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프랑슈 쉬르 메르
아쿠아마린 빛깔로 투명해진 바다, 만을 낀 절벽, 가파른 경사로에 자리 잡은 마을, 파스텔톤으로 채색된 건물들과 전망 좋은 곳을 차지한 새하얀 저택. 유럽의 바닷가 휴양지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눈 아래 펼쳐지고 있습니다. 빌프랑슈 쉬르 메르(Villefranche-sur-Mer). 니스의 동쪽 해안에 면하고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벤치에 앉아만 있어도 충만해 집니다.
빌프랑슈 쉬르 메르는 니스와 아주 가깝지만, 그렇다고 ‘니스’는 아닙니다. 일단 눈으로만 봐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네요. 건물 사이로 좁아 드는 아기자기한 골목이 어서 걸어보라고 손짓합니다. 비스듬한 각도로 위나 아래로 사라지는 돌계단 너머를 훔쳐보고, 굳게 닫힌 나무문 앞에서 이 안에는 어떤 삶이 숨어 있을까 상상해 봅니다. 창밖을 내다보는 그림자가 어른거린 것 같아 고개를 드니 아기자기한 화분들이 발코니에 놓여 있네요. 빌프랑슈 쉬르 메르의 가장 큰 매력은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골목입니다. 미로를 빠져나가는 듯하다가 갑자기 내리막길 아래로 푸른 바다가 나타나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고요. 휴양지라는 공간이 이렇습니다. 바닥부터 하늘까지 사람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데 도가 텄지요. 이런 건 한두 해 노력한다고 흉내 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휴양지를 꾸려가거나 휴양지를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이 전력으로 느긋하게 살아내면서 구축해 온 정체성인 겁니다.
우리가 남프랑스에 기대하는 골목 풍경 그대로입니다.
게다가 빌프랑슈 쉬르 메르에 도착한 이후로 경비행기 두 대가 한 시간에 서너 번씩 날아오며 휴양지 느낌을 더합니다. 양쪽 날개에 달린 프로펠러, 통통한 주황색 몸체, 저공비행을 하다가 눈높이까지 내려와 바다 위로 착륙하는 동선까지 이 아름다운 마을을 하늘에서 바라보기 위해 띄운 관광용 비행기 같네요. 알고 보니 이들은 산불 진화용 수상비행기로서 소방수를 보충하기 위해 바다에 내려앉는다고 합니다. 빌프랑슈 쉬르 메르가 있는 프랑스의 코트다쥐르(Côte d'Azur) 지역은 여름에 건조하고 바람도 많이 붑니다. 그래서 여름 산불이 잦은데, 이에 대비하는 훈련 중인 모양이에요.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여름, 아, 산불의 위험을 차치하고 보면 기후도 참 휴양지답군요.
너무나 낭만적으로 보이면서 너무나 중요한 비행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아 돌아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시간의 흔적이 골목골목 켜켜이 쌓여 있어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다’는 진부한 표현을 하릴없이 끄집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빌프랑슈 쉬르 메르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닷가에 마을이 생긴 것이 무려 13세기였다고 해요. 그 역사를 되짚기 위해서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시타델로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시타델(Musées de la Citadelle)
1295년, 나폴리 왕이자 프로방스 백작이었던 샤를 2세가 지금의 빌프랑슈 쉬르 메르 자리에 도시를 세우기로 합니다. 원래 이 지역 사람들은 언덕 위에서 살았는데, 이들을 해안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세금을 면제해주는 등 여러 혜택을 선사하지요. 빌프랑슈(Villefranche)라는 이름도 면세 특권(“Tax Free!”) 때문에 붙여졌다고 하네요.

