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타이베이를 달리다, 타이베이 러닝 코스

2026-06-05


| Taipei  |


낯선 여행지에서 도시를 가장 빠르게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북적거리는 시장을 탐험하고, 어떤 이는 아름다운 미술관을 찾는다. 하지만 러너에게는 조금 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도시를 달리는 것. 이른 아침 혹은 땅거미가 내려앉은 저녁, 러닝화를 신고 거리로 나서면 희미하던 도시의 숨결이 훨씬 또렷하게 느껴진다. 관광객이 몰려오기 전의 고요한 골목, 출근을 서두르는 현지인들의 발걸음, 강변을 스치는 시원한 저녁 바람. 달리는 동안 이 모든 도시의 일상이 자연스레 몸 안으로 스며든다.


타이베이는 러너에게 매력적인 도시다. 도심을 달리며 랜드마크를 구경할 수 있는 시티런 코스부터 지형적으로 발달한 강과 하천 덕분에 도시 곳곳에 조성된 강변 러닝 코스, 도시와 가까이 맞닿아 있는 국가 공원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까지, 다양한 풍경 속에서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하철(MRT)이나 버스로 대부분의 러닝 코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여행 중에도 부담 없이 달리기를 즐길 수 있다. 


오늘은 러너 여행자를 위한 타이베이의 대표 러닝 코스 세 곳을 소개해 보려 한다. 접근성이 좋은 곳에 위치하며 비교적 쉬운 5km 이내의 시티 러닝 코스, 강변을 따라 달리는 10km 이상의 장거리 러닝 코스, 그리고 난이도가 꽤 있는 10km짜리 트레일 러닝 코스다. 자신의 체력과 컨디션에 맞춰 천천히 달리다 보면 어느새 타이베이라는 낯선 도시가 조금 더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타이베이 러닝 팁!

타이베이 러닝에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더운 날씨다.
아열대 기후의 타이베이는 습도가 높고 여름이 길다.
한낮에 달리기를 시도했다가는 숨막히는 더위에 얼마 달리지도 못하고 지칠 수 있다.
그래서 현지 러너들은 대부분 해 뜨기 전 새벽이나 해가 진 뒤 저녁 시간에 달린다.
달릴 때 필요한 준비물은 간단하다.
가벼운 러닝화와 러닝 벨트, 그리고 충분한 물.
여름철이라면 모자와 전해질 음료를 챙기는 것이 좋다.


1) 타이베이의 중심을 한 바퀴 달리는 시티 런: 중정기념당 러닝 코스


d102c8e8a0bd2.png

중정기념당 러닝 코스


서울에 경복궁 런이 있다면, 타이베이에는 중정기념당 런이 있다. 1970년대 후반 장제스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중정기념당(中正紀念堂)은 타이베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다. 중정기념당 앞에 조성된 자유광장을 중심으로 화려한 중국 전통 건축 양식을 재해석한 국가극장(國家戲劇院)과 국가음악청(國家音樂廳)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어 독특한 도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유 광장을 한 바퀴 도는 이 코스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시티 러닝 코스 중 하나다. MRT 중정기념당역 5번 출구에서 내리면 바로 광장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한 바퀴를 달리면 약 2km. 초보 러너가 가볍게 달리기에 딱 좋은 거리다. 여행짐으로 양손이 무겁다면, 지하철역 내 물품보관소를 이용해 보자. 보관소는 중정기념당역 6번 출구 지하에 있다. 소형 사물함은 한 시간에 10원, 대형은 20원이며 교통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한국어도 지원되니 이용이 어렵지 않다. 


중정기념당 런을 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역시 저녁이다. 해가 지고 난 뒤 광장에는 산책을 나온 시민들과 러너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낮 동안 뜨겁게 달궈졌던 도시도 조금씩 식어간다. 5번 출구에서 나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오른쪽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곧 자유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어 시야에 들어오는 거대한 흰색 대리석 건물. 중정기념당이다. 조금 더 달리면 동문이라 불리는 경복문(景福門)도 만날 수 있다. 청나라 시대에 세워졌던 타이베이 성곽의 동문으로, 지금은 도심 한복판에서 과거의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 유적이다.


