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와 함께 헬프엑스를]헬퍼의 일: 라마 돌보기, 감자와 퀴노아 심기

모모와 함께 헬프엑스를 #6



여느 때처럼 마마가 차려주는 간단한 아침을 먹고 나니 오늘 할 일은 ‘라마 돌보기’란다. A와 V와 나, 세 명이 모두 함께 가기로 했다. 알고 보니 아침 먹기도 전에 이미 A와 V는 언덕 꼭대기에 라마를 데려다 놓고 왔단다. A가 눈을 치켜뜨고 힘주어 말한다.


“Very Steep(아주 경사가 심해)!”


얼마나 높이 올라가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이 고산지역에서 경사까지 심하다고 하니 내심 긴장이 됐다. 정 못 오르겠으면 조금 폐를 끼치더라도 쉬엄쉬엄 갈 각오로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길을 나섰다. 드문드문 인적이 있는 마을길을 벗어나 산길 초입으로 들어서니 경사가 조금 있기는 해도 못 올라갈 정도는 아닌데, 사람 손을 탄 길이 아니라서 몸이 땅이 생긴 대로 적응해야 한다.


솜털처럼 보드라운 잔디와 하늘거리는 풀꽃까지 하나하나 눈길을 주다가 고개를 들어 눈앞을 보면 거인이 팔을 벌린 모습의 산이 하나도 아니고 둘, 셋, 첩첩으로 와락 달려들어 그만 고개를 떨구고 눈앞의 한 걸음에 집중하게 된다. 움직이는 건 이리저리 자유롭게 노니는 새와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과 나뭇잎밖에 없는 가운데 당나귀와 라마 똥이 드문드문 까만 깨처럼 뿌려져 있었다. 인적 하나 없이 평화로웠다.


숨이 가빠오기 전에 미리 숨을 조절하려고 애썼다. 입을 크게 벌린다고 숨이 많이 들어가는 건 아니다. 내 생각에는 들숨과 날숨의 길이를 동일하게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숨을 몸 안에 머금는 게 중요한 것 같은데, 요가 호흡법이 도움이 되었다.


오솔길로 시작한 길이 평지로 바뀌고, 평지가 언덕으로 바뀌고, 언덕이 거대한 산으로 바뀌는 동안 우리 셋은 거의 아무 말이 없었다. 처음 가보는 길이니 최대한 산소를 아껴야 했다. 하지만 한 발 한 발 떼는 사이 고산에 대한 걱정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적응한다면 여기나 저기나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너무 지레 겁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 걷다가 다 왔어!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든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내가 감히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고개를 꺾어야 겨우 올려다보이는 거대한 십자가가 우아라스 시내를 축복하듯 서 있다. 꽃으로 장식된 십자가다. 그 옆에 서서 360도로 주변을 돌아보면 시선이 닿는 동서남북마다 풍경이 다르다. 서쪽에는 눈으로 덮인 꼭대기가 장엄하다. 생각해보니 봉우리 절반 정도가 구름에 가려진 설산을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저 멀리 산봉우리의 백설에 반사된 빛이 내가 있는 곳까지 다다라 눈이 부시다. 거기까지는 사람 걸음으로 이삼일 혹은 일주일이 걸리는 거리일지 모른다.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산이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서 있다. 색깔이 서쪽 산과 또 다르다. 마치 초콜릿을 이리저리 짜개어 놓은 듯 아름답게 각이 져 있다. 아몬드처럼 갈붉은 색과 고대 이끼처럼 짙은 녹색이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 하지만 발밑을 보니 내가 앉은 초원의 이끼는 마치 페인트를 흘려 놓은 것 같은 에메랄드색이다. 어떻게 이 이끼는 4천 미터 가까운 곳까지 올라오게 되었을까. 몇백 년, 몇천 년 동안 태양을 정면으로 받아 이런 색이 된 걸까. 이끼는 최초의 식물이었으며, 바다로부터 육지로 올라온 생명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존재다.


