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가 예술 작품으로 - 제주 재주도좋아

2024-02-28

제주답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 한림읍으로 향합니다.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음력 2월 초하룻날 제주를 찾을 때, 이곳 귀덕리의 복덕개 포구로 들어온다고 하지요. 덕분에 바람길도 아주 잘 들은 게 분명합니다.


곧 아담한 단층 건물이 나타납니다. ‘재주도좋아’에서 운영하는 ‘반짝반짝 지구상회’입니다. 구옥인데 주택은 아니겠다 싶었더니, 옛 ‘신서동 마을회관’을 새롭게 꾸민 공간이라고 합니다. 오늘 ‘반짝반짝 지구상회’에서는 특별한 액자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d34c31283f983.jpg재주도좋아에서 운영하는 '반짝반짝 지구상회'


보름 동안 제주 곳곳을 구경하고 땅과 바다에 씨앗을 잔뜩 뿌려 섬을 풍요롭게 한다는 영등할망. 하지만 최근 이삼십 년간은 발밑에 밟히는 바다와 해변이 까끌까끌, 푸석푸석하지 않으셨나 모르겠습니다. 바다 쓰레기 때문이지요.


플라스틱, 스티로폼, 유리병과 폐그물 따위의 어업 폐기물은 썩지도 않고 바다를 떠돕니다. 일부는 해변으로 밀려오고 일부는 저들끼리 섬을 이루지요. 그러다가 물고기나 어패류를 통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바다에 버리거나, 버려진 걸 보고도 외면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안일함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지요.


b98b8abf004a0.jpg95fc3d50df296.jpg해변의 바다 유리, 비양도 비치코밍 중 나온 바다 쓰레기 / 재주도좋아 제공


재주도좋아는 이런 바다 쓰레기를 예술로 풀어나가는 문화예술 단체입니다. 비치코밍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Beach(해변)와 Combing(빗질)의 합성어인 ‘비치코밍(Beachcombing)’은 해변에 떠밀려온 표류물을 줍는 행위를 말합니다. 재주도좋아에서는 그 표류물 중 쓰레기를 주워서 작품을 만들거나 수업 재료로 활용합니다. 헝클어진 머리를 빗질로 정리하듯 모래밭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b9e6408063493.jpgcdde6e0577cc9.jpg비치코밍 중에 / 재주도좋아 제공


“재주도좋아의 공동 운영진 여섯 명은 2012년 해녀학교에서 만났어요. 물질을 배우며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에 푹 빠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닷속에 해양 쓰레기가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dc3cb3e9b7903.jpge331be8ead680.jpg재주도좋아를 운영하는 멤버들 / 재주도좋아 제공


해녀학교에서 만난 여섯 친구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다음 해인 2013년, 재주도좋아를 설립했습니다. 처음 5년간은 매년 우선하여 치워야 할 쓰레기를 정하고, 그것을 재료로 창작 활동을 벌여 전시를 열었습니다. 많은 창작자들이 여기에 참여했고요.


7832df0301cdd.jpg재주도좋아에서 연 전시들 / 재주도좋아 제공


오늘 반짝반짝 지구상회에서 만들 유리 액자도 바다에 버려진 유리병과 깨진 유리 조각이 재료입니다. 맨들맨들한 재료들을 들여다보면 이게 정말 유리병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기도 합니다.


“대부분 초록색이나 갈색이지요? 소주나 맥주, 탄산음료 병이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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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재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유리 조각을 안전한 상태로 처리해야 합니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을 재주도좋아 분들이 용도에 맞게 일일이 유리 가위로 잘라서 크기를 맞추는데, 힘이 꽤 들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나온 조각을 가마에 넣고 800도 전후의 열로 천천히 녹이고 천천히 식힙니다. 이 과정에만 거의 하루가 걸린다고 하는데, 그래야 반들반들 만져도 안전한 재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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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deaa1f33932.jpg유리 조각을 다듬고 가마에 굽는 과정


이제 본격적으로 액자를 만들어 봅니다. 방법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조각으로 체험자가 원하는 그림을 만들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돌고래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제주도를 만들었습니다. 최소한의 재료로 물고기와 문어가 함께 노니는 바닷속을 표현한 사람도 있군요. 재료만 적절하게 찾을 수 있으면 간단한 글씨를 구성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조각을 잘 만져보면 한쪽 면이 편평해요. 그 면을 바닥으로 두면 돼요. 아주 작은 조각만 다른 조각 위에 올릴 수 있는데, 이렇게 작은 유리구슬 같은 건 보통 눈으로 쓰세요.”


