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를 여행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일은 해변 산책로 어딘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는 겁니다. 그게 좀 지루해 지면 주변 마을을 다녀오기도 하고요. 뭐, 단기 여행자가 니스의 해변이 지루해 질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주변 소도시도 바닷가에 앉아 있을 시간을 쪼개서 다녀오는 거니까요.
니스 바로 옆, 힘껏 마음먹으면 해변을 따라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에 카뉴 쉬르 메르(Cagnes-sur-Mer)가 있습니다. 이곳 기차역에서 그 유명한 생 폴드 방스로 올라가는 버스가 출발하기 때문에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번은 지나쳤을 수도 있어요. 그냥 환승역 정도로 느껴졌겠지만요.
니스만큼 아름답고 니스보다 한적한 카뉴 쉬르 메르의 항구, 크로 드 카뉴(Cros-de-Cagnes)
하지만 카뉴 쉬르 메르에도 니스처럼 구시가지가 있고, 니스처럼 멋진 해변 산책로가 있습니다. 이번에 가볼 곳은 오 드 카뉴(Haut-de-Cagnes), 그러니까 구시가지인데요. 곳곳에 몇 세기를 훌쩍 넘긴 건물이 서 있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세 마을’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관광지가 아니라 주민들이 실제로 그 옛집에서 살아가며 소박한 터전을 이루고 있어요. 역사, 문화, 예술 그 무엇이 됐든 유의미한 대상과 조우하러 가는 게 여행의 목적이라지만, 분위기나 공간에 스며들다 오는 여행도 기꺼이 즐기는 사람이라면 오 드 카뉴에 시간을 쓰는 게 아깝지 않을 겁니다.
카뉴 쉬르 메르의 오 드 카뉴 풍경
오 드 카뉴의 무늬
이른 아침, 맑고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시작합니다. 원래는 마을 성벽 바로 바깥에 있었던 노트르담 드 라 프로텍시옹 예배당(Chapelle Notre-Dame de Protection)이 보입니다. 14세기에 지어진 곳으로 이탈리아로 가는 순례자들의 안식처였는데, 16세기 초에 안드레아 드 첼라(Andrea de Cella)라는 사람이 이곳에 성모와 어린 예수를 주제로 한 프레스코화를 남겼습니다. 이 그림은 회벽에 가려져 있다가 1936년이 되어서야 발견이 되었다고 하네요. 현재는 아주 훌륭하게 복원되어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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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르담 드 라 프로텍시옹 예배당 |
예배당 바깥에는 이 건축물을 그린 그림 한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모습과 거의 흡사한데, 그림 속 예배당 파사드의 아치 하나는 길을 내며 사라졌다고 합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오 드 카뉴 곳곳에 ‘코트다쥐르의 화가들’이란 이름의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카뉴 쉬르 메르의 또 다른 정체성이 이제 드러납니다. 한때 ‘프랑스 리비에라의 몽마르트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카뉴 쉬르 메르는 화가들의 사랑을 받은 곳이었습니다.
카뉴 쉬르 메르와 인연이 있는 화가 중 가장 유명한 분으로 오귀스트 르누아르를 들 수 있겠네요. 그는 1908년 카뉴 쉬르 메르의 레 콜레트(Les Collettes)에 정착해서 1919년 눈을 감을 때까지 지냈습니다. 르누아르가 살았던 집은 오 드 카뉴 안에 있진 않지만,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대로 남아 현재는 르누아르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고요.
오 드 카뉴에 총 12개의 그림 표지판이 있다고 합니다.
그냥 오래된 마을인 줄 알았는데,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곳이군요. 하지만 지금은 초심 그대로 분위기를 즐기기로 합니다. 자갈로 포장된 골목길을 오르면 수다를 떤다기보다는 조곤조곤 시를 읊는 듯한 집들이 연달아 나타납니다. 행인이 있을 자리에 온갖 화분이 서 있고, 고양이들도 안심하고 산책을 하네요. 전봇대에 ‘로호’라는 고양이를 찾는다는 전단이 붙어 있어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약을 먹어야 한다는데, 얼른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동물이 많은 골목은 정겹지 않나요?
불현듯 울리는 시계탑 종소리에 고개를 들면, 아, 정말 여긴 유럽이군, 시간 감각이 사라집니다. 옛 성벽 사이로 난 터널 같은 길을 통과하면, 이런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의 영혼에는 시멘트 건물숲 사이에서 사는 영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옅은 무늬가 있을 것만 같아요.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똑같지, 형식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흥미롭게도 오 드 카뉴를 비롯해 코트다쥐르 지역 구시가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좁은 골목길과 그 길에 그늘을 드리우는 이삼 층짜리 건축물들은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생긴 결과입니다.
