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으로 떠나는 여행

단편 기획기사



인구 5만 명이 사는 작은 도시에 연간 100만 명이 방문하는 도서관이 있다. 책이 너무 좋아 하루 한 번 꼭 도서관을 가야 하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도시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떠도는 통계를 보면 도서관 방문객 대부분은 도서관을 보려고 찾아오는 관광객이라고 한다.


일본 사가현 다케오시 공공도서관. 후쿠오카역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반, 다시 구경거리가 변변치 않은 심심한 도로를 15분 걸어 도서관에 들어선다. 머리 위 1층 천장이 저 맞은편 3층 벽까지 훌쩍 솟아오른다. 그 사이 시야를 가로 막는 것은 작은 서가들뿐이다. 저 멀리 거대한 책장이 내려다보고 있다. 책, 음반, 디자인 굿즈, 모든 공간이 분리된 듯 열려 있다. 한쪽 벽을 완전히 비운 창밖으로 야트막한 산이 보이고 창가 카페에는 커피 한 잔을 놓고 읽는 둥 마는 둥 책장을 펴 놓은 사람들이 있다.


책만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도서관은 없다. 책 같은 건 노트북, 전화기, 전자책 단말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꺼내 볼 수 있다. 도서관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단지 도서관에 가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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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한 시간, 의정부 시 끄트머리 민락동, 미술 전문 도서관. 도서관으로 여행을 떠나 온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건물 한가운데서 굽이도는 나선 계단이 3층 건물을 수직으로 연결하고 수평 공간은 모두 열려 있다. 벽 한 면 가득한 유리창은 나무, 풀, 빛을 단절 없이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다. 도서관 건물로는 최초로 대한민국 건축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실제로 미술도서관의 모토는 연결, 개방, 소통이다. 



1층에는 폭넓게 배려된 장르의 미술 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한 권 한 권, 한눈에 보기에도 고가일 듯한 책들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데이비드 호크니: A Bigger Book』이다. 현재 400만 원 좀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지만, 한정판이라 점점 오르고 있다. 서가 사이에는 세계 각국 예술 분야 서적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있고, 책상에 앉아 진지하게 책장을 응시한 사람들 대부분은 미술 전공자들이다.



2층은 공공도서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장서 수 4만 5천여 권으로 전국 평균 10만 권, 보통 20만 권 이상인 서울 공공도서관들에는 못 미친다. 부족한 장서는 의정부시 도서관 상호대차로 메운다. 서로 대차 대여가 가능한 구조를 갖춰 놓았기에 한정된 공간에 모든 도서관이 같은 책을 보유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이곳은 미술 분야에 특화된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미술이나 디자인 원서의 경우 워낙 고가인 책들이 많아 다른 도서관에서는 소장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오로지 그런 책들만 보기 위해 찾아오는 전공자들도 있는 것이다. 한국 도서관의 평균 예술 분야 장서 보유율은 7%인데 반해 이곳은 현재 30%에 이른다. 호놀룰루, 리움 미술관에서 기증 받은 책까지 공개되면 40%까지 올라가게 된다.



미술도서관 3층에는 카페와 신인 예술가들을 위해 반 년 단위로 공간을 빌려주는 창작 스튜디오가 있다. 1층 전시장에서는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가 열린다. 전시는 3개월에 한 번 바뀌고 거기에 맞춰 전시장 인테리어도 다시 한다. 도서관이 아니라 일반 갤러리 수준이다.


이용자들이 오랫동안 머물며 공부를 하는 ‘독서실’보단 편하게 쉬었다 가는 ‘도서관’을 지향하기 때문에 준비 과정이 힘들었다. 사서들이 미술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수입책의 경우는 ‘아트나우’라는 예술 전문 업체의 자문을 구하고 있고, 전시 학예사 두 사람이 시간이 지나도 도서관의 주제가 흐릿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특성화 도서관이 생길 수 있었을까? 공공도서관 설립을 앞두고 시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일반적인 도서관보다 한 분야에 집중한 특성화 도서관을 운영해 달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마침 의정부는 김환기, 장욱진 화백과 함께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했던 백영수 화백의 고향이고, 의정부 호원동에 그의 작업실이 있었다. 시에 존재하는 귀중한 재원을 활용하는 측면에서 미술 분야에 집중하기로 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군부대가 있던 도시 특성을 살려 2021년 6월에는 소울, 재즈 같은 블랙 뮤직을 테마로 한 음악도서관이 의정부 신곡동에 개관하기도 했다. 클래식에서 대중음악까지 음반은 물론 수많은 악보를 대여할 수 있으며, 그 자리에서 피아노로 직접 연주하고, 작곡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디지털 음원, CD, LP 등 다양한 매체로 음악을 들으며 도서관 바로 앞에 펼쳐진 공원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미술도서관에 전시장이 있다면, 음악도서관엔 공연장이 있다. 개관 직후 기념 콘서트를 열었는데 힙합·소울 등 블랙 뮤직을 하는 뮤지션들의 공연도 있었다. 현재는 연말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으며 역시 클래식과 블랙 뮤직이 어우러진 음악회가 될 예정이다. 도서관 앞에 버스킹을 할 수 있는 구역을 따로 마련해 둔 것에서도 거리의 음악부터 공연장의 음악까지 모두 아우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의정부 음악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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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관리 공단에서 운영하는 대부분의 도서관과 달리 시의 안정적이고 도전적인 지원을 받아 수익 창출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미술도서관과 음악도서관이 공공 서비스와 전문화를 병행할 수 있는 이유이다. 미술도서관의 경우 상시로 열리는 전시는 물론, 스튜디오 입주 작가, 미술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큐레이션 직업 체험 등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이다. 오히려 선정 작가나 교육생들에게 활동비를 지급하기도 한다.


책을 읽는다는 건 오로지 문장에 집중해서 지식, 교양을 얻거나 재미를 느끼거나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독서는 사람과 공간,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절하고 나서야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미술도서관과 음악도서관은 폐쇄를 벗어버렸다. 이곳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안락한 의자에 앉아 그림, 음악, 책, 바깥 풍경을 나의 몸과 마음에 연결한다는 것이다. 엄숙하지 않고, 경쟁이 없으며, 지식이나 교양에 매달리지 않는다. 도서, 저자의 권위 같은 건 가만히 교차되는 정적, 웅성임 안에서 평평한 일상이 된다. 멀더라도, 예술에 거리감이 느껴지더라도, 이런 도서관들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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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호 / 사진 신태진

여행 매거진 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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