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친숙한 듯 낯선, 후쿠오카의 크리스마스 축제

2023-12-20

축제를 여는 데 거창한 이유를 만들 필요는 없다. 벚꽃 철이라서, 한여름 바닷가라서, 산자락에 빨간 융단이 깔려서 현수막을 걸고, 가판을 늘어세우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날도 춥고 마음도 헛헛한 겨울 시즌에는 축제가 절실할 정도다. 축제에서는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 앞으로 모든 게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나눠 받을 수 있으니까.


f3b59e53e0d57.jpg후쿠오카 〈크리스마스 어드벤트〉 행사장에서


유럽의 전통이었다가 지금은 전 세계로 번져나간 크리스마스 마켓과 루미나리에도 이 계절 우리에게 준비된 선물이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다른 게 아니라 빛과 온기가 넘실거리는 이곳에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국내도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이국적인 시럽 한 스푼 얹은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후쿠오카가 제격이다. 비행시간도 짧고 여행하기에도 편한 도시. 친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도시. 시내 곳곳에서 한국어를 볼 수 있는데, 10% 부족한 구글 번역을 그대로 손으로 옮겨 쓴 입간판에 절로 웃음이 나오는 도시. 후쿠오카다.


d3b64cb3115d7.jpg후쿠오카 하카타역


이 도시는 무엇보다 겨울 축제에 진심이다. 지난 10년간 하카타, 텐진, 나카스에서 〈후쿠오카 크리스마스 마켓〉을 운영해 온 후쿠오카시는 11주년을 맞은 올해 〈크리스마스 어드벤트〉로 행사명을 바꾸며 더 많은 지역에 환상을 불어넣기로 했다.


de454cfa7dd49.jpg올해 개칭한 〈크리스마스 어드벤트〉 행사장에서


JR하카타시티 광장, 후쿠오카 시청 광장, 다이묘 가든시티 광장, 나카스, 텐진중앙공원, 구 공회당 귀빈관, 다이마루 백화점 파사주, 후쿠오카 공항, 총 여덟 개 구역에서 〈크리스마스 어드벤트〉가 열리고 있다. 공항을 빼고는 사실상 전부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여서 짧은 일정이라도 저마다의 분위기를 맛보기에는 충분하다.


e438536a1ffd4.png후쿠오카 〈크리스마스 어드벤트〉 스폿 정보 ⓒchristmas-advent.jp 제공 | 필자 번역


‘어드벤트’는 12월 25일 이전 4주 동안의 강림절을 뜻한다. 후쿠오카의 〈크리스마스 어드벤트〉는 딱히 종교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기보다는 ‘어드벤트 캘린더’에 착안한 축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58af8a0963196.jpg하카타역 앞 〈크리스마스 어드벤트〉 행사장에서


어드벤트 캘린더는 28개의 창을 낸 종이 혹은 나무 상자에 초콜릿이나 쿠키, 티백, 작은 장난감 등을 넣어둔 다음, 강림절 기간 매일 하나씩 열어서 즐기는 선물형 달력이다. 후쿠오카의 〈크리스마스 어드벤트〉 역시 매일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되는 축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f4ff11d5dbd48.jpgJR하카타시티 전경


규모 면에서 가장 압도적인 행사는 JR하카타시티 앞 광장에서 열린다. 후쿠오카 여행의 처음과 끝이자 쇼핑, 미식의 메카이기도 한 JR하카타시티는 평소에도 지하철과 신칸센을 이용하는 시민들로 북적인다. 거기에 역 앞뒤로 설치된 일루미네이션, 라이브 공연, 크리스마스 마켓 부스와 푸드코트까지 더해지니 그 드넓은 공간에 발 디딜 틈도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특유의 질서정연함과 곳곳에 배치된 진행요원 덕에 안전한 느낌이었다.


aa558883a1bf7.jpgJR하카타시티 앞 광장에 설치된 일루미네이션


산타나 루돌프, 요정 분장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점 직원들, 달착지근하면서도 톡 쏘는 와인 끓는 냄새, 실루엣 위에서 빛 망울이 터지는 유리공예품과 액세서리가 흥겨운 분위기를 고조한다. 산타 할아버지와 체형이 꼭 닮은 섭외 배우가 아이들의 환상을 한 해 더 지켜준다. 


df594b2ac66e2.jpgJR하카타시티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조명 구조물 앞에서 셀카를 찍으며 즐거워하는 친구, 가족, 연인의 표정에는 여러 의미에서 그림자 질 새가 없다. 당장은 혼잡함에 정신없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른 언젠가 불현듯 떠오를 시즌다운 풍경이다. 


a003bc9a9c4e5.jpg시민과 함께 축제를 즐기는 여러 매장의 직원들


한편 나카스에서는 한결 한적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나카스 빛의 어드벤트’라는 부제로 크리스마스 마켓과 일루미네이션이 츄오도리, 나카가와도리, 메이지도리 일대와 후쿠하쿠데아이 다리를 치장하고 있다.


4e35c54aa95e8.jpg나카스 빛의 어드벤트


강변 식당, 옥외 광고판, 유유히 떠가는 야카타후네(선상 식당)의 조명이 어른거리는 강물 위로 노란 크리스마스 전구가 쏟아지자 지금이 후쿠오카 여행의 절정이구나 싶다. 후쿠하쿠데아이 다리 위로 우뚝 솟은 빛의 트리 두 채,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웃음빛으로부터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이 돌아오는 듯하다.


6576ad9c30238.jpg나카스 강변


후쿠오카는 여행자를 이런 식으로 맞이한다. 도시도, 도시에서 열리는 축제도 어떤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엔 삭막해 보이던 건물들도 자꾸 눈도장을 찍다 보면 어쩐지 정감이 가고 시대를 훌쩍 뒤로 돌려놓는 마법을 부리듯이.


원래 그들의 문화가 아니었던 것도 그들 식으로 잘 버무린다. 이곳의 환상은 한두 평 남짓한 식당에서 묵묵히 도마를 치는 백발 요리사의 헤진 옷처럼 너무 눈부시거나 너무 요원하지 않다. 무슨 연유로 이렇게 크리스마스와 일루미네이션에 진심일까 궁금하긴 하지만, 그 이유가 중요하지도 않다. 어떤 동기에서든 열리기만 하면, 축제는 알아서 들썩들썩 춤을 춘다.


571693e81d08f.jpg나카스 빛의 어드벤트에서


나카스 산책의 마무리는 너무 유명해서 덧붙일 말도 필요 없는 야타이 거리에서 해도 좋고, 번듯한 쇼핑몰 캐널시티 하카타에서 맺어도 좋다. 내친김에 젊은이들이 골목골목 숨어 있는 텐진 쪽까지 내려가 이번엔 맥주에 진심인 브루어리를 찾아도 실패할 선택은 아니다.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일 거의 없는 후쿠오카답게 밤 산책은 크리스마스 열기로 포근하게 내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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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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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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