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란 하늘에 다다를 것 높은 고도가 좁은 골목으로 흘러들었다. 문턱 같은 비탈진 계단 밑으로 내려선다. 서울챙의 흰 다리 사이로 순환하는 곡선 통로. 낡은 벽돌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파이프에 흡사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국기 같은 패브릭이 걸쳐 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왜 해방되고 싶은가’라는 물음이 세례를 내리는 손처럼 신흥시장을 찾는 이방인들의 머리 위를 쓴다.

‘훈육’과 ‘노가리상점’, ‘소월솥밥’이 느슨하게 이루는 라운지에서 유심히 올려다본 서울챙은 흰 포말을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분수처럼 해방촌, 약칭 ‘HBC(Haebangchon)’의 핵심 구역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덕분에 노상 자리는 아늑한 테라스 분위기를 자아내고, 비정형적인 통로로 난 상점 문들이 가뿐히 여닫히며 자유로운 공기가 오간다. 대개 1층에 카운터, 2층에 실내 좌석, 3층 혹은 4층에 루프탑 자리를 두었으나, 1층만을 영업장으로 사용하는 요리주점 ‘만조’에서는 창문을 위로 접어 올리고 금세 바 테이블을 마련했다. 창가 자리에서 생맥주와 싱싱한 뭉티기를 사이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얼굴들이 발그스레하다.

마주 보는 건물 사이로 난 좁은 골목도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벤치에 앉은 사람들을 지나 낮에는 브런치를, 저녁에는 디너와 와인을 파는 올드빅(THE OLDVIC)의 2층 홀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꼭대기 층은 눈부신 햇살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타는 노을의 빛무리를 담은 와인 잔을 들고, 주택가가 내려다보이는 루프탑에서 멋진 뷰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나는 가까이서 건물과 사람 구경을 하고 싶었기에 2층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레드 와인 한 잔과 감자 파베를 주문했다.


저녁이 찾아온 신흥시장을 구경할 생각에 흐뭇한 마음으로 나무 바닥의 삐걱거림만큼이나 스파이시한 와인과 파슬리 오일, 치즈 크림이 겹겹이 스며든 밀푀유 감자를 천천히 음미했다. 한식, 양식, 일식, 태국식, 미국식 중국요리까지 온갖 국적의 음식과 음악, 사람들의 말소리가 잿빛 시멘트벽을 캔버스 삼아 진풍경으로 담긴다. 덩굴 같은 환기통이 이리저리 파고드는 벽에는 난초를 틔운 바위처럼 푸른 잎사귀를 한껏 뻗은 플랜테리어가 걸려 있었다. 낡은 것과 새 것을 나누는 세상의 이분법이 이곳에서만큼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양장점이었던 공간을 트고 들어 온 ‘길바닥(GIL BAR DAK)’은 백색 격자무늬 창호에 적록색 철자 ‘DRESS SALON’을 그대로 붙여 두고 있었다. 수십 년 세월이 얇은 알루미늄 새시를 밀며 드나들었을 것이다. 안쪽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바텐더에게 추천받은 레몬즙과 퀴라소 시럽이 들어간 ‘피터팬’을 주문했다. 에메랄드색이 오월의 신록처럼 감돈다. 옥이나 비취, 민트, 제이드 그린으로도 불리는 오묘한 색을 띠는 칵테일을 한 모금씩 홀짝이며, 앤티크와 키치로 직조된 신흥시장이 해방촌 주민들의 주 수입원이었던 담배말이가 금지된 이후 7~80년대 니트 산업이 성행했던 가내수공업의 현장이었음을 생각한다.


기다리던 어둠이 내리고 파란 불빛이 시장 골목을 은하수처럼 드리운 아래 알전구가 별처럼 총총히 매달렸다. 오밀조밀 난 길이 열차처럼 노상에 앉은 사람들을 그들만의 낙원으로 실어 나르는 광경을 본다. 그리고 컨베이어 벨트처럼 무엇인가를 지나가게 하는 것만이 ‘길’의 유일한 역할로 여기고 있었음을 느꼈다. 이러한 생각이 자유로운 공기의 흐름을 얼마나 많이 차단했으며, 삶의 깊숙한 부분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까. 반듯한 규격에 맞지 않은 사각지대도 모두 시장의 영역으로 수용하는 이곳에서 자투리 공간처럼 어설프게 남은 청춘이 마음껏 유휴한다.

