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의 중심에 마세나 광장(Place Masséna)이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그래요. 프롬나드 데 장글레를 만들기 시작할 무렵, 도시의 하천이었던 파이용(Paillon) 강 하구를 메워 마세나 광장과 주변 정원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북부의 아케이드 같은 파사드를 질서정연하게 앞세운 건물들이 ‘폼페이 레드(Pompeian red)’라고 불리는 색으로 단장해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매년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세계 3대 카니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니스 카니발’도 이 광장을 중심으로 열리고요.
마세나 광장
확 트인 공간, 어쩐지 체스 말이 된 기분이 드는 체크무늬 타일, 물방울에 비친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신 분수대, 멋진 몸매를 자랑하며 우뚝 선 아폴론 석상, 기둥 위에 얹혀 있다가 밤이면 색색으로 빛나는 스페인 작가 자우메 플렌사(Jaume Plensa)의 조형물. 고풍스러운 건물에 들어서 있는 덕에 브랜드의 이미지가 두 배는 더 고급스럽게 보이는 상점들도 있습니다. 마세나 광장은 니스의 화려함, 티 없이 성장한 문명의 증거처럼 보입니다.
아폴론이 서 있는 태양의 분수
그런데 아폴론이 서 있는 태양의 분수(Fontaine du Soleil)에서 고개를 돌리니 오래된 건물들이 벽처럼 서 있고 그 사이로 매혹적인 골목이 이어집니다. 그곳에는 여행자로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느껴지는 혼돈이 감돌고 있습니다. 니스의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여러 입구 중 하나입니다. 절로 발길이 그쪽으로 향합니다. 햇볕이 잘 들지 않고, 수많은 사람의 머리가 둥둥 떠다니고, 규칙이 없어 길을 잃을 것 같은 미로 속으로 자진해 들어가는 셈이지만, 멈출 수가 없습니다. 도시의 가장 오래된 흔적이 남아 있는 ‘구시가지’라는 공간은 그렇게 세이렌처럼 모두를 불러들입니다.
구시가지로
혼잡한 골목 속으로
이른바 니스의 ‘구시가지’라고 불리는 생트레파라트 대성당(Cathedrale Sainte-Reparate de Nice)과 그 일대는 16세기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습니다. 중세만 하더라도 니스 사람들은 전부 샤토 언덕(Colline du Chateau)이라고 불리는, 구시가지 동쪽에 있는 고지대에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샤토 언덕이 군사 요새로 재편되었고, 덕분에 바닷가 가까이 살아도 해적한테 습격당할 일은 적겠다 싶었는지 예배당과 시청을 비롯한 주요 시설들이 언덕 아래로 내려온 것이지요. 17세기에 들어 생트레파라트 대성당 등 더 많은 건물이 지어졌고, 마침 그때가 바로크 시대라 건축사에서도 꽤 화려한 축에 속하는 바로크 건축이 도심 풍경을 채웠습니다. 곡선이 강조되고 입체감이 강한 파사드, 화려한 기둥들, 디테일한 곳까지 채운 풍부한 장식 등 건물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보입니다.

아름다운 건축물들
사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았던 다세대주택은 그보다 소박하고, 덧창이라든가 현관이나 외벽에 남은 세월의 흔적이 상당합니다. 게다가 좁은 골목을 두고 높게 세워져 있어 거리에는 거의 햇볕이 들지 않지요. 보통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을 막기 위해 이렇게 그늘이 많이 생기도록 다닥다닥 붙여서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오래된 건물들도 중간중간 보이는 화려한 바로크 건축물의 아우라에 힘입어 초라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굳게 닫힌 창문과 거기에 어린 어둠이, 몇백 년 전부터 현재까지 그 안에서 살아갔을 모든 삶의 총체를 합해 놓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호기심이 일지요. 들여다보고, 보이지 않은 많은 것들을 상상하고 싶어집니다.


어떤 도시이든 ‘구시가지’라 부를 만한 곳이 있다면, 자연스레 여행자들의 발길은 그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완벽하게 테마 관광지로 바뀐 곳이 아니라면, 그 옛 도심 속에서도 터전을 마련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요. 실상 수압이 약하거나 화장실 물이 잘 안 내려가고, 일조량은 턱없이 적으며, 벌레와 (때로는 쥐까지) 벗 삼고 방음도 전혀 안 되는 환경이라고 해도 우리는 거기에 살 일이 없습니다. 그저 한가로이 산책하며 운치를 느끼고 축적된 세월을 단숨에 들이키며 낯선 곳을 여행하는 묘미 즐기는 것이지요. ‘이국적’이라는, 공간의 이동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귀한 감상을 맛보면서요.
