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가모 강 북쪽, 가모 강과 다카노 강이 갈라지는 삼각지대, 데마치야나기 역은 기온, 가와라마치 중심가를 떠나 더 넓고, 더 세세한 교토로 들어가 보려는 이들이 출발지로 삼는 곳이다. 교토와 오사카를 잇는 케이한전철 데마치야나기 역 지상 위로는 한 칸, 두 칸짜리 앙증맞은 전차가 출발하는 지상 플랫폼이 있다. 이 전차를 타고 주택과 주택 사이 좁은 궤도를 따라 가자. 갈래로는 사무라이 막부가 지배하던 시절 군인 승려 양성소로 유명했던 엔라쿠지가 있고, 가을이면 단풍 터널을 지나 키부테 계곡을 따라 산길을 걸어 오르다 식당들에서 내어 놓은 평상에 앉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술 한 잔 할 수 있는 키부네가 있다. 교토에서 흔치 않은 온천이자 빨간 얼굴 도깨비가 마을의 상징인 구라마 온천도 갈 수 있다.
교토 가모가와
엔라쿠지에서 내려다보는 비와 호수의 전경, 사카모토 헤이잔 등산 열차를 타고 오르내리며 즐기는 중세 교토의 풍경. 그러고도 아직 교토 시내로 돌아갈 기분이 아니라며 한적한 산책을 이어나가 보자면, 데마치야나기 역에 닿기 전 이치조지에 내려야 한다. 이치조지 하면 교토의 대학가다. 한국의 대학가와는 사뭇 다른 일반 주택가 같다는 것이 도대체 일본 대학가를 규정하는 기준이 뭐냐는 의문을 품게 하지만, 그래도 대학가 맞다. 그 증거가 라멘이다. 한국의 대학가라면 저렴한 술집이 빽빽하게 들어차 절로 흥청거리는 기분에 전염되고 만다. 반면 일본의 대학가에는 싼값에 한계까지 배를 불린다는 음식점이 밀집까지는 아니더라도 섭섭하지는 않을 만큼씩 들어서 있다.
이치조지 인근에는 교토대학이 있고, 교토 기술대학이 있고, 조금 멀리는 정지용, 윤동주 시인이 다니던 도시샤 대학, 윤동주 시인이 빗소리를 듣던 ‘육첩방’이 있던 곳에 들어선 교토예술대학이 있다. 대학생들이 있고 대중문화와는 다른 서브컬처로서 대학 문화가 있고, 싸고, 빨리 먹을 수 있고, 양이 많아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라멘이 있다. 이치조지 라멘의 역사는 대략 1970년대에 시작된 것으로 보며, 이곳을 보통 라멘의 성지, 라멘의 격전지라고 부른다. 미슐랭과 장인만 있다면 성지로 족하겠지만, 격전지라는 건 라멘으로 별의별 실험을 다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마음껏 도전을 하다 사라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교토 도시샤 대학교의 윤동주 시비
하지만 이치조지에 라멘을 먹으러 온 건 아니다. 라멘집을 골라 소개한다는 게 이치조지 라멘을 사랑해 온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일일 것이고 라멘 종류 설명, 맛 구분은 더 어렵다. 그래도 라멘은 먹어 봐야지, 보통 가는 곳은 둘 중 하나다. 멘야 곳케이Menya Gokkei는 진한 닭 육수가 육수가 아닌 닭죽처럼 보이는 곳으로 이게 국물 라면인지 비빔 라면인지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이치조지에서 가장 유명한 라멘집이다. 이치조지 라면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곳부터. 라멘 토우 이치Ramen Touhichi도 닭 육수를 쓰는 곳이지만 아주 맑은 국물에 간장으로 간을 했다. 간이 시원한 정도라 깔끔한 맛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국물은 떠먹는 것보다 마시는 게 좋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이 더 낫다.
이치조지에서 | ⓒGabriel Han
어디에서든 배를 불리고, 이치조지 산책을 시작한다. 라멘뿐 아니라 책방도 많고, 카페도 많고, 음반 가게도 있고, 소품 가게도 있고, 그냥 저냥 시간을 보낼 맥주집도 있다. 그래도 지혜로운 어른을 꿈꾸던 학생 시절 의욕을 북돋우며 이치조지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장소, 케이분샤 서점부터 찾는다.
