여성 세계 여행가, 교육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여러 소설과 산문으로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작가… 다방면에서 재능을 꽃피우고, 그만큼 다양한 정체성으로 강렬한 발자취를 남긴 정월(晶月) 나혜석의 산문집. 그가 남긴 수많은 산문 중에서 화가로서·여성으로서·지식인으로서의 나날들과 그에 얽힌 사색이 잘 드러난 작품을 엄선하였다. 〈경성에서, 정월.〉을 통해 생생하게 펼쳐지는 나혜석의 생각과 일상을 접하다 보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다.

  

나혜석은 가장 혼란한 시대 한가운데에서 격렬하게 흔들리며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분투한 여성이다. “남보다 더 한 가지 맛을 봄을 행복으로 안다”고 말하는 그는, 그림을 비롯하여 소설·산문·비평 등의 글로, 교육자로서 가르침으로, 독립 운동으로… 자신의 한계와 틀을 만들지 않고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갔다.

 

〈경성에서, 정월.〉은 정월 나혜석이 조선의 여성으로서 생생한 목소리를 내고, 지식인으로서 인생에 대해 통찰하고, 화가로서 분투한 작업기를 그리며 자신은 어떤 인간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 모습들을 솔직하게 담은 산문들을 엮은 산문집이다. “인생은 가정만도 인생이 아니오, 예술만도 인생이 아니다. 이것저것 합한 것이 인생이외다”라는 정월의 말처럼, 나혜석의 한 가지 면모에 집중하지 않고, 그의 ‘이것저것’을 조명해 나혜석을 더욱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책은 크게 나혜석의 4개 정체성을 담았다. 어머니로서, 부인으로서, 화가로서, 독신자로서의 그의 일상과 생각을 담아낸 산문을 선별했다. 어머니로서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 가는 악마”라며 모성에 의문을 던져 당시 조선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나는 좀 더 사회인으로 주부로 사람답게 잘 살고 싶었습니다.” 한 남자의 부인으로 살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고뇌하고, “그림보다도 그것을 그리는 동안에 형형색색으로 당한 사실이 나중에 생각하니 내가 승리자가 된 것 같아 참을 수 없이 유쾌하였다”라며 화가로서 궁리하고 발버둥 치다 마침내 성취감을 맛보고, “독신자처럼 불행하고도 행복스러운 자는 없다”라며 독신자로서 인생과 미래, 그리고 무엇보다 자아에 대해 끊임없이 숙고한다. 또한 생일을 맞으면 절에 간다거나, 절이 식사와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었다는 등 나혜석이 직접 말하는 그의 일상을 통해 100년 전 일제강점기 신여성·직업인으로서의 소소한 삶을 엿보는 재미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정월 나혜석의 내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고민과도 닿게 된다. 여성으로서의 삶, 자아, 인생, 인간관계, 사회, 행복, 성취, 업(業)… 100여 년 전의 그가 치열하게 숙고했던 주제는 여전히 우리도 싸우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00년 전에도 작가는 사회나 성별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런 운명들은 순응하면 자신을 더 옭아매고, 힘껏 부딪치면 능히 깰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으로 그는 매순간 한계에 맞서고 ‘최초’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다. 이렇게 자신답게, 사람답게 잘 살고자 했던 나혜석이기에, 또 그런 분투의 과정을 그 누구보다도 솔직하게 글로 표현했기에, 나혜석은 지금의 우리에게 아직까지도 공감과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자료제공 l 이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