구시가지 골목에서
게다가 구시가지에는 옛 건물에 무심하게 터를 낸 상점과 카페, 식당과 펍 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주인은 가족이나 스승의 역사를 이어온다는 자부심이 있을 테고, 어떤 주인은 원래 이 거리 태생이 아니었으나 옛 도심에 가없는 향수를 느끼고 무리한 임대료를 감수하면서까지 자리를 마련했을지 모릅니다. 뭐, 관광객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게 다시없는 수익 사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을 테고요. 아무튼 그런 장소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기에, 이곳도 가 보고 싶고 저곳도 가 보고 싶고, 다소 복잡한 구시가지의 골목을 자꾸 헤매게 됩니다.
인기 좋은 테이크 아웃 전문점
그러다가 젤라토 아이스크림도 사 먹게 되고, 다리가 너무 힘드니까 생맥주 한 잔에 테라스 자리에서 쉬어가기도 하고, 향신료 가게에서 허브로 풍미를 낸 소금 몇 병을 사 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외지인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에도 삶은 이어지고 있다는 걸 방증하듯, 문을 연 지 수십 년은 됐을 것 같은 정육점과 청과점에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 요리가 가능한 숙소에 머물렀다면, 저도 분명 그 줄 끝에 서서 다들 어떤 고기를 사나 열심히 눈치를 보았을 겁니다. 다른 도시의 구시가지들이 그렇듯, 니스의 구시가지 역시 일상과 탈일상의 양극이 부딪히고 뒤섞이며 ‘역사 지구’라는 진중한 단어로도 누를 수 없는 활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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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스의 아이리시 펍에서 |
다시 정돈된 문명 속으로

생트레파라트 대성당 광장
니스에 여행 온 사람 절반은 바닷가에 있고, 절반은 여기 구시가지에 있기라도 한 듯 인파가 점점 늘어납니다. 특히 구시가지의 중심지인 생트레파라트 대성당 광장은 보행자와 레스토랑 테라스 착석자들이 뒤엉켜 항상 붐비지요. 니스의 수호성인인 성녀 레파라타(Sainte Reparate)에게 봉헌된 생트레파라트 대성당은 17세기에 지어졌고,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스투코 장식과 조각, 천장화가 가득합니다. 성당 안은 비교적 한산하네요. 그래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그들이 니스 시민들인지 여행자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만, 세계 곳곳에 있는 여러 창구 중 하나에서 이렇듯 단일한 존재를 만나려 하는 마음의 작동 방식에는 미묘한 감동을 느낍니다. 집에서 8,000km 이상 떨어진 도시에서 이곳의 생활과 제 생활의 흔적을 비교하고 맞대어 보고자 애쓰는 일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도 같고요.
생트레파라트 대성당
생트레파라트 대성당에서 해변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구시가지의 또 다른 명소인 야외 시장이 나타납니다. 쿠르 살레야(Cours Saleya)에는 보통 꽃시장과 식료품 시장이 열리는데요, 월요일만은 특별하게 골동품 시장, 벼룩시장이 열린답니다. 천막에 남프랑스다운 줄무늬 차양을 내려뜨린 노점들을 보다 보니 일주일에 6일을 꽃시장으로 운영할 만큼 꽃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거구나, 무릎을 치게 됩니다. 이곳은 오전 9시에 열어 오후 1시면 철수를 하기 때문에 일찍 방문해야 합니다. 골동품 시장이 열리는 월요일도 시간이 맞으면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은식기, 장신구들이 햇살에 화려하게 반짝이는데, 그게 꼭 니스 바다의 윤슬을 닮았습니다. 제 말이 얼마나 과장인지는 직접 보시면서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시장 풍경은 꽃시장일 때가 더 아름답기는 합니다.