:: 케이분샤 이치조지점 (恵文社一乗寺店)
1975년, 자세한 인적사항은 알려지지 않은 20대 창업주가 일반적인 서점과 다른 서점을 만들겠다면 교토 예술대학 근방 이치조지에 자리를 잡았다. 대학가 입지 조건을 살린 서점이라 일단 철학이 주가 되었고, 여기에 문학, 장르소설이 스며들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서점인지 편집숍인지, 갤러리인지, 그런데 꼭 그 하나여야 하나? 그런 공간이다. 무엇이든 손에 들고 싶고, 가져가고 싶다. 한국에서는 2010년 영국 가디언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10’에 뽑혔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서점을 서성이는 한국인들은 보이지 않는다, 셀카를 찍기 전까지는.
케이분샤 이치조지점 (恵文社一乗寺店)
진열된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어, 이런 책도 있었다고, 싶은 것들 위주다. 장르별로 서가가 나뉘어 있고, 하나의 공통 주제 아래 정말로 다양하고 세세한 넝쿨들이 엮여 나온다. 츠타야 서점 하면 ‘책은 발견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지만 막상 가면 커피만 발견되는데, 케이분샤에서는 책이 보인다. 그리고 발견했다, 옛 태양 잡지를 복간한 <태양 – 다자이 오사무 편>. 발견의 욕망에 발길을 재촉해 온 독자들보다 서점 직원들이 새로운, 색다른 책에 목마른 사람들 같다.
ⓒGabriel Han
서점 앞쪽은 소장하고 싶지만 소모하고 싶지 않은 소품들이 채우고 있다. 갖고 싶다, 하지만 닳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서점 왼편 커다란 공간은 휑하니 비워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가운데 책방 공간을 지나 오른쪽 공간으로 돌면 흠칫, 다른 가게인가 싶어지지만, 책이 있다. 요리책, 생활 실용 책. 책 옆에는 생활 용품과 요리 재료가 밀키트처럼 함께 놓여 있다. 제품의 용도, 실용에 맞춰 책을 골랐을까, 책부터 골랐을까. 책부터 골랐다면 이 갖고 싶어 안달나게 하는 물건들은 대체 어디서 구해온 걸까.

ⓒGabriel Han
케이분샤 이치조지점 (恵文社一乗寺店)
주소 : 〒606-8184 Kyoto, Sakyo Ward, Ichijoji Haraitonocho, 1
홈페이지 : https://www.keibunsha-store.com
:: Fancy
Fancy | ⓒGabriel Han
케이분샤의 문을 닫고 마주보는 앞집 문을 연다. 매장 이름은 Fancy. 그 이상 단어 하나만 더 붙어도 번잡스러워질, 팬시 가게다. 케이분샤와 마주보며 연령층을 기하급수적으로 낮췄다. 핑크가 눈을 압도한다. 각종 스티커와 캐릭터, 문구류, 인형. 케이분샤와 달리 숨 쉴 틈 없는 간격으로 오밀조밀 모여 있는데, 그 나름 마법 재료 상점에 온 듯한 설렘을 불어 넣어 주며 슬슬 손가락을 움직이게 한다. 가방을 메고 지나던 초등학교 아이들이 들뜸과 아쉬움 범벅이 된 표정으로 매장을 구석구석 꼼꼼하게 누비고 있다. 마냥 저러고 있을 것 같아 그만 보기로 했다.