보루에서 만 전체를 커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빌프랑슈 쉬르 메르는 그 유명한 사보이아 가문이 통치하게 되는데요, 16세기 중반 사보이아 측에겐 적국이었던 ‘프랑스 왕국’이 오스만투르크와 손을 잡고 니스는 물론 빌프랑슈 쉬르 메르까지 초토화시키는 니스 공방전이 벌어집니다. 다행히 지배권은 넘어가지 않았고, 바다를 제대로 지켜야겠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보이아 가문이 해안 방어를 위해 세운 요새가 시타델입니다. 만 전체를 내려다보는 보루에서 사각지대 없이 대포를 쏠 수 있게 설계했고요, 방어력 향상을 위해 성벽의 두께도 상당합니다.
여기가 병영입니다.
당시 시타델에는 천 명의 병사가 주둔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머물던 병영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대포도 전시되어 있지요. 현재는 빌프랑슈 쉬르 메르의 시청이 시타델 안에 있으며, 옛 저수조는 오디토리움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16세기에 지어진 유적을 박물관이자 전망대, 시청과 공연장 등으로 참 알뜰하게 사용하고 있네요.
생피에르 예배당(Chapelle Saint-Pierre de Villefranche-sur-Mer)
시타델을 나서 마을로 내려오면 16세기의 다른 흔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역시 16세기에 지어진 생피에르 예배당은 성 베드로에게 봉헌된 곳인데요, 아시다시피 성 베드로는 어부들의 수호성인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자연스레 어부들의 예배당이 되었고, 2층에는 어부 조합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어업에 종사하는 집안에 한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고요.
생피에르 예배당
생피에르 예배당이 오늘날의 독특한 외관으로 탈바꿈한 것은 20세기 들어서입니다. 프랑스의 종합예술가 장 콕토(주로 영화감독으로 알려져 있지요)가 생피에르 예배당에 깊은 애정을 느끼고 내부와 외부를 장식하기로 한 겁니다.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십자가, 성 베드로에게 주어진 천국의 열쇠, 어부들의 어업 도구인 밧줄, 그리고 세상만사를 볼 수 있는 신의 눈까지 온갖 상징이 아름답게 파사드를 수놓고 있습니다. 장 콕토는 신앙심에서가 아니라 “마을 어부들에 대한 우정의 표시”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예배당 자체는 20세기다운 종교화 자체로 보이기도 합니다.

옵스큐르 거리(Rue Obscure)
빌프랑슈 쉬르 메르를 걷다 보면 갑자기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길이 나타납니다. 아니, 길이라기보다는 지하통로나 터널 같기도 하네요. 옵스큐르 거리는 빌프랑슈 쉬르 메르의 첫 성벽을 따라 이어진 순찰로였습니다. 그게 14세기였는데, 도시가 커지고 시타델처럼 고지대로 방어 체계를 올리면서 성벽은 제 기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이곳 사람들은 길 위에 집을 짓기 시작해요. 멀쩡하던 길에 천정이 생기면서 지하통로처럼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거야 말로 글자 그대로 ‘시간이 쌓인’ 흔적이랄까요.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옵스큐르 거리는 총 130m의 길이로 1932년부터 프랑스의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걷다 보면 약간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중간중간 하늘이 보이는 구간에서는 누군가의 창문도 올려다볼 수 있어요. 누가 살고 있을까, 지하는 아닌데 발 아래 누군가가 지나가고 있는 느낌은 어떨까 여러 모로 궁금증이 커지기도 합니다.
생 미셸 성당(Église Saint-Michel)
생 미셸 성당
빌프랑슈 쉬르 메르의 좁은 골목길에 비해 굉장히 높은 건물 앞에 서 봅니다. 18세기에 완공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 생 미셸 성당이에요. 앞서 찾은 시타델 성벽에 사용한 것과 같은 석재를 이 성당에도 사용했다고 해요.
생 미셸 성당은 이름 그대로 성 미카엘에 봉헌된 성당인데, 유럽에서 미카엘은 주로 높은 곳에 있는 성소와 인연이 있는 대천사입니다. 빌프랑슈 쉬르 메르 사람들은 원래 언덕 위에 살다가 해안가로 내려왔기 때문에 낮은 곳으로 이주를 했어도 성 미카엘을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싶었던 거지요.
