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와 니스의 아침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공기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창문 닫힌 차 안에 있었으니 알프스 정상에라도 오른 듯 상쾌한 호흡을 하고 있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건 다분히 시각적인 감탄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빛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사람들이 산책과 조깅을 하고, 자전거가 그들을 앞질러 가면 빈자리로 바다의 윤슬이 튀어 오르는 흔한 풍경도 다른 해변과 다른 것 같다는, 그러니까 보이는 공기가 다르다는 인상이었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의 공기가 청각이나 촉각에도 낯선 자국을 남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고유의 분위기라 할 수도 있고, 날씨의 조화라 부를 수도 있겠네요. 열흘 넘게 머물며 흐린 하늘이라고는 반나절밖에 보지 못했으니까요. 봄이면 변화무쌍한 날씨와 미세먼지가 기본값인 나라에서 온 저도 며칠 지나지 않아 니스의 공기에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도시는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오늘처럼 날씨가 화창할 거라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어김없이 지켰으니까요.
니스의 해변
니스, 리비에라의 겨울 휴양 도시
2021년 7월은 니스에 아주 의미 있는 달이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거든요. 그런데 이 등재 명칭이 놀랍습니다. ‘니스, 리비에라의 겨울 휴양 도시’. 세상에 휴양지가 세계유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에 따르면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휴양은 뭐랄까, 모든 인류가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가치와는 동떨어진 단어가 아닌가 싶었던 겁니다. ‘사치’라면 모를까.
물론 유네스코에서 허투루 일할 리가 없지요. 세계유산 등재 신청 시기에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8세기 후반 이후 니스는 근대적 삶의 중요한 한 측면이 발명된 무대였다.” 과장을 좀 보태서 쉽게 풀어보자면, (근대 이후의) ‘휴양’, 혹은 ‘휴양지’라는 개념이 니스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유산에 등재됨으로써 그 자신만만한 멘트가 사실이었음을 인정받은 거고요. 자, 여러분, 니스의 해변을 다시 보시죠. 우리는 지금 ‘휴양지’의 시원(始原)을 보고 있는 겁니다…….
니스의 기후가 최근 3~4세기 안에 갑자기 좋아진 건 아닐 테니 이 도시는 결국 ‘휴양 도시’가 될 운명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리비에라의 겨울 휴양 도시’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간과할 수는 없지요.
프롬나드 데 장글레
이곳은 니스의 유명한 해변 산책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입니다. 사람들이 니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여러분도 그렇게 할 곳입니다. 프롬나드 데 장글레라는 이름이 ‘영국인 산책로’라는 뜻이라는 건 아실 텐데요, 맞습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휴양지’의 부싯돌을 친 장본인은 영국인들이었습니다.
영국인들, 니스에 오다
이 해방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시야의 끝에서 눈높이까지 솟아오른 수평선,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발 아래 뻗어나가는 산책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각자의 속도로 걷거나 뛰거나 페달을 밟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 인간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높이까지만 솟아오른 건물들, 그리고 바다와 누가 더 깊고 푸른지 겨루는 것 같은 하늘. 미세먼지만 아니라 조급함까지 기본값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모든 것을 놓아버려도 될 것 같네요. 시차 없이 울리는 메시지와 이메일 알람이 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소진으로부터의 해방, 프롬나드 데 장글레에서 느낀 감각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공놀이의 해방감
아마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비슷한 감정을 느껴왔나 봅니다. ‘그랜드 투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17세기부터 영국의 귀족 자제들이 견문을 쌓고 다른 왕실이나 귀족의 풍습을 체험하기 위해 떠났던 여행을 그랜드 투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주 목적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였고요. 파리, 토리노와 밀라노, 베네치아와 피렌체, 그리고 로마와 나폴리까지 먼 길을 따라 내려가던 이 여행이 오늘날 단체 여행의 시초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처음엔 교양을 쌓기 위해 떠나던 여행의 목표가 점차 다양해집니다. 알프스에서 자연의 숭고함을 느끼기도 하고, 영국에서는 드문 천혜의 기후를 지중해 도시에서 맛보기도 했지요.
