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제주에서 산 책 #5 - 제주를 기록하는 책방, 북살롱 이마고 / 제주아카이브센터 (2)

:: 제주를 기록하는 책방, 북살롱 이마고 / 제주아카이브센터 (1) 먼저 읽기



Q. 대표님께서도 처음엔 외지인으로서 제주를 기록하며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물론 있었죠. 첫 번째는 언어였어요. 인터뷰를 하고 기록을 해야 하는데 제주어를 알아듣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제주에 10년째 살면서 조금씩 제주어를 알게 되었고, 지금은 반 이상은 알아듣는 정도까지 온 것 같아요. 그럼에도 90세 이상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은 지금도 30%도 못 알아들어요. 


두 번째로는 지역에 계신 분들이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제주의 특성상 저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해요. 제주는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침략을 받았던, 역사 자체가 침략의 역사잖아요. 그랬기 때문에 당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북살롱 이마고/제주아카이브센터


처음 기록을 시작했을 때 옆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를 매주 가서 뵙곤 했는데 처음에는 제대로 말씀도 잘 안 해주시고 눈길도 별로 안 주셨어요. 흔히 하는 말로 ‘육지 것’한테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이 썩 내키지 않으셨던 거죠. 그러다가 두어 달 정도 되었을 즈음인가 봐요. 제가 할머니의 비협조적인(?) 태도에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매주 찾아뵙고 기록하는 모습에 믿음이 가셨는지 어느 날 인터뷰가 끝났는데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밥상을 내오시는 거예요. 실제로 제가 워낙 시골 밥을 좋아하는 데다 마침 시장하기도 했던 터라 앉은 자리에서 밥 두 그릇을 먹고 반찬까지 싹 비우는 모습을 보시고는 할머니께서 엄청 흐뭇해하시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제가 가면 괜찮다고 사양해도 항상 밥을 차려주시고 냉장고에서 고사리 얼린 거, 감주 만들어 놓은 거 다 챙겨주셨어요. 그렇게 그분에 관한 기록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지요.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계속하면서 강연을 하거나 제주아카이브센터가 해왔던 일을 소개할 자리가 가끔 생기는데 요즘은 그런 자리에서 제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제주분들도 더러 계세요. 지금껏 아무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었던 것들을 이렇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로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요. 제주에 관한 기록을 계속하면서 이런 칭찬과 격려를 받을 때 가장 감사하고, 계속할 용기도 생기고 신이 나는 것 같아요. 



Q. 지금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나요?

〈제주 메모리즈〉라는 상시 프로젝트가 있어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제주 기록 프로젝트인데, 원하시는 분께 기록 노트를 무료로 드려요. 각자의 제주를 이 노트에 기록하는 겁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제주가 있으니까 그걸 기록하는 방식도 구애 없이 다양해요. 예를 들어 이 노트는 13살 학생의 기록인데,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사진도 붙였어요.


〈제주 메모리즈〉 13세의 기록 | 제주아카이브센터 제공


누구나 이 프로젝트의 주체가 될 수 있어요. 제주에 사시는 분들, 제주에 여행 오신 분들, 누구나요. 노트마다 고유번호를 부여하기 때문에 혹시 노트를 다 채우지 못하시면 여기 그대로 두셨다가 다음에 다시 방문할 때 마저 채우셔도 돼요.


이 노트들을 모아 1년, 혹은 2년에 한 번씩 책으로 묶을 예정이고, 또 전시를 통해 참여해 주신 분들을 초대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해 보려고 해요. 이 노트가 이 책방의 책장 전체를 다 차지하는 날을 꿈꾸고 있고요.



Q. 최근 몇 개월간 북살롱이마고는 휴식기를 가졌습니다. 다시 문을 연 북살롱이마고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북살롱이마고는 책방이지만, 제주아카이브센터로서의 정체성을 좀 더 강화하고 싶었어요. 제 본업이 브랜드 디자이너이다 보니 제주의 브랜드와 직접 만날 일이. 많거든요. 그래서 제주의 정체성이 잘 담긴 제주 브랜드를 소개해 보자고 생각했지요. 지역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친환경적이고 지역민에게 의미가 있는 그런 브랜드들을 큐레이션 했어요. 제주의 청년 스타트업들이 만들어내는 제품들도요. 그런데 그런 제품들을 가져다 놓다 보니 문득 의문이 드는 거예요. 이게 진짜 제주 브랜드가 맞나?