처음엔 성벽 안에 단층짜리 집을 지었는데 가족이 늘어나고 이주자가 늘어나면서 기존 골목 위에 상부를 연장하여 거주 공간을 추가한 거예요. 복층을 올리거나 마주 보는 건물 사이에 석조 아치를 세우는 식으로 ‘허공’을 활용한 것이죠. 그런데 현지에서는 퐁티(pontis)라고 부르는 이런 마을 구조가 마찬가지로 인구 과밀의 결과물인 아파트촌과 같을 수는 없지요. 각자의 장소에서 희로애락을 대하는, 기대와 실망과 정열과 권태를 대하는 마음에는 차이가 있을 게 분명해요. 여기서는 축적된 시간이라는 기댈 구석이 있는 덕분에 아예 주저앉을 일이 덜할 것만 같고요.


증축의 흔적
박물관이자 전망대, 그리말디 성
오 드 카뉴가 그냥 한가한 중세 도시에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말디 성(Château Grimaldi)이 우뚝 선 도시 한복판의 샤토 광장(Place du Château)으로 빠져나오면 확 트인 전망이 나타납니다. 근사한 테라스를 펼친 식당이 모여 있고, 아랫마을 풍경이 그대로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 알프스까지 배경이 되어 줍니다. 계속 좁은 골목길을 다녔기 때문에 개방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데, 6월 정도만 되어도 광장이 사람으로 가득 찬다고 하네요. 여름에는 재즈 행사도 열리고요. 이렇게 한가한 시기에 광장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 행운입니다.
그리말디 성
그리말디 성은 14세기 초, 영주였던 레니에 그리말디(Rainier Grimaldi)가 세운 요새였습니다. 그걸 17세기에 들어 후손인 장-앙리 그리말디(Jean-Henri Grimaldi)가 화려한 영주 저택으로 리노베이션했고요. ‘리노베이션’이라지만, 그조차도 4세기 전의 일이네요. 현재는 시에서 매입해 갤러리이자 올리브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샤토 광장
갤러리에서는 주로 카뉴 쉬르 메르와 그 주변을 그린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특이한 소장품 목록도 있습니다. 고상하면서도 강렬한 붉은색으로 칠해진 방에 ‘한 사람이 그린’ 작품이 아니라 ‘한 사람을 그린’ 작품이 가득한 거예요. 초상화의 주인공은 쉬지 솔리도르(Suzy Solidor)라는 여성으로,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여러 화가가 저만의 화풍으로 그녀를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델이었나? 카뉴 쉬르 메르 사교계의 여왕이었나? 얼추 비슷합니다. 쉬지 솔리도르는 파리에서 명망 높았던 가수이자 모델, 카바레 운영자이자 예술 후원가였습니다.
쉬지 솔리도르의 초상화 방
그녀의 성격, 혹은 성품을 상징하는 일화를 하나 들자면 열일곱 살이 되기 전, 그러니까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당시 여성으로서는 아주 드물게 운전면허를 땄고, 그걸로 다른 차도 아니고 ‘구급차’를 몰았다고 합니다. 대단하지요? 그녀도 사교계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부침을 겪었습니다. 미국으로 잠시 떠났던 그녀는 프랑스로 돌아와 환갑이 넘어 카뉴 쉬르 메르에 정착했고요. 그 인연으로 말년에 자신의 멋진 초상화 40여 점을 비롯한 소장품, 가구 등을 시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환대하고 품어준 제2의 고향 같은 곳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요.
올리브 나무가 많은 카뉴 쉬르 메르에서 어떻게 올리브유를 짰는지 보여주는 올리브 박물관 파트. 영주의 소유였던 만큼 저택 내부도 굉장히 화려합니다.
그리말디 성 꼭대기 전망대에 오릅니다. 한 번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을 19명으로 제한해야 하는 좁은 공간이지만, 보이는 풍경은 넓고도 넓습니다. 쉬지 솔리도르는 카뉴 쉬르 메르를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1983년 눈을 감았습니다. 르누아르도 그렇고, 솔리도르도 그렇고, 카뉴 쉬르 메르는 여생을 보내다 세상과 이별하기 좋은 장소인가 봅니다. 제가 이런 곳에 살면 새겨질지 모르는 마음의 무늬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요. 그래요, 이 풍경이라면 마음에 아름다운 생채기가 날 수도 있을 것만 같네요. 카뉴 쉬르 메르를 찾았던 그 많은 예술가들에게 났던 것처럼요.

