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제주에서 산 책 #4 - 제주를 기록하는 책방, 북살롱 이마고 / 제주아카이브센터 (1)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리에는 의외의 장소에서 맞이해 주는 책방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북살롱 이마고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또 단순한 책방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대중 인문서 시장을 연 출판사 이마고이자 '제주아카이브센터'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지요. 과연 제주의 무엇을 아카이빙 한다는 걸까요?


브릭스 매거진에서 북살롱 이마고/제주아카이브센터의 김채수 대표를 만나 북살롱 이마고가 어떤 서점인지, 제주아카이브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들어보았습니다. 인문·예술 책방을 넘어 제주의 삶을 기록하는 북살롱 이마고 / 제주아카이브센터로의 산책, 함께 떠나 보시죠.


북살롱 이마고/제주아카이브센터


Q. 북살롱 이마고는 어떤 곳인가요?

북살롱 이마고는 책방이지만 제주의 지역문화를 발굴하여 기록하고 전시하는 비영리단체 제주아카이브센터이기도 합니다. 처음 시작은 인문서와 예술서 위주로 큐레이션 하는 인문‧예술 책방이었는데, 제2공항 이슈로 인해 돌집을 비롯한 지역의 소중한 자산들이 급격히 사라져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너무 급해지더라고요. 어서 빨리 사진이든 글이든 이 지역의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지역 분들을 모아 기록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이후 몇 년간 다양한 지역 아카이브 프로젝트들을 진행했지요. 온전히 책만 판매하는 책방들과는 조금 차별화가 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원래는 서울에서 ‘이마고’라는 출판사를 운영하셨죠. 언제, 어떻게 이곳 표선면 세화리까지 오게 되셨나요?

제주로 내려오기 전, 계속 이명이 들리는 증상 때문에 치료를 받고 있었어요. 세 번의 약물치료 기회 중 첫 번째 치료에 실패하고 나서 마음이 무척 힘들었는데, 일이 정말 많고 바쁜 시기였지만 잠깐이라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딸과 함께 열흘 정도 제주로 여행을 왔어요. 그게 2014년 12월이었죠.


그런데 제주의 숙소에서 이틀 밤을 지내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이명이 안 느껴졌어요. 너무 놀라서 잠들어 있는 딸아이를 깨워서 제게 말을 해보라고 시켰어요. 제 이명은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를 따라서 메아리처럼 음성 변조한 목소리 같은 게 다시 들려오는 증상이었는데, 그게 진짜 사라진 건지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정말 기적처럼 이명이 사라진 거예요.


 북살롱 이마고 / 제주아카이브센터의 김채수 대표


당시 숙소였던 곳이 바로 이 근처였어요. 그때 책 때문에 가시리의 건축가 선생님을 만났었는데, 제 얘기를 들으시더니 제주에 내려와서 살아보는 건 어떠냐고 하시더라고요. 내려와서 땅을 사면 집을 지어주시겠다고요. 내심 서울로 돌아가면 이명이 되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그 얘기가 얼마나 반갑던지요.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제주로 이사를 가겠노라고 남편한테 선언하고 그날 밤 부동산 블로그를 검색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바로 이 땅을 발견했어요. 마침 찾기 힘들다는 작은 땅이라 다음날 바로 가계약금을 보냈어요. 그리고 3개월 후, 아이와 함께 이삿짐을 싣고 내려왔지요.



Q. 제주로 내려와 책방을 하실 생각이었나요?

처음부터 책방을 열 생각은 없었어요. 서울에서 20년 넘게 출판 일을 하면서 출판계에 염증을 느끼기도 했고 누적된 피로로 지쳐 있던 때여서 가능하면 책과는 좀 멀리 있고 싶었으니까요. 출판 편집자로 시작해서 출판사 이마고를 창업했고, 대중인문서 시장을 만들어간다는 일종의 사명감에 열심히 다양한 인문서를 만들었어요. 그에 값하는 좋은 반응도 얻었기에 당시 제주로 내려온다는 것은 모든 걸 일시에 접겠다는 결심을 뜻했지요.