길은 평탄하고 넓다. 그저 건물 외벽을 따라 꾸준히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달리다 보면 광장 곳곳에서 춤 연습을 하는 학생들,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 그리고 조용히 러닝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도시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진다.


897d43e376e91.png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라 학생들, 시민들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2) 도시와 강을 따라 달리는 타이베이의 대표 러닝 루트 : 지룽강 러닝 코스


f1f5a9604f364.png

MRT 원산역 1번 출구에서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 뒤편의 러닝 코스 시작점인 중산교 자전거 견인로(中山橋自行車牽引道)까지 도보로 15분. 


겨울의 타이베이는 달리기 정말 좋은 계절이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절한 기온, 한국의 가을을 닮은 선선한 공기로 야외 활동에 적절하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비가 잦아 이런 환상적인 날씨를 매일 만날 수 없다는 것. 만약 겨울철 타이베이 여행 중 푸른 하늘을 만났다면, 얼른 러닝화를 신고 달려 보시길.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ac9db59c437c7.png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이 이번 러닝 코스의 시작점이다. 미술관 옆 강둑으로 나가면 러닝 코스가 시작된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러닝 코스 중 하나는 지룽강(基隆河) 강변이다. 지룽강은 지룽시에서 시작해 타이베이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대표적인 강으로,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러닝 코스는 길이 넓고 평탄해 초보 러너부터 장거리 러너까지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이 일대에서는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길이 거의 평지에 가까운 데다가 강을 따라 100km에 가까운 도로가 조성되어 있기에 20km 이상의 장거리 러닝 코스로 활용하는 러너들도 많다. 지룽강 러닝 코스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하면 단연코 다양한 풍경의 변화일 터. 도심의 고층 빌딩, 공원, 관람차, 다리 등이 파노라마처럼 강을 끼고 이어진다. 


출발점은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이다. 미술관 근처 강변에서 출발해 강을 따라 이어진 길을 달리면 송산공항을 지나 약 8km 정도의 러닝 코스를 만들 수 있다. 미술관 옆 강둑 위에 올라서면 강 건너편으로 붉은 기와 지붕이 인상적인 타이베이의 랜드마크이자 유명 호텔, ‘원산대반점’이 눈에 들어온다. 강변 길은 넓고 평탄해 달리기에 편안하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지만 속도가 빠르지 않아 크게 방해되지는 않는다.


54182b917f014.png

원산대반점


조금 더 달리다 보면 또다른 랜드마크인 ‘미라마 관람차’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어 송산공항 활주로가 가까워지면서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기도 한다.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서 드디어 ‘타이베이 101 빌딩’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도시를 대표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달리는 경험은 이 코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18ec3b6958d04.png

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미라마 관람차

45abf75a14f52.png

고가도로 밑을 지나니 어느새 멀리 보이는 타이베이의 랜드마크 101빌딩


러닝의 마무리 지점으로는 ‘레인보우 브릿지(彩虹橋)’ 일대가 적당하다. (물론 부족하다면 레인보우 브릿지를 지나 10km 이상의 장거리를 뛸 수도 있다.) 다리 일대에서는 강을 건너 반대편으로 이동할 수도 있고, 근처의 송산 MRT 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도심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지하철역에 가는 길에는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야시장인 ‘라오허제 야시장’이 나타난다. 야시장에서 대만 미식을 즐기며 러닝을 마무리할 수 있다니. 러너 여행자에게는 꽤 완벽한 마무리가 아닐까.


6f11554a797b3.png

레인보우 브릿지. 이번 코스의 도착 지점이다


3) 국가공원 양명산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 코스 : 타이베이 대종주 2코스강 러닝 코스


cf4ae3a228ecb.png

타이베이 대종주 2코스


타이베이 대종주 2코스 가는 법

MRT 타이베이역에서 260번 버스를 타고 양명산 정거장(Yangmingshan Bus Terminal)에서 하차.
양명산 정거장에서 108번 버스로 갈아타서 얼쯔핑(Erziping)에서 하차.
하산할 때는 소유갱 관광안내소에서 108번 버스를 타고 같은 방식으로 내려오면 된다.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러닝 코스를 꼽을 때 도심과 강변만 떠올리기 쉽지만, 조금만 시선을 넓히면 전혀 다른 풍경의 코스를 만날 수 있다. 바로 타이베이 북쪽에 자리한 양명산이다. 화산 지형과 온천, 초원과 능선이 어우러진 이곳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가까운 자연이자 대만을 대표하는 국가공원이다.


