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방학: 성북 #1
당신에게도 방학이 필요해요. 아쉬운 건, 어른들에게는 방학이 없다는 거지요. 해야 할 일을 잠시 놓아두고 새로운 도시에서 매거진 에디터와 여행 기획자가 제안하는 방학을 즐겨 보세요.
다시 해야 할 일로 돌아갈 시간까지 한 달에 두 번, 당신의 방학 시간표를 그려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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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방학: 성북
#1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성북동 산책 📌 #2 좀 더 멀리, 성북동을 걷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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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도시 방학: 성북에서는 가벼운 산책만으로도 성북동 핵심을 볼 수 있는 산책 코스를 준비했어요.
서로 멀지 않으면서 각각의 장소가 여러 시대를 아우르기 때문에 심심할 겨를이 없을 거예요.
역사와 문화에 관한 TMI는 덤! 자, 멀지 않은 그곳 성북동으로 떠나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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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은 한양도성이 지어진 후 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자연스레 성북(城北)이라는 이름이 붙은 동네입니다. 예부터 빼어난 경치로 사람들이 몰려들던 곳이었지요. 풍경은 좋아도 농사에는 적합하지 않은 땅이라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권세가들은 이곳에 별장을 짓고 봄부터 가을까지 산이 굽어보고 천이 흐르는 자연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시대가 한참 바뀐 후 ‘성북동은 부촌’이라는 이미지로 거듭되기도 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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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북동은 부촌 이전에 문화예술인들의 마을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 상허 이태준,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김환기, 대표작 「성북동 비둘기」로 널리 알려진 시인 김광섭, 문화재 수집가로서 간송 미술관을 설립한 전형필, 서예가 오세창, 그리고 시인이자 승려이며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 선생까지. 성북동이 서울에서도 유독 문화유산이 풍부한 동네인 것도 이들의 발자취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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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자락을 배경으로 얽히고설킨 호젓한 골목 곳곳에는 조선시대에서 근대를 지나 20세기 중후반까지 아우르는 옛 건축물들이 터를 잡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골목에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을까 감탄이 나오다가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찻집이나 카페를 지나치면 그저 고리타분한 동네는 아니구나 싶기도 하지요. 자, 그러면 성북동에서의 방학을 시작해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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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옛집
한성대학교역을 나와 성북동누들거리를 따라 올라오다가 골목길로 들어서면 한옥 한 채가 나타납니다. 바로 혜곡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살았던 집으로 현재는 선생의 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최순우 선생은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으며 평생 한국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찾고 보존하는 데 힘썼습니다. 특히 한국 도자기와 목공예, 회화사에 정통했고, 수백 편의 글을 쓰기도 했는데요. 아마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서』라는 책 제목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 책에서 선생은 한국 미술 전 영역에 걸친 작품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아름다운 글로 선생의 감상을 표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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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옛집은 1930년대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안채와 바깥채로 된 ㅁ자 형 구조입니다. 소나무와 산사나무가 서 있는 안마당은 아담하지만 시대도 공간도 초월한 듯 고즈넉한 분위기지요. 전시실에서는 최순우 선생의 유품을 볼 수 있으며, 때마다 강연이나 체험 등 문화프로그램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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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잠단지 & 성북선잠박물관
조선시대에 비단은 중요한 옷감이었습니다. 아, 일반 백성에게는 아니었겠지만요. 그래도 고급 옷감으로서의 가치와 관심도는 국가적으로 높아 왕비의 주관으로 한 해 양잠의 풍요를 바라며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를 선잠제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비단을 짜왔다고 하는데요, 선잠제를 지내기 시작한 건 고려시대부터라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의 세 번째 왕이었던 태종 때 지금의 성북동에 선잠제를 지내는 선잠단이 축조되었지요.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성북동 안에서도 꽤나 역사가 오래된 유적지임은 분명합니다.
현재의 선잠단지에 본래의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에 세웠나 싶은 비석도 근래 정비 시에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하는데요, 거의 잊힐 뻔 했던 선잠단 터는 주민들이 이곳에 뽕나무를 심으며 다시 주목을 받습니다. 1993년부터는 매년 5월마다 선잠제를 복원하여 봉행하고 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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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양잠 역사에 관해 알기 위해서는 선잠단지에서 멀지 않은 성북선잠박물관을 방문하면 좋습니다. 선잠제, 선잠단과 관련한 약 300점의 유물과 기록을 소장하고 있고 3D애니메이션으로 복원한 선잠 의례를 보여줍니다. 3층 기획전시실에서는 비단, 염색, 전통 의상에 관한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고요. 현재는 2026년 1월까지 <한 올 한 올 짜온 기억들 –선잠·친잠 아카이브전>이 진행 중이니 성북동 산책 중 들러보시면 좋겠습니다. 박물관 옥상 하늘공원에서 성북동 풍경을 내려다보아도 좋겠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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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별장
성북동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멋진 한옥을 보고 싶다면 이종석 별장에 들러야 합니다. 이곳은 조선 말기 새우젓 장사로 큰돈을 벌었다는 상인 이종석이 세운 여름 별장입니다. 왕족이 지은 걸 이종석이 인수했다는 설도 있다는데요, 왕족이 거처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제대로 공을 들여 지은 집인 건 분명한 모양입니다.