골동품 시장일 때, 꽃시장일 때, 그리고 시장이 열리지 않을 때 더 붐비는 쿠르 살레야
마침 쿠르 살레야 뒤로 사진 미술관(Musee de la Photographie Charles Negre)도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네덜란드의 작가 저스틴 트얄링크스(Justine Tjallinks)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작품을 언뜻 보면 그림이 아닌가 싶은데, 사실 사진입니다. 그는 네덜란드 회화에 영감을 받아 사진을 촬영한다고 하는데요, 차분하면서도 도드라지는 색채, 풍부한 디테일, 빛의 절묘한 활용으로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모델을 촬영한 초상화인데, 우리가 렘브란트 등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작품에서 보는 등장인물처럼 분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메이크업부터 의상, 소품까지 전부 작가가 연출한 것이라고 하네요. 게다가 그저 회화 같은 사진을 찍은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전통적인 미의 규범을 벗어나 인물의 불완전함을 강조하고, 거기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묵직한 주제 의식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곳이 구시가지이고 제가 지금 여행 중이라는 사실까지 모두 잊을 만큼 강렬한 전시였습니다.


전시를 감상하고 나자 다소 현실감각이 떨어졌지만, 저녁 일정을 위해 길을 재촉합니다. 여전히 복잡한 골목과 사람들 사이를 뚫고, 저기는 나중에 다시 와서 가야지 체크도 하면서 걷다 보니, 가리발디 광장이 나타납니다. 구시가지보다 늦은 18세기, 철저한 도시 계획 하에 조성된 곳으로서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에 통일성이 있어서 마치 광장 자체가 하나의 건축물처럼 보이는 곳입니다. 완벽한 질서. 이곳에도 사람은 많지만, 현대적이기까지 한 광장의 화려함이 구시가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곳이 ‘휴양 도시’ 니스라는 감각이 돌아옵니다. 마세나 광장에서 시작해 가리발디 광장으로 맺은 구시가지 산책이 끝난 것입니다.

가리발디 광장에서 열린 벼룩시장
그래도 아쉽진 않습니다. 니스에 머무는 한, 저 이국적인 혼돈 속으로 매일매일 들어가게 될 테니까요. 도시 본래의 삶이 있고, 각자 자신의 집에서 가져온 삶의 조각이 쉴 새 없이 거기에 맞춰졌다가 떨어지는 다이내믹한 광경은 중독적입니다. 여러 날이 지나다 보면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질 만큼 미로도 익숙해질 겁니다. 낯설어 보이던 골목도 ‘아는 골목’이 되겠죠. 그럼에도 니스에서 하루라도 바다를 보지 않는 날이 없는 것처럼 날마다 구시가지로 이어지는 발길 또한 멈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취재 협조 | 프랑스 관광청,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관광청
글·사진 |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litt.ly/ecrire_lire_vivre
니스의 중심에 마세나 광장(Place Masséna)이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그래요. 프롬나드 데 장글레를 만들기 시작할 무렵, 도시의 하천이었던 파이용(Paillon) 강 하구를 메워 마세나 광장과 주변 정원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북부의 아케이드 같은 파사드를 질서정연하게 앞세운 건물들이 ‘폼페이 레드(Pompeian red)’라고 불리는 색으로 단장해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매년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세계 3대 카니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니스 카니발’도 이 광장을 중심으로 열리고요.
확 트인 공간, 어쩐지 체스 말이 된 기분이 드는 체크무늬 타일, 물방울에 비친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신 분수대, 멋진 몸매를 자랑하며 우뚝 선 아폴론 석상, 기둥 위에 얹혀 있다가 밤이면 색색으로 빛나는 스페인 작가 자우메 플렌사(Jaume Plensa)의 조형물. 고풍스러운 건물에 들어서 있는 덕에 브랜드의 이미지가 두 배는 더 고급스럽게 보이는 상점들도 있습니다. 마세나 광장은 니스의 화려함, 티 없이 성장한 문명의 증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아폴론이 서 있는 태양의 분수(Fontaine du Soleil)에서 고개를 돌리니 오래된 건물들이 벽처럼 서 있고 그 사이로 매혹적인 골목이 이어집니다. 그곳에는 여행자로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느껴지는 혼돈이 감돌고 있습니다. 니스의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여러 입구 중 하나입니다. 절로 발길이 그쪽으로 향합니다. 햇볕이 잘 들지 않고, 수많은 사람의 머리가 둥둥 떠다니고, 규칙이 없어 길을 잃을 것 같은 미로 속으로 자진해 들어가는 셈이지만, 멈출 수가 없습니다. 도시의 가장 오래된 흔적이 남아 있는 ‘구시가지’라는 공간은 그렇게 세이렌처럼 모두를 불러들입니다.
