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선 에브리데이 크리스마스, 바이나흐튼 크리스마스 박물관

브릭스에서 떠나다



“벌써 12월이에요. 한 해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요.”


대화를 시작하는 스몰토크는 사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다. 항상 닷새, 엿새는 지나고 나서야 12월이 됐다는 걸 알아차린다. 12월, 한 해를 의미 있게 마무리 지을 여지가 한 달 남았다. 그보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캐나다 퀘벡 시티에는 날마다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선사하는 상점이 있다. 이름도 그냥 ‘크리스마스 상점’이었다. 털양말만 봐도 땀이 뻘뻘 날 한여름에 산타할아버지 머그컵과 눈 덮인 모형 집을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딱 하루 문을 닫는데, 그날이 바로 12월 25일이다.


퀘벡 시티의 '크리스마스 상점'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 테마에 몰입해 사는 삶이라. 365일 크리스마스 캐럴만 듣는다. 어떤 기분일까? 어려움은 없을까? 경남 남해군 편백휴양림 부근에 ‘물건너온 세모점빵’이라는 크리스마스 테마의 카페가 있다. 사시사철 성탄절 인테리어로 꾸며지는 건 물론, 여름에 뱅쇼를 차갑게 서빙하는 등 크리스마스 메뉴를 시즌에 맞춰 판매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레드’로 칠해진 삼각형 건물은 그 자체로 거대한 트리 장식 같다.


남해의 '물건너온 세모점빵'


그리고 제주. 제주와 크리스마스를 나란히 떠올려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바이나흐튼 크리스마스 박물관’의 주소지는 분명 제주 서귀포시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크리스마스 ‘박물관’이라니? 많은 이들이 공간에 품은 환상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섬, 제주다운 일 같기도 하다.



성탄절을 한 달이나 앞뒀음에도 바이나흐튼 크리스마스 박물관은 가족, 연인들로 붐볐다. 마침 크리스마스 마켓이 시작하는 날이었다. 방문객이 적은 비시즌에는 무인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박물관은 자그마한 광장을 끼고 카페, 앤틱숍과 함께 운영된다. 건물은 모두 세모 지붕에 네모 벽, 단순한 도형의 조합이다. 독일 어느 작은 마을을 재현하는 낭만적인 기하학. 박물관 이름인 ‘Weihnachten’은 독일어로 크리스마스다. 실제로 카드, 장식, 인형 같은 ‘크리스마스 굿즈’에 지대한 창의력을 발휘해 온 나라가 독일이었다. 지금도 크리스마스마켓하면 독일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이 나라의 한결같은 크리스마스 사랑 덕분이다.



2층 구조의 박물관 안에는 크리스마스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벽을 따라 1층부터 2층까지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연대기에는 산타클로스의 모티프가 된 성 니콜라스의 일생, 노르웨이에서 산타 역할을 대신하는 요정 ‘니세’의 전설,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가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리게 된 사연, 코카콜라가 크리스마스를 상업적인 이벤트로 탈바꿈시킨 순간, 전쟁 중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각국의 크리스마스 풍경 등이 실려 있다.


유난히 많은 어린 관람객들은 연대기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호두까기 인형과 꼬마 기차, 눈 내리는 마을을 재현하는 스노우 글로브를 바라보는 눈은 천장에 매달린 ‘크리스마스 별’보다도 밝다.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날. 선물을 주고받는 날. 반짝이는 조명과 장식을 보며 마음을 빛내는 날. 사랑과 용서의 날. 기적이 일어나는 날.



크리스마스의 의의는 종교적인 면에서도, 세속적인 면에서도 어려서부터 학습된다. 아니, 스며든다. “일 년을 착하게 보낸 아이는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이 말을 믿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날이다. 내가 올해도 착하게 살았구나. 조금 나쁜 짓도 한 거 같은데 다음에는 더 잘하라고 선물을 주셨구나. 산타 할아버지가 나를 잊지 않고 있구나.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크리스마스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건 무조건적인 사랑의 기억과 세상 어딘가에 나를 지켜봐 주는 존재가 있다는 든든함이 우리 안에 조금은 남아 있기 때문일까? 어쩌면 12월 한 달만으로 그 믿음을 지키기 어려워서 세계 곳곳에 크리스마스 상점, 카페, 박물관이 문을 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크리스마스 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것은 우리에겐 조금 생소한 독일의 크리스마스 피라미드다. 층층으로 이루어진 오르골 같은 판에 성탄 테마의 인형들이 장식돼 있고, 각 층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처음 이 피라미드를 고안한 건 1920년대 독일 에르츠 산맥의 광부들이었다. 어둠과 위험으로 가득한 광산을 천사들이 노래하는 천국으로 달리 묘사한 것이다. 박물관에서 직접 독일과 합작해 만들었다는 글뤼바인 한 병을 사 가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겨도 좋겠다.



박물관 구경을 마치면 바로 옆 카페에서 차와 쿠키를 즐기거나 앤틱숍을 둘러보며 몽글몽글해진 기분을 이어갈 수 있다. 앤틱숍에 입점한 소규모 공방과 잡화점에선 시즌을 맞아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체험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글/사진 신태진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 『꽃 파르페 물고기 그리고 당신』을 냈고, 『홍콩단편, 어쩌면 익숙한 하루』를 함께 썼다.
https://www.instagram.com/ecrire_lire_vivr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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