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38도, 이북 88km 지점, 해발 70m. 강원도 고성에 있는 통일전망대는 맨눈으로 북녘땅을, 노래로만 들었던 금강산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유난히 더 푸르러 보이는 동해를 마주할 수도 있지요. 2019년 새로 문을 연 고성 통일전망타워는 DMZ의 ‘D’를 형상화한 모습이라 건축적으로도 흥미롭습니다.
통일전망대에 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통일전망대는 민통선 내에 있기 때문에 전망대로부터 10km 이전에 있는 통일안보공원에 들러 민통선 출입 신고를 해야 합니다. 이때 통일전망대 입장료 3,000원, 자가 차량일 경우 주차료 5,000원을 내게 됩니다.
통일안보공원에 있는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사진을 다시 보니 뒤늦게 길쭉이 호떡이 궁금해집니다.

신청서와 입장료를 내는 창구
신고 후에는 때마다 일괄적으로 진행되는 8분짜리 안보 교육 영상을 시청해야 합니다. 영상은 분단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짚고 전망대 방문 시 주의 사항을 일러주다가 이내 고성의 아름다운 풍경을 소개합니다. 8분 안에 역사, 안보 교육, 지역 홍보까지 꽉 차 있어 조금 과장하자면, 지루할 틈이 없답니다.


안보교육관에서 진행되는 안보 교육
통일안보공원에는 각종 토산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휴게소도 있는데요, 20세기 후반 운치가 물씬 풍겨 추억이 소환되는 즐거움까지 더해집니다. 안보 교육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휴게소를 둘러보며 작은 기념품이라도 골라보세요.
안보 교육이 끝나면 갑자기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통일전망대는 도보로는 접근이 불가능하고 자가 차량 혹은 택시로만 접근이 가능한데, 사람들이 일제히 주차장으로 달려가 차례차례 시동을 켜고 액셀을 밟아 줄지어 출발하는 광경 역시 조금 과장하자면, 장관입니다.
명파마을 평양면옥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지요. 이번에는 그 말을 글자 그대로 써먹어 봅니다. 통일전망대로 가기 전 늦은 점심을 해결할 시간. 고성 현내면 명파마을에 있는 평양 면옥에서 막국수와 메밀 찐만두를 시킵니다.
10분 만에 다 먹었습니다.
잠시 둘러본 명파마을은 본격적인 관광지로서 발돋움하려는 듯 통일성 있게 꾸며져 있었는데요, 식당 옆에 마침 ‘금강산 슈퍼’가 있어 금강산이 정말 가까워졌구나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금강산 슈퍼가 ‘최북단 슈퍼’라고 하네요. 빨간 고추가 초가을 햇볕에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명파마을에서
명파마을을 떠나 민통선 검문소를 거쳐 통일전망대로 향합니다. 주차 후 전망대에 가기 위해서는 꽤 긴 계단을 걸어 오르거나 에둘러 이어진 언덕길을 올라야 합니다. 조금 숨이 차지만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땀도 금세 식습니다. 때 묻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원시적인 모습 그대로라고 해야 할까요. 에메랄드빛 동해, 파도조차 원초적으로 보일 만큼 힘이 넘칩니다.
통일전망타워로 오르며 본 바다
통일전망타워에서는 1층에서도, 3층에서도 북녘땅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1층에서는 육안으로, 3층 전망대에서는 유리 너머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반사 때문에 사진을 찍기에는 조금 낮아도 오히려 1층이 더 낫다고 생각되네요.
통일전망타워. 자연스레 회사 가까이에 있는 D타워라 부르고 싶어집니다.
느낌상으로는 금강이입니다.
날이 흐렸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금강산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멀게 느껴졌던 산. 밟을 수는 없을지언정 이렇게 눈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그나마 가까이 보이는 금강산 봉우리가 구선봉, 그 뒤편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봉우리는 국지봉이라고 합니다.


금강산이 보이시나요?
통일전망타워를 떠나 3분 정도 차를 타고 나오다 보면 DMZ박물관으로 이어진 길이 나옵니다. 통일전망대를 보러 오셨다면 DMZ박물관도 놓치면 안 됩니다. 상설전시, 기획전시, 야외전시까지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지요.