혼잡한 골목 속으로
이른바 니스의 ‘구시가지’라고 불리는 생트레파라트 대성당(Cathedrale Sainte-Reparate de Nice)과 그 일대는 16세기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습니다. 중세만 하더라도 니스 사람들은 전부 샤토 언덕(Colline du Chateau)이라고 불리는, 구시가지 동쪽에 있는 고지대에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샤토 언덕이 군사 요새로 재편되었고, 덕분에 바닷가 가까이 살아도 해적한테 습격당할 일은 적겠다 싶었는지 예배당과 시청을 비롯한 주요 시설들이 언덕 아래로 내려온 것이지요. 17세기에 들어 생트레파라트 대성당 등 더 많은 건물이 지어졌고, 마침 그때가 바로크 시대라 건축사에서도 꽤 화려한 축에 속하는 바로크 건축이 도심 풍경을 채웠습니다. 곡선이 강조되고 입체감이 강한 파사드, 화려한 기둥들, 디테일한 곳까지 채운 풍부한 장식 등 건물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보입니다.
아름다운 건축물들
사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았던 다세대주택은 그보다 소박하고, 덧창이라든가 현관이나 외벽에 남은 세월의 흔적이 상당합니다. 게다가 좁은 골목을 두고 높게 세워져 있어 거리에는 거의 햇볕이 들지 않지요. 보통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을 막기 위해 이렇게 그늘이 많이 생기도록 다닥다닥 붙여서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오래된 건물들도 중간중간 보이는 화려한 바로크 건축물의 아우라에 힘입어 초라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굳게 닫힌 창문과 거기에 어린 어둠이, 몇백 년 전부터 현재까지 그 안에서 살아갔을 모든 삶의 총체를 합해 놓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호기심이 일지요. 들여다보고, 보이지 않은 많은 것들을 상상하고 싶어집니다.
어떤 도시이든 ‘구시가지’라 부를 만한 곳이 있다면, 자연스레 여행자들의 발길은 그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완벽하게 테마 관광지로 바뀐 곳이 아니라면, 그 옛 도심 속에서도 터전을 마련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요. 실상 수압이 약하거나 화장실 물이 잘 안 내려가고, 일조량은 턱없이 적으며, 벌레와 (때로는 쥐까지) 벗 삼고 방음도 전혀 안 되는 환경이라고 해도 우리는 거기에 살 일이 없습니다. 그저 한가로이 산책하며 운치를 느끼고 축적된 세월을 단숨에 들이키며 낯선 곳을 여행하는 묘미 즐기는 것이지요. ‘이국적’이라는, 공간의 이동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귀한 감상을 맛보면서요.
구시가지 골목에서
게다가 구시가지에는 옛 건물에 무심하게 터를 낸 상점과 카페, 식당과 펍 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주인은 가족이나 스승의 역사를 이어온다는 자부심이 있을 테고, 어떤 주인은 원래 이 거리 태생이 아니었으나 옛 도심에 가없는 향수를 느끼고 무리한 임대료를 감수하면서까지 자리를 마련했을지 모릅니다. 뭐, 관광객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게 다시없는 수익 사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을 테고요. 아무튼 그런 장소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기에, 이곳도 가 보고 싶고 저곳도 가 보고 싶고, 다소 복잡한 구시가지의 골목을 자꾸 헤매게 됩니다.
그러다가 젤라토 아이스크림도 사 먹게 되고, 다리가 너무 힘드니까 생맥주 한 잔에 테라스 자리에서 쉬어가기도 하고, 향신료 가게에서 허브로 풍미를 낸 소금 몇 병을 사 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외지인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에도 삶은 이어지고 있다는 걸 방증하듯, 문을 연 지 수십 년은 됐을 것 같은 정육점과 청과점에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 요리가 가능한 숙소에 머물렀다면, 저도 분명 그 줄 끝에 서서 다들 어떤 고기를 사나 열심히 눈치를 보았을 겁니다. 다른 도시의 구시가지들이 그렇듯, 니스의 구시가지 역시 일상과 탈일상의 양극이 부딪히고 뒤섞이며 ‘역사 지구’라는 진중한 단어로도 누를 수 없는 활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시 정돈된 문명 속으로
니스에 여행 온 사람 절반은 바닷가에 있고, 절반은 여기 구시가지에 있기라도 한 듯 인파가 점점 늘어납니다. 특히 구시가지의 중심지인 생트레파라트 대성당 광장은 보행자와 레스토랑 테라스 착석자들이 뒤엉켜 항상 붐비지요. 니스의 수호성인인 성녀 레파라타(Sainte Reparate)에게 봉헌된 생트레파라트 대성당은 17세기에 지어졌고,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스투코 장식과 조각, 천장화가 가득합니다. 성당 안은 비교적 한산하네요. 그래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그들이 니스 시민들인지 여행자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만, 세계 곳곳에 있는 여러 창구 중 하나에서 이렇듯 단일한 존재를 만나려 하는 마음의 작동 방식에는 미묘한 감동을 느낍니다. 집에서 8,000km 이상 떨어진 도시에서 이곳의 생활과 제 생활의 흔적을 비교하고 맞대어 보고자 애쓰는 일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도 같고요.