좁은 골목으로 시장을 빠져나오면 여느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생필품 파는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녹사평역으로 내려가는 조용한 길목으로 방향을 잡는다. 고도가 점점 낮아지며 점점 가까워져 오는 해방촌 초입, 신흥시장 방면으로 운행되는 용산02 버스가 일상 속 해방을 찾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글·사진 | 화이트 웨일

숫기는 없지만 장난치는 걸 좋아합니다.
파란 하늘에 다다를 것 높은 고도가 좁은 골목으로 흘러들었다. 문턱 같은 비탈진 계단 밑으로 내려선다. 서울챙의 흰 다리 사이로 순환하는 곡선 통로. 낡은 벽돌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파이프에 흡사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국기 같은 패브릭이 걸쳐 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왜 해방되고 싶은가’라는 물음이 세례를 내리는 손처럼 신흥시장을 찾는 이방인들의 머리 위를 쓴다.
‘훈육’과 ‘노가리상점’, ‘소월솥밥’이 느슨하게 이루는 라운지에서 유심히 올려다본 서울챙은 흰 포말을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분수처럼 해방촌, 약칭 ‘HBC(Haebangchon)’의 핵심 구역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덕분에 노상 자리는 아늑한 테라스 분위기를 자아내고, 비정형적인 통로로 난 상점 문들이 가뿐히 여닫히며 자유로운 공기가 오간다. 대개 1층에 카운터, 2층에 실내 좌석, 3층 혹은 4층에 루프탑 자리를 두었으나, 1층만을 영업장으로 사용하는 요리주점 ‘만조’에서는 창문을 위로 접어 올리고 금세 바 테이블을 마련했다. 창가 자리에서 생맥주와 싱싱한 뭉티기를 사이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얼굴들이 발그스레하다.
마주 보는 건물 사이로 난 좁은 골목도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벤치에 앉은 사람들을 지나 낮에는 브런치를, 저녁에는 디너와 와인을 파는 올드빅(THE OLDVIC)의 2층 홀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꼭대기 층은 눈부신 햇살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타는 노을의 빛무리를 담은 와인 잔을 들고, 주택가가 내려다보이는 루프탑에서 멋진 뷰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나는 가까이서 건물과 사람 구경을 하고 싶었기에 2층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레드 와인 한 잔과 감자 파베를 주문했다.
저녁이 찾아온 신흥시장을 구경할 생각에 흐뭇한 마음으로 나무 바닥의 삐걱거림만큼이나 스파이시한 와인과 파슬리 오일, 치즈 크림이 겹겹이 스며든 밀푀유 감자를 천천히 음미했다. 한식, 양식, 일식, 태국식, 미국식 중국요리까지 온갖 국적의 음식과 음악, 사람들의 말소리가 잿빛 시멘트벽을 캔버스 삼아 진풍경으로 담긴다. 덩굴 같은 환기통이 이리저리 파고드는 벽에는 난초를 틔운 바위처럼 푸른 잎사귀를 한껏 뻗은 플랜테리어가 걸려 있었다. 낡은 것과 새 것을 나누는 세상의 이분법이 이곳에서만큼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양장점이었던 공간을 트고 들어 온 ‘길바닥(GIL BAR DAK)’은 백색 격자무늬 창호에 적록색 철자 ‘DRESS SALON’을 그대로 붙여 두고 있었다. 수십 년 세월이 얇은 알루미늄 새시를 밀며 드나들었을 것이다. 안쪽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바텐더에게 추천받은 레몬즙과 퀴라소 시럽이 들어간 ‘피터팬’을 주문했다. 에메랄드색이 오월의 신록처럼 감돈다. 옥이나 비취, 민트, 제이드 그린으로도 불리는 오묘한 색을 띠는 칵테일을 한 모금씩 홀짝이며, 앤티크와 키치로 직조된 신흥시장이 해방촌 주민들의 주 수입원이었던 담배말이가 금지된 이후 7~80년대 니트 산업이 성행했던 가내수공업의 현장이었음을 생각한다.
기다리던 어둠이 내리고 파란 불빛이 시장 골목을 은하수처럼 드리운 아래 알전구가 별처럼 총총히 매달렸다. 오밀조밀 난 길이 열차처럼 노상에 앉은 사람들을 그들만의 낙원으로 실어 나르는 광경을 본다. 그리고 컨베이어 벨트처럼 무엇인가를 지나가게 하는 것만이 ‘길’의 유일한 역할로 여기고 있었음을 느꼈다. 이러한 생각이 자유로운 공기의 흐름을 얼마나 많이 차단했으며, 삶의 깊숙한 부분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까. 반듯한 규격에 맞지 않은 사각지대도 모두 시장의 영역으로 수용하는 이곳에서 자투리 공간처럼 어설프게 남은 청춘이 마음껏 유휴한다.
좁은 골목으로 시장을 빠져나오면 여느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생필품 파는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녹사평역으로 내려가는 조용한 길목으로 방향을 잡는다. 고도가 점점 낮아지며 점점 가까워져 오는 해방촌 초입, 신흥시장 방면으로 운행되는 용산02 버스가 일상 속 해방을 찾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글·사진 | 화이트 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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