2009년 개관한 DMZ박물관
DMZ박물관 밖에서는 초현실적인 크기의 대북심리전 장비를 볼 수 있습니다. 야구장 전광판 같다고 할까요? 대형 전광판은 글자들을 조합하여 방송하는 장비인데 엄청 강한 빛을 내기 때문에 1~2km 떨어진 곳에서도 그 글자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밝혀 월남하는 탈북자들의 길잡이가 되기도 했답니다.

대북 심리전 전광판
또, 우리처럼 분단의 역사를 거쳤던 독일의 실제 베를린 장벽 일부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한과 북한 사이의 철책은 언제 사라질는지요.
실제 베를린 장벽이라고 합니다. 그림은 DMZ박물관으로 옮겨오면서 새로 그린 듯합니다.
DMZ박물관은 상설전시 자체의 규모가 작지 않습니다. 6·25전쟁부터 정전협정, 이념 갈등으로 인한 분단 과정까지 아픈 역사의 얼개가 생생한 모형과 사료로 되살아납니다. 철책, 경고문, 분단을 알리는 표지판 등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현실감을 더하고요.



DMZ박물관에서
많은 분이 이곳에서 흥미롭게 보는 전시물이 대북, 대남 심리전단인 ‘삐라’입니다. 제가 어릴 때도 ‘삐라’를 주워오면 포상금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실제로 한 번 본 기억도 어렴풋하게 남아 있습니다. 선전물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를 회유합니다. 지금도 활동하는 유명 연예인들을 등장시킨 선전물(북한도 남한의 연예인 사진을 도용해서 삐라를 만들었더군요), 수영복을 입은 여성의 사진으로 유혹하는 선전물 등은 무한한 희망 주입과 유언비어, 성적 대상화를 일삼으면서까지 이념 싸움에 몰입했던 현실을 씁쓸하게 보여줍니다.

