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서울에서 찾는 백제의 흔적 #2 - 풍납토성

서울에서 찾는 백제의 흔적: 몽촌토성 보기


풍납토성은 올림픽공원 북1문을 빠져나와 한강 쪽을 향해 걸어서 닿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남성벽 전망대, 동성벽 공원을 먼저 만나게 되지요. 좀 더 빠르게 풍납토성을 둘러보고 싶으시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천호역 10번 출구로 나와도 됩니다. 주택가를 에우고 있는 옛 토성의 흔적이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풍납토성의 흔적


몽촌토성과 달리 잔존한 성벽 주변엔 대부분 철책이 쳐져 있어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중간 중간 성벽이 잘린 공터는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고요. 풍납토성은 다사다난한 발굴 과정을 거쳤습니다. 1925년 대홍수 때 서쪽 성벽이 무너지며 백제의 유물이 대거 나왔는데, 이때부터 풍납토성이 중요한 곳이 아닐까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강남 개발 열풍이 이어지던 1980년대에 풍납토성 성내 구역에 수많은 아파트와 빌라, 주택이 들어섭니다. 채 20년이 안 되어 재개발도 들어갔는데요, 건물이 사라져 땅이 빈 틈을 타 이루어진 1997년 발굴 때 수많은 백제의 유물이 세상에 나왔다고 합니다. 단 한 번의 발굴로 나온 유물의 수가 그때껏 몽촌토성에서 나온 유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까지 했고요.


성벽이 잘린 자리에 들어선 주차장


뒤늦게 유적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며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공동으로 예산을 확보해 풍납동의 부지를 사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때는 재개발을 꿈꾸는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치솟는 서울의 땅값을 매입하기에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현재 예산으로 내부 토지를 전부 매입하려면 20년은 걸릴 것이라 예상하며, 그조차도 확실하지는 않다고 하네요.


일부 지역은 공원의 형태로 보전되고 있습니다. 바로 경당역사문화공원과 풍납백제문화공원입니다. 각각 백제 시대의 사당과 공공건물이 있던 자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당역사문화공원을 찾은 시간에 마침 한성백제 시절의 유적을 눈으로 보고 해설을 듣는 문화해설사 탐방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분이 참여하고 있어서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서울에 조선보다 더 오래된 왕국이 있었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새삼 아로새겨진 듯했습니다.


백제 시대 우물터도 남아 있는 경당역사문화공원


경당역사문화공원에서 멀지 않은 풍납백제문화공원은 면적이 더 넓습니다. 당시 백제의 집자리가 바닥에 표기되어 있는데, 한성백제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았던 지상식 건물터라고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공공시설이라고 추측하고 있지요. 또, 이곳에는 백제의 평민이 살았던 초가집을 재현한 건물도 한 채 있는데 꼭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부뚜막은 물론 백제 사람들의 식단을 재현한 모형, 윷놀이도 한 벌 있습니다. 웬 윷놀이인가 싶을지도 모르지만, 바둑, 장기, 구슬치기, 투호와 더불어 윷놀이 역시 백제 시대의 인기 놀이였다고 합니다. 


풍납백제문화공원 


한강 유역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백제는 475년 고구려에게 한성을 빼앗긴 후 절치부심 기회를 노립니다. 웅진(공주)을 거쳐 사비(부여) 시대로 접어들며 국력을 회복한 백제는 마침내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몰아내지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신라의 배신으로 한강 유역을 영영 잃고 맙니다. 주인이 여러 번 바뀐 풍납토성과 몽촌토성도 세월의 흐름에 잊혀 갔고요. 그리고 십수 세기가 흐른 지금, 이곳에 다시 봄이 찾아왔습니다.


유적과 주민을 위한 쉼터의 균형이 꽤 잘 잡혀 있는 풍납백제문화공원에서 많은 시민들이 초봄 기운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마침 매화와 산수유 꽃이 피었군요. 기나긴 겨울의 끝, 무엇보다 마침내 온전히 되찾은 일상의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거의 2천 년을 거슬러 올랐던 백제 산책을 마칠 시간입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마주한 골목 풍경에서 시계가 오늘날까지 완전히 되돌려진 건 아니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새물이 제법 많이 나온 풍납시장을 따라 걷다 샛길로 빠지면 8~90년대 지어진 주택과 빌라의 숲으로 들어섭니다. 곳곳에 집 없이 텅 빈 자리에 문화재 보호를 위한 두른 철책도 보입니다. 정부에서 풍납토성 보호를 위해 사들인 땅입니다. 빽빽한 주택가치고 유난히 집 한두 채 넓이의 주차장도 많은데요, 아마도 매입한 토지 일부를 주차난 해소에 이용하고 있는 듯합니다.


풍납동 골목, 풍납시장


절로 어렸을 적 동네 기억이 떠오릅니다. 붉은 벽돌로 쌓은 낮은 담장, 아담한 크기의 철제 대문과 여닫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은 낡은 창문, 각 가구로 이어진 다세대 주택의 얄팍한 계단들. 재산권 보장과 유적 보호 사이의 드잡이 시절도 얼마간 지나버린 지금, 한낱 방문자는 그저 20세기 말 서울 주택가 풍경이 이만큼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데 그리움과 향수를 느낍니다. 앞으로 더 많은 세월이 흐른 후 풍납토성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아마 올림픽공원이 된 몽촌토성처럼 유물을 보호하고 역사를 전시하는 도심 속 휴식처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웅장한 박물관도 한 채 들어서겠고요.



외지인으로 이곳 주민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는 없겠습니다만, 가만히 상상합니다. 지금 공원화된 토성 벽 위를 미끄러지듯 뛰어오는 어린아이가 이곳을 떠났다가 어른이 되어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그때, 지금 우리가 그러듯, 휘황찬란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안에서 어릴 적 뛰어놀았던 골목의 흔적을 찾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주택은 말끔히 사라졌을지언정 서울에 뿌리를 내렸던 옛 나라의 일부가 문화재 보존 구역으로 되살아난 모습을 보는 게 나을까요? 사라짐의 방식은 어떤 식이어야 그나마 덜 애처로울까요? 아마 큰 이변이 없는 한 풍납토성은 대규모 발굴 조사를 거쳐 복원의 길을 걸을 것 같습니다. 그게 아이에게는 그래도 행운으로 느껴지기를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글/사진 신태진

브릭스 매거진의 에디터. 『진실한 한 끼』『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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