북쪽으로 돌아서면 거대한 인어가 이끼 낀 바위 옆에 드러누운 형상이다. 제주 오름 같기도 하지만, 오름과 비교가 되지 않는 거대한 규모다. 황금 밀밭처럼 기다란 금색 잔디가 듬성듬성 난 초원 뒤로 거북이 등딱지 같은 바위가 보인다. 바위는 깊고도 옅게 패였고, 깎여 내려갔고, 갈라졌다. 이 높은 대지에서 나무는 흔하지 않다.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여기 한 무더기, 저기 한 고랑 하는 식으로 군락을 이룬다. 두 군락이 곧게 서서 마주 보는 모습이 마치 잘 정렬된 군인들의 대오를 보는 것 같은 환시를 일으킨다. 지극한 고요 속에서 들리는 건 오직 바람이 귓가에 스치는 소리, 그리고 이따금 후루루루루루 하는 벌레울음과 날갯짓 소리뿐이다.


우리가 살았던 산과 그곳의 이끼


거대한 산봉우리 앞에 선 인간은 마치 티끌과 같았다. 내가 선 이쪽 산은 명도가 높은 컬러 사진처럼 선명했고, 건너편으로 마주 선 산은 얇은 실크 커튼을 덮어놓은 것처럼 아련했다. 희박한 공기의 영향일까, 어떻게 이렇게 명도가 다를까. 그 선명한 컬러 사진 한가운데 평화롭게 풀을 뜯는 대장 라마와 나머지 세 마리 라마가 있었다.


“조금 더 풀을 먹이고 가자. 11시에 내려오라고 했거든.”


A와 V가 챙겨온 과자를 나누어 먹고 풀밭에 벌렁 드러누웠다. 하늘은 끝없는 천장이고 산이 든든한 울타리였다. 그렇게 가슴 뚫리게 탁 트인 거대한 자연을 나는 페루에서 처음 만났다. 고도를 측정해보니 우리가 오른 거리는 고작 300미터 정도라서 집 뒤 언덕을 오르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이러한 풍경을 눈앞에 두니 사람의 집에서 방금 나온 게 아닌, 하늘이 천장, 산이 벽, 나뭇가지 사이 여백이 창문인 ‘세상의 집’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라마에게 풀을 뜯게 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지만, 사람 손과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헬퍼에게 적임이다. 아레키파나 쿠스코 같은 페루 남부 지역과 달리 우아라스에서는 라마가 꽤 값이 나가는 동물이라고 한다. 이 근방에서는 크리스티앙과 다른 한 명만이 라마를 기르고 있는데, 얼마 전 다섯 마리 라마를 산에 풀어놓은 사이 누가 한 마리를 죽였다고 했다.


“나쁜 사람이 있어, 모모. 그래서 라마 귀마다 GPS 칩을 달고 싶은데 돈이 많이 들어.”


그때까지는 라마를 그냥 풀어놓기보다 라마 근처에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로서는 그저 라마를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산 위 들판에 데려다 놓고 옆에 앉아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하면 되었으므로 이보다 더욱 반가운 일은 없다. 약간의 등산으로 단련되는 체력은 덤(!). 가끔 라마가 길을 잃고 제멋대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면 돌이든 뭐든 손에 잡히는 대로 던져서 깜짝 놀라 방향을 틀어 돌아오게끔 하면 된다.


대장 라마를 끌고 가면 다른 라마들은 저절로 따라서 온다.


크리스티앙의 라마 우리


라마들은 저마다 다르게 생겼다. 대장 라마는 대장답게 갈색과 흰색이 섞였고 나머지 라마들은 그저 흰색이다. 생김새도 특색있다. 대장 라마는 확실히 근엄한 표정이다. 한 녀석의 입술은 진하게 루주를 바른 듯하고 속눈썹도 유독 길어 나는 그녀에게 (덩치도 그다지 크지 않아서 여자 라마라고 추측한다) 매혹당하는 느낌이었다. 무리를 이탈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하극상 라마는 눈이 게슴츠레하고 입이 불퉁한 것이 아주 불성실하게 생겼다. 


라마를 데리고 내려오는 일은 어렵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조금 걸렸다. 대장 라마 목줄만 잡고 내려오면 나머지 라마들은 저절로 따라온다. 목줄을 잡은 V가 선두에 서고 우리가 뒤에서 양몰이를 하듯이 훠이훠이 손짓하며 몰았다. 30분쯤 산길을 내려와서 크리스티앙이 얼기설기 나무를 엮어 만들어놓은 우리에 라마를 넣고 조심스럽게 덧문을 걸어 잠갔다.


