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양양 고속도로에서 나와 잠시 뒤 낙산 해수욕장 표지판 앞을 지납니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1분도 안 돼 유월의 동해에 닿을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바다를 등지고 산간 마을로 길을 좁혀 들어갑니다. 드문드문 이어지던 단독 주택들이 툭 끊기는 순간, 차 한 대 겨우 지날 시멘트 포장길이 산속으로 굽이굽이 이어집니다. 길을 잘못 든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차 돌릴 곳도 없습니다. 가던 길을 가는 수밖에요. 그러기를 10여분, 이건 정말 낭패다 하는데 양양술곳간의 작은 간판이 보입니다. 이런 데 정말 양조장이 있다고요?
술이 없다더군요. 그래서 양조장 구경만 해도 되냐 여쭈니 지금 손님들이 쉬어 갈 공간을 짓느라 어지럽지만, 와서 보는 건 괜찮다 하시더군요. 돌계단을 오르니 삽살개 혼종 맥스라는 아이가 힘차게 반겨줍니다. 반기는 강도에 비해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맥스를 마주보며 양양술곳간 주인 두 분이 작업복을 툭툭 털며 걸어 나오시더군요.

“처음부터 양조장을 하겠다고 이곳에 온 건 아니었어요. 도시 생활을 접고 2015년 남편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무얼 하며 살지 생각도 안 해보고 왔어요. 잘 쉬었고, 잘 놀았어요. 그런데 은퇴라고 하기에는 아직 한참 이른 나이라 무어라도 해야 했어요. 시골에 내려왔으니 조그맣게 농사를 지어 보기도 했는데, 농사를 잘 모르니까 무작정 열심히 했지요. 첫해에는 아주 잘 됐어요. 그래서 다음 해에도 똑같이 해 봤더니, 결과가 정반대더군요. 도시에 살다 온 저희에게 농사가 너무 어렵고 벅찬 일이기도 했고, 사실 농사를 짓기에는 저희가 너무 게을렀어요.”
그 사이 주섬주섬 둘러앉을 의자가 놓여지고, 아마 판매용은 아니었을 술과 주전부리가 나옵니다. 투명한 술잔에 청주 ‘모든 날에는’을 받아 손에 들었습니다. 그 다음은 탁주, 다시 청주, 잔을 바꿔가며 서너 잔을 마셨지요. 취하기 전에 술은 어쩌다 빚게 되었는지 여쭈어야지요.
“양양농업기술센터에 전통 바느질 강좌를 다니고 있었어요. 어느 날 수업을 듣는데 창을 넘어 처음 맡는 향이 코에 닿았어요. 이게 무슨 향기일까 따라가 봤더니 바로 옆 교실에서 전통주 담그기 수업을 하고 있었어요. 부탁해서 아주 조금 입에 머금어 보고서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어요. 그곳에서 4년간 전통주 만드는 수업을 들었고,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서 2년간 서울로 교육을 받으러 다녔어요.”

“양조장을 하게 된 건 올해로 6년째예요. 맑은 술과 탁한 술 두 가지를 빚고 있고 최근에 소주도 출시했어요. 우리 손이 닿는 대로 힘에 부치지 않을 만큼만 소량으로 만들고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이고, 발효도 항아리에서 해요. 첨가물 하나 없이 전통 방식으로 빚는 술이라 품이 많이 들어요.”
다른 술을 더 마셔 보라며 술을 가지러 가시는 남편 분을 따라 들어가니 발효실에 청량한 술 향기가 가득합니다. 지금은 발효가 제법 진행된 거고, 발효 초기에는 술 약한 사람은 들어가서 가만히 있어도 취할 만큼 강렬한 향이 난다고 하더군요.
