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이트 제국의 흔적을 좇아서 #2
히타이트의 수도였던 하투샤 유적을 보러 가야 했지만,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서 그냥 발길을 돌리기에는 앙카라 성(Ankara Kalesi)이 너무 지척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 높은 언덕을 다 오른 거나 다름없지. 잠시 시간을 내서 앙카라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를 방문하기로 한다.
히타이트 제국이 아직 비밀스러운 면을 간직하고 있듯, 앙카라 성도 건축 연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우선 공식적으로는 히타이트인들이 이 자리에 첫 주둔지를 세웠다고 하는데, ‘공식’이지만 고고학적인 증거는 없다고. 그나마 확실한 사실은 앙카라 성의 주인이 고대 로마‧비잔틴‧셀주크‧오스만 제국 등 수없이 바뀌었으며 그때마다 점점 높아지고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높은 언덕 위에 성을 쌓고 현역으로 남기려고 애를 쓴 이유야 물론 도시 방어였겠지만, 주인이 그렇게 많이 바뀐 걸 보면 난공불락의 요새는 없는가 보다.
앙카라 성
난간도 없는 성벽 위에서 스릴만점 도시 전망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갈 길이 바쁘므로 내성(內城)만 둘러보기로 했다.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맞이해 주는 것은 매표소가 아니라(앙카라 성은 입장료가 없다) 기념품 가게였다. 초소였지 않을까 싶은 성곽 안 건물에는 온갖 열쇠고리와 자석, 엽서, 튀르키예식 커피포트인 제즈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보단 나중의 일이지만 제즈베로 끓인 튀르키예 커피도 몇 잔 마셔봤는데, 커피 가루가 많이 씹히긴 해도 쓴맛과는 좀 다른, 묵직하게 밀려오는 씁쓸함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집에 사 들고 간다고 해서 여기 맛 그대로 커피를 끓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동이라 비싸기도 하거니와 그냥 튀르키예의 상징 중 하나로만 기억해 두기로 했다. 제즈베 앞에서 입맛을 다시고 있자니 오늘날 앙카라 성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앙카라 성의 거리
내가 직접 쓰면 식상하니까 현지인의 말을 빌려오자. “여긴 한국의 한옥마을 같은 곳이에요.” 맞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건물들이 관광 산업의 최전방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식당과 카페들, 그보다 훨씬 많은 기념품 가게들.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홍차를 파는 노점도 보인다. 튀르키예에 오자마자 역사부터 찾았던 나에게는 모든 걸 1분 안에 요약하는 숏폼 영상 같았다: 앙카라 가서 이거 안 보면 큰일 납니다. 땡볕이 내리쬐든 폭설이 내리든 한복을 차려입고 기쁜 표정으로 한옥마을을 돌아다니던 외국인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들뜨고 말았다.
나무, 점토, 벽돌로 지어진 2, 3층짜리 주택들은 불과 한 달 전에 페인트를 새로 칠한 것처럼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집들이 줄줄이 이어지며 내는 향수 젖은 골목길은, 역시 내가 직접 쓰면 오그라드니까 현지인의 말을 빌려 “우리를 역사책 속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건 재미있는 역사책이었다! 과거를 경험한 사람이 과거를 연기하고 있는데 어떻게 무대가 실감나지 않을 수 있겠나?
시간이 축적되어 있다.
드높은 성벽에는 마치 지층 단면도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증축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거대한 바위와 벽돌은 여전히 견고해 보였고, 앞으로 바싹 다가와 옛 주택가를 감싸고 있어서 보호 받는 듯한 안정감을 주었다. 나와 같은 자리에서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수백 세대에 걸쳐 존재했겠지. 시대를 뛰어넘어 잠시나마 서로의 감정을 잇는다는 일이 역사를 체험하는 가장 진실한 방법 같기도 했다.
건물들은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앙카라 성문을 나와 왼쪽 내리막길을 걸으면 더 오래되고 더 낡아 보이는 상점들이 나타나 기념품보다 한 꺼풀 일상적인 물건을 판다. 불그스름한 기와, 불그스름한 벽돌, 불그스름한 페인트로 칠한 벽, 그 위를 덮은 불그스름한 덩굴식물 이파리. 지금껏 수도 없이 지나친 튀르키예 국기의 색깔이 도시의 미관에도 영향을 준 것만 같았다.