웅장한 성당 내부. 오른쪽이 오르간입니다.
성당은 마을 규모에 비해 제법 웅장하고, 눈여겨 볼 것도 많습니다. 우선 성당 안으로 들어서서 뒤돌아 위를 올려다보면 거대한 오르간이 나타납니다. 그린다 형제라는 사람들이 1790년 제작한 오르간으로 빌프랑슈 쉬르 메르가 포함된 알프마르팀(Alpes-Maritimes)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오르간 중 하나라고 합니다. 하나의 거대한 장식처럼 보일 만큼 그 자체로 예술적이라 소리를 직접 들어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회랑을 따라 예배당 앞쪽으로 나아가면 누워 있는 목재 그리스도상이 있습니다. 고통과 슬픔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경건한 마음이 찾아듭니다. 놀랍게도 단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를 깎아 만든, 성물이자 작품입니다.
누운 그리스도상
* * *
빌프랑슈 쉬르 메르를 걷다 보니 휴양지에서 산다는 건 어떨까 궁금해집니다.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풍경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니 삶도 둘로 나뉜 것만 같을까요? 좋은 날과 궂은 날이 언제 어떻게 번갈아 찾아오는지 알 수 있다면 좋긴 할 겁니다. 즐거울 때는 걱정 없이, 슬플 때는 실망 없이. 마음껏 현재에 충실할 수 있으니 현재를 미래에 헌납하는 실수도 줄어들 겁니다.
어떤 창문이 그린 것일까요?
이 아기자기한 골목에서 창문이 그려진 벽을 올려다봅니다. 진짜 창문을 낼 수 없어서 그 대신 벽에 창문을 그려넣은 거예요.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창문이라도 바깥에는 분명 존재한다는 감각. 내가 알고 있고, 이웃이나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봐주면 그만이라는 자족. 그게 참 휴양지 사람들다운 발상 아닌가요? 아직 차갑긴 하지만 살갗에 기분 좋게 닿는 바람을 느끼며 그 마음 조금이나마 배워가려고 합니다.

취재 협조 | 프랑스 관광청,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관광청
글·사진 |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litt.ly/ecrire_lire_vivre
아쿠아마린 빛깔로 투명해진 바다, 만을 낀 절벽, 가파른 경사로에 자리 잡은 마을, 파스텔톤으로 채색된 건물들과 전망 좋은 곳을 차지한 새하얀 저택. 유럽의 바닷가 휴양지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눈 아래 펼쳐지고 있습니다. 빌프랑슈 쉬르 메르(Villefranche-sur-Mer). 니스의 동쪽 해안에 면하고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빌프랑슈 쉬르 메르는 니스와 아주 가깝지만, 그렇다고 ‘니스’는 아닙니다. 일단 눈으로만 봐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네요. 건물 사이로 좁아 드는 아기자기한 골목이 어서 걸어보라고 손짓합니다. 비스듬한 각도로 위나 아래로 사라지는 돌계단 너머를 훔쳐보고, 굳게 닫힌 나무문 앞에서 이 안에는 어떤 삶이 숨어 있을까 상상해 봅니다. 창밖을 내다보는 그림자가 어른거린 것 같아 고개를 드니 아기자기한 화분들이 발코니에 놓여 있네요. 빌프랑슈 쉬르 메르의 가장 큰 매력은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골목입니다. 미로를 빠져나가는 듯하다가 갑자기 내리막길 아래로 푸른 바다가 나타나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고요. 휴양지라는 공간이 이렇습니다. 바닥부터 하늘까지 사람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데 도가 텄지요. 이런 건 한두 해 노력한다고 흉내 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휴양지를 꾸려가거나 휴양지를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이 전력으로 느긋하게 살아내면서 구축해 온 정체성인 겁니다.
우리가 남프랑스에 기대하는 골목 풍경 그대로입니다.