생트레파라트 대성당
생트레파라트 대성당에서 해변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구시가지의 또 다른 명소인 야외 시장이 나타납니다. 쿠르 살레야(Cours Saleya)에는 보통 꽃시장과 식료품 시장이 열리는데요, 월요일만은 특별하게 골동품 시장, 벼룩시장이 열린답니다. 천막에 남프랑스다운 줄무늬 차양을 내려뜨린 노점들을 보다 보니 일주일에 6일을 꽃시장으로 운영할 만큼 꽃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거구나, 무릎을 치게 됩니다. 이곳은 오전 9시에 열어 오후 1시면 철수를 하기 때문에 일찍 방문해야 합니다. 골동품 시장이 열리는 월요일도 시간이 맞으면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은식기, 장신구들이 햇살에 화려하게 반짝이는데, 그게 꼭 니스 바다의 윤슬을 닮았습니다. 제 말이 얼마나 과장인지는 직접 보시면서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시장 풍경은 꽃시장일 때가 더 아름답기는 합니다.
골동품 시장일 때, 꽃시장일 때, 그리고 시장이 열리지 않을 때 더 붐비는 쿠르 살레야
마침 쿠르 살레야 뒤로 사진 미술관(Musee de la Photographie Charles Negre)도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네덜란드의 작가 저스틴 트얄링크스(Justine Tjallinks)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작품을 언뜻 보면 그림이 아닌가 싶은데, 사실 사진입니다. 그는 네덜란드 회화에 영감을 받아 사진을 촬영한다고 하는데요, 차분하면서도 도드라지는 색채, 풍부한 디테일, 빛의 절묘한 활용으로 놀라운 작품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모델을 촬영한 초상화인데, 우리가 렘브란트 등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작품에서 보는 등장인물처럼 분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메이크업부터 의상, 소품까지 전부 작가가 연출한 것이라고 하네요. 게다가 그저 회화 같은 사진을 찍은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전통적인 미의 규범을 벗어나 인물의 불완전함을 강조하고, 거기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묵직한 주제 의식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곳이 구시가지이고 제가 지금 여행 중이라는 사실까지 모두 잊을 만큼 강렬한 전시였습니다.
전시를 감상하고 나자 다소 현실감각이 떨어졌지만, 저녁 일정을 위해 길을 재촉합니다. 여전히 복잡한 골목과 사람들 사이를 뚫고, 저기는 나중에 다시 와서 가야지 체크도 하면서 걷다 보니, 가리발디 광장이 나타납니다. 구시가지보다 늦은 18세기, 철저한 도시 계획 하에 조성된 곳으로서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에 통일성이 있어서 마치 광장 자체가 하나의 건축물처럼 보이는 곳입니다. 완벽한 질서. 이곳에도 사람은 많지만, 현대적이기까지 한 광장의 화려함이 구시가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곳이 ‘휴양 도시’ 니스라는 감각이 돌아옵니다. 마세나 광장에서 시작해 가리발디 광장으로 맺은 구시가지 산책이 끝난 것입니다.
그래도 아쉽진 않습니다. 니스에 머무는 한, 저 이국적인 혼돈 속으로 매일매일 들어가게 될 테니까요. 도시 본래의 삶이 있고, 각자 자신의 집에서 가져온 삶의 조각이 쉴 새 없이 거기에 맞춰졌다가 떨어지는 다이내믹한 광경은 중독적입니다. 여러 날이 지나다 보면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질 만큼 미로도 익숙해질 겁니다. 낯설어 보이던 골목도 ‘아는 골목’이 되겠죠. 그럼에도 니스에서 하루라도 바다를 보지 않는 날이 없는 것처럼 날마다 구시가지로 이어지는 발길 또한 멈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취재 협조 | 프랑스 관광청,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관광청
글·사진 |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litt.ly/ecrire_lire_viv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