“이걸 업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마치 동아리처럼 술을 빚고 걸러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마시는 게 정말 좋았고, 다들 맛있게 드시니까 또 빚게 되고, 남편이 술을 잘 권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찾아오는 지인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무척 행복했어요. 그러고는 너무 단순한 얘기들이에요. 우연히 강릉 단오제 경연대회에 출품했다가 상을 받게 되고, 전국 단위 경연에서 수상하고, 박람회에 참가하며 좋은 품평을 듣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그 사이 술 잘 권하는 남편 분께서 흐뭇하게 술잔을 채워 주시다가, 아, 아직 덜 익어서 70도 정도 하는 소주가 있는데, 지금 어떤 상태인지 맛 좀 보시겠어요 하며 다시 자리를 뜨십니다. 70도라는 말에 주눅이 들긴 했으나 권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잔 밑에 살짝 깔린 뜨거운 소주를 입에 머금어 봅니다. 이 향에 매료되어 제가 술을 빚게 될 날이 올까요?
“미리 연락 주고 오시면 같이 술을 빚어 볼 수도 있어요. 빚은 술은 집에 가져가시면 되는데, 그 전에 어떻게 보관하고 어떻게 걸러야 하는지 설명해 드리고요. 보통 20일 정도 지나야 마실 수 있는데, 그 사이에 어떤 변화를 주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거든요. 사실 그건 저희에게도 어려운 일이에요. 술을 빚고 거르고 증류하는 과정은 저희가 정성껏 하면 되지만, 술이 익어 절로 맛이 나는 건 저희 영역이 아니에요.”

술을 빚는 분들보다 시음을 한 뒤 술을 사 가시는 분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그 분들이 편하게 머물다 갈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지금 새 공간을 손수 만들고 있다고 하시고요. 제가 머문 날처럼 집밖에 의자를 내고 첩첩 산과 하늘에 둘러싸여 ‘모든 날에는’ 하며 맑은 술을 마시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모든 날이 그럴 수는 없으니 장마와 한여름, 강원도의 겨울을 피해 있을 공간이 필요하겠지요. 여기는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순수하게 응접실이라고 하시니, 찾아가실 분들은 함께 나눌 안줏거리를 마련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양양을 생각하게 되는 모든 날에 이 공간과 강아지 맥스, 술 빚는 두 분이 떠오르게 될 것 같네요.
양양술곳간 yangyangsoolgodgan.com
브릭스 트래블에 문의하시면 양양술곳간과 속초, 강릉의 맥주 브루어리를 방문하는 1일 여행 프로그램을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글 | 이주호
사진 | 신태진
서울 양양 고속도로에서 나와 잠시 뒤 낙산 해수욕장 표지판 앞을 지납니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1분도 안 돼 유월의 동해에 닿을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바다를 등지고 산간 마을로 길을 좁혀 들어갑니다. 드문드문 이어지던 단독 주택들이 툭 끊기는 순간, 차 한 대 겨우 지날 시멘트 포장길이 산속으로 굽이굽이 이어집니다. 길을 잘못 든 게 분명한 것 같은데, 차 돌릴 곳도 없습니다. 가던 길을 가는 수밖에요. 그러기를 10여분, 이건 정말 낭패다 하는데 양양술곳간의 작은 간판이 보입니다. 이런 데 정말 양조장이 있다고요?
술이 없다더군요. 그래서 양조장 구경만 해도 되냐 여쭈니 지금 손님들이 쉬어 갈 공간을 짓느라 어지럽지만, 와서 보는 건 괜찮다 하시더군요. 돌계단을 오르니 삽살개 혼종 맥스라는 아이가 힘차게 반겨줍니다. 반기는 강도에 비해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맥스를 마주보며 양양술곳간 주인 두 분이 작업복을 툭툭 털며 걸어 나오시더군요.
“처음부터 양조장을 하겠다고 이곳에 온 건 아니었어요. 도시 생활을 접고 2015년 남편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무얼 하며 살지 생각도 안 해보고 왔어요. 잘 쉬었고, 잘 놀았어요. 그런데 은퇴라고 하기에는 아직 한참 이른 나이라 무어라도 해야 했어요. 시골에 내려왔으니 조그맣게 농사를 지어 보기도 했는데, 농사를 잘 모르니까 무작정 열심히 했지요. 첫해에는 아주 잘 됐어요. 그래서 다음 해에도 똑같이 해 봤더니, 결과가 정반대더군요. 도시에 살다 온 저희에게 농사가 너무 어렵고 벅찬 일이기도 했고, 사실 농사를 짓기에는 저희가 너무 게을렀어요.”