영국인들은 ‘의료 여행’도 많이 떠났습니다. 요즘 의료 여행은 ‘뷰티’ 때문에 떠나지만, 당시에는 진짜 목숨이 달려 있었어요. 19세기 초, 결핵 환자나 흉부, 소화기 질환 환자들에게 날씨 좋은 남쪽 지방으로 휴양을 떠나라는 치료법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일종의 ‘기후 의학’이랄까요. 이런 유행이 이는 데는 훗날 빅토리아 여왕 1세의 주치의 자리까지 올랐던 의사 ‘제임스 클라크(Sir James Clark)’와 의학 저술가 ‘제임스 존슨(James Johnson)’의 영향이 컸습니다. 특히 제임스 존슨은 자신의 지중해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을 제법 ‘후킹’한 제목으로 지었습니다. 『공기의 전환, 또는 건강과 기분 전환을 찾아서(Change of Air; or, The Pursuit of Health and Recreation)』. 아픈 데가 없더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제목 아닌가요?
폐결핵이 상당히 진행된 환자들, 약해진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던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중해로 향했습니다. 당시의 이런 현상을 연구한 맨체스터 대학의 어느 교수는 “마지막 리조트”라는 표현을 썼더군요. 최후의 치료법으로 떠났던 지중해의 리조트가 정말 생애 ‘마지막’ 장소가 되어버린 이들이 많았거든요.
이런 홍보 포스터가 사람들을 유혹했습니다.
〈니스〉, 위고 달레지, 파리-리옹-지중해 철도회사(PLM) 포스터, 112×78cm, SNCF 역사문서보관센터 소장
그러나 여행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제 여행은 귀족뿐만 아니라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고,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반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던 니스도 축복받은 겨울 기후로 주목받습니다. 앞서 언급한 기후 의학의 전도사 제임스 클라크 경도 니스와 로마를 대륙에서 가장 날씨가 좋은 도시로 꼽았을 정도였고요. 그때만 해도 니스는 프랑스가 아니라 훗날 이탈리아 왕국이 되는 사르데냐 왕국에 속한 도시였기 때문에 로마까지 가는 긴 여정 중에 체류하기 좋은 기착지로 여겨졌을 듯합니다. 이탈리아 문명의 입구 같은 곳이었던 거지요, 질투가 날 정도로 날씨가 좋은.
19세기 초, 니스의 진가를 먼저 알아본 얼리어답터들이 어촌 마을의 생활감 가득한 바닷가 주변에 산책로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어부들의 집 위쪽이나 해안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로를 조성하다가 영국 공동체가 자금을 모아 평탄한 대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한 세기에 걸쳐 길어지고 정돈된 결과물이 바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인 것이고요. 하지만 니스의 변화는 멋진 해변 산책로가 생긴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구름이 좀 껴도 지중해의 햇살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니스, 유럽의 휴양지가 되다
산책로에서 도로 건너편을 보면, 예전에 어부들이 살던 집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그 건물들이 이제는 ‘오션 뷰’를 자랑하는 레스토랑과 펍, 카페로 운영되고 있어요. 와, 저 자리 정말 명당이네, 당장 길을 건너 계단을 오르고 싶어집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면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에게 손 흔들어 인사하고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몸짓으로 물어보세요. 열에 아홉 명은, 아니, 묻지도 않은 사람들까지 자리에서 일어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쓸 테니 열에 열한 명은 긍정적으로 반응해 줄 겁니다.