어쩐지 진짜 제주 브랜드라고 하면 제주의 지역 오일장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제주 전역의 오일장을 돌아다니며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짜 제주 브랜드’들을 찾아내게 되었죠. 그렇게 만들어진 책방의 ‘오일장 에디션’ 매대에 첫 번째 주자로 소개된 브랜드가 바로 제주시민속오일장의 원일대장간, 유성쌀집, 대건상회 이렇게 세 브랜드예요. 이 ‘오일장 에디션’ 매대에는 지속적으로 제주 지역 오일장 브랜드들을 돌아가며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런 것들이 가장 제주다운 물건이고, 제주 보통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물건들이니까요.


제주도 오일장 에디션 매대 | 제주아카이브센터 제공


특히 원일대장간의 경우 책방에 농기구를 가져다 놓으니까 오시는 분들이 이 섹션을 가장 좋아하시는 거예요. 보시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거지요. 제주에서는 호미를 ‘골갱이’라고 하는데 지역별, 용도별로 호미의 모양과 크기가 다 다르다 보니 호미 하나에도 탐구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요. 저는 이렇게 북살롱이마고 안에서 하는 일들이 계획하지 않아도 누군가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이 되고 의도치 않았던 아웃풋이 나오는 게 좋아요. 그런 공간이 재미도 있잖아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지역 아카이빙을 좀 더 깊이 있게 해나가고 싶어요. 전시의 형태일 수도 있고, 출판이나 공연의 형태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단발적이고 휘발성 강한 프로그램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긴 호흡으로 진정성 있는 기록을 남기는 일이 우리의 임무라고 생각하니까요. 



사실 그동안 제주를 기록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게 아니에요. 오히려 굉장히 많았습니다. 기관에서 학술적으로 제주를 계속 기록해 왔어요. 아쉬운 건 그런 기록이 일반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많이 기록되긴 했는데, 그냥 캐비넷 안에 들어가 있는 거지요.


저는 그런 기존의 기록을 꺼내 좀 더 쉽게 매력적으로 가공하고 디자인하여 최대한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끔 하고 싶어요. 아무리 우리끼리 제주 4.3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한 사람이라도 더 4.3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알게 하는 게 중요하지요. 이렇게 기존에 기록되어 온 콘텐츠와 저희가 새로이 발굴하는 기록들을 합쳐 이전 세대와 지금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를 잇는 매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북살롱 이마고/제주아카이브센터의 김채수 대표


Q. 마지막으로 북살롱 이마고에서는 어떤 책을 추천해 주시겠어요?

사실 최근에 재일제주인센터의 지원으로 『오사카의 제주인 마을, 이카이노 이야기』라는 책을 이마고에서 출간했어요. 일제강점기 때 군대환이라는 배를 타고 오사카로 건너가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제주사람들 이야기인데, 1980년대에 일본에서 출간되었던 책을 이번에 번역해서 한국에 소개하게 된 거지요. 저자이신 고 김찬정 선생은 최근에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조선인 여공의 노래〉의 원저작자이기도 하고요. 1세대 재일제주인들이 대부분 돌아가신 상태라 이제는 더 이상 그분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재일제주인의 이주 역사와 삶을 재조명하고 재인식하는 데 귀중한 의미를 남깁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재일한국인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거라 믿어요.


『오사카의 제주인 마을, 이카이노 이야기』


더불어 김성라 작가의 제주를 주제로 한 연작 그림책 『고사리 가방』, 『귤 사람』, 『여름의 루돌프』도 추천하고 싶어요. 김성라 작가는 제주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인데, 『고사리 가방』을 시작으로 제주 시리즈를 하나씩 내고 계세요. 현재는 서울에 살며 그림 작업을 하고 있는데, 상경 후에 제주를 굉장히 많이 떠올렸다고 해요. 그러면서 엄마와 함께 고사리 뜯던 기억, 해녀였던 할머니, 고향과 귤 등 제주에서 자기가 성장하면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이렇게 글과 그림으로 남긴 거지요. 이 또한 제주에 관한 기록 아니겠어요? 게다가 이 책들을 읽으면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몰라요.


김성라 작가의 제주 연작 그림책




인터뷰 · 사진 | 신태진
자료 협조 | 북살롱 이마고/제주아카이브센터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