각종 심리전단
다시 검문소를 지나 민통선 바깥으로 나옵니다. 검문소 이전의 길과 이후의 길은 똑같은 아스팔트, 눈으로 보이는 변화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공기가 달라졌다’라고 말하기에도 고성의 대기는 항상 맑고 깨끗하기만 했고요. 일상에 치이다 보면 우리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만큼 쉽게 잊게 됩니다. 고성을 여행하기로 했다면, 몇 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현재형 역사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평화를 기원하며
글/사진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북위 38도, 이북 88km 지점, 해발 70m. 강원도 고성에 있는 통일전망대는 맨눈으로 북녘땅을, 노래로만 들었던 금강산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유난히 더 푸르러 보이는 동해를 마주할 수도 있지요. 2019년 새로 문을 연 고성 통일전망타워는 DMZ의 ‘D’를 형상화한 모습이라 건축적으로도 흥미롭습니다.
통일전망대에 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통일전망대는 민통선 내에 있기 때문에 전망대로부터 10km 이전에 있는 통일안보공원에 들러 민통선 출입 신고를 해야 합니다. 이때 통일전망대 입장료 3,000원, 자가 차량일 경우 주차료 5,000원을 내게 됩니다.
신청서와 입장료를 내는 창구
신고 후에는 때마다 일괄적으로 진행되는 8분짜리 안보 교육 영상을 시청해야 합니다. 영상은 분단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짚고 전망대 방문 시 주의 사항을 일러주다가 이내 고성의 아름다운 풍경을 소개합니다. 8분 안에 역사, 안보 교육, 지역 홍보까지 꽉 차 있어 조금 과장하자면, 지루할 틈이 없답니다.
통일안보공원에는 각종 토산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휴게소도 있는데요, 20세기 후반 운치가 물씬 풍겨 추억이 소환되는 즐거움까지 더해집니다. 안보 교육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휴게소를 둘러보며 작은 기념품이라도 골라보세요.
안보 교육이 끝나면 갑자기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통일전망대는 도보로는 접근이 불가능하고 자가 차량 혹은 택시로만 접근이 가능한데, 사람들이 일제히 주차장으로 달려가 차례차례 시동을 켜고 액셀을 밟아 줄지어 출발하는 광경 역시 조금 과장하자면, 장관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지요. 이번에는 그 말을 글자 그대로 써먹어 봅니다. 통일전망대로 가기 전 늦은 점심을 해결할 시간. 고성 현내면 명파마을에 있는 평양 면옥에서 막국수와 메밀 찐만두를 시킵니다.
잠시 둘러본 명파마을은 본격적인 관광지로서 발돋움하려는 듯 통일성 있게 꾸며져 있었는데요, 식당 옆에 마침 ‘금강산 슈퍼’가 있어 금강산이 정말 가까워졌구나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금강산 슈퍼가 ‘최북단 슈퍼’라고 하네요. 빨간 고추가 초가을 햇볕에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명파마을에서
명파마을을 떠나 민통선 검문소를 거쳐 통일전망대로 향합니다. 주차 후 전망대에 가기 위해서는 꽤 긴 계단을 걸어 오르거나 에둘러 이어진 언덕길을 올라야 합니다. 조금 숨이 차지만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땀도 금세 식습니다. 때 묻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원시적인 모습 그대로라고 해야 할까요. 에메랄드빛 동해, 파도조차 원초적으로 보일 만큼 힘이 넘칩니다.
통일전망타워에서는 1층에서도, 3층에서도 북녘땅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1층에서는 육안으로, 3층 전망대에서는 유리 너머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반사 때문에 사진을 찍기에는 조금 낮아도 오히려 1층이 더 낫다고 생각되네요.
날이 흐렸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금강산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멀게 느껴졌던 산. 밟을 수는 없을지언정 이렇게 눈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그나마 가까이 보이는 금강산 봉우리가 구선봉, 그 뒤편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봉우리는 국지봉이라고 합니다.
통일전망타워를 떠나 3분 정도 차를 타고 나오다 보면 DMZ박물관으로 이어진 길이 나옵니다. 통일전망대를 보러 오셨다면 DMZ박물관도 놓치면 안 됩니다. 상설전시, 기획전시, 야외전시까지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지요.
2009년 개관한 DMZ박물관
DMZ박물관 밖에서는 초현실적인 크기의 대북심리전 장비를 볼 수 있습니다. 야구장 전광판 같다고 할까요? 대형 전광판은 글자들을 조합하여 방송하는 장비인데 엄청 강한 빛을 내기 때문에 1~2km 떨어진 곳에서도 그 글자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밝혀 월남하는 탈북자들의 길잡이가 되기도 했답니다.
대북 심리전 전광판
또, 우리처럼 분단의 역사를 거쳤던 독일의 실제 베를린 장벽 일부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남한과 북한 사이의 철책은 언제 사라질는지요.
DMZ박물관은 상설전시 자체의 규모가 작지 않습니다. 6·25전쟁부터 정전협정, 이념 갈등으로 인한 분단 과정까지 아픈 역사의 얼개가 생생한 모형과 사료로 되살아납니다. 철책, 경고문, 분단을 알리는 표지판 등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현실감을 더하고요.
많은 분이 이곳에서 흥미롭게 보는 전시물이 대북, 대남 심리전단인 ‘삐라’입니다. 제가 어릴 때도 ‘삐라’를 주워오면 포상금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실제로 한 번 본 기억도 어렴풋하게 남아 있습니다. 선전물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를 회유합니다. 지금도 활동하는 유명 연예인들을 등장시킨 선전물(북한도 남한의 연예인 사진을 도용해서 삐라를 만들었더군요), 수영복을 입은 여성의 사진으로 유혹하는 선전물 등은 무한한 희망 주입과 유언비어, 성적 대상화를 일삼으면서까지 이념 싸움에 몰입했던 현실을 씁쓸하게 보여줍니다.
각종 심리전단
다시 검문소를 지나 민통선 바깥으로 나옵니다. 검문소 이전의 길과 이후의 길은 똑같은 아스팔트, 눈으로 보이는 변화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공기가 달라졌다’라고 말하기에도 고성의 대기는 항상 맑고 깨끗하기만 했고요. 일상에 치이다 보면 우리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만큼 쉽게 잊게 됩니다. 고성을 여행하기로 했다면, 몇 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현재형 역사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글/사진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