3ec638c08a554.jpg'반짝반짝 지구상회'에 전시된 유리 액자와 반지, 브로치 등의 제품들


떠오르는 그림이 없다면 가장 예뻐 보이는 조각만 골라 늘어놓아도 보기에 좋습니다.


그림을 얼추 완성했다면 이제 유리판에 재료를 붙일 차례입니다. 이때 UV 본드를 사용합니다. 평소엔 투명한 액체이지만, 자외선에 노출하면 강한 접착력이 생긴다고 합니다. 주로 유리끼리 접합하는 데 사용되는데요, 볕이 좋은 날에는 그냥 바깥에 놔둬도 되지만 오늘은 바람이 세고 날도 흐리니 따로 준비된 조명 박스에 넣어두기로 합니다. 경화되기 전까지는 미끌미끌해서 접착제를 바르고 유리판 위에 놓을 때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6e4d112cdd027.jpg2b7ffe5a489ce.jpg14a4af8e3a6f6.jpgd6fe30447c5b1.jpg'반짝반짝 지구상회'를 둘러보며


액자가 완성되는 동안 반짝반짝 지구상회를 둘러봅니다. 유리 조각으로 만든 반지, 브로치, 탁상용 소품 등이 가게 이름 그대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그중 PVC 쓰레기를 활용해 만든 LP가 눈에 띕니다. 재주도좋아에서 2018년에 발매한 친환경 음반 《바라던 바다》입니다. 장필순, 김목인, 시와, 재주소년 등의 뮤지션이 참여한 이 앨범은 바다와 비치코밍을 주제로 한 음악도, 그 음악이 담긴 그릇도 한결같이 아름답습니다. 막연히 어렵고 불편한 일로만 여겨졌던 환경 보호가 예술과 접점을 이루며 한 걸음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바다의 헝클어진 머리를
빗겨준다는 것
얼마나 근사해
광활한 바다의 곁에서

- 김목인, 〈비치코밍〉 중


17d72324421a7.jpg2cf77c8e68baf.jpg친환경 음반 《바라던 바다》


“재주도좋아를 시작한 것은 바다 쓰레기 문제를 절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지만, 그것도 바다에서 더 재미있게 놀고 싶어서예요.”


그래서일까, 재주도좋아는 설립 이후 매년 페스티벌을 열고 있습니다. 5월 31일 바다의 날 즈음 금능해변에서 개최하는 ‘비치코밍 페스티벌’입니다. 해변에서 참석자들과 비치코밍을 하고, 오늘 체험한 유리 액자 만들기 같은 업사이클링 워크숍을 진행하고, 일회용품 없는 플리마켓, 업사이클링 전시도 엽니다. 피날레는 노을 지는 금능바다를 배경으로 열리는 〈바라던 바다〉 콘서트이고요.


fb4f68a738870.jpg비치코밍 페스티벌 / 재주도좋아 제공


“올해가 10주년이에요. 비치코밍 페스티벌은 국내에서 열리는 환경 페스티벌의 시초이지요. 원래 문화예술재단의 후원도 받았는데, 코로나 이후로 페스티벌 형식의 분야에서 지원이 많이 축소되었어요. 그래도 운영진들이 사비를 모아 축제를 이어가고 있어요.”


재주도좋아에서는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 5월에 제주에 다시 올 수 있다면, 비치코밍 페스티벌에 참여해서 바다 쓰레기를 줍고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석양도 보고 싶네요. 


5d61bdd5ffb66.jpg〈바라던 바다〉 콘서트 중 / 재주도좋아 제공


그러는 사이 액자가 완성되었습니다.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였지만, 활동가들의 관심과 노력, 애틋한 마음을 거치며 마치 바다가 준 선물처럼 변했습니다. 집에 돌아가 장식장에 올려두면 윤슬로 반짝이는 바다의 일부도 데려온 듯한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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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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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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