운치 있는 거리
하루 과업으로 분주한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사만파자르 시장(Samanpazarı Saraçlar Çarşısı)과 그 일대가 나타난다. 가게마다 패딩이며 티셔츠, 조끼와 카디건, 잠옷과 내의가 잔뜩 걸려 있다. 순식간에 남대문 의류시장에 온 기분이네. 빛바랜 웨딩드레스 사진이 걸린 가게가 여럿 보인다는 점은 좀 색다르다. 실제로 결혼 용품, 혼수품을 보러 오는 사람도 많은 곳이란다.
사만파자르 시장
꽃과 레이스로 장식한 분홍색 옷을 입은 신부, 콧수염을 기른 얼큰하게 취한 남자들이 예식장 안에 흘려보내는 담배 연기, 신랑신부에게 각자의 결혼 선물과 축의금을 건네는 하객들, 신랑 신부 옷에 주렁주렁 달린 지폐와 보석,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지난 세기 튀르키예 결혼식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시장거리 한복판에서 말로만 듣던 ‘국민 빵’ 시미트를 파는 노점을 여럿 본 탓인가 보다. 시미트 장수들은 지난 세기 결혼식의 주연을 한두 번쯤 맡았을 게 분명할 만큼 나이가 들어 있었다. 맛도, 생긴 것도 버터와 소금기를 쫙 뺀 프레츨 같은 시미트를 먹으며, 결과적으로 숏폼보다는 생생한 튀르키예 문화 체험을 마무리했다. 슬라이드 해서 하나만 더, 하나만 더 보고 싶다는 중독성을 꾹꾹 눌러 담으며.
이제 기념품으로 남은 역사를 뒤로 하고 다시 땅속에 묻혀 있는 역사를 보러 갈 시간이었다.

시미트 장수들
글·사진 |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litt.ly/ecrire_lire_vivre
히타이트 제국의 흔적을 좇아서 #2
히타이트의 수도였던 하투샤 유적을 보러 가야 했지만,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서 그냥 발길을 돌리기에는 앙카라 성(Ankara Kalesi)이 너무 지척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 높은 언덕을 다 오른 거나 다름없지. 잠시 시간을 내서 앙카라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를 방문하기로 한다.
히타이트 제국이 아직 비밀스러운 면을 간직하고 있듯, 앙카라 성도 건축 연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우선 공식적으로는 히타이트인들이 이 자리에 첫 주둔지를 세웠다고 하는데, ‘공식’이지만 고고학적인 증거는 없다고. 그나마 확실한 사실은 앙카라 성의 주인이 고대 로마‧비잔틴‧셀주크‧오스만 제국 등 수없이 바뀌었으며 그때마다 점점 높아지고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높은 언덕 위에 성을 쌓고 현역으로 남기려고 애를 쓴 이유야 물론 도시 방어였겠지만, 주인이 그렇게 많이 바뀐 걸 보면 난공불락의 요새는 없는가 보다.
앙카라 성
난간도 없는 성벽 위에서 스릴만점 도시 전망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갈 길이 바쁘므로 내성(內城)만 둘러보기로 했다.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맞이해 주는 것은 매표소가 아니라(앙카라 성은 입장료가 없다) 기념품 가게였다. 초소였지 않을까 싶은 성곽 안 건물에는 온갖 열쇠고리와 자석, 엽서, 튀르키예식 커피포트인 제즈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보단 나중의 일이지만 제즈베로 끓인 튀르키예 커피도 몇 잔 마셔봤는데, 커피 가루가 많이 씹히긴 해도 쓴맛과는 좀 다른, 묵직하게 밀려오는 씁쓸함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집에 사 들고 간다고 해서 여기 맛 그대로 커피를 끓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동이라 비싸기도 하거니와 그냥 튀르키예의 상징 중 하나로만 기억해 두기로 했다. 제즈베 앞에서 입맛을 다시고 있자니 오늘날 앙카라 성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직접 쓰면 식상하니까 현지인의 말을 빌려오자. “여긴 한국의 한옥마을 같은 곳이에요.” 맞다.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건물들이 관광 산업의 최전방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식당과 카페들, 그보다 훨씬 많은 기념품 가게들.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홍차를 파는 노점도 보인다. 튀르키예에 오자마자 역사부터 찾았던 나에게는 모든 걸 1분 안에 요약하는 숏폼 영상 같았다: 앙카라 가서 이거 안 보면 큰일 납니다. 땡볕이 내리쬐든 폭설이 내리든 한복을 차려입고 기쁜 표정으로 한옥마을을 돌아다니던 외국인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들뜨고 말았다.
