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실이가 살던 서글픈 동화 마을
안동역에서 차를 타고 20여 분. 붉은 벽돌로 지은 오래된 교회 앞에 도착합니다. 일직 예배당이라 적힌 이 교회는 『강아지똥』, 『몽실언니』를 쓴 동화 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머물던 교회입니다. 1968년 서른한 살 되던 해, 그는 주일학교 교사로 일하던 이 교회에 딸린 문간방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합니다. 교회 관리를 하면서 매일 새벽과 저녁 종 치는 일을 하기로 한 겁니다. 한겨울이면 줄을 잡아 당기는 손이 찢어질 듯 아팠으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길가의 벌레와 돌멩이들이 듣는다며 맨손으로 종을 울려야 한다고 했지요. 선생이 새벽을 알리던 종탑은 오래 전 철거되고, 지금 서 있는 건 2008년 새로 지은 것이라 합니다.
지금은 철거된 듯한 교회 문간방으로 이사 온 이듬해 <강아지똥>이 기독교아동문학상에 당선됩니다. 강아지똥은 어디쯤 떨어져 뒹굴고 있었을까요. 교회 앞길을 따라 걷다 농가 사이 야트막한 언덕을 오릅니다. 선생이 살던 집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따로 없지만, 벽화와 그 위에 쓰인 동화 구절들을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자그마한 흙집 마당에 이릅니다.
1983년 8월 권정생 작가는 안동시 일직면 일직교회에 딸린 문간방을 떠나 빌뱅이 언덕 아래 새로 지은 흙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새로 지은 집이라고 해 봐야 작은 부엌에 방 하나, 다 합쳐서 다섯 평이 안 되었지요. 동네 청년들이 흙벽을 쌓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 만들어준 집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언덕이라 하여 빌뱅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6.25 전쟁 이후 빌어먹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빌뱅이 언덕이라 불렀다고도 합니다.

방문 앞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옆 나무로 만든 작은 책상 위에는 수도세, 전기세 고지서가 배달되어 있습니다. 수신인 이름이 권정생이네요. 강아지 뺑덕이와 두데기를 데리고 어디 산책이라도 나가 계신 걸까요? 이 동화 같은 집 마당에 서서 뒷산을 바라보니 발길에 치이며 장난을 치는 털북숭이들과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고무신을 신은 깡마른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언덕길을 내려오실 것만 같습니다. 수돗물은 잘 나옵니다. 손을 씻고, 손에 남은 물을 얼굴에 부비고 방문 틈을 들여다 봅니다. 두 사람 누우면 어깨를 맞댈 듯한 아주 작은 방 안에 책장이 하나 놓여 있네요. 이 안에서 몽실이가 태어나고, 한티재, 점득이, 우리들의 하느님, 외롭고 올곧고 따듯한 글들이 쓰여졌겠지요.

권정생 동화나라
교회 종소리, 마당에 스미어 해마다 민들레로 피어나는 강아지똥과 인사하고 안동시에서 일직남부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권정생 동화나라’로 갑니다. 가는 길에 몽실이 마을에 들러 보기로 합니다. 빌뱅이 언덕 집으로 이사한 이듬해 소설 <몽실언니> 출간되는데, 몽실이의 고단한 일생을 그린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게 되고, 6년 뒤 1990년에는 MBC에서 36부작 드라마로 제작, 방영됩니다.
몽실이 마을은 권정생 동화나라가 있는 몽실마을이 아니라 일직면 운산리, <몽실언니> 배경이 되었던 마을입니다. 마을 곳곳에 몽실이의 자취가 보입니다. 몽실이는 이곳에서 장사도 하고, 구걸도 하며 병든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먹여 살렸지요.


