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방학 뉴스레터][여행] 도시방학 뉴스레터: 한양에서 경성까지, 정동에서 서촌까지

2025-07-24
도시 방학: 서울 #1
브릭스 매거진앤트래블 뉴스레터 샘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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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도 방학이 필요해요.
아쉬운 건, 어른들에게는 방학이 없다는 거지요.
해야 할 일을 잠시 놓아두고 새로운 도시에서
매거진 에디터와 여행 기획자가 제안하는 방학을 즐겨 보세요.

다시 해야 할 일로 돌아갈 시간까지
한 주에 한 번, 한 달 동안 당신의 방학 시간표를 그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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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방학: 서울

#1 한양에서 경성까지, 정동에서 서촌까지 📌


이번 뉴스레터의 컨트리뷰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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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원

브릭스 매거진앤트래블의 여행 큐레이터이자 궁궐해설사.

가장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서울이 가장 낯설게 느껴졌던 순간, 서울의 역사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 이야기를 전하는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정에서는 정동에서 서촌까지 걸으며 서울이 품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인스타그램 @me_garde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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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방학: 서울 #1

한양에서 경성까지, 정동에서 서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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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정동서촌을 엮어서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사실 두 동네는 걸어서 다닐 수 있을 만큼 그리 멀지 않답니다.

인왕산 자락을 오를 의지만 있다면요.

 

이번 주 도시 방학에서는 서울이 한양이라 불리던 시기와

경성이라 불리던 시기를 잇는 역사 산책을 떠나 보려고 합니다.

각자의 시대에서 그 시대를 넘어서려고 노력했던 이들의

꿈과 희망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지,

천천히 걸어 보도록 해요.

 

자, 편안한 신발을 준비하셨다면

이제 한양에서 경성까지 산책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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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동


정동은 대한제국이 선포된 장소이며 외국 공사관이 들어서며 서양식 교육, 의료, 종교가 처음 한국에 뿌리 내렸던 공간입니다. 고려시대에 정동은 황화방이라 불렸어요. 그러다가 조선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왕후의 묘인 정릉을 모시면서 정릉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가, 태종이 정릉을 지금의 정릉동으로 옮기며 ‘릉’을 뺀 정동이 되었답니다.

 

1883년 미국 공사관을 시작으로 영국 공사관, 러시아 공사관 등이 들어서고 외교관, 선교사, 교육자가 몰려 살게 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학교, 서양식 병원, 개신교 교회 등 그야말로 근대의 최초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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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세운 최초의 서양식 학교예요. 배재라는 이름은 ‘인재를 배양하라’는 뜻으로 1886년 6월 8일 고종이 지었다고 합니다. 이후로 지금까지 6월 8일을 배재중·고등학교의 개교기념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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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법원인 평리원이 있던 곳으로 1928년 일제가 이곳에 경성재판소를 엽니다. 이후 가정법원과 대법원으로 사용되다가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옮기면서 현재의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부부나 연인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

 

가정법원이 있던 곳이니 만큼 시청역에서 가정법원까지 함께 걸어갔던 부부가 법원을 나와서는 따로따로 제 갈 길 가게 된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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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제일교회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고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이 열린 곳이기도 합니다. 정동교회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빅토리아식 예배당으로 1987년 3월 화재로 건물 내부가 훼손되었으나 원형대로 보수가 되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이 노랫말을 기억하시나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한 소절이지요. 정동교회 정문 맞은편에는 이 노래를 만든 음악가 이영훈의 노래비가 있습니다. <광화문 연가> 한 소절을 작게 읊조리며 정동길을 걸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정동길을 걸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이자 나중에 이화여대 병원이 되는 ‘보구여관’ 터와 최초의 서양식 호텔 손탁호텔을 지납니다. 을사늑약 체결 전후 이토 히로부미가 손탁호텔에 묵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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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터 - 경교장

 

세종대에 세워진 돈의문 터입니다. 세종대에 지은 돈의문이 새로 지은 문이라 ‘신문’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앞길을 신문로하고 하지요.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공간이자 백범 김구 선생께서 서거하신 역사적 현장입니다. 금광으로 부를 축적한 최창학이 1938년 지은 저택 죽첨장을 김구 선생께 기부하며 경교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돼요. 김구 선생은 이곳을 1945년 11월부터 안두희에게 암살되는 1949년 6월 26일까지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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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암근린공원 - 홍난파가옥


2008년도에 종로구에서 송월동 근린공원을 조성하려 하였으나 월암이라는 글이 새겨진 바위가 발견되며 2009년 월암 근린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됩니다. 이곳에서는 태조, 세종, 순조 대에 축조된 성벽의 형태를 한번에 비교해 볼 수 있어요.