그들은 니수아(Niçois(e), 니스 사람들)일 수도 있고, 프랑스인일 수도 있고, 다른 지역의 유럽인이거나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 북미와 중‧남미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중동이나 아시아인들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출신 지역이 어디든 여기서는 전부 니스의 해변 공동체가 됩니다. 앞서 휴양지에 보편적 가치가 있다는 데 의문을 가지긴 했지만, 일단 휴양지에 오기만 하면 모든 ‘인터내셔널’이 그 안에 흡수되고 맙니다. 이 공동체에 속할 수만 있다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누릴 행운을 얻게 되는 거지요.

해변가의 아침
과연 그 옛날에도 영국인에 이어 각국의 유럽인들까지 니스의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프랑스, 나중에는 러시아인들이 니스로 몰려들었지요. 겨울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도시를 개발할 필요도 커졌는데,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난개발이 이루어졌다면 그로부터 약 200년 후, 세계유산에 등재되지 못했을 테니까요. '콘실리오 도르나토(Consiglio d'Ornato)'라는 위원회가 설립되고, 이들은 신축 건물의 건축 양식을 통일시키는 데 주력합니다. (니스의 주인이었던 사보이 왕가가 도시(토리노)를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이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니스에 몰려드는 외국인들에게 보라, 이렇게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휴양 도시를 만난 적 있는가, 자랑스레 선언하고 그들을 매료시키기 위해서였지요.
1860년 토리노 조약으로 니스가 프랑스에 할양되면서 도시의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집니다. 건축 규제가 풀리고, 기차역도 문을 엽니다.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다문화의 파도가 도시를 휩쓸어요. 니스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예술가, 건축가들도 대거 찾아옵니다. 덕분에 니스는 현재까지 “건축가들의 실험장”이 되어 왔습니다. 바로크, 벨 에포크, 네오고딕, 러시아 부흥 양식, 아르데코……. 제가 눈으로 구분은 못 해도 자료 조사는 할 수 있어 메모해 둔 건축 양식만 이 정도입니다. 니스 시내를 처음 걸었을 때, 유럽에 온 것 같긴 한데 어딘지 딱히 꼬집어 말하긴 어려운 유럽 같다고 느꼈던 것도 건축적 용광로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네요.

니스 오페라, 법원, 알프마리팀 주 청사
하지만 예쁜 건물만 생겼다고 사람들이 이 도시를 사랑했던 건 아닐 겁니다. 생활 인프라, 녹지, 산책로,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언덕을 고려한 시선축의 설계 등 니스는 ‘유럽 최초의 휴양 도시’라는 신 개념의 도시 구조와 생활 방식을 ‘발명’해 냈습니다. 자연과 문명의 느슨한 경계 속에서 유리 돔에 둘러싸인 것처럼 항상 맑은 바람과 햇살이 약속된 공간. 니스의 공기가 다르다고 느꼈던 것도,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맛보았던 것도 200여 년간 가장 이상적인 휴양지가 완성되어져 왔던 덕분이었습니다. 휴양지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이해가 되네요.
그래요, 이곳은 공기가 달라요
옛 어부들의 집 너머로 우아한 노란색 건물 하나가 머리를 내밀고 있네요. 한때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가 방 두 개를 임대해서 저곳에 머물렀다고 해요. 마티스는 니스를 아주 사랑해서 이주해 온 화가 중에서는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니스가 속한 프랑스 리비에라의 날씨와 이 지역 특유의 빛을 화폭에 담고자 노력했다고 해요. 그의 작품 〈열린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는 여인〉에는 저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니스의 해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날씨, 빛, 마티스도 그가 살던 프랑스 북부와 이곳의 공기가 다르다는 걸 느꼈을까요?
