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강원도 고성으로 떠나는 조각 여행

강원도 최북단 고성군. 험준한 산맥과 드넓은 동해를 양옆에 두고 화진포, 송지호 같은 장대한 호수가 자리 잡은 이곳은 북한의 고성과 맞닿은 우리나라 최북단 지역답게 아직 관광객의 발길이 덜 닿은 순수한 원시 풍경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통일전망대에 서면 멀리 금강산이 내다보이고,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갑자기 시선으로 들이닥치는 웅장한 산세에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옵니다. 아야진 해변의 서퍼와 왕곡마을의 전통 초가 가옥들이 공존하는 곳.


그런데 이곳은 조각가들과 조각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아쿠아마린 빛깔의 바다와 울산바위 자락이 만나는 강원도 고성으로 조각 예술 여행을 떠나 봅니다.



1. 피움 미술관 - 이민수 조각가


‘피움 아트센터’는 예술, 문화의 혜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강원 지역에서 예술가들의 공연, 전시, 문화 행사를 기획, 지원하고 선보이는 종합 아트 플랫폼입니다.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를 제공하는 건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예술 체험이나 교육도 진행합니다. 전시장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요.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 대로 논밭 길을 한참 지나 정말 이런 곳에 미술관이 있다고? 의심이 깊어질 때쯤 피움 아트센터 부지에 들어서게 됩니다. 예상보다 훨씬 드넓은 부지에 인상적인 건축물이 줄지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예술 테마파크랄까요. 그래도 가장 마음을 끄는 풍경은 거칠고 맑은 계곡입니다. 피움 미술관은 아트밸리 가장 안쪽, 계곡물이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내는 곳 옆에 있는 전시장입니다. 건물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작품을 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두 품어줄 수 있을 듯 거대합니다.



이민수 조각가의 작품은 피움 미술관과 잘 어울립니다. 어쩌면 이곳이 아니면 전시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 정도로 거대하고, 힘차고, 막 산에서 깨어난 바위 인간 같기도 하거든요. 2013년에 제작된 〈순간〉은 질주하는 거대한 하체들을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질주하는 순간만이” ‘진짜 현실’이라는 조각가의 말처럼 당장이라도 좁은 문과 벽을 뚫고 나갈 것 같은 역동적인 몸짓에서 경외감과 두려움마저 느껴집니다. 숨이 찰 듯 전력을 다해 뛰거나 무언가를 해낼 때 얻는 ‘살아있다’는 감각을 넘어 어쩌면 이게 삶의 전부일지도 모른다고 느낍니다. 질주만이 리얼리티라는 작가의 말,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이민수 조각가 - 〈순간〉


〈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제작된 〈다시〉라는 작품 또한 거칠고 응집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2005년 작업을 하다가 큰 부상을 입었던 이민수 조각가는 1년여 재활 기간을 거쳐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옵니다. 기쁨과 몸에 남은 고통의 중간에서 〈다시〉라는 제목처럼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순간〉



한편 최근 작품들인 〈쉘(SHELL)〉은 같은 조각가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확연히 달랐습니다. 마치 하늘에 부유하는 하얀 천을 그 자리에 고정한 듯한 우아하고 매끄러운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이전 작품들과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걸 알게 됩니다. 얇은 천에 둘러싸인 어떤 형상, 천을 자신의 형태로 고정하는 그 형상 안에도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거든요.


본래 이민수 조각가는 ‘껍질’의 부정적인 면을 표현하기 위해 〈쉘〉 작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품을 만들어나가면서 오히려 껍질 자체가 실체가 아닌가 하는 사유의 역전이 일어났다고 해요. 예술에서는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껍질’의 의미를 재발견했다는 의의를 넘어서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섬세하고 선명한 조각이 존재할 수 있는지 보면서 내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피움 아트센터는 곧 리조트를 열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곳은 실로 예술가와 대중이 모이는 플랫폼이 될 듯합니다.


피움 아트센터 내 피움 미술관
강원 고성군 죽왕면 곡실평길 330
09:00~18:00



2. 바우지움 조각 미술관


고성과 속초 경계에 있는 ‘바우지움 조각 미술관’은 김명숙 조각가 부부가 짓고 운영하는 조각 미술관입니다. 이곳 역시 4,000평 규모의 부지에 3개의 조각 전시관, 카페, 기획 전시관을 갖추고 있습니다. 50평씩 세 동으로 구성된 건물이 담장으로 이어져 마치 한 건물 같기도 합니다.



바우지움 조각 미술관은 들어서기 전부터 ‘예술적인’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바로 건축물의 벽면 때문입니다. 돌이 그대로 드러나 매우 거칠어 보이지만, 그 벽면을 따라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는 길에는 오히려 마음이 정돈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담장은 커다란 유리로 바깥과 이어지고, 이들을 녹슨 쇠가 지탱해 주지요. 건물은 바람이 지나고 햇살을 받으며 그 옛날 울산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돌들처럼 언젠가 설악의 자연에 스며들 것처럼 보입니다.



A 전시관은 ‘근현대 조각관’으로 김영중, 김영란, 이선종, 문신 등 20세기에 활동했던 조각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B 전시관에는 이 미술관의 관장인 김명숙 조각가의 작품과 작업실이 있고요. 한편 A 전시관 앞에는 돌과 물이 어우러진 공간이 있고, 그 너머로 야외 조각 정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야외 조각 정원에서 거대한 설악을 올려다봅니다. 이타미 준이 만든 제주 수풍석 박물관을 연상하게 하는 ‘물의 정원’은 지하수를 그대로 끌어 올려 항상 차갑고 맑습니다. 고성의 산과 호수를 집약해 둔 건물에 인간이 만든 형상, 조각이 놓여 있다니 세상의 작은 축소품 같기도 합니다.



바우지움 조각 미술관에서는 카페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든 조각을 보고 출구로 나오면 길 건너 또 다른 작품 같은 카페가 보이지요. 이 카페 공간마저 내부 배치, 창가에서 마주 보는 풍경 등이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문화가 아주 절묘하게 만난 바우지움 조각 미술관에서는 휴식은 물론,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거나 영감을 받기에도 아주 적절해 보입니다.



바우지움 조각 미술관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온천3길 37
화-일 09:00 ~ 18:00 (월 휴관)
입장료 10,000원 (아메리카노 한 잔 포함)




취재 이주호, 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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