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사물의 그림자에서 펼쳐지는 매력적인 세계, 빈센트 발 전시 〈The Art of Shadow〉

사물의 그림자에 그림을 그려 넣자 새로운 이미지가 튀어나왔습니다. 사물의 용도가 달라지고, 서사가 생겨났으며, 입체와 평면의 경계가 무너졌지요.

 

벨기에 출신의 영화감독 빈센트 발은 베트남 여행 중에 산 찻잔을 놓고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가 찻잔의 그림자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바로 코끼리였습니다. 그는 찻잔 그림자에 숨은 이 귀여운 코끼리에게 눈과 다리, 미소를 찾아주었습니다. 쉐도우올로지(Shadowology)의 시작이었지요.

 

〈Elephant ends with tea〉 ⓒShadowlogy by Vincent Bal


잠실 소피텔 앰버서더 호텔 3층에 있는 MUSEUM 209에서는 〈빈센트 발: The Art of Shadow〉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미소와 감탄이 가득합니다. ‘쉐도우올로지’라는 자못 진지해 보이는 제목의 첫인상도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녹아버리지요. 귀엽고 익살스러운 것, 아름다운 것, 때로는 제대로 풍자 펀치 한 방 날리는 것. 어떻게 유리잔, 과일, 채칼 등 평범한 사물의 그림자로부터 이런 흥미로운 상상의 세계가 펼쳐질 수 있을까요?

 

〈Concerto for piano peeler〉 ⓒShadowlogy by Vincent Bal


〈Superfly Butterfly〉 ⓒShadowlogy by Vincent Bal


〈The Hand Cayon〉 ⓒShadowlogy by Vincent Bal


이번 전시의 주인공인 빈센트 발은 자신의 작업에 “어딘가 진짜 과학적인 이름을 짓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쉐도우올로지(Shadow+-ology)’라는 단어를 조합해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찻잔 코끼리 이후 ‘몇 개 더 그려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어간 이 작업을 마치 ‘연구하듯’ 해내고 있었습니다.

 


일주 운동에 따라 변하는 집안 곳곳의 그림자를 지켜보다가 특정한 순간에만 나타나는 새로운 세계를 포착하고, 유리잔마다 빛이 투과되는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온갖 유리잔을 사들여 집안 가득 쌓아두기도 하지요. 같은 사물이라도 빛의 각도에 따라 그림자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니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지요. 이 정도면 –ology라는 접미사를 붙이고도 남겠습니다.

 

전시된 작품은 두 종류입니다. 빈센트 발의 작품을 찍은 사진이 메인이지만, 중간 중간 실제 작품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진짜 그림과 그 그림자 위에 그려진 일러스트를 보고 있으면 아티스트의 작업 과정이 눈에 선히 그려지는 듯도 합니다.

 〈He Nose how to read between the wines〉 ⓒShadowlogy by Vincent Bal


〈Love on Shadow beach〉 ⓒShadowlogy by Vincent Bal


〈Korea Fan〉 ⓒShadowlogy by Vincent Bal


전시는 다섯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우선 빈센트 발을 소개하는 도입부를 지납니다. 그러면 사물의 그림자에서 사람과 동물의 모습을 발견하는 ‘Light at the museum’이 시작되지요.

 

이후로 유리잔을 투과한 빛과 그림자에서 장면을 만드는 ‘Glass lights’, 예술, 문화는 물론 사회 이슈까지 주제로 삼은 ‘Shadow Society’, 그 이름 그대로 온갖 그림자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Shadow Zoo’와 빛과 그림자로 펼친 풍경화 ‘Shadowscape’까지 전시가 이어집니다. 빈센트 발이 쉐도우올로지를 소재로 만든 단편 영화 〈Sea Shadow〉를 관람하는 작은 상영관도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Shoe Shower〉 ⓒShadowlogy by Vincent Bal


〈Extra tasty (E.T.)〉 ⓒShadowlogy by Vincent Bal


팬데믹 기간 누구나 숱하게 사용해 봤을 자가검진키트를 활용한 작품〈The Nose Knows〉 ⓒShadowlogy by Vincent Bal


〈Sandblasted glass〉 ⓒShadowlogy by Vincent Bal


평일 오전에 찾은 전시장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많았는데요, 아직 굳지 않은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이보다 좋은 전시는 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물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고 일러스트도 만화풍이라 ‘접근성’도 좋고요.

 


작품뿐만 아니라 전시 주최 측의 노력도 돋보였습니다. 우선 번역. 빈센트 발은 말장난 같은, 언어유희를 이용한 작명에도 일가견이 있는(한국이었다면 ‘아재 개그’를 한다고 핀잔을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티스트로 보이는데요, 이런 작품명이 아주 맛깔나게 우리말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발음이 비슷한 See와 Sea를 이용해 해변 그림에 붙여진 〈Sea me〉라는 작품명을 ‘나를 바다 줘’라고 해석한다든가, 가위의 그림자로 악어를 그린 〈Alliscissor〉라는 작품명을 ‘엘리가위터’라고 차음을 살짝 바꿔 옮긴다든가 하는 ‘초월 번역’이 감탄스러웠습니다. 번역가가 빈센트 발 못지않은 위트를 지니고 있지 않나 싶네요.

 

〈Sea me(나를 바다 줘)〉 ⓒShadowlogy by Vincent Bal


〈Alliscissor(엘리가위터)〉 ⓒShadowlogy by Vincent Bal


또, 만두 찜기를 이용한 작품(〈Steamer Dreamer〉) 속 찜기를 큼지막하게 만들어 전시 내 휴식 공간이자 포토존으로 설치한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무살이 전시 공간에 떨어트리는 그림자가 그 자체로 하나의 설치 작품 같기도 했고요.

 

〈Steamer Dreamer〉의 찜기를 형상화한 전시장 내 포토존


사실 전시를 보다 보면 ‘나도 해 볼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자신만만한 분들을 위해 전시 마지막에는 자신만의 쉐도우올로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체험 코너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유롭게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조명과 이런저런 소품들, 누군가 작품을 만들어 주길 기다리는 수북한 백지들.

 

저도 곱창 머리끈으로 뭔가를 시도해 보았지만, 도넛도, 개기일식도, 귀여운 애벌레도 전부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보기만큼 쉬운 일이 아니구나,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를 위해 슬쩍 자리를 피하며 지금껏 그냥 지나쳐온 숱한 그림자, 이면 속 세계를 이제부터라도 좀 유심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림자로부터 펼쳐지는 매력적인 상상, 빈센트 발의 전시였습니다.

 

〈Typeslicer〉 ⓒShadowlogy by Vincent Bal



빈센트 발: The Art of Shadow
전시 기간: 2022.11.11. ~ 2023.06.25.
전시 장소: MUSEUM209
주최/주관: (주)디커뮤니케이션 / MUSEUM209
관람 요금: 성인 15,000원 / 청소년 및 어린이: 12,000원 / 36개월 미만: 무료
전시 문의: 02-6953-8016




글/사진 신태진
자료제공 디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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