Fancy
주소 : 〒606-8185 Kyoto, Sakyo Ward, Ichijoji Takatsukicho, 20-2 シャトー一乗寺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fancy.kyoto/
:: 톤 라이프스타일 숍 & 살롱(tone lifestyle shop & salon)
톤 라이프스타일 숍 & 살롱tone lifestyle shop & salon | ⓒGabriel Han
팬시를 나와 아래 방향, 데마치야나기 방향으로 걸어가면 건물 두 개를 다 못 지나 록큰롤의 시대를 소환하는 톤 앞에 선다. 연령 공감대를 긴급하게 끌어올려 록큰롤의 문을 연다. 톤 라이프스타일 숍 & 살롱tone lifestyle shop & salon. 가방도 있고, 영화 포스터도 있고, 메모지도 있고, 차도 있고 후추도 있다. 이것저것 많이 판다. 비틀즈, 데이비드 보위, 오아시스, AC/DC가 양말, 키링, 배치, 티셔츠, 2026년 가장 신선한 형태로 재탄생해 있다. 매장 구석에는 비틀즈, 핑크플로이드, 보위, 롤링스톤즈, LP음반이 3만 원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일본 라이센스 음반이고, 커버, 음반 모두 깨끗하다. 아, 이치조지.
톤 라이프스타일 숍 & 살롱(tone lifestyle shop & salon)
주소 : 〒606-8184 Kyoto, Sakyo Ward, Ichijoji Haraitonocho, 12-20 AIR101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tone._ichijoji
:: 우드노트
우드 노트 |ⓒGabriel Han
톤에서 나와 잠시 앉아 쉬어갈 곳, 우드노트로 간다. 달달한 씹을 거리 생각이 도파민을 살살 간질인다. 가게 이름 그대로 나무로 바닥과 벽면을 채웠다. 40년이 넘은 가게라 고재 인테리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약간은 아귀가 안 맞아 보이나 흔들림 없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에 몸을 살포시 접어 넣고 공간을 채우는 아이리시 음악을 들으며 메뉴를 독파한다. 에비스 맥주 한 병, 시나몬 토스트. 누구라도 앉으면 아마 자리를 뜨기까지 계속해서 아이리시 음악만 듣다 갈 것이다. 인근 대학생들의 아이리시 음악 연합 모임에서 이 장소를 자주 찾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Gabriel Han
차, 커피, 맥주, 토스트, 샌드위치가 있고, 청바지를 입은 초로의 주인이 능숙하되 서두르지 않는 품새로 주방에 들어가 소리 없이 만들어 내어 온다. 이 가게를 찾는 손님은 주로 20대 학생들. 진열된 음반, 책을 뒤적이거나 주방 앞에 서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우드노트 자유장(自由帳)’이라는 노트에 이런저런 글자를 부려 놓는다. 나도 학생 시절 뭔가를 많이 적었다. 지금도 많이 적는다, 버릇 어디 안 간다. 말 없는 주인의 조용한 가게에 앉아 맥주 한 병을 마시며 리뷰를 찾아본다. 거기도 조용하다. 뒤적뒤적 가게를 훑고서 걸을 의지를 내어 본다.

ⓒGabriel Han
우드노트(ウッドノート)
주소 : 23-3 Ichijoji Oharadacho, Sakyo Ward, Kyoto, 606-8187 일본
:: BASTET COFFEE (바스테트 커피)
BASTET COFFEE (바스테트 커피) |ⓒGabriel Han
대만 타이난시의 커피숍 ‘加加家珈琲(가가야 커피)’에서 시작된 이 카페는 교토 이치조지로 옮겨 오면서 지금의 이름인 바스테트 커피(BASTET COFFEE)가 되었다. 일본 남성, 대만 여성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로 좁은 매장에서 직접 로스팅을 하며 다양한 원두를 드립백으로 판매하고 있다. 그래서 앉을 자리가 몇 없다.
바스테트는 사람 몸에 고양이 머리를 한 고대 이집트 여신의 이름으로 가게 이름은 물론 인테리어, 굿즈, 커피 패키지까지 이 가게를 온통 지배하고 있으나 이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이름은 그게 아니라고 한다. 네코짱이라 해도 될 만큼 평범한 이름이었는데, 모름지기 이름은 모난 게 좋다. 나의 고양이 노자처럼.
ⓒGabriel Han
대만의 맛을 재현한 라이트 로스팅 커피를 추구한다는 문구의 영향으로 과일과 허브향을 상쾌하게 느낀다. 강강배전 일본 커피가 두려워 멀리서 이들을 찾아왔다. 대만 스페셜티 우롱차와 우롱 밀크티도 있지만, 그건 나중에 대만에 가서 먹기로 한다. 오리지널 블렌드는 바스테트 블렌드로 가향되지 않은 과일향이 뇌 주름 틈새을 비집고 들어간다. 길고 좁은 실내 1층에는 커피 작업을 하는 공간 외 6개의 좌석이 있고 2층은 시간제로 운영된다. 영어, 중국어, 소통 가능하다. 외향인들의 메모를 기대하며.