나무, 점토, 벽돌로 지어진 2, 3층짜리 주택들은 불과 한 달 전에 페인트를 새로 칠한 것처럼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집들이 줄줄이 이어지며 내는 향수 젖은 골목길은, 역시 내가 직접 쓰면 오그라드니까 현지인의 말을 빌려 “우리를 역사책 속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건 재미있는 역사책이었다! 과거를 경험한 사람이 과거를 연기하고 있는데 어떻게 무대가 실감나지 않을 수 있겠나?
드높은 성벽에는 마치 지층 단면도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증축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거대한 바위와 벽돌은 여전히 견고해 보였고, 앞으로 바싹 다가와 옛 주택가를 감싸고 있어서 보호 받는 듯한 안정감을 주었다. 나와 같은 자리에서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수백 세대에 걸쳐 존재했겠지. 시대를 뛰어넘어 잠시나마 서로의 감정을 잇는다는 일이 역사를 체험하는 가장 진실한 방법 같기도 했다.
건물들은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앙카라 성문을 나와 왼쪽 내리막길을 걸으면 더 오래되고 더 낡아 보이는 상점들이 나타나 기념품보다 한 꺼풀 일상적인 물건을 판다. 불그스름한 기와, 불그스름한 벽돌, 불그스름한 페인트로 칠한 벽, 그 위를 덮은 불그스름한 덩굴식물 이파리. 지금껏 수도 없이 지나친 튀르키예 국기의 색깔이 도시의 미관에도 영향을 준 것만 같았다.
운치 있는 거리
하루 과업으로 분주한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사만파자르 시장(Samanpazarı Saraçlar Çarşısı)과 그 일대가 나타난다. 가게마다 패딩이며 티셔츠, 조끼와 카디건, 잠옷과 내의가 잔뜩 걸려 있다. 순식간에 남대문 의류시장에 온 기분이네. 빛바랜 웨딩드레스 사진이 걸린 가게가 여럿 보인다는 점은 좀 색다르다. 실제로 결혼 용품, 혼수품을 보러 오는 사람도 많은 곳이란다.
꽃과 레이스로 장식한 분홍색 옷을 입은 신부, 콧수염을 기른 얼큰하게 취한 남자들이 예식장 안에 흘려보내는 담배 연기, 신랑신부에게 각자의 결혼 선물과 축의금을 건네는 하객들, 신랑 신부 옷에 주렁주렁 달린 지폐와 보석,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지난 세기 튀르키예 결혼식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시장거리 한복판에서 말로만 듣던 ‘국민 빵’ 시미트를 파는 노점을 여럿 본 탓인가 보다. 시미트 장수들은 지난 세기 결혼식의 주연을 한두 번쯤 맡았을 게 분명할 만큼 나이가 들어 있었다. 맛도, 생긴 것도 버터와 소금기를 쫙 뺀 프레츨 같은 시미트를 먹으며, 결과적으로 숏폼보다는 생생한 튀르키예 문화 체험을 마무리했다. 슬라이드 해서 하나만 더, 하나만 더 보고 싶다는 중독성을 꾹꾹 눌러 담으며.
이제 기념품으로 남은 역사를 뒤로 하고 다시 땅속에 묻혀 있는 역사를 보러 갈 시간이었다.
글·사진 |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를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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