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때부터라고 합니다. 나는 언제 죽는가? 누가 나를 죽게 할 것인가?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생각이 바뀝니다.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소설 『관촌수필』을 쓴 이문구 작가의 회고입니다.
한국전쟁 전후 상대 이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겁박하고 멸시하던 무자비한 폭력의 시절, 아버지와 형들의 생명도 시대가 거두어 갔습니다. 누구든, 언제든 자신의 목숨마저 거두어 갈 수 있다는 공포를 견디게 해 주었던 건 책이었습니다. 중고 서점에서, 친구 집에서, 시든 소설이든 사상서든, 그는 손에 닿는 대로 문자를 탐했습니다.
소설가 이문구
가릴 것 없는 난독의 여정에서 그는 작가가 되면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학인이라는 이유로 죽었다 살아나는 경우를 똑똑히 보았던 거지요. 그는 당대의 거장, 문단 최고 권력자 김동리의 제자가 되고, 그의 추천으로 소설가가 됩니다.
이문구의 연작 소설집 『관촌수필』
충남 보령시 대천2동 관촌마을. 소설 『관촌수필』의 배경이자 이문구 작가가 태어나 열여덟 해를 보낸 마을입니다. “읍내 복판에서 보통 걸음으로 10분이면 닿던” 동네, 뒷동산 부엉재에 오르면 “방파제 곁으로 장한선 철로가 끝간 데 없고, 철로와 나란히 자갈마다 뽀안 신작로가” 읍내로 향하고, 4백 년 된 왕소나무가 마을 입구를 지켜주던 동네.
보령 터미널에서 뻘이 깔린 남대천 다리를 넘으면 곧장 보령 시장과 한내 시장 사이 길로 접어듭니다. 한내, 대천大川의 우리말이지요. 보령에 왔으니 해물칼국수를 먹어볼까 합니다. 굴, 바지락, 박대, 한내 시장 좌판을 곁눈질하며 눈짐작으로 적당한 가게를 골라잡고서 해물칼국수 한 그릇을 마시듯 비웁니다.
한내 시장
걸어서 30분이면 끝에서 끝으로 닿는 시내, 이문구 작가의 자료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보령 문학관부터 들르지만, 무슨 사연일까요, 이름 석 자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안내인께 여쭈니 마침 대천2동장을 역임하셨다는 노 선생님께서 유족과의 합의 문제로 인해 그렇게 됐다며, 깊은 사연은 말하기가 어렵다는 듯 난처한 미소를 지으십니다. 폭력의 시절은 보이지 않는 여진을 여직 남겨둔 모양입니다.
관촌마을 산책 안내도
관촌마을 산책은 마을 입구 주유소에서 시작됩니다. 한내 문학회에서 세운 관촌마을 비는 주유소 담벼락 옆에 숨겨져 있는데, 지자체와의 협의가 잘 되지 않아 땅 주인이 그냥 자기 땅에다 세우자고 하여 그렇게 숨겨지듯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뒷동산으로 오르는 길 입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소나무 숲은 또 그 위 세워진 아파트의 단지 내 공원처럼 안겨 있습니다. 언덕에 오르다 가장 먼저 칠성바위가 있던 자리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납니다.



관촌마을 비에서 칠성바위 있던 자리까지
“조금도 요동하지 않는 바위라서일까. 태고로부터 북두칠성과 똑같은 위치로 배치되어 앉았던 일곱 덩이 바위는 한결같이 옛날 그대로 제자리들을 지키고 있었다.” 황소바위, 두꺼비바위, 범바위. 호랑이가 누운 모습을 한 범바위 아래에는 할아버지의 헛무덤이 있었습니다. “해 길어 무료함에 지치던 봄날이면 지팡이를 의지해 홀로 칠성바위에 나섰고, 구부정한 허리를 두들기면서 장차 당신이 영원히 누울 유택을 보살피며”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그윽하게 내려다보셨다지요.