BASTET COFFEE(바스테트 커피)
주소 : 23-11 Ichijoji Oharadacho, Sakyo Ward, Kyoto, 606-8187 일본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bastetcoffee_nya
글 · 사진 | 이주호
사진 | Gabriel Han @gabriel_kor1

브릭스 매거진의 편집장.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사뿐사뿐, 노자네 집까지』 등을 쓰며 맥주를 마셨다.
교토 가모 강 북쪽, 가모 강과 다카노 강이 갈라지는 삼각지대, 데마치야나기 역은 기온, 가와라마치 중심가를 떠나 더 넓고, 더 세세한 교토로 들어가 보려는 이들이 출발지로 삼는 곳이다. 교토와 오사카를 잇는 케이한전철 데마치야나기 역 지상 위로는 한 칸, 두 칸짜리 앙증맞은 전차가 출발하는 지상 플랫폼이 있다. 이 전차를 타고 주택과 주택 사이 좁은 궤도를 따라 가자. 갈래로는 사무라이 막부가 지배하던 시절 군인 승려 양성소로 유명했던 엔라쿠지가 있고, 가을이면 단풍 터널을 지나 키부테 계곡을 따라 산길을 걸어 오르다 식당들에서 내어 놓은 평상에 앉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술 한 잔 할 수 있는 키부네가 있다. 교토에서 흔치 않은 온천이자 빨간 얼굴 도깨비가 마을의 상징인 구라마 온천도 갈 수 있다.
엔라쿠지에서 내려다보는 비와 호수의 전경, 사카모토 헤이잔 등산 열차를 타고 오르내리며 즐기는 중세 교토의 풍경. 그러고도 아직 교토 시내로 돌아갈 기분이 아니라며 한적한 산책을 이어나가 보자면, 데마치야나기 역에 닿기 전 이치조지에 내려야 한다. 이치조지 하면 교토의 대학가다. 한국의 대학가와는 사뭇 다른 일반 주택가 같다는 것이 도대체 일본 대학가를 규정하는 기준이 뭐냐는 의문을 품게 하지만, 그래도 대학가 맞다. 그 증거가 라멘이다. 한국의 대학가라면 저렴한 술집이 빽빽하게 들어차 절로 흥청거리는 기분에 전염되고 만다. 반면 일본의 대학가에는 싼값에 한계까지 배를 불린다는 음식점이 밀집까지는 아니더라도 섭섭하지는 않을 만큼씩 들어서 있다.
이치조지 인근에는 교토대학이 있고, 교토 기술대학이 있고, 조금 멀리는 정지용, 윤동주 시인이 다니던 도시샤 대학, 윤동주 시인이 빗소리를 듣던 ‘육첩방’이 있던 곳에 들어선 교토예술대학이 있다. 대학생들이 있고 대중문화와는 다른 서브컬처로서 대학 문화가 있고, 싸고, 빨리 먹을 수 있고, 양이 많아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라멘이 있다. 이치조지 라멘의 역사는 대략 1970년대에 시작된 것으로 보며, 이곳을 보통 라멘의 성지, 라멘의 격전지라고 부른다. 미슐랭과 장인만 있다면 성지로 족하겠지만, 격전지라는 건 라멘으로 별의별 실험을 다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마음껏 도전을 하다 사라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치조지에 라멘을 먹으러 온 건 아니다. 라멘집을 골라 소개한다는 게 이치조지 라멘을 사랑해 온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일일 것이고 라멘 종류 설명, 맛 구분은 더 어렵다. 그래도 라멘은 먹어 봐야지, 보통 가는 곳은 둘 중 하나다. 멘야 곳케이Menya Gokkei는 진한 닭 육수가 육수가 아닌 닭죽처럼 보이는 곳으로 이게 국물 라면인지 비빔 라면인지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이치조지에서 가장 유명한 라멘집이다. 이치조지 라면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곳부터. 라멘 토우 이치Ramen Touhichi도 닭 육수를 쓰는 곳이지만 아주 맑은 국물에 간장으로 간을 했다. 간이 시원한 정도라 깔끔한 맛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국물은 떠먹는 것보다 마시는 게 좋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이 더 낫다.