당시 땅을 사긴 했지만 건축을 할 형편은 되지 않아서 근처에 연세로 집을 얻어 지냈는데 이듬해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예상보다 빨리 건물을 짓게 되었어요.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와중에 그럼 이 공간에서 무얼 할까 고민을 했지요. 사실 출판계 속설에 ‘팔자 도망은 해도 책 도망은 못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저런 고민 끝에 결국 주위의 권유로 책방을 열게 되었어요.


그때는 건물을 지으면서도 제가 이렇게 계속해서 제주에 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건물이 지어지고 계획에 없던 책방을 열고, 그러면서 점점 제주의 삶에 매료된 것 같아요. 이주 초기에는 서울에 올라가면 이런저런 약속을 잡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랬는데, 지금은 일 때문에 서울에 가도 공항에서 미팅만 하고 바로 내려올 정도로 제주의 삶에 더 익숙해졌지요.



Q. 책방 큐레이션은 어떻게 하시나요?

오랫동안 대중 인문서를 독자들에게 최대한 더 많이 알리려는 목적으로 출판을 해왔기 때문에 책방도 그런 작업의 연장선이라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아예 인문서 시장이 없어서 최대한 많은 인문서를 출판함으로써 대중 독자들에게 이를 알리고자 했다면, 지금은 너무나 다양한 책의 홍수 속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좋은 인문서들을 책방의 매대를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인문서의 비중이 제일 크고 그밖에 예술과 생태 관련 도서, 제주를 주제로 다룬 책들 등을 큐레이션하고 있어요. 사실 지역에 거주하시는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한 책도 입고해 달라고 많이 부탁을 하시지만, 제주에는 그림책과 어린이책을 전문으로 하는 훌륭한 책방이 여럿 있기 때문에 대신 그런 곳을 추천해 드리고 있어요. 


북살롱 이마고의 서가


Q. 제주아카이브센터는 어떻게 세우시게 됐나요?

제가 제주에 내려온 해에 제2공항 발표가 났어요. 갑자기 땅값이 올라가면서 기존 건물들이 허물어져 없어지고 나무들이 베어져 나가는 등 급격한 변화가 생겼지요. 마음이 급해졌어요. 내가 사랑하는 제주 본래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겠구나, 빨리 기록이라도 해놓아야겠다.


처음에는 혼자서 기록 작업을 했어요. 지역의 어르신들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었죠. 그런데 제가 기록하는 속도보다 변해가는 속도가 훨씬 빠른 거예요.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는데 마침 지역문화진흥원에서 책방 프로그램 공고가 난 것을 보고 지역을 기록하는 기획으로 도전을 했지요. 다행히 북살롱이마고가 선정이 되면서 예산이 확보되었고, 그걸로 〈제주, 마을의 기억과 풍경〉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어요.


〈제주, 마을의 기억과 풍경〉


〈제주, 마을의 기억과 풍경〉은 이곳 표선면 6개 마을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였어요. 14명의 참여자 대부분이 사진을 찍어본 적 없는 평범한 지역 분들이었지만, 6개월간 사진 공부도 하고 조를 짜 마을을 탐방하면서 어떤 것을 기록할지 서로 의논도 하고 핸드폰으로 사진도 찍어보고 그랬어요. 실제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찍었는데, 인화되어 온 사진 결과물을 보고 제일 놀란 건 바로 당사자들이었어요. 와, 이게 정말 우리가 찍은 사진인가 하고요. 필름 카메라가 주는 그 묘한 깊이와 색감과 마을의 풍경이 정말 멋지게 담겼지요. 이렇게 기록한 사진으로 제주에서는 물론 울산에서도 전시를 했고, 사진과 글을 엮어 책으로도 출간하자 정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제주, 마을의 기억과 풍경〉 출간 이후 지자체나 공기관들과 연결이 많이 됐고, 지역 기록 프로젝트 의뢰가 많아지면서 제주아카이브센터를 설립하게 된 거지요.