이종석 별장은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의 소유주는 바로 옆에 있는 덕수교회입니다. 지금 이 한옥을 마주해도 정원부터 기단, 바깥으로 보이는 기둥과 미닫이문의 촘촘한 창살, 하늘로 뻗은 처마까지 하나도 허투루 지어진 것이 없으며 심지어 관리도 아주 잘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큰길에서 좀 벗어난 곳이라 골목 자체가 한적하긴 하지만, 마당에 들어서면 세속으로부터 완벽히 떨어져 나온 듯한 고즈넉함이 느껴진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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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허 이태준 고택(수연산방)
소설가 이태준은 29세였던 1933년에 성북동에 집을 짓고 이름을 ‘수연산방(壽硯山房)’이라고 짓습니다. 연(硯)은 벼루를 뜻하니 벼루의 수명(壽)이 다할 때까지 글을 쓰겠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이름이라고 하지요. 이태준은 1946년까지 수연산방에 거주하는데, 집의 이름처럼 이곳에서 많은 작품을 집필합니다. 「달밤」, 「손거부」 등 그의 단편소설을 보면 1930년대 성북동 풍경,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잘 나타나기도 합니다. 성북동이 내내 부자들의 동네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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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태준의 옛집은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쓴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항상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라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는 어렵겠지만, 운 좋게 누마루에 자리를 잡는다면 성북천 흐르는 소리와 솔바람 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던 시절을 얼마간 상상해 보실 수도 있을 겁니다. 당대는 물론 지금도 최고의 문장가라 칭해지는 이태준이 이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글을 썼을지도 그려보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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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
이제 그리 가파르지 않은 언덕길을 오를 차례입니다. 심우장은 위대한 서정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불교개혁가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던 집입니다. 이태준이 수연산방을 지은 것도 마침 1933년이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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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尋牛)는 소를 찾는다는 의미로 수행하는 사람이 불성을 깨우쳐 가는 10단계에서 첫 단계를 뜻합니다. 선생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사직동, 청진동 일대에서 홀로 지냈는데, 성품이 강직하고 직선적이라 자신을 추앙하는 사람이건 불교계, 민족 운동계 동료건 대중들과 어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집도 절도 없이 지난한 삶을 이어가던 선생을 딱하게 여겨 주변에서 거처를 구하려 하던 중, 백양사 김벽산 스님이 성북 산자락에 땅을 마련해 주었다고 하네요. 1,000원의 건축비는 여러 사람들의 후원금과 선생이 받은 원고료를 합해 충당했고요. 심우장은 서울 성곽길 북측 경사면에 있습니다. 한옥이지만 드물게 북향으로 지어졌는데, 이를 두고 남향으로 집을 지으면 조선총독부를 바라보게 된다고 하여 선생이 북향집을 고집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선생의 따님인 한영숙 여사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였지만요. 한용운 선생은 심우장에 머물며 참선하고 글을 썼고, 남는 시간에는 매화, 향나무, 개나리, 진달래, 백일홍을 옮겨다 심고 가꾸었다고 합니다. 1943년 겨울 중풍으로 쓰러진 선생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44년 6월 29일 세상을 떠나셨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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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 안에는 선생의 친필 원고와 작품집, 공판 기록, 서예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북쪽으로 낸 집의 마당에 서면 성북동이 얼추 다 내려보이는데, 제법 바람이 불어 여까지 올라오는 길 흘린 땀을 식혀줍니다. 심우장은 내부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으니 사람이 많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 가져다 놓은 선생의 시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도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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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소 없건만은 찾을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 한용운의 시 「심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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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일상
성북동 산책 중엔 어쩐지 차를 마셔야 할 것 같은데요. 수연산방은 다녀왔지만 그래도 커피 한 잔을 더 해야겠다거나 너무 트렌디한 카페는 피하고 싶은 분들은 카페 일상에 들러보세요. 사람들이 ‘레트로’라 수식하긴 하지만, 멋이 아니라 실제로 성북동에서 오래 터를 잡은 터줏대감 같은 카페입니다.
일상은 핸드드립 전문점인데요, 그날 가게에서 딱 준비한 원두를 브루잉하는 ‘오늘의 커피’가 대표 메뉴입니다. ‘신선한 원두’라는 표현이 있긴 합니다만 사실 커피는 볶자마자 마시는 게 최선은 아닙니다. 로스팅을 하며 생성된 가스가 배출될 시간을 주는 게 추출이 더 잘 되거든요. 특히 핸드드립을 할 때는요. 그래서 카페 일상의 ‘오늘의 커피’라는 메뉴는 날마다 가장 맛있는 상태의 원두로 내려주실 거라는 믿음을 준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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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을 잠시 놓아두고 새로운 도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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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방학: 성북 #1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성북동 산책
이번 주 도시 방학: 성북에서는
가벼운 산책만으로도 성북동 핵심을 볼 수 있는
산책 코스를 준비했어요.