어디에서든 배를 불리고, 이치조지 산책을 시작한다. 라멘뿐 아니라 책방도 많고, 카페도 많고, 음반 가게도 있고, 소품 가게도 있고, 그냥 저냥 시간을 보낼 맥주집도 있다. 그래도 지혜로운 어른을 꿈꾸던 학생 시절 의욕을 북돋우며 이치조지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장소, 케이분샤 서점부터 찾는다.
:: 케이분샤 이치조지점 (恵文社一乗寺店)
1975년, 자세한 인적사항은 알려지지 않은 20대 창업주가 일반적인 서점과 다른 서점을 만들겠다면 교토 예술대학 근방 이치조지에 자리를 잡았다. 대학가 입지 조건을 살린 서점이라 일단 철학이 주가 되었고, 여기에 문학, 장르소설이 스며들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서점인지 편집숍인지, 갤러리인지, 그런데 꼭 그 하나여야 하나? 그런 공간이다. 무엇이든 손에 들고 싶고, 가져가고 싶다. 한국에서는 2010년 영국 가디언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10’에 뽑혔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서점을 서성이는 한국인들은 보이지 않는다, 셀카를 찍기 전까지는.
진열된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어, 이런 책도 있었다고, 싶은 것들 위주다. 장르별로 서가가 나뉘어 있고, 하나의 공통 주제 아래 정말로 다양하고 세세한 넝쿨들이 엮여 나온다. 츠타야 서점 하면 ‘책은 발견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지만 막상 가면 커피만 발견되는데, 케이분샤에서는 책이 보인다. 그리고 발견했다, 옛 태양 잡지를 복간한 <태양 – 다자이 오사무 편>. 발견의 욕망에 발길을 재촉해 온 독자들보다 서점 직원들이 새로운, 색다른 책에 목마른 사람들 같다.
ⓒGabriel Han
서점 앞쪽은 소장하고 싶지만 소모하고 싶지 않은 소품들이 채우고 있다. 갖고 싶다, 하지만 닳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서점 왼편 커다란 공간은 휑하니 비워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가운데 책방 공간을 지나 오른쪽 공간으로 돌면 흠칫, 다른 가게인가 싶어지지만, 책이 있다. 요리책, 생활 실용 책. 책 옆에는 생활 용품과 요리 재료가 밀키트처럼 함께 놓여 있다. 제품의 용도, 실용에 맞춰 책을 골랐을까, 책부터 골랐을까. 책부터 골랐다면 이 갖고 싶어 안달나게 하는 물건들은 대체 어디서 구해온 걸까.
ⓒGabriel Han
:: Fancy
케이분샤의 문을 닫고 마주보는 앞집 문을 연다. 매장 이름은 Fancy. 그 이상 단어 하나만 더 붙어도 번잡스러워질, 팬시 가게다. 케이분샤와 마주보며 연령층을 기하급수적으로 낮췄다. 핑크가 눈을 압도한다. 각종 스티커와 캐릭터, 문구류, 인형. 케이분샤와 달리 숨 쉴 틈 없는 간격으로 오밀조밀 모여 있는데, 그 나름 마법 재료 상점에 온 듯한 설렘을 불어 넣어 주며 슬슬 손가락을 움직이게 한다. 가방을 메고 지나던 초등학교 아이들이 들뜸과 아쉬움 범벅이 된 표정으로 매장을 구석구석 꼼꼼하게 누비고 있다. 마냥 저러고 있을 것 같아 그만 보기로 했다.
