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이제 촬영을 시작합니다 - 브릭스 매거진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작업실

2026-05-21


이제 촬영을 시작합니다 #1


2021년 말. 코로나였고, 여행 매거진이지만 여행을 다룰 수 없는 시기였다. 그래서 브릭스 매거진에서는 사람을 여행하기로 했다. 저마다의 삶을 너무나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기회가 되면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인터뷰이의 이야기는 인터뷰 기사로 남았으니 그걸로 됐다. 이제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우리가 나눈 대화에 관한 것이 아니다. 녹취 파일, 텍스트와 함께 하드 드라이브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간, 아직도 렌즈를 통해 ‘추신’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그들의 사진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인터뷰 내용과는 일절 무관, 그저 인터뷰이를 오롯이 담지 못한 사진가로서의 변명 위주로.


로켓트아가씨와의 첫 번째 인터뷰


인터뷰 일자: 22년 3월 8일
로켓트아가씨 인터뷰 #1
로켓트아가씨 인터뷰 #2


인터뷰 장소는 싱어송라이터 로켓트아가씨 님의 작업실이었다. 2020년에 중고로 구입하여 수많은 취재와 여행, 인터뷰에 따라나서다가 2024년에 명을 다한 24-105mm 렌즈를 들고 찾아갔다. 이제 막 인터뷰 기사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였고, 당연히 몰랐다. 뮤지션의 작업실이라는 곳이 그렇게 어두울 줄은. 조명이 그렇게 노랄 줄은. (예감은 했지만 뭐 어쩌겠느냐는 심정이었다는 편이 솔직하겠다.) 렌즈의 최대 개방 조리개가 F4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숨을 참느라 나중에는 호흡곤란이 왔다.


문제는 흔들림보다 화이트밸런스였다. 색온도가 3000K 밖에 안 되는데 어둡기까지 한 조명 아래서 촬영을 하니 보정으로 커버하기 힘든 주황색이 인물을 덮어버렸다. 안 되겠다 싶어 작업실 밖, 자연광이 들어오는 거실 같은 곳에서도 촬영을 했지만 인터뷰가 늦은 오후에 끝나 햇볕이 잘 들지 않았다. 결국 작업실 안에서 찍은 사진만 추려서 보내드렸고,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미처 몰랐다. 이 미안함이 앞으로의 인터뷰들에서도 계속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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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트아가씨 님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이것이다. 살짝 보이는 인물, 기타 연주, 그리고 배경으로 담긴,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음악을 만드는 프로그램이 떠 있는 모니터가 인터뷰이를 단 한 장으로 표현하는 것 같아서다. 다행히 몇 년 후 로켓트아가씨 님과 두 번째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자연광 아래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 두 번째라고 죄송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에.


아티스트 람(RAM) 인터뷰


인터뷰 일자: 22년 4월 11일
람 인터뷰 #1
람 인터뷰 #2


사람은 실수로부터 배운다. 아니, 이렇게 쓰면 실력이 나아졌다는 말 같으니까 정정한다. 사람은 같은 곤경이 찾아오면 처음보다는 머리를 쓴다. 아티스트 람과는 로켓트아가씨 님의 작업실보다 더 어두운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했다. 색온도와 색조 슬라이드를 조정하느라 손가락 관절이 시큰거렸던 바, 람과의 촬영은 스튜디오 밖으로 나와서 했다. 햇볕 좋은 봄날의 오후였다.


독특한 음색에 저만의 스타일을 가진 음악, 개인적으로 취향이 맞는 음악이기도 했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젊은 뮤지션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꽃 아래 두고 사진을 찍었다. 그게 옳은 결정이었는지 멍청한 결정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사실 안다.) 그래서 뮤지션 람의 사진도 스튜디오 안에서 찍은 걸로 고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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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드는 이유는 기타를 든 인물, 뒤로 보이는 키보드, 그리고 배경으로 보이는 수첩이 인터뷰이를 단 한 장으로 표현하는 것…… 응? 고백하는 바, 이 사진은 순전히 뮤지션의 눈빛이 살린 사진이다. 오독하지 말자. 내가 그의 눈빛을 살린 게 아니라 그의 눈빛이 사진을 살린 것이다. 그의 신곡 소식이 뜸하다. 얼른 새 음악을 들려주기를.