게다가 빌프랑슈 쉬르 메르에 도착한 이후로 경비행기 두 대가 한 시간에 서너 번씩 날아오며 휴양지 느낌을 더합니다. 양쪽 날개에 달린 프로펠러, 통통한 주황색 몸체, 저공비행을 하다가 눈높이까지 내려와 바다 위로 착륙하는 동선까지 이 아름다운 마을을 하늘에서 바라보기 위해 띄운 관광용 비행기 같네요. 알고 보니 이들은 산불 진화용 수상비행기로서 소방수를 보충하기 위해 바다에 내려앉는다고 합니다. 빌프랑슈 쉬르 메르가 있는 프랑스의 코트다쥐르(Côte d'Azur) 지역은 여름에 건조하고 바람도 많이 붑니다. 그래서 여름 산불이 잦은데, 이에 대비하는 훈련 중인 모양이에요.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여름, 아, 산불의 위험을 차치하고 보면 기후도 참 휴양지답군요.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아 돌아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시간의 흔적이 골목골목 켜켜이 쌓여 있어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다’는 진부한 표현을 하릴없이 끄집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빌프랑슈 쉬르 메르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닷가에 마을이 생긴 것이 무려 13세기였다고 해요. 그 역사를 되짚기 위해서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시타델로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시타델(Musées de la Citadelle)
1295년, 나폴리 왕이자 프로방스 백작이었던 샤를 2세가 지금의 빌프랑슈 쉬르 메르 자리에 도시를 세우기로 합니다. 원래 이 지역 사람들은 언덕 위에서 살았는데, 이들을 해안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세금을 면제해주는 등 여러 혜택을 선사하지요. 빌프랑슈(Villefranche)라는 이름도 면세 특권(“Tax Free!”) 때문에 붙여졌다고 하네요.
이후 빌프랑슈 쉬르 메르는 그 유명한 사보이아 가문이 통치하게 되는데요, 16세기 중반 사보이아 측에겐 적국이었던 ‘프랑스 왕국’이 오스만투르크와 손을 잡고 니스는 물론 빌프랑슈 쉬르 메르까지 초토화시키는 니스 공방전이 벌어집니다. 다행히 지배권은 넘어가지 않았고, 바다를 제대로 지켜야겠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보이아 가문이 해안 방어를 위해 세운 요새가 시타델입니다. 만 전체를 내려다보는 보루에서 사각지대 없이 대포를 쏠 수 있게 설계했고요, 방어력 향상을 위해 성벽의 두께도 상당합니다.
당시 시타델에는 천 명의 병사가 주둔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머물던 병영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대포도 전시되어 있지요. 현재는 빌프랑슈 쉬르 메르의 시청이 시타델 안에 있으며, 옛 저수조는 오디토리움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16세기에 지어진 유적을 박물관이자 전망대, 시청과 공연장 등으로 참 알뜰하게 사용하고 있네요.
생피에르 예배당(Chapelle Saint-Pierre de Villefranche-sur-Mer)
시타델을 나서 마을로 내려오면 16세기의 다른 흔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역시 16세기에 지어진 생피에르 예배당은 성 베드로에게 봉헌된 곳인데요, 아시다시피 성 베드로는 어부들의 수호성인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자연스레 어부들의 예배당이 되었고, 2층에는 어부 조합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어업에 종사하는 집안에 한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하고요.
생피에르 예배당이 오늘날의 독특한 외관으로 탈바꿈한 것은 20세기 들어서입니다. 프랑스의 종합예술가 장 콕토(주로 영화감독으로 알려져 있지요)가 생피에르 예배당에 깊은 애정을 느끼고 내부와 외부를 장식하기로 한 겁니다.
물고기 모양으로 만든 십자가, 성 베드로에게 주어진 천국의 열쇠, 어부들의 어업 도구인 밧줄, 그리고 세상만사를 볼 수 있는 신의 눈까지 온갖 상징이 아름답게 파사드를 수놓고 있습니다. 장 콕토는 신앙심에서가 아니라 “마을 어부들에 대한 우정의 표시”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예배당 자체는 20세기다운 종교화 자체로 보이기도 합니다.