니스 정착 초기 마티스가 머물렀던 건물
앙리 마티스, 〈열린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는 여인〉, 캔버스에 오일, 73×92㎝, , 1922년, 몬트리올미술관 소장
니스의 해안가에서 차로 10여 분 올라가면 나오는 시미에(Cimiez)라는 지역에는 마티스 뮤지엄이 있습니다. 마티스 뮤지엄이 17세기에 지어진 빌라에 터를 잡은 것은 마티스가 1938년부터 1943년까지 바로 옆에 있는 옛 호텔 레지나(Hôtel Regina)에 거주 공간 겸 작업실을 꾸린 인연 때문입니다. 지금은 호텔이 아니라 주거용 공동주택으로 쓰이고 있는 호텔 레지나도 벨 에포크 양식을 자랑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인데요, 이 건물의 역사도 니스의 발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1세가 니스를 사랑하여 자주 찾았는데 ‘여왕이 머물 만한’ 호텔이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여왕을 위해 이 거대한 건물을 1년 반 만에 지어 올렸다고 합니다. 지붕 위에는 여왕의 왕관을 상징하는 돔까지 올려 두었고요. 영국인들이 니스의 공기를 바꾸는 데 한몫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겠네요. 그리고 그 달라진 공기를 맛보기 위해 더 많은 영국인이 찾아온 거고요.

마티스 뮤지엄
호텔 레지나
『공기의 전환』이라는 책을 쓴 제임스 존슨이나 기후 의학의 전도사 제임스 클라크 경의 주장은 당시에도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중해의 날씨가 실제로 중증 환자들을 치료한다는 확실한 적응증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제임스 존슨은 공기의 달라짐이, 먼 길을 떠나며 운동하는 몸이, 색다른 풍경이 주는 기분 전환과 휴식을 통한 정신의 이완이 인간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여행을 긍정하며 먼 길을 떠나고 있듯이요.

니스의 상징, 푸른색 의자
프롬나드 데 장글레를 따라 긴 산책을 시작해 볼까 하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버스킹을 하고 있네요. 다리가 주저합니다. 니스의 상징인 푸른색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 곁에 그냥 머물러도 되겠다 싶어져요. 유모차를 끌면서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하염없이 한 자리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는 거니까요. 내가 살던 곳과 달라진 공기를 느끼며, 어제보다 조금 더 나긋해진 공기를 느끼며. 그래요, 니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받았던 느낌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공기가 달라요. 숨으로든 눈으로든 살갗으로든, 우리는 그걸 확신할 수 있어요.

취재 협조 | 프랑스 관광청,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관광청
글·사진 |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litt.ly/ecrire_lire_vivre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와 니스의 아침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공기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창문 닫힌 차 안에 있었으니 알프스 정상에라도 오른 듯 상쾌한 호흡을 하고 있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건 다분히 시각적인 감탄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빛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사람들이 산책과 조깅을 하고, 자전거가 그들을 앞질러 가면 빈자리로 바다의 윤슬이 튀어 오르는 흔한 풍경도 다른 해변과 다른 것 같다는, 그러니까 보이는 공기가 다르다는 인상이었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의 공기가 청각이나 촉각에도 낯선 자국을 남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고유의 분위기라 할 수도 있고, 날씨의 조화라 부를 수도 있겠네요. 열흘 넘게 머물며 흐린 하늘이라고는 반나절밖에 보지 못했으니까요. 봄이면 변화무쌍한 날씨와 미세먼지가 기본값인 나라에서 온 저도 며칠 지나지 않아 니스의 공기에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도시는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오늘처럼 날씨가 화창할 거라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어김없이 지켰으니까요.
니스, 리비에라의 겨울 휴양 도시
2021년 7월은 니스에 아주 의미 있는 달이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거든요. 그런데 이 등재 명칭이 놀랍습니다. ‘니스, 리비에라의 겨울 휴양 도시’. 세상에 휴양지가 세계유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에 따르면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휴양은 뭐랄까, 모든 인류가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가치와는 동떨어진 단어가 아닌가 싶었던 겁니다. ‘사치’라면 모를까.