하지만 자연의 그 어떤 풍상고초에도 영원처럼 누워 있을 줄 알았던 바위는 머잖아 포클레인 갈퀴에 속절없이 사라지고 이제 흙무더기만 남아 해묵은 낙엽을 재우고 있습니다. 바위와 나는 사구일생, 한 몸이라는 할아버지 말씀처럼 바위도 인간도 스스럼없이 지워지고 사라지는 한 묶음 현상이지요.

부엉재에서
부엉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오로지 소설 속에만 온전합니다. 조수가 드나들어 빈궁한 시기에도 끼니 걱정 덜어 주던 갯벌은 메워져 농지가 되었고, 장항선 철로는 고가가 되어 들판 저 멀리 매달려 있습니다. 마당에 피던 모란과 매화, 매실나무, 치자나무, 가지가 휘어지게 열매를 달아주던 감나무, 대추나무. 이제 어느 마당 누구 손에 열매를 쥐여 줄까 싶지만, 관촌마을 어느 마당에도 어엿한 나무 그늘 하나 드리우기 힘에 부쳐 보입니다.
소나무 숲에 들어가 며칠 전 폭설에 덜 마른 벤치에 앉아 이문구 작가와 처음 살을 맞대 봅니다. 사실 『관촌수필』을 쓴 것도 다 살아남기 위한 변통이었습니다. 가족사가 문제가 될 사태를 대비하여 자기 손으로 먼저 공개해 버린 것이지요. 이렇게 해 두면 조작이 불가능할 테니, 나 이런 사람이다, 어쩔래, 하고 선수를 쳐 봤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들의 해원 의식을 치르는 절박한 마음으로 소설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가족들을 떠나보낸 관촌마을로 돌아와 소나무 숲과 한 몸이 되었습니다. 지금쯤 어느 가지, 어느 벤치에 닿아 옹점, 대복, 준배, 진현 동무들과 박대 껍질 말린 깡통 악기를 두드리며 ‘황하다방’ 한 곡조를 읊조리고 있을까요.


소나무 숲
『관촌수필』 앞 편은 착색된 기억, 동화의 세계입니다. 후편은 현실의 세계, 매몰차고 억압적인 체제에 몰려 해체되어 가는 동화의 세계를 그립니다. 소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각색한 동화를 품고 관촌마을 부엉재에 오르지만, 서 있는 곳은 여실히 현실입니다. 무성의하고, 황량하고, 심심하지만, 때로 잔인한 현실.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 보면 번번이 빛바랜 동화, 날 선 대화와 마주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차곡차곡 동화로 각색되고 있으니까요. 살아있는 한, 모든 과거는 동화가 됩니다.



관촌마을 곳곳의 풍경
관촌마을을 떠나 보령 유일 포장마차촌으로 갑니다. 안주 일체, 재료만 싱싱하다면 원하는 무엇이든 만들어 주는 어머니 한 상 주점들입니다. 40년이나 됐다고 하네요. 굴이 제철이니 생굴과 굴전을 주문하고 기본 반찬으로 나온 동그랑땡, 김무침, 오이무침으로 막걸리 한 병을 비웁니다. 대천해수욕장으로 가려던 마음을 오래오래 묵혀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행선지는 대천해수욕장.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며 휴양지로 개발된 곳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대복이가 미군 상대로 돈을 벌어보려 드나들기도 했지요. 겨울의 대천 하면 역시 조개구이지요. 같은 목적으로 방문한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들 중 하나를 따라가 볼까 싶기도 하지만, 해변은 너무나 넓고 해변 따라 조개구이집도 너무나 많고, 급할 건 없습니다. 충청도식 유머대로 내일 먹을 식사를 위해 하루 일찍 온 셈 치면 되니까요. 적당한 곳을 찾게 되면 급한 마음에 어제 왔슈, 하고 말할 수 있을지는, 아마 안 될 것 같습니다.