부모가 있으나 전쟁 고아나 다름없는 몽실이는 어른들의 실수로 다리를 다쳐 평생 불구로 살아갑니다. 어른이 돼서도 꼽추와 결혼하여 시장에서 콩나물을 팔며 살아가지요. 열아홉 살에 늑막염, 폐결핵을 얻어 몸이 다 망가졌고, 스물아홉 되던 해 콩팥과 방광을 드러내고 평생 소변 주머니를 달고 다녀야 했던 권정생 선생처럼, 몽실이의 삶도 동화와는 너무나 먼 곳에 있었지요.
<몽실언니>가 인기를 얻고 나서는 권정생 선생도 인기 작가가 되어 있었기에 도시에 나가 편히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멀쩡히 살아 좋아하는 동화를 쓸 수 있는 데다, 아이들에게 사랑까지 받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했지요. 어린이 책을 써서 번 돈은 그가 죽고 난 뒤 그의 유언에 따라 남북한과 아시아 어린이들, 북한 결핵 환자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권정생 동화나라에 도착합니다. 엄마 까투리와 아기 꿩들이 마중을 나와 있네요. 선생의 손글씨 원고와 작품집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지납니다. 열과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손에 힘을 주고 꾹꾹 눌러 동화의 나라가 만들어졌네요.

소박한 놀이동산 같은 동화 나라를 두루 지나는 동안 동화가 이렇게까지 서글퍼야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 당차고 똑똑한 몽실이라면 그보다 편안한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건 작가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거겠지요.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아이들이 죽고 불구가 되고 고아가 되었지요. 그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해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요. 아이들은 슬픈 동화 속에서 살아야 했었지요. 이 슬픈 동화를 쓰면서 선생은 다시는 아이들에게 이런 슬픔을 남겨 주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고요. 그래서 몽실이가 너무 불쌍하다는 편지보다 몽실이의 삶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편지를 더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동화의 나라를 나와 현실 세계로 속도를 높입니다. 동화의 나라와 멀어질수록 선생의 동화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 더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세상은 아이들을 위해, 아이였던 자신을 위해 동화를 써 나갔던 거겠지요. 그러고 보면 안동의 유산은 지금 우리 삶과 아무 맥락도 없는 양반 가문의 기와집이 아니라 가난하고 외로운 언덕 아래 강아지와 풀벌레와 돌멩이가 살아가던 작은 흙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몽실언니 드라마도 감상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OBbhydezQbfkehbluX6FIGbflNHSj0ho
글 | 이주호