물론 유네스코에서 허투루 일할 리가 없지요. 세계유산 등재 신청 시기에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8세기 후반 이후 니스는 근대적 삶의 중요한 한 측면이 발명된 무대였다.” 과장을 좀 보태서 쉽게 풀어보자면, (근대 이후의) ‘휴양’, 혹은 ‘휴양지’라는 개념이 니스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유산에 등재됨으로써 그 자신만만한 멘트가 사실이었음을 인정받은 거고요. 자, 여러분, 니스의 해변을 다시 보시죠. 우리는 지금 ‘휴양지’의 시원(始原)을 보고 있는 겁니다…….
니스의 기후가 최근 3~4세기 안에 갑자기 좋아진 건 아닐 테니 이 도시는 결국 ‘휴양 도시’가 될 운명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리비에라의 겨울 휴양 도시’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간과할 수는 없지요.
이곳은 니스의 유명한 해변 산책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입니다. 사람들이 니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여러분도 그렇게 할 곳입니다. 프롬나드 데 장글레라는 이름이 ‘영국인 산책로’라는 뜻이라는 건 아실 텐데요, 맞습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휴양지’의 부싯돌을 친 장본인은 영국인들이었습니다.
영국인들, 니스에 오다
이 해방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시야의 끝에서 눈높이까지 솟아오른 수평선,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발 아래 뻗어나가는 산책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각자의 속도로 걷거나 뛰거나 페달을 밟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 인간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높이까지만 솟아오른 건물들, 그리고 바다와 누가 더 깊고 푸른지 겨루는 것 같은 하늘. 미세먼지만 아니라 조급함까지 기본값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모든 것을 놓아버려도 될 것 같네요. 시차 없이 울리는 메시지와 이메일 알람이 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소진으로부터의 해방, 프롬나드 데 장글레에서 느낀 감각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마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비슷한 감정을 느껴왔나 봅니다. ‘그랜드 투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17세기부터 영국의 귀족 자제들이 견문을 쌓고 다른 왕실이나 귀족의 풍습을 체험하기 위해 떠났던 여행을 그랜드 투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주 목적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였고요. 파리, 토리노와 밀라노, 베네치아와 피렌체, 그리고 로마와 나폴리까지 먼 길을 따라 내려가던 이 여행이 오늘날 단체 여행의 시초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처음엔 교양을 쌓기 위해 떠나던 여행의 목표가 점차 다양해집니다. 알프스에서 자연의 숭고함을 느끼기도 하고, 영국에서는 드문 천혜의 기후를 지중해 도시에서 맛보기도 했지요.
영국인들은 ‘의료 여행’도 많이 떠났습니다. 요즘 의료 여행은 ‘뷰티’ 때문에 떠나지만, 당시에는 진짜 목숨이 달려 있었어요. 19세기 초, 결핵 환자나 흉부, 소화기 질환 환자들에게 날씨 좋은 남쪽 지방으로 휴양을 떠나라는 치료법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일종의 ‘기후 의학’이랄까요. 이런 유행이 이는 데는 훗날 빅토리아 여왕 1세의 주치의 자리까지 올랐던 의사 ‘제임스 클라크(Sir James Clark)’와 의학 저술가 ‘제임스 존슨(James Johnson)’의 영향이 컸습니다. 특히 제임스 존슨은 자신의 지중해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을 제법 ‘후킹’한 제목으로 지었습니다. 『공기의 전환, 또는 건강과 기분 전환을 찾아서(Change of Air; or, The Pursuit of Health and Recreation)』. 아픈 데가 없더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제목 아닌가요?
폐결핵이 상당히 진행된 환자들, 약해진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던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중해로 향했습니다. 당시의 이런 현상을 연구한 맨체스터 대학의 어느 교수는 “마지막 리조트”라는 표현을 썼더군요. 최후의 치료법으로 떠났던 지중해의 리조트가 정말 생애 ‘마지막’ 장소가 되어버린 이들이 많았거든요.