〈제주, 마을의 기억과 풍경〉내지와 전시장 입구 | 제주아카이브센터 제공


Q. 제주아카이브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제주로 여행을 오시는 분들은 이 섬이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만 보고 돌아가죠. 실제 제주인의 삶은 그와는 동떨어져 있는데 말이에요. 우리 마을 어르신들만 해도 대부분은 아마 평생 관광지에 가실 일이 없으실걸요. 두 개의 제주가 존재하는 거죠.


저는 제주의 보통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관심이 많아요.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짜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삶의 터전으로서의 제주가 자꾸 변하고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주아카이브센터는 그런 진짜 제주의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기려 하고 있어요. 매년 지역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면서 해를 거듭하다 보니 점점 미시적으로 파고들어 가고 있고요.


4.3을 주제로 한 북촌리와 의귀리 마을 어르신들의 시그림 프로젝트


지금 보시는 『영혼을 돌아보지 마라』, 『나는 슬픈 아이여수다』는 4.3을 주제로 북촌리와 의귀리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한 시그림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에요. 북촌리와 의귀리는 4.3 피해가 굉장히 컸던 곳이거든요. 두 마을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시인들과 함께 4.3에 관한 기억을 시로 쓰고 그림으로 그렸어요. 굳이 시와 그림의 형식을 빌려와 기록을 한 이유는 이분들 입장에서는 말로 증언하는 일 그 자체도 정말 큰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세화리 어르신들의 자서전 『나의 이야기』와 표지 촬영 현장 | 제주아카이브센터 제공


『나의 이야기』는 저희 책방이 있는 이곳 세화리 마을 어르신들의 자서전이에요. 모두 열 분의 책, 열 권을 만들었는데 앞표지에는 어르신의 앞모습을, 뒤표지에는 뒷모습을 담았어요. 어르신 한 분 한 분 인터뷰해서 글로 풀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할 때만 해도 제가 제주어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던 때여서 인터뷰를 도와주신 분들과 함께 작업을 했어요. 다행히 지금은 제가 직접 인터뷰를 할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는 제주어에 익숙해졌지요.


제주아카이브센터에서 진행해 온 프로젝트들


누구라도 제주 기록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게끔 제주 기록자 양성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만들었던 『제주 기록』, 제주유네스코협회와 함께 제주 지역 고등학교 청소년들에게 에디터 교육을 하면서 만든 기후변화에 관한 매거진 『THINKERS』, 서귀포문화도시와 함께한 『서귀포 발효기행-할망의 부엌을 찾아서』, 『와흘리·토산리 삼촌들이 들려주는 음식 이야기 그림책』 등이 지난 몇 년간 제주아카이브센터에서 진행해 온 프로젝트예요. 


영문 로컬 매거진 〈THE MOMENTS in Jeju〉| 제주아카이브센터


제주국제컨벤션센터(제주 ICC)에서 발간하는 영문 로컬 매거진 〈THE MOMENTS in Jeju〉는 전 세계의 마이스 산업 담당자들에게 제주를 알리는 홍보 매거진으로 콘텐츠 기획에서부터 제작까지 총괄을 맡아 진행하고 있어요. 벌써 6호까지 발간이 되었고, 올해 제주에서 열리는 APEC에 맞춰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 제주를 알리기 위해 현재 7호도 부지런히 준비 중이랍니다.


Q. 의뢰한 기관도, 참여자들도 다르지만 프로젝트마다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오면 처음부터 제가 거의 100% 기획을 하고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진행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의뢰 기관이나 주체가 다르다 하더라도 계속 ‘제주의 생활 문화사’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담을 수 있었어요. 결과물의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사실은 다 같은 주제의 콘텐츠를 담아온 거지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제주아카이브센터의 아카이브프로젝트 결과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가


:: 제주를 기록하는 책방, 북살롱 이마고 / 제주아카이브센터 (2) 이어서 읽기

 



인터뷰 · 사진 | 신태진
자료 협조 | 북살롱 이마고/제주아카이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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