취재 협조 | 프랑스 관광청,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관광청
글·사진 |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litt.ly/ecrire_lire_vivre
니스를 여행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일은 해변 산책로 어딘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는 겁니다. 그게 좀 지루해 지면 주변 마을을 다녀오기도 하고요. 뭐, 단기 여행자가 니스의 해변이 지루해 질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주변 소도시도 바닷가에 앉아 있을 시간을 쪼개서 다녀오는 거니까요.
니스 바로 옆, 힘껏 마음먹으면 해변을 따라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에 카뉴 쉬르 메르(Cagnes-sur-Mer)가 있습니다. 이곳 기차역에서 그 유명한 생 폴드 방스로 올라가는 버스가 출발하기 때문에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번은 지나쳤을 수도 있어요. 그냥 환승역 정도로 느껴졌겠지만요.
하지만 카뉴 쉬르 메르에도 니스처럼 구시가지가 있고, 니스처럼 멋진 해변 산책로가 있습니다. 이번에 가볼 곳은 오 드 카뉴(Haut-de-Cagnes), 그러니까 구시가지인데요. 곳곳에 몇 세기를 훌쩍 넘긴 건물이 서 있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세 마을’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관광지가 아니라 주민들이 실제로 그 옛집에서 살아가며 소박한 터전을 이루고 있어요. 역사, 문화, 예술 그 무엇이 됐든 유의미한 대상과 조우하러 가는 게 여행의 목적이라지만, 분위기나 공간에 스며들다 오는 여행도 기꺼이 즐기는 사람이라면 오 드 카뉴에 시간을 쓰는 게 아깝지 않을 겁니다.
카뉴 쉬르 메르의 오 드 카뉴 풍경
오 드 카뉴의 무늬
이른 아침, 맑고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시작합니다. 원래는 마을 성벽 바로 바깥에 있었던 노트르담 드 라 프로텍시옹 예배당(Chapelle Notre-Dame de Protection)이 보입니다. 14세기에 지어진 곳으로 이탈리아로 가는 순례자들의 안식처였는데, 16세기 초에 안드레아 드 첼라(Andrea de Cella)라는 사람이 이곳에 성모와 어린 예수를 주제로 한 프레스코화를 남겼습니다. 이 그림은 회벽에 가려져 있다가 1936년이 되어서야 발견이 되었다고 하네요. 현재는 아주 훌륭하게 복원되어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예배당 바깥에는 이 건축물을 그린 그림 한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모습과 거의 흡사한데, 그림 속 예배당 파사드의 아치 하나는 길을 내며 사라졌다고 합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오 드 카뉴 곳곳에 ‘코트다쥐르의 화가들’이란 이름의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카뉴 쉬르 메르의 또 다른 정체성이 이제 드러납니다. 한때 ‘프랑스 리비에라의 몽마르트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카뉴 쉬르 메르는 화가들의 사랑을 받은 곳이었습니다.
카뉴 쉬르 메르와 인연이 있는 화가 중 가장 유명한 분으로 오귀스트 르누아르를 들 수 있겠네요. 그는 1908년 카뉴 쉬르 메르의 레 콜레트(Les Collettes)에 정착해서 1919년 눈을 감을 때까지 지냈습니다. 르누아르가 살았던 집은 오 드 카뉴 안에 있진 않지만,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대로 남아 현재는 르누아르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고요.
오 드 카뉴에 총 12개의 그림 표지판이 있다고 합니다.
그냥 오래된 마을인 줄 알았는데,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곳이군요. 하지만 지금은 초심 그대로 분위기를 즐기기로 합니다. 자갈로 포장된 골목길을 오르면 수다를 떤다기보다는 조곤조곤 시를 읊는 듯한 집들이 연달아 나타납니다. 행인이 있을 자리에 온갖 화분이 서 있고, 고양이들도 안심하고 산책을 하네요. 전봇대에 ‘로호’라는 고양이를 찾는다는 전단이 붙어 있어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약을 먹어야 한다는데, 얼른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동물이 많은 골목은 정겹지 않나요?
불현듯 울리는 시계탑 종소리에 고개를 들면, 아, 정말 여긴 유럽이군, 시간 감각이 사라집니다. 옛 성벽 사이로 난 터널 같은 길을 통과하면, 이런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의 영혼에는 시멘트 건물숲 사이에서 사는 영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옅은 무늬가 있을 것만 같아요.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똑같지, 형식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흥미롭게도 오 드 카뉴를 비롯해 코트다쥐르 지역 구시가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좁은 골목길과 그 길에 그늘을 드리우는 이삼 층짜리 건축물들은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생긴 결과입니다.
