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떠나기 좋은 성북동 역사 문화 산책

브릭스에서 떠나다




한양도성이 지어진 후 자연스레 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성북(城北)이라는 이름이 붙은 성북동은 예부터 빼어난 경치로 사람들이 몰려들던 곳이었다.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라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권세가들은 이곳에 별장을 짓고 봄부터 가을까지 산이 굽어보고 천이 흐르는 자연을 즐겼다.


지금도 성북동을 걷다보면 조용하고 호젓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골목 곳곳에 솜씨 좋은 식당과 트렌디한 카페가 숨어 있어 눈길을 끈다. 이번엔 성북동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찾아가 보았다. 성북동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우리옛돌박물관



2015년 11월에 개관한 민간박물관으로 민간 박물관으로 (주)세중 천신일 회장이 40여 년에 걸쳐 수집한 석조물, 자수, 근현대 한국 회화를 모아 놓은 국내 최초 석조물 전문박물관이다. 1층은 환수유물관에는 일본에서 환수해 온 문인석 47점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300점의 자수와 동자석, 벅수 등이 전시되어 있다. 3층 기획전시관과 무병장수의 길, 돌의 정원까지 돌조각이 무려 1,242 점에 이르며 현대회화도 80점이나 된다. 


돌조각이라 하면 궁궐이나 사찰, 묘지의 장식과 표지를 생각하기 쉬우나 생활 곳곳에서 해학과 지혜, 실용성이 가미된 돌조각이 활용되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에 김정희, 변관식, 김환기, 이우환 등 한국미술사를 넘어 세계 미술사에 기록된 거장들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에 휴관한다. 관람료는 성인 7천원이나 연회비 1만원을 내면 연중 무료로 횟수 제한 없이 입장 가능하다.



우리옛돌박물관
성북구 대사관로13길 66
관람시간 10:00 ~ 18:00 (월요일 휴관)
관람료 7,000원 (연회비 10,000원)



선잠 박물관



2018년 4월에 개관한 선잠박물관은 ‘사적83호 선잠단지’를 바탕으로 문을 연 지역 박물관이다. 선잠은 처음으로 누에를 쳐서 비단을 짰다는 ‘양잠의 신’ 서릉씨(西陵氏)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비단을 짜 왔으며 고려시대부터는 선잠 신을 모시는 선잠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선잠단지를 조성하고 농사의 신에 올리는 선농제와 더불어 나라 물산의 풍요를 비를 중요한 제사로 지내왔다. 


성북선잠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3개의 전시실과 개방형 수장고로 이루어져 있다.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은 상설전시실로 선잠이 무엇인지, 선잠제와 선잠단의 과거와 현재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3층 기획전시실에서는 비단과 우리 전통 의생활에 관련된 기획특별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성북선잠박물관은 선잠제, 선잠단과 관련한 약 300점의 유물과 기록을 소장하고 있고 3D애니메이션으로 복원한 선잠 의례를 보여준다. 3층 기획전시실에서는 비단, 염색, 전통 의상에 관한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선잠 박물관
성북구 성북로96
관람시간 10:00 ~ 18:00 (월요일 휴관)
관람료 1,000원


 

길상사


1960년대부터 80년대 말까지 삼청각, 오진암과 함께 3대 요정이라 불리며 군부 정권의 밀실정치가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은 시인 백석의 애인 ‘자야’ 여사이며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화를 입어 1995년 대원각 7천 평 부지와 40여 채의 건물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여 1997년 12월 14일 길상사로 창건된다. 김영한은 길상사 일주문 바로 옆 길상헌에 살다가 1999년 11월 14일 흰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뒤에 뿌려 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길상사 계곡 가장 윗자리 진영각에는 2010년 입적한 법정 스님의 저서와 진영,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길상사
성북구 선잠로5길 68



심우장



위대한 서정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불교개혁가 만해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던 집이다. 심우(尋牛)는 소를 찾는다는 의미로 수행하는 사람이 불성을 깨우쳐 가는 10단계에서 첫 단계를 뜻한다. 한용운이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사직동, 청진동 일대에서 홀로 지냈는데, 성품이 강직하고 직선적이라 자신을 추앙하는 사람이건, 불교계, 민족 운동계 동료건 대중들과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집도 절도 없이 지난한 삶을 이어가던 만해를 딱하게 여겨 주변에서 거처를 마련해 주려고 하던 중, 백양사 김벽산 스님이 성북 산자락에 땅을 마련해 주었고, 여러 사람들의 후원금과 만해의 원고료를 합해 1,000원의 건축비가 들었다.


심우장은 서울 성곽길 북측 경사면에 있어 남향집을 지으려면 산 쪽을 바라보게 지어야 하는데, 남향을 하게 되면 조선총독부를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며 굳이 북향집을 지었다. 만해는 참선하고 글을 쓰고 남는 시간에 매화, 향나무, 개나리, 진달래, 백일홍을 옮겨다 심고 가꾸며 소일거리를 삼았다. 1943년 겨울 중풍으로 쓰러진 만해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44년 6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심우장 안에는 만해의 친필 원고와 작품집, 공판 기록, 서예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심우장
성북구 성북로29길 24
관람시간 09:00 ~ 18:00(연중무휴)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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