헬퍼가 할 만한 일은 사방에 널려 있다. 다른 날은 농사의 날이었다. 넬슨이 정기적으로 있는 지역주민 반상회에 다녀와야 한다고 해서 우리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20분 정도 걸으면 된다길래 넬슨과 파파를 따라 졸졸 쫓아갔다. 가는 길에 연두색 동그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키 작은 나무가 있어서 먹어도 되는 과일인가 하고 따려고 했더니 넬슨이 말린다.


“그건 먹는 게 아니야. Eye crush라고 부르는데 터지면 엄청 매워서 눈물이 줄줄 난다고. 고대 잉카에서는 이걸 빨래하는 데 썼대.”


하마터면 용감하게 따먹을 뻔했다, Eye crush


이웃한 작은 마을의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걸어 들어와 한 집에 멈춰 섰다. 마을이라고 해봤자 전체 가구 수가 서른 집도 안 된다. 우리가 갈 곳은 파파가 젊었을 때 살던 집인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했다. 흙으로 분칠을 한 것처럼 두텁게 쌓인 먼지와 잡동사니와 온갖 농기구로 가득 찬 창고 안에서, 마치 수백 개 눈알처럼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감자를 보고 흠칫 놀랐다. 이 중에 오늘 종자가 될 녀석으로 싹이 난 작은 놈을 고르는 게 관건이었다. 다 골랐으면 포대에 둘러메고 집 앞 밭으로 가져가서 서너 알씩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야 한단다.


맨발에 바짓단까지 걷은 넬슨과 파파가 곡괭이로 고랑을 일구면 A와 V가 일정하게 감자를 심고, 나는 사이사이에 비료를 뿌렸다. A는 똑똑하게도 감자를 하나 심고, 나뭇가지를 대어 일정한 거리를 재고, 또 감자를 심는 요령을 금방 터득했다. 감자를 대여섯 줄 심었으면 중간에 퀴노아를 한 줄 심으라고 했다. 감자와 퀴노아는 비료 뿌리는 법이 달랐다. 넬슨은 어디서 유기농 비료를 지고 와서 맨손으로 한 움큼씩 퍼다 내가 뿌린 화학비료 위를 덮었다. 짚과 섞어 발효시킨 기니피그 똥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소똥보다 훨씬 냄새가 좋았다. 소는 풀만 먹는데도 왜 그렇게 냄새가 고약한지 모를 일이다. 기니피그는 야채 껍질부터 과일 껍질까지 온갖 것을 먹는데 생각보다 우리 안이나 똥에서 풍기는 냄새가 고약하지 않다. 그러면서 큰 행사가 있을 때는 ‘꾸이’가 되어주니 그야말로 고마운 존재다.


감자와 퀴노아를 심다


작업 환경이 거의 산업혁명 이전 조선 시대 같다. 기계는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인간의 힘만으로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풀을 뽑고 작물을 심어야 한다. 연장들도 과거에서 소환해온 것 같은 모습이다. 밭에서 집까지도 200미터 정도 거리가 있었고 전체적으로 울퉁불퉁한 언덕배기라서 감자 종자와 비료를 지고 나르는 것만으로도 꽤 힘이 들었다. 이걸 4시간을 한다고? A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호스트 사정으로 일을 늦게 시작했으므로 넬슨은 2시간 반만 하고 하루의 일에서 해방시켜주었다. 애썼다며 넬슨이 구멍가게에서 사준 싸구려 페루 맥주를 나눠 마시며 우리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왔다.




글/사진 김소담(모모)

교환여행, 헬프엑스(HelpX)로 전세계에서 ‘살아보고자’ 하는 생활인. 여행보다는 일상을 좋아하여, 장소보다는 그곳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호한다. 대안적인 삶, 환경문제, 퍼머컬쳐(Permaculture), 채식주의, 공동체 등에 관심이 많고 서울의 공동체 ‘성미산마을’에 산다. 《모모야 어디 가? : 헬프엑스로 살아보는 유럽 마을 생활기(2018)》 저자.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