〈니스〉, 위고 달레지, 파리-리옹-지중해 철도회사(PLM) 포스터, 112×78cm, SNCF 역사문서보관센터 소장
그러나 여행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제 여행은 귀족뿐만 아니라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고,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반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던 니스도 축복받은 겨울 기후로 주목받습니다. 앞서 언급한 기후 의학의 전도사 제임스 클라크 경도 니스와 로마를 대륙에서 가장 날씨가 좋은 도시로 꼽았을 정도였고요. 그때만 해도 니스는 프랑스가 아니라 훗날 이탈리아 왕국이 되는 사르데냐 왕국에 속한 도시였기 때문에 로마까지 가는 긴 여정 중에 체류하기 좋은 기착지로 여겨졌을 듯합니다. 이탈리아 문명의 입구 같은 곳이었던 거지요, 질투가 날 정도로 날씨가 좋은.
19세기 초, 니스의 진가를 먼저 알아본 얼리어답터들이 어촌 마을의 생활감 가득한 바닷가 주변에 산책로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어부들의 집 위쪽이나 해안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로를 조성하다가 영국 공동체가 자금을 모아 평탄한 대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한 세기에 걸쳐 길어지고 정돈된 결과물이 바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인 것이고요. 하지만 니스의 변화는 멋진 해변 산책로가 생긴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구름이 좀 껴도 지중해의 햇살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니스, 유럽의 휴양지가 되다
산책로에서 도로 건너편을 보면, 예전에 어부들이 살던 집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그 건물들이 이제는 ‘오션 뷰’를 자랑하는 레스토랑과 펍, 카페로 운영되고 있어요. 와, 저 자리 정말 명당이네, 당장 길을 건너 계단을 오르고 싶어집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면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에게 손 흔들어 인사하고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몸짓으로 물어보세요. 열에 아홉 명은, 아니, 묻지도 않은 사람들까지 자리에서 일어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쓸 테니 열에 열한 명은 긍정적으로 반응해 줄 겁니다.
그들은 니수아(Niçois(e), 니스 사람들)일 수도 있고, 프랑스인일 수도 있고, 다른 지역의 유럽인이거나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 북미와 중‧남미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중동이나 아시아인들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출신 지역이 어디든 여기서는 전부 니스의 해변 공동체가 됩니다. 앞서 휴양지에 보편적 가치가 있다는 데 의문을 가지긴 했지만, 일단 휴양지에 오기만 하면 모든 ‘인터내셔널’이 그 안에 흡수되고 맙니다. 이 공동체에 속할 수만 있다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누릴 행운을 얻게 되는 거지요.
과연 그 옛날에도 영국인에 이어 각국의 유럽인들까지 니스의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프랑스, 나중에는 러시아인들이 니스로 몰려들었지요. 겨울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도시를 개발할 필요도 커졌는데,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난개발이 이루어졌다면 그로부터 약 200년 후, 세계유산에 등재되지 못했을 테니까요. '콘실리오 도르나토(Consiglio d'Ornato)'라는 위원회가 설립되고, 이들은 신축 건물의 건축 양식을 통일시키는 데 주력합니다. (니스의 주인이었던 사보이 왕가가 도시(토리노)를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이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니스에 몰려드는 외국인들에게 보라, 이렇게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휴양 도시를 만난 적 있는가, 자랑스레 선언하고 그들을 매료시키기 위해서였지요.
1860년 토리노 조약으로 니스가 프랑스에 할양되면서 도시의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집니다. 건축 규제가 풀리고, 기차역도 문을 엽니다.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다문화의 파도가 도시를 휩쓸어요. 니스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예술가, 건축가들도 대거 찾아옵니다. 덕분에 니스는 현재까지 “건축가들의 실험장”이 되어 왔습니다. 바로크, 벨 에포크, 네오고딕, 러시아 부흥 양식, 아르데코……. 제가 눈으로 구분은 못 해도 자료 조사는 할 수 있어 메모해 둔 건축 양식만 이 정도입니다. 니스 시내를 처음 걸었을 때, 유럽에 온 것 같긴 한데 어딘지 딱히 꼬집어 말하긴 어려운 유럽 같다고 느꼈던 것도 건축적 용광로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네요.