폭설 내리던 날의 대천해수욕장
글·사진 | 이주호

브릭스 매거진의 편집장.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 『노자가 사는 집』 『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등을 썼다.
열 살 때부터라고 합니다. 나는 언제 죽는가? 누가 나를 죽게 할 것인가?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생각이 바뀝니다.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소설 『관촌수필』을 쓴 이문구 작가의 회고입니다.
한국전쟁 전후 상대 이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겁박하고 멸시하던 무자비한 폭력의 시절, 아버지와 형들의 생명도 시대가 거두어 갔습니다. 누구든, 언제든 자신의 목숨마저 거두어 갈 수 있다는 공포를 견디게 해 주었던 건 책이었습니다. 중고 서점에서, 친구 집에서, 시든 소설이든 사상서든, 그는 손에 닿는 대로 문자를 탐했습니다.
가릴 것 없는 난독의 여정에서 그는 작가가 되면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학인이라는 이유로 죽었다 살아나는 경우를 똑똑히 보았던 거지요. 그는 당대의 거장, 문단 최고 권력자 김동리의 제자가 되고, 그의 추천으로 소설가가 됩니다.
충남 보령시 대천2동 관촌마을. 소설 『관촌수필』의 배경이자 이문구 작가가 태어나 열여덟 해를 보낸 마을입니다. “읍내 복판에서 보통 걸음으로 10분이면 닿던” 동네, 뒷동산 부엉재에 오르면 “방파제 곁으로 장한선 철로가 끝간 데 없고, 철로와 나란히 자갈마다 뽀안 신작로가” 읍내로 향하고, 4백 년 된 왕소나무가 마을 입구를 지켜주던 동네.
보령 터미널에서 뻘이 깔린 남대천 다리를 넘으면 곧장 보령 시장과 한내 시장 사이 길로 접어듭니다. 한내, 대천大川의 우리말이지요. 보령에 왔으니 해물칼국수를 먹어볼까 합니다. 굴, 바지락, 박대, 한내 시장 좌판을 곁눈질하며 눈짐작으로 적당한 가게를 골라잡고서 해물칼국수 한 그릇을 마시듯 비웁니다.
걸어서 30분이면 끝에서 끝으로 닿는 시내, 이문구 작가의 자료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보령 문학관부터 들르지만, 무슨 사연일까요, 이름 석 자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안내인께 여쭈니 마침 대천2동장을 역임하셨다는 노 선생님께서 유족과의 합의 문제로 인해 그렇게 됐다며, 깊은 사연은 말하기가 어렵다는 듯 난처한 미소를 지으십니다. 폭력의 시절은 보이지 않는 여진을 여직 남겨둔 모양입니다.
관촌마을 산책은 마을 입구 주유소에서 시작됩니다. 한내 문학회에서 세운 관촌마을 비는 주유소 담벼락 옆에 숨겨져 있는데, 지자체와의 협의가 잘 되지 않아 땅 주인이 그냥 자기 땅에다 세우자고 하여 그렇게 숨겨지듯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뒷동산으로 오르는 길 입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소나무 숲은 또 그 위 세워진 아파트의 단지 내 공원처럼 안겨 있습니다. 언덕에 오르다 가장 먼저 칠성바위가 있던 자리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납니다.
관촌마을 비에서 칠성바위 있던 자리까지
“조금도 요동하지 않는 바위라서일까. 태고로부터 북두칠성과 똑같은 위치로 배치되어 앉았던 일곱 덩이 바위는 한결같이 옛날 그대로 제자리들을 지키고 있었다.” 황소바위, 두꺼비바위, 범바위. 호랑이가 누운 모습을 한 범바위 아래에는 할아버지의 헛무덤이 있었습니다. “해 길어 무료함에 지치던 봄날이면 지팡이를 의지해 홀로 칠성바위에 나섰고, 구부정한 허리를 두들기면서 장차 당신이 영원히 누울 유택을 보살피며”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그윽하게 내려다보셨다지요.