 

공원 바로 앞에 보이는 붉은 서양식 벽돌집은 <고향의 봄>, <봄처녀>, <봉선화>의 작곡가 홍난파의 옛집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였고 당시 지금의 아이돌 못지않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는데, 그의 친일행위가 드러나면서 결국 ‘친일 인명사전’에 오르게 되었지요. 현재 이곳은 홍난파 기념관으로 사용되며 주중에 내부 관람이 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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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

 

서양식 붉은 벽돌집 딜쿠샤는 1919년 3.1운동을 외신으로 처음 보도한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가 살았던 곳이었습니다. 지금 UPI의 전신 UP(United Press)와 AP 통신사의 특파원이던 앨버트 테일러는 1923년에 이 집을 짓고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아내와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딜쿠샤는 그의 아내 메리 테일러가 인도 딜쿠샤 궁전에서 따 온 이름이에요. 힌디어로 ‘이상향, 기쁨’을 뜻한다고 하네요.

 

2006년 테일러 일가는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고, 딜쿠샤는 우리나라 등록 문화재 제 68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앨버트 테일러는 1948년 미국에서 사망했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현재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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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촌


조선 시대에도 예술인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보통의 예술인 마을, 예술 도시들은 예술가들이 찾아와 만들어지는 반면, 조선의 예술인 마을은 처음부터 그 지역에서 태어나 평생 그 지역에서만 살다 간 사람들의 마을이었답니다. 모두가 같은 신분이었고요.

 

문과‧무과 과거 시험이 아닌 기술직 잡과 시험을 통과한 하급관리를 중인(中人)이라 했는데요, 이들의 마을이 바로 서촌이었습니다. 인왕산 기슭을 비롯해 지금의 종로구 누상동, 누하동, 필운동, 옥인동을 아우르는 지역이지요. 여전히 좁은 골목, 기와지붕을 올린 작은 한옥, 골목골목 들어선 상업 시설이 뒤섞인 현재의 서촌은 서울의 ‘힙한 동네’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하지만, 인왕산 자락부터 천천히 걷다 보면 경제 논리를 넘어선 서민들의 생생한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그것이 신분의 한계를 예술로 승화하던 중인들, 이후 윤동주, 이상, 염상섭, 이중섭처럼 체제와 갈등하고 불화하면서 ‘불온한’ 예술성을 고민하던 예술가들의 정신과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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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동계곡

 

1960년대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곳곳에 시민아파트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한곳이 이곳에 있던 ‘옥인동 시범 아파트’였습니다. 아파트 아래 숨겨져 있던 수성동 계곡은 2011년 아파트가 철거되며 다시 세상에 공개됩니다. 한양에서 손꼽는 명승지이자 물이 너무나 맑아 옥류동이라 불리던 이곳의 이색 풍경이 바로 바위 다리인 기린교예요. 아파트 철거 후 기린교로 추정되는 돌다리가 발견되어 조사를 했고, 실제로 조선시대의 돌다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지요. 그 근거는 바로 겸재 정선이 그린 수성동 그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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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하숙집터


윤동주 시인이 학교 후배 정병욱과 함께 1941년 5월부터 9월까지 ‘종로구 누상동 9번지’에서 살았던 집터입니다. 하숙집 주인은 소설가이자 극작가 김송이었는데, 그의 좌익 성향으로 일제 경찰이 항상 집 근처에서 감시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섯 달 정도만 살다가 나왔다고 하네요. 시인은 아침마다 수성동 계곡에서 세수를 하고 산중턱 약수터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이 시기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과 <자화상> 등 대표적인 시 열 편이 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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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원 터


통인시장 입구 건너편에 있는 송석원 터 표지석. 조선 후기 서촌을 중심으로 중인층에서 주도한 문학을 위항문학이라 합니다. 위항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이란 뜻으로 지금도 서촌은 위항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요. 위항문학의 대표적인 문인은 동네 훈장 천수경이었습니다. 천수경은 ‘송석원’이라는 집을 짓고 살면서 시를 짓고 즐기는 모임 시사를 열었다고 합니다. 송석원이란 글자는 추사 김정희가 써 주었다고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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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집


서촌 한복판에 자리를 잡은 이상의 집은 실제로 천재 문인 이상이 살았던 집은 아니에요. 이상은 세 살 때 백부의 양자가 되어 통인동 154번지로 옮겨왔는데요, 이후로 그가 살던 집은 허물어지고 넓은 필지를 분할하여 여러 채의 작은 집이 지어졌어요. 이상의 집은 그중 하나인 것이지요. 이상의 인생과 작품에 관한 여러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요. 그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도 눈길을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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