옵스큐르 거리(Rue Obscure)
빌프랑슈 쉬르 메르를 걷다 보면 갑자기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길이 나타납니다. 아니, 길이라기보다는 지하통로나 터널 같기도 하네요. 옵스큐르 거리는 빌프랑슈 쉬르 메르의 첫 성벽을 따라 이어진 순찰로였습니다. 그게 14세기였는데, 도시가 커지고 시타델처럼 고지대로 방어 체계를 올리면서 성벽은 제 기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16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이곳 사람들은 길 위에 집을 짓기 시작해요. 멀쩡하던 길에 천정이 생기면서 지하통로처럼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거야 말로 글자 그대로 ‘시간이 쌓인’ 흔적이랄까요.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옵스큐르 거리는 총 130m의 길이로 1932년부터 프랑스의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걷다 보면 약간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중간중간 하늘이 보이는 구간에서는 누군가의 창문도 올려다볼 수 있어요. 누가 살고 있을까, 지하는 아닌데 발 아래 누군가가 지나가고 있는 느낌은 어떨까 여러 모로 궁금증이 커지기도 합니다.
생 미셸 성당(Église Saint-Michel)
빌프랑슈 쉬르 메르의 좁은 골목길에 비해 굉장히 높은 건물 앞에 서 봅니다. 18세기에 완공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 생 미셸 성당이에요. 앞서 찾은 시타델 성벽에 사용한 것과 같은 석재를 이 성당에도 사용했다고 해요.
생 미셸 성당은 이름 그대로 성 미카엘에 봉헌된 성당인데, 유럽에서 미카엘은 주로 높은 곳에 있는 성소와 인연이 있는 대천사입니다. 빌프랑슈 쉬르 메르 사람들은 원래 언덕 위에 살다가 해안가로 내려왔기 때문에 낮은 곳으로 이주를 했어도 성 미카엘을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싶었던 거지요.
웅장한 성당 내부. 오른쪽이 오르간입니다.
성당은 마을 규모에 비해 제법 웅장하고, 눈여겨 볼 것도 많습니다. 우선 성당 안으로 들어서서 뒤돌아 위를 올려다보면 거대한 오르간이 나타납니다. 그린다 형제라는 사람들이 1790년 제작한 오르간으로 빌프랑슈 쉬르 메르가 포함된 알프마르팀(Alpes-Maritimes)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오르간 중 하나라고 합니다. 하나의 거대한 장식처럼 보일 만큼 그 자체로 예술적이라 소리를 직접 들어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회랑을 따라 예배당 앞쪽으로 나아가면 누워 있는 목재 그리스도상이 있습니다. 고통과 슬픔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경건한 마음이 찾아듭니다. 놀랍게도 단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를 깎아 만든, 성물이자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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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프랑슈 쉬르 메르를 걷다 보니 휴양지에서 산다는 건 어떨까 궁금해집니다.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풍경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니 삶도 둘로 나뉜 것만 같을까요? 좋은 날과 궂은 날이 언제 어떻게 번갈아 찾아오는지 알 수 있다면 좋긴 할 겁니다. 즐거울 때는 걱정 없이, 슬플 때는 실망 없이. 마음껏 현재에 충실할 수 있으니 현재를 미래에 헌납하는 실수도 줄어들 겁니다.
어떤 창문이 그린 것일까요?
이 아기자기한 골목에서 창문이 그려진 벽을 올려다봅니다. 진짜 창문을 낼 수 없어서 그 대신 벽에 창문을 그려넣은 거예요.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창문이라도 바깥에는 분명 존재한다는 감각. 내가 알고 있고, 이웃이나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봐주면 그만이라는 자족. 그게 참 휴양지 사람들다운 발상 아닌가요? 아직 차갑긴 하지만 살갗에 기분 좋게 닿는 바람을 느끼며 그 마음 조금이나마 배워가려고 합니다.
취재 협조 | 프랑스 관광청,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관광청
글·사진 |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litt.ly/ecrire_lire_viv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