양명산 일대를 종주하는 장거리 트레일 코스로는 타이베이 대종주(台北大縱走)가 대표적이다. 총 8개의 구간으로 이루어진 이 코스는 분지 지형인 타이베이 외곽의 산과 능선을 따라 도시를 한 바퀴 크게 둘러싸는 장거리 트레일이다. 전체를 완주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구간별로 나누어 걸을 수 있어 등산객과 트레일 러너 모두에게 인기가 높다.


a6011c3036ad4.png

타이베이 대종주 2코스. 해발 1,076m의 다툰산을 포함한 대표적인 트레일 러닝 코스다. 


그중에서 오늘 소개할 코스는 2코스다. 양명산의 대표적인 화산 지형을 지나며 초원과 능선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코스로, 얼쯔핑에서 시작해 다툰산 일대를 거쳐 소유갱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 구간의 출발점은 얼쯔핑 관광안내소이다. 과거 화산활동으로 생긴 분지 지형인 ‘얼쯔핑(二子坪)’은 양명산 국가공원의 해발 약 800m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약 2km 길이의 무장애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실제로 관광안내소 주차장에서는 휠체어 차량을 타고 나들이를 나온 이용객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완만한 길 덕분에 가족 단위 여행객이나 가벼운 트레킹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트레일 러닝을 하기에도 좋은 구간이다.


935d818ffa5ad.png

얼쯔핑과 얼쯔핑 무장애 산책로. 휠체어나 유모차로도 이동 가능하다.


얼쯔핑을 지나 능선 방향으로 조금 더 달리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이 구간에서는 해발 900m대의 봉우리인 샹톈산(向天山)과 몐톈산(面天山)을 지나게 된다. 여기까지는 트레일 러닝을 하기 딱 좋은 경사도다. 하지만 계속되는 다툰산 서쪽 봉우리와 따툰산 남쪽 봉우리는 로프를 잡고 올라가거나 내려가야 하는 가파른 구간이 있어 장갑을 낀 채 사족보행을 해야 한다. 이어지는 다툰산(大屯山) 정상은 해발 1,076m로 양명산 일대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봉우리 중 하나. 다만 정상까지 오르는 계단 구간이 꽤 길어 체력 소모가 적지 않다. 정상에 올라서면 타이베이 분지와 단수이강,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바다까지 시원하게 조망이 터진다. 


a278cf79337ba.png

다툰산 올라가는 길. 로프를 잡고 올라가야 한다.

cd1f983d3fcdf.png

다툰산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마침내 도착한 다툰산 정상.


다시 달릴 수 있는 하산 구간은 소유갱(小油坑) 방향으로 이어진다. 아직도 활발한 화산 활동을 관찰할 수 있는 이 구간은 유황 지대로 길이 비교적 완만해 트레일 러닝을 즐기기 좋다. 하산을 할 때는 소유갱 관광안내소에서 버스를 타면 타이베이 도심 지하철역으로 곧바로 연결된다. 도심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지만 전혀 다른 자연 풍경 속을 달릴 수 있다는 점이 이 코스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도시 러닝과는 또 다른 재미를 찾고 싶다면 양명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이 트레일 코스에 한번 도전해 보자. 타이베이를 둘러싼 산과 바람, 그리고 화산 지형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28fa623627355.png

다툰산에서 소유갱 가는 길과 도착지점인 소유갱. 유황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산 지형이다.




글·사진 최보옥

0278dcb22d238.jpg

대학 졸업 후, 한국을 떠나 대만에 살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 10년차 한국어 강사, 채식주의자, 결혼 이민자. 대만 생활에서 길어 올린 글들을 블로그에 차곡차곡 모아두는 것이 취미다. <타이베이 산친구>를 썼다.
https://blog.naver.com/choibo_ok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