보타니스트 김소희 대표 인터뷰


인터뷰 일자: 22년 4월 13일
김소희 대표 인터뷰 #1
김소희 대표 인터뷰 #2


김소희 대표님의 작업실, 아니 ‘식물 실험실’ 허센트에 도착했을 때, 찍을 게 많다는 생각도 들었고 난감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온갖 식물이 자라는 온실은 피사체투성이였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쓰는 카메라는 초록색을 정말 예쁘지 않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노출 문제도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노출 관련 조언이 떠오른다. “초록색을 찍을 때는 측정 노출보다 –2/3 스톱 어둡게 찍으세요.” 지금도 관성적으로 그 조언을 따르고 있는데,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자연이 나오는 모든 사진은 초록색 색조와 채도 슬라이드에 손을 대고 있다.


식물이 다양하고 빽빽한 공간이라는 건 양날의 검 같았다. 보기에는 좋은데 사진 구도를 잡기에는 나의 감각이 너무 떨어졌다. 겸손이 아니다. 뷰파인더를 통해 부담감과 절망감이 눈물 나게 밀려들었다. 할 수 있는 건 조리개를 활짝 열어 초점을 다 날려버리는 것뿐이었다. 희미해진 이파리들은 퍽 아름다운 전경이나 배경이 되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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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소희 대표님도 촬영을 했다. 그런데 얼굴이 나오지 않은 이 사진을 고른 건 식물을 받치는 그의 손이 내가 의도한 피사체이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많은 식물을 키우고, 돌보고, 연구하는 그의 손은 말 그대로 매일 생명을 쓰다듬는 손이었다. 명품 플래그숍이나 서울에서 가장 핫한 동네 매장을 식물로 디자인한 그는, 허세를 가질 만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식물을 대하는 태도에 허례허식이 없었다. 식물을 사랑한다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걸 사진으로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의도가 잘 표현됐는지는 모르겠다. 모르니까 이렇게 부언을 하고 있는 거겠지만.


계피자매 인터뷰


23년 1월 3일
계피자매 인터뷰


내가 아까 사람은 실수로부터 배운다고 했었나? 같은 곤경이 찾아오면 머리를 쓴다고 했었나? 계피자매 두 분과의 인터뷰 역시 두 분의 작업실에서 진행했는데, 나는 이미 이곳을 알고 있었다. 몇 개월 전, 멤버 중 한 명인 성현구 님과 같은 곳에서 인터뷰를 하고 사진도 찍었기 때문이다. 아늑한 방 같은 분위기라 실용적인 작업실 조명보다야 색감이 덜 틀어지고 빛도 더 예뻤지만, 어둡긴 매한가지였다. 그렇다고 예전에 어려움이 있었으니 조명을 써야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조명을 배운 적도 없고, 조명을 살 돈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같은 공간을 두 번째로 방문하며 내가 꺼내든 카드는 필름카메라였다. 이왕 디지털로 틀어질 색감, 차라리 필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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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물이 이것이다. 그냥 ‘시도했다’는 기념으로 이 필름사진을 꼽은 것은 아니고, 실제로 그날 촬영한 사진 중 이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두 분의 표정이 자연스럽고, 배경 정리를 미처 못 하긴 했으나 언제나 놀라운 연주를 보여주는 계피자매라는 팀의 정체성이 프레임 안에 보이는 악기들로 잘 드러난 것 같다(고 눈 딱 감고 믿기로 한다). ISO 400짜리 필름도 썼을 테고 숨도 잘 참으려 애쓰기도 했을 텐데 사진은 약속한 듯 흔들렸다. 그 흔들린 느낌이 마음에 든다. 나는 그렇다.




글·사진 |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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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litt.ly/ecrire_lire_vi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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