니스 오페라, 법원, 알프마리팀 주 청사
하지만 예쁜 건물만 생겼다고 사람들이 이 도시를 사랑했던 건 아닐 겁니다. 생활 인프라, 녹지, 산책로,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언덕을 고려한 시선축의 설계 등 니스는 ‘유럽 최초의 휴양 도시’라는 신 개념의 도시 구조와 생활 방식을 ‘발명’해 냈습니다. 자연과 문명의 느슨한 경계 속에서 유리 돔에 둘러싸인 것처럼 항상 맑은 바람과 햇살이 약속된 공간. 니스의 공기가 다르다고 느꼈던 것도,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맛보았던 것도 200여 년간 가장 이상적인 휴양지가 완성되어져 왔던 덕분이었습니다. 휴양지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이해가 되네요.
그래요, 이곳은 공기가 달라요
옛 어부들의 집 너머로 우아한 노란색 건물 하나가 머리를 내밀고 있네요. 한때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가 방 두 개를 임대해서 저곳에 머물렀다고 해요. 마티스는 니스를 아주 사랑해서 이주해 온 화가 중에서는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니스가 속한 프랑스 리비에라의 날씨와 이 지역 특유의 빛을 화폭에 담고자 노력했다고 해요. 그의 작품 〈열린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는 여인〉에는 저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니스의 해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날씨, 빛, 마티스도 그가 살던 프랑스 북부와 이곳의 공기가 다르다는 걸 느꼈을까요?
니스의 해안가에서 차로 10여 분 올라가면 나오는 시미에(Cimiez)라는 지역에는 마티스 뮤지엄이 있습니다. 마티스 뮤지엄이 17세기에 지어진 빌라에 터를 잡은 것은 마티스가 1938년부터 1943년까지 바로 옆에 있는 옛 호텔 레지나(Hôtel Regina)에 거주 공간 겸 작업실을 꾸린 인연 때문입니다. 지금은 호텔이 아니라 주거용 공동주택으로 쓰이고 있는 호텔 레지나도 벨 에포크 양식을 자랑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인데요, 이 건물의 역사도 니스의 발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1세가 니스를 사랑하여 자주 찾았는데 ‘여왕이 머물 만한’ 호텔이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여왕을 위해 이 거대한 건물을 1년 반 만에 지어 올렸다고 합니다. 지붕 위에는 여왕의 왕관을 상징하는 돔까지 올려 두었고요. 영국인들이 니스의 공기를 바꾸는 데 한몫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겠네요. 그리고 그 달라진 공기를 맛보기 위해 더 많은 영국인이 찾아온 거고요.
마티스 뮤지엄
『공기의 전환』이라는 책을 쓴 제임스 존슨이나 기후 의학의 전도사 제임스 클라크 경의 주장은 당시에도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중해의 날씨가 실제로 중증 환자들을 치료한다는 확실한 적응증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제임스 존슨은 공기의 달라짐이, 먼 길을 떠나며 운동하는 몸이, 색다른 풍경이 주는 기분 전환과 휴식을 통한 정신의 이완이 인간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여행을 긍정하며 먼 길을 떠나고 있듯이요.
니스의 상징, 푸른색 의자
프롬나드 데 장글레를 따라 긴 산책을 시작해 볼까 하는데,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버스킹을 하고 있네요. 다리가 주저합니다. 니스의 상징인 푸른색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 곁에 그냥 머물러도 되겠다 싶어져요. 유모차를 끌면서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하염없이 한 자리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는 거니까요. 내가 살던 곳과 달라진 공기를 느끼며, 어제보다 조금 더 나긋해진 공기를 느끼며. 그래요, 니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받았던 느낌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공기가 달라요. 숨으로든 눈으로든 살갗으로든, 우리는 그걸 확신할 수 있어요.
취재 협조 | 프랑스 관광청,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관광청
글·사진 |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litt.ly/ecrire_lire_viv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