처음엔 성벽 안에 단층짜리 집을 지었는데 가족이 늘어나고 이주자가 늘어나면서 기존 골목 위에 상부를 연장하여 거주 공간을 추가한 거예요. 복층을 올리거나 마주 보는 건물 사이에 석조 아치를 세우는 식으로 ‘허공’을 활용한 것이죠. 그런데 현지에서는 퐁티(pontis)라고 부르는 이런 마을 구조가 마찬가지로 인구 과밀의 결과물인 아파트촌과 같을 수는 없지요. 각자의 장소에서 희로애락을 대하는, 기대와 실망과 정열과 권태를 대하는 마음에는 차이가 있을 게 분명해요. 여기서는 축적된 시간이라는 기댈 구석이 있는 덕분에 아예 주저앉을 일이 덜할 것만 같고요.
증축의 흔적
박물관이자 전망대, 그리말디 성
오 드 카뉴가 그냥 한가한 중세 도시에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말디 성(Château Grimaldi)이 우뚝 선 도시 한복판의 샤토 광장(Place du Château)으로 빠져나오면 확 트인 전망이 나타납니다. 근사한 테라스를 펼친 식당이 모여 있고, 아랫마을 풍경이 그대로 내려다보이고, 저 멀리 알프스까지 배경이 되어 줍니다. 계속 좁은 골목길을 다녔기 때문에 개방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데, 6월 정도만 되어도 광장이 사람으로 가득 찬다고 하네요. 여름에는 재즈 행사도 열리고요. 이렇게 한가한 시기에 광장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 행운입니다.
그리말디 성은 14세기 초, 영주였던 레니에 그리말디(Rainier Grimaldi)가 세운 요새였습니다. 그걸 17세기에 들어 후손인 장-앙리 그리말디(Jean-Henri Grimaldi)가 화려한 영주 저택으로 리노베이션했고요. ‘리노베이션’이라지만, 그조차도 4세기 전의 일이네요. 현재는 시에서 매입해 갤러리이자 올리브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갤러리에서는 주로 카뉴 쉬르 메르와 그 주변을 그린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특이한 소장품 목록도 있습니다. 고상하면서도 강렬한 붉은색으로 칠해진 방에 ‘한 사람이 그린’ 작품이 아니라 ‘한 사람을 그린’ 작품이 가득한 거예요. 초상화의 주인공은 쉬지 솔리도르(Suzy Solidor)라는 여성으로,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여러 화가가 저만의 화풍으로 그녀를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델이었나? 카뉴 쉬르 메르 사교계의 여왕이었나? 얼추 비슷합니다. 쉬지 솔리도르는 파리에서 명망 높았던 가수이자 모델, 카바레 운영자이자 예술 후원가였습니다.
그녀의 성격, 혹은 성품을 상징하는 일화를 하나 들자면 열일곱 살이 되기 전, 그러니까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당시 여성으로서는 아주 드물게 운전면허를 땄고, 그걸로 다른 차도 아니고 ‘구급차’를 몰았다고 합니다. 대단하지요? 그녀도 사교계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부침을 겪었습니다. 미국으로 잠시 떠났던 그녀는 프랑스로 돌아와 환갑이 넘어 카뉴 쉬르 메르에 정착했고요. 그 인연으로 말년에 자신의 멋진 초상화 40여 점을 비롯한 소장품, 가구 등을 시에 기증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환대하고 품어준 제2의 고향 같은 곳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요.
올리브 나무가 많은 카뉴 쉬르 메르에서 어떻게 올리브유를 짰는지 보여주는 올리브 박물관 파트. 영주의 소유였던 만큼 저택 내부도 굉장히 화려합니다.
그리말디 성 꼭대기 전망대에 오릅니다. 한 번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을 19명으로 제한해야 하는 좁은 공간이지만, 보이는 풍경은 넓고도 넓습니다. 쉬지 솔리도르는 카뉴 쉬르 메르를 떠나지 않고 이곳에서 1983년 눈을 감았습니다. 르누아르도 그렇고, 솔리도르도 그렇고, 카뉴 쉬르 메르는 여생을 보내다 세상과 이별하기 좋은 장소인가 봅니다. 제가 이런 곳에 살면 새겨질지 모르는 마음의 무늬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요. 그래요, 이 풍경이라면 마음에 아름다운 생채기가 날 수도 있을 것만 같네요. 카뉴 쉬르 메르를 찾았던 그 많은 예술가들에게 났던 것처럼요.
취재 협조 | 프랑스 관광청,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관광청
글·사진 |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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