:: 톤 라이프스타일 숍 & 살롱(tone lifestyle shop & salon)
팬시를 나와 아래 방향, 데마치야나기 방향으로 걸어가면 건물 두 개를 다 못 지나 록큰롤의 시대를 소환하는 톤 앞에 선다. 연령 공감대를 긴급하게 끌어올려 록큰롤의 문을 연다. 톤 라이프스타일 숍 & 살롱tone lifestyle shop & salon. 가방도 있고, 영화 포스터도 있고, 메모지도 있고, 차도 있고 후추도 있다. 이것저것 많이 판다. 비틀즈, 데이비드 보위, 오아시스, AC/DC가 양말, 키링, 배치, 티셔츠, 2026년 가장 신선한 형태로 재탄생해 있다. 매장 구석에는 비틀즈, 핑크플로이드, 보위, 롤링스톤즈, LP음반이 3만 원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일본 라이센스 음반이고, 커버, 음반 모두 깨끗하다. 아, 이치조지.
:: 우드노트
톤에서 나와 잠시 앉아 쉬어갈 곳, 우드노트로 간다. 달달한 씹을 거리 생각이 도파민을 살살 간질인다. 가게 이름 그대로 나무로 바닥과 벽면을 채웠다. 40년이 넘은 가게라 고재 인테리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약간은 아귀가 안 맞아 보이나 흔들림 없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에 몸을 살포시 접어 넣고 공간을 채우는 아이리시 음악을 들으며 메뉴를 독파한다. 에비스 맥주 한 병, 시나몬 토스트. 누구라도 앉으면 아마 자리를 뜨기까지 계속해서 아이리시 음악만 듣다 갈 것이다. 인근 대학생들의 아이리시 음악 연합 모임에서 이 장소를 자주 찾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Gabriel Han
차, 커피, 맥주, 토스트, 샌드위치가 있고, 청바지를 입은 초로의 주인이 능숙하되 서두르지 않는 품새로 주방에 들어가 소리 없이 만들어 내어 온다. 이 가게를 찾는 손님은 주로 20대 학생들. 진열된 음반, 책을 뒤적이거나 주방 앞에 서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우드노트 자유장(自由帳)’이라는 노트에 이런저런 글자를 부려 놓는다. 나도 학생 시절 뭔가를 많이 적었다. 지금도 많이 적는다, 버릇 어디 안 간다. 말 없는 주인의 조용한 가게에 앉아 맥주 한 병을 마시며 리뷰를 찾아본다. 거기도 조용하다. 뒤적뒤적 가게를 훑고서 걸을 의지를 내어 본다.
ⓒGabriel Han
:: BASTET COFFEE (바스테트 커피)
대만 타이난시의 커피숍 ‘加加家珈琲(가가야 커피)’에서 시작된 이 카페는 교토 이치조지로 옮겨 오면서 지금의 이름인 바스테트 커피(BASTET COFFEE)가 되었다. 일본 남성, 대만 여성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로 좁은 매장에서 직접 로스팅을 하며 다양한 원두를 드립백으로 판매하고 있다. 그래서 앉을 자리가 몇 없다.
바스테트는 사람 몸에 고양이 머리를 한 고대 이집트 여신의 이름으로 가게 이름은 물론 인테리어, 굿즈, 커피 패키지까지 이 가게를 온통 지배하고 있으나 이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이름은 그게 아니라고 한다. 네코짱이라 해도 될 만큼 평범한 이름이었는데, 모름지기 이름은 모난 게 좋다. 나의 고양이 노자처럼.
ⓒGabriel Han
대만의 맛을 재현한 라이트 로스팅 커피를 추구한다는 문구의 영향으로 과일과 허브향을 상쾌하게 느낀다. 강강배전 일본 커피가 두려워 멀리서 이들을 찾아왔다. 대만 스페셜티 우롱차와 우롱 밀크티도 있지만, 그건 나중에 대만에 가서 먹기로 한다. 오리지널 블렌드는 바스테트 블렌드로 가향되지 않은 과일향이 뇌 주름 틈새을 비집고 들어간다. 길고 좁은 실내 1층에는 커피 작업을 하는 공간 외 6개의 좌석이 있고 2층은 시간제로 운영된다. 영어, 중국어, 소통 가능하다. 외향인들의 메모를 기대하며.
글 · 사진 | 이주호
사진 | Gabriel Han @gabriel_kor1
브릭스 매거진의 편집장.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사뿐사뿐, 노자네 집까지』 등을 쓰며 맥주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