브릭스 매거진의 편집장.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 『노자가 사는 집』 『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등을 썼다.
사진 | 신태진 에디터
몽실이가 살던 서글픈 동화 마을
안동역에서 차를 타고 20여 분. 붉은 벽돌로 지은 오래된 교회 앞에 도착합니다. 일직 예배당이라 적힌 이 교회는 『강아지똥』, 『몽실언니』를 쓴 동화 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머물던 교회입니다. 1968년 서른한 살 되던 해, 그는 주일학교 교사로 일하던 이 교회에 딸린 문간방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합니다. 교회 관리를 하면서 매일 새벽과 저녁 종 치는 일을 하기로 한 겁니다. 한겨울이면 줄을 잡아 당기는 손이 찢어질 듯 아팠으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길가의 벌레와 돌멩이들이 듣는다며 맨손으로 종을 울려야 한다고 했지요. 선생이 새벽을 알리던 종탑은 오래 전 철거되고, 지금 서 있는 건 2008년 새로 지은 것이라 합니다.
지금은 철거된 듯한 교회 문간방으로 이사 온 이듬해 <강아지똥>이 기독교아동문학상에 당선됩니다. 강아지똥은 어디쯤 떨어져 뒹굴고 있었을까요. 교회 앞길을 따라 걷다 농가 사이 야트막한 언덕을 오릅니다. 선생이 살던 집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따로 없지만, 벽화와 그 위에 쓰인 동화 구절들을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자그마한 흙집 마당에 이릅니다.
1983년 8월 권정생 작가는 안동시 일직면 일직교회에 딸린 문간방을 떠나 빌뱅이 언덕 아래 새로 지은 흙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새로 지은 집이라고 해 봐야 작은 부엌에 방 하나, 다 합쳐서 다섯 평이 안 되었지요. 동네 청년들이 흙벽을 쌓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 만들어준 집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언덕이라 하여 빌뱅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6.25 전쟁 이후 빌어먹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빌뱅이 언덕이라 불렀다고도 합니다.
방문 앞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옆 나무로 만든 작은 책상 위에는 수도세, 전기세 고지서가 배달되어 있습니다. 수신인 이름이 권정생이네요. 강아지 뺑덕이와 두데기를 데리고 어디 산책이라도 나가 계신 걸까요? 이 동화 같은 집 마당에 서서 뒷산을 바라보니 발길에 치이며 장난을 치는 털북숭이들과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고무신을 신은 깡마른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언덕길을 내려오실 것만 같습니다. 수돗물은 잘 나옵니다. 손을 씻고, 손에 남은 물을 얼굴에 부비고 방문 틈을 들여다 봅니다. 두 사람 누우면 어깨를 맞댈 듯한 아주 작은 방 안에 책장이 하나 놓여 있네요. 이 안에서 몽실이가 태어나고, 한티재, 점득이, 우리들의 하느님, 외롭고 올곧고 따듯한 글들이 쓰여졌겠지요.
권정생 동화나라
교회 종소리, 마당에 스미어 해마다 민들레로 피어나는 강아지똥과 인사하고 안동시에서 일직남부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권정생 동화나라’로 갑니다. 가는 길에 몽실이 마을에 들러 보기로 합니다. 빌뱅이 언덕 집으로 이사한 이듬해 소설 <몽실언니> 출간되는데, 몽실이의 고단한 일생을 그린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게 되고, 6년 뒤 1990년에는 MBC에서 36부작 드라마로 제작, 방영됩니다.
몽실이 마을은 권정생 동화나라가 있는 몽실마을이 아니라 일직면 운산리, <몽실언니> 배경이 되었던 마을입니다. 마을 곳곳에 몽실이의 자취가 보입니다. 몽실이는 이곳에서 장사도 하고, 구걸도 하며 병든 아버지와 어린 동생을 먹여 살렸지요.
부모가 있으나 전쟁 고아나 다름없는 몽실이는 어른들의 실수로 다리를 다쳐 평생 불구로 살아갑니다. 어른이 돼서도 꼽추와 결혼하여 시장에서 콩나물을 팔며 살아가지요. 열아홉 살에 늑막염, 폐결핵을 얻어 몸이 다 망가졌고, 스물아홉 되던 해 콩팥과 방광을 드러내고 평생 소변 주머니를 달고 다녀야 했던 권정생 선생처럼, 몽실이의 삶도 동화와는 너무나 먼 곳에 있었지요.
<몽실언니>가 인기를 얻고 나서는 권정생 선생도 인기 작가가 되어 있었기에 도시에 나가 편히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멀쩡히 살아 좋아하는 동화를 쓸 수 있는 데다, 아이들에게 사랑까지 받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했지요. 어린이 책을 써서 번 돈은 그가 죽고 난 뒤 그의 유언에 따라 남북한과 아시아 어린이들, 북한 결핵 환자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권정생 동화나라에 도착합니다. 엄마 까투리와 아기 꿩들이 마중을 나와 있네요. 선생의 손글씨 원고와 작품집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지납니다. 열과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손에 힘을 주고 꾹꾹 눌러 동화의 나라가 만들어졌네요.
소박한 놀이동산 같은 동화 나라를 두루 지나는 동안 동화가 이렇게까지 서글퍼야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 당차고 똑똑한 몽실이라면 그보다 편안한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건 작가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거겠지요.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아이들이 죽고 불구가 되고 고아가 되었지요. 그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해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요. 아이들은 슬픈 동화 속에서 살아야 했었지요. 이 슬픈 동화를 쓰면서 선생은 다시는 아이들에게 이런 슬픔을 남겨 주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고요. 그래서 몽실이가 너무 불쌍하다는 편지보다 몽실이의 삶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편지를 더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동화의 나라를 나와 현실 세계로 속도를 높입니다. 동화의 나라와 멀어질수록 선생의 동화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 더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세상은 아이들을 위해, 아이였던 자신을 위해 동화를 써 나갔던 거겠지요. 그러고 보면 안동의 유산은 지금 우리 삶과 아무 맥락도 없는 양반 가문의 기와집이 아니라 가난하고 외로운 언덕 아래 강아지와 풀벌레와 돌멩이가 살아가던 작은 흙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몽실언니 드라마도 감상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OBbhydezQbfkehbluX6FIGbflNHSj0ho
글 | 이주호
브릭스 매거진의 편집장.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말았지』 『노자가 사는 집』 『무덤 건너뛰기』 『도쿄적 일상』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등을 썼다.
사진 | 신태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