서로 멀지 않으면서
각각의 장소가 여러 시대를 아우르기 때문에
심심할 겨를이 없을 거예요.
역사와 문화에 관한 TMI는 덤!
자, 멀지 않은 그곳 성북동으로 떠나봅시다.
성북동은 한양도성이 지어진 후 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자연스레 성북(城北)이라는 이름이 붙은 동네입니다. 예부터 빼어난 경치로 사람들이 몰려들던 곳이었지요. 풍경은 좋아도 농사에는 적합하지 않은 땅이라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권세가들은 이곳에 별장을 짓고 봄부터 가을까지 산이 굽어보고 천이 흐르는 자연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시대가 한참 바뀐 후 ‘성북동은 부촌’이라는 이미지로 거듭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성북동은 부촌 이전에 문화예술인들의 마을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 상허 이태준,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김환기, 대표작 「성북동 비둘기」로 널리 알려진 시인 김광섭, 문화재 수집가로서 간송 미술관을 설립한 전형필, 서예가 오세창, 그리고 시인이자 승려이며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 선생까지. 성북동이 서울에서도 유독 문화유산이 풍부한 동네인 것도 이들의 발자취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북악산 자락을 배경으로 얽히고설킨 호젓한 골목 곳곳에는 조선시대에서 근대를 지나 20세기 중후반까지 아우르는 옛 건축물들이 터를 잡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골목에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을까 감탄이 나오다가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찻집이나 카페를 지나치면 그저 고리타분한 동네는 아니구나 싶기도 하지요. 자, 그러면 성북동에서의 방학을 시작해 볼까요?
최순우 옛집
선잠단지 & 성북선잠박물관
한국의 양잠 역사에 관해 알기 위해서는 선잠단지에서 멀지 않은 성북선잠박물관을 방문하면 좋습니다. 선잠제, 선잠단과 관련한 약 300점의 유물과 기록을 소장하고 있고 3D애니메이션으로 복원한 선잠 의례를 보여줍니다. 3층 기획전시실에서는 비단, 염색, 전통 의상에 관한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고요. 현재는 2026년 1월까지 <한 올 한 올 짜온 기억들 –선잠·친잠 아카이브전>이 진행 중이니 성북동 산책 중 들러보시면 좋겠습니다. 박물관 옥상 하늘공원에서 성북동 풍경을 내려다보아도 좋겠고요.
이종석 별장
상허 이태준 고택(수연산방)
현재 이태준의 옛집은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쓴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항상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라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는 어렵겠지만, 운 좋게 누마루에 자리를 잡는다면 성북천 흐르는 소리와 솔바람 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던 시절을 얼마간 상상해 보실 수도 있을 겁니다. 당대는 물론 지금도 최고의 문장가라 칭해지는 이태준이 이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글을 썼을지도 그려보면서요.
심우장
심우(尋牛)는 소를 찾는다는 의미로 수행하는 사람이 불성을 깨우쳐 가는 10단계에서 첫 단계를 뜻합니다. 선생은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사직동, 청진동 일대에서 홀로 지냈는데, 성품이 강직하고 직선적이라 자신을 추앙하는 사람이건 불교계, 민족 운동계 동료건 대중들과 어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집도 절도 없이 지난한 삶을 이어가던 선생을 딱하게 여겨 주변에서 거처를 구하려 하던 중, 백양사 김벽산 스님이 성북 산자락에 땅을 마련해 주었다고 하네요. 1,000원의 건축비는 여러 사람들의 후원금과 선생이 받은 원고료를 합해 충당했고요.
심우장은 서울 성곽길 북측 경사면에 있습니다. 한옥이지만 드물게 북향으로 지어졌는데, 이를 두고 남향으로 집을 지으면 조선총독부를 바라보게 된다고 하여 선생이 북향집을 고집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선생의 따님인 한영숙 여사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였지만요. 한용운 선생은 심우장에 머물며 참선하고 글을 썼고, 남는 시간에는 매화, 향나무, 개나리, 진달래, 백일홍을 옮겨다 심고 가꾸었다고 합니다. 1943년 겨울 중풍으로 쓰러진 선생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44년 6월 29일 세상을 떠나셨고요.
심우장 안에는 선생의 친필 원고와 작품집, 공판 기록, 서예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북쪽으로 낸 집의 마당에 서면 성북동이 얼추 다 내려보이는데, 제법 바람이 불어 여까지 올라오는 길 흘린 땀을 식혀줍니다. 심우장은 내부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으니 사람이 많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 가져다 놓은 선생의 시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도 좋겠습니다.
잃은 소 없건만은
찾을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 한용운의 시 「심우장」
카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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