하지만 자연의 그 어떤 풍상고초에도 영원처럼 누워 있을 줄 알았던 바위는 머잖아 포클레인 갈퀴에 속절없이 사라지고 이제 흙무더기만 남아 해묵은 낙엽을 재우고 있습니다. 바위와 나는 사구일생, 한 몸이라는 할아버지 말씀처럼 바위도 인간도 스스럼없이 지워지고 사라지는 한 묶음 현상이지요.
부엉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오로지 소설 속에만 온전합니다. 조수가 드나들어 빈궁한 시기에도 끼니 걱정 덜어 주던 갯벌은 메워져 농지가 되었고, 장항선 철로는 고가가 되어 들판 저 멀리 매달려 있습니다. 마당에 피던 모란과 매화, 매실나무, 치자나무, 가지가 휘어지게 열매를 달아주던 감나무, 대추나무. 이제 어느 마당 누구 손에 열매를 쥐여 줄까 싶지만, 관촌마을 어느 마당에도 어엿한 나무 그늘 하나 드리우기 힘에 부쳐 보입니다.
소나무 숲에 들어가 며칠 전 폭설에 덜 마른 벤치에 앉아 이문구 작가와 처음 살을 맞대 봅니다. 사실 『관촌수필』을 쓴 것도 다 살아남기 위한 변통이었습니다. 가족사가 문제가 될 사태를 대비하여 자기 손으로 먼저 공개해 버린 것이지요. 이렇게 해 두면 조작이 불가능할 테니, 나 이런 사람이다, 어쩔래, 하고 선수를 쳐 봤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들의 해원 의식을 치르는 절박한 마음으로 소설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가족들을 떠나보낸 관촌마을로 돌아와 소나무 숲과 한 몸이 되었습니다. 지금쯤 어느 가지, 어느 벤치에 닿아 옹점, 대복, 준배, 진현 동무들과 박대 껍질 말린 깡통 악기를 두드리며 ‘황하다방’ 한 곡조를 읊조리고 있을까요.
『관촌수필』 앞 편은 착색된 기억, 동화의 세계입니다. 후편은 현실의 세계, 매몰차고 억압적인 체제에 몰려 해체되어 가는 동화의 세계를 그립니다. 소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각색한 동화를 품고 관촌마을 부엉재에 오르지만, 서 있는 곳은 여실히 현실입니다. 무성의하고, 황량하고, 심심하지만, 때로 잔인한 현실.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 보면 번번이 빛바랜 동화, 날 선 대화와 마주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차곡차곡 동화로 각색되고 있으니까요. 살아있는 한, 모든 과거는 동화가 됩니다.
관촌마을을 떠나 보령 유일 포장마차촌으로 갑니다. 안주 일체, 재료만 싱싱하다면 원하는 무엇이든 만들어 주는 어머니 한 상 주점들입니다. 40년이나 됐다고 하네요. 굴이 제철이니 생굴과 굴전을 주문하고 기본 반찬으로 나온 동그랑땡, 김무침, 오이무침으로 막걸리 한 병을 비웁니다. 대천해수욕장으로 가려던 마음을 오래오래 묵혀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행선지는 대천해수욕장.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며 휴양지로 개발된 곳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대복이가 미군 상대로 돈을 벌어보려 드나들기도 했지요. 겨울의 대천 하면 역시 조개구이지요. 같은 목적으로 방문한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들 중 하나를 따라가 볼까 싶기도 하지만, 해변은 너무나 넓고 해변 따라 조개구이집도 너무나 많고, 급할 건 없습니다. 충청도식 유머대로 내일 먹을 식사를 위해 하루 일찍 온 셈 치면 되니까요. 적당한 곳을 찾게 되면 급한 마음에 어제 왔슈, 하고 말할 수 있을지는, 아마 안 될 것 같습니다.
글·사진 | 이주호
브릭스 매거진의 편집장.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 『노자가 사는 집』 『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