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음악을 입다]소세키와 페퍼 상사라니, 비틀즈 <Strawberry Fields Forever>

2025-09-19


음악 애호가, 티셔츠 수집가, 『음악을 입다』의 백영훈 작가가 들려주는 티셔츠와 랜덤 플레이 리스트.
무작위, 우연, 계획되지 않은 흐름에서 발생하는 사건, 랜덤은 그래서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오래전 LP와 카세트테이프에서, 아이팟에서, 콘서트에서 듣던 팝과 록과 재즈를
태연하게 오늘의 일상에 랜덤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인생의 헤아릴 수 없는 고민, 반복된 잡념을 오늘의 티셔츠와 플레이리스트로 잊어 보시기를.
적당한 스타일은 덤입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딸기밭 하나쯤은

<Strawberry fields forever>가 흘러나온다. “너는 존이냐, 폴이냐”를 묻는 질문에 나는 마음으론 주저함 없이 “폴이지!”라고 답을 하지만,  <Strawberry>, <A day in the life>, <In my life> 같은 곡을 듣고 있노라면 결국 그런 질문이 참 덧없어진다. 어쨌든, 코러스를 따라 흥얼대다가 문득 생각난 티셔츠가 있어 옷장을 뒤진다. 그래, 내일 옷은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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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간택당한  티셔츠, 지난 해 봄 도쿄에 놀러갔을 때 나쓰메 소세키 산방 기념관에서 사 온 기념 굿즈다. 검정색 셔츠 앞엔 이런 문구가 써져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목요일 공부 클럽 밴드(Natsume Soseki’s Thursday Study Club Band)’. 그리고 여러 인물들의 일러스트가 함께 프린트됐다. 비틀즈의 명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패러디다. 나쓰메 소세키를 중심으로 그의 문우들이 모여 문학과 사상을 나눴다던 이른바 ‘목요회(木曜会)’의 멤버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목요회’는 매주 목요일에 소세키의 자택에서 당대의 소설가와 문학 평론가들이 함께 참여한 모임이다. ‘아쿠타가와상’의 바로 그 사람, 아사히신문 선정 ‘지난 1천 년 간 일본 최고의 문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이와나미 서점 창업자 이와나미 시게오, 다이쇼(大正) 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 아베 지로 등 당대의 작가들이 주요 멤버였다.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이름께나 날렸던 이들이 모인 ‘인싸들의 정모’라고 보면 되겠다.


산방 기념관에서 사온 목요 클럽 티셔츠는 일본의 근대문학과 세계 대중음악의 정수를 한 장의 티셔츠에 겹쳐 놓은, 그들 나름대로의 재치가 깃든 아이템인 것이다. 일본인들이 소세키와 비틀즈를  오버랩시키는 마음,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일종의 문화적 상상력을 애써 내 봤던 것일 거다.


그런데 대체 <Strawberry Fields Forever>라니, 딸기밭에 어떤 깊은 추억이 있었던 걸까. 존 레논이 리버풀의 구세군 고아원 ‘스트로베리 필드’에서 느낀 어린 시절의 기억과 내면의 몽환이 깔린 노스탈지아가 이 곡의 바탕이 됐다고 한다. 나무위키를 찾아보면 또한 이런 흥미진진한 대목이 나온다.



“각종 악기를 다 때려 넣고 사이키델릭의 정수로 만든 건 폴인데, 존은 좋아하기는커녕 원래 잔잔한 어쿠스틱 발라드를 구상하고 있던지라 나중에 폴이 명곡을 망쳤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편곡이 지금 이 곡이 가지는 위상에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은 아이러니.”


여기서 문득, 소세키의 소설 한 구절이 떠오른다. 『마음(こころ)』에서 화자가 “인생은 어딘지 알 수 없는 허무로 가득 차 있다”라고 토로하던 대목은, 레논이 “Nothing is real”이라고 노래할 때와 닮아 있다. 눈앞의 세계가 확실히 존재하는 듯해도 붙잡으려 하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 버리는 허무. 또한 『도련님』의 주인공이 세상의 위선과 모순에 부딪히며 “바보 같다고 불려도 상관없다. 나는 나대로 살아가겠다”라고 선언하는 태도는 “눈을 감으면 사는 게 편하지(Living is easy with eyes closed), 보이는 모든 것을 오해하면서(misunderstanding all you see).”라는 가사와 미묘하게 공명한다. 


다음 도쿄 여행에서도 소세키 산방 기념관을 찾을 것이다. 일단 친한 지인들을 위해 목요회 굿즈 티셔츠를 여벌로 살 것이고, 무엇보다 지난번에는 아쉽게도 먹지 못했던 기념관 내 ‘카페 소세키’에서 파는 긴자(銀座) 쿠야(空也)의 모나카를 반드시 먹고야 말 것이다. 소세키가 즐겨 먹었다는 그 맛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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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영원해야 할 (내 기억 속의) 딸기밭, 우리 마음에 다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지 않습니까?




글/사진 백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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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
· 도서 정보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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