그 사이 주섬주섬 둘러앉을 의자가 놓여지고, 아마 판매용은 아니었을 술과 주전부리가 나옵니다. 투명한 술잔에 청주 ‘모든 날에는’을 받아 손에 들었습니다. 그 다음은 탁주, 다시 청주, 잔을 바꿔가며 서너 잔을 마셨지요. 취하기 전에 술은 어쩌다 빚게 되었는지 여쭈어야지요.
“양양농업기술센터에 전통 바느질 강좌를 다니고 있었어요. 어느 날 수업을 듣는데 창을 넘어 처음 맡는 향이 코에 닿았어요. 이게 무슨 향기일까 따라가 봤더니 바로 옆 교실에서 전통주 담그기 수업을 하고 있었어요. 부탁해서 아주 조금 입에 머금어 보고서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어요. 그곳에서 4년간 전통주 만드는 수업을 들었고,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서 2년간 서울로 교육을 받으러 다녔어요.”
“양조장을 하게 된 건 올해로 6년째예요. 맑은 술과 탁한 술 두 가지를 빚고 있고 최근에 소주도 출시했어요. 우리 손이 닿는 대로 힘에 부치지 않을 만큼만 소량으로 만들고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이고, 발효도 항아리에서 해요. 첨가물 하나 없이 전통 방식으로 빚는 술이라 품이 많이 들어요.”
다른 술을 더 마셔 보라며 술을 가지러 가시는 남편 분을 따라 들어가니 발효실에 청량한 술 향기가 가득합니다. 지금은 발효가 제법 진행된 거고, 발효 초기에는 술 약한 사람은 들어가서 가만히 있어도 취할 만큼 강렬한 향이 난다고 하더군요.
“이걸 업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마치 동아리처럼 술을 빚고 걸러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마시는 게 정말 좋았고, 다들 맛있게 드시니까 또 빚게 되고, 남편이 술을 잘 권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찾아오는 지인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무척 행복했어요. 그러고는 너무 단순한 얘기들이에요. 우연히 강릉 단오제 경연대회에 출품했다가 상을 받게 되고, 전국 단위 경연에서 수상하고, 박람회에 참가하며 좋은 품평을 듣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그 사이 술 잘 권하는 남편 분께서 흐뭇하게 술잔을 채워 주시다가, 아, 아직 덜 익어서 70도 정도 하는 소주가 있는데, 지금 어떤 상태인지 맛 좀 보시겠어요 하며 다시 자리를 뜨십니다. 70도라는 말에 주눅이 들긴 했으나 권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잔 밑에 살짝 깔린 뜨거운 소주를 입에 머금어 봅니다. 이 향에 매료되어 제가 술을 빚게 될 날이 올까요?
“미리 연락 주고 오시면 같이 술을 빚어 볼 수도 있어요. 빚은 술은 집에 가져가시면 되는데, 그 전에 어떻게 보관하고 어떻게 걸러야 하는지 설명해 드리고요. 보통 20일 정도 지나야 마실 수 있는데, 그 사이에 어떤 변화를 주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거든요. 사실 그건 저희에게도 어려운 일이에요. 술을 빚고 거르고 증류하는 과정은 저희가 정성껏 하면 되지만, 술이 익어 절로 맛이 나는 건 저희 영역이 아니에요.”
술을 빚는 분들보다 시음을 한 뒤 술을 사 가시는 분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그 분들이 편하게 머물다 갈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지금 새 공간을 손수 만들고 있다고 하시고요. 제가 머문 날처럼 집밖에 의자를 내고 첩첩 산과 하늘에 둘러싸여 ‘모든 날에는’ 하며 맑은 술을 마시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모든 날이 그럴 수는 없으니 장마와 한여름, 강원도의 겨울을 피해 있을 공간이 필요하겠지요. 여기는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순수하게 응접실이라고 하시니, 찾아가실 분들은 함께 나눌 안줏거리를 마련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양양을 생각하게 되는 모든 날에 이 공간과 강아지 맥스, 술 빚는 두 분이 떠오르게 될 것 같네요.
글 | 이주호
사진 | 신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