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씨가 선물한 여정 #1
가장 사랑했던 존재가 내 곁을 떠났다. 캄보디아 프놈펜 동물보호소에서 처음 만나 프놈펜, 바탐방, 시엠립을 거쳐 제주, 부산까지 함께했던 나의 고양이, 봉이 씨. (실제로는 ‘봉이’라고 부르는 날이 더 많았지만, 글에서는 작은 생명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아 ‘봉이 씨’로 지칭한다.) 봉이 씨와 함께 사는 동안 나는 입버릇처럼 ‘봉이 씨는 내 삶의 의미’라고 말하곤 했다. 사람에게 학대를 당해 꼬리가 잘린 채 처음 만난 봉이 씨는 어쩐지 내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 짧은 임시 보호 기간을 거쳐 11년을 함께했다. 나에게도 가족이 있긴 하지만 그 안에서조차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없었다. 나의 본모습을 숨긴 채 꾸며진 모습으로 살아야만 했는데, 봉이 씨와 함께일 때만은 달랐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거짓 없이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이였다. 그랬기에 고양이 봉이 씨는 단지 한 마리의 고양이가 아닌 가족, 친구 그 이상의 존재였다.
내가 사랑했던 봉이 씨
그런데 지난 2025년 5월, 복막염이라는 치명적인 병이 봉이 씨를 덮쳤다. 11살이 되던 4월, 열 번째 예방접종과 간단한 건강 검진에서 나이 든 고양이답지 않게 아주 건강하고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던 때였다.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먹는 약과 주사를 병행하며 치료했지만, 합병증인 급성신부전증이 찾아왔다. 합병증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봉이 씨가 떠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암담했지만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점점 힘들어하는 봉이 씨를 보며, 나는 직감적으로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 투병하느라 힘들었을 작은 몸에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눈 감을 수 있도록 애쓰는 일밖에. 그 후 봉이 씨는 고맙게도 내게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흘의 시간을 주었고, 내 품에 안겨 2025년 7월 18일, 마지막 숨을 내뱉고 고양이 별로 떠났다.
그리운 봉이 씨
봉이 씨를 보내고, 봉이 씨가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이, 또 그런 존재가 없는데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단지 육신의 부재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잠시뿐이었다. 봉이 씨가 여전히 집 안을 돌아다니는 듯해 침대 아래를 자꾸만 흘긋거렸고, 책을 읽어도, 아무리 재미있는 영상을 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지난 11년 동안 함께했던 일상의 기억이 밀려들었다. 요가 할 때, 밥 먹을 때, 심지어 화장실에서 샤워할 때조차 항상 봉이 씨가 곁에 있었다. 봉이 씨를 떠나보낼 때는 눈물만 쏟아지더니, 이제는 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글로만 보던 폐부를 찌르는 고통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루에도 수차례 몸을 깊숙이 찌르는 고통을 느꼈다.
반면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찾아오기도 했다. 약속을 정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연결을 원한 적은 없었다. 책 『슬픔의 위로』에서는 이런 욕구를 두고 가까운 존재의 부재를 겪는 이들이 느끼는 ‘안전’에 대한 욕구라고 설명한다. 나의 전부였던 존재가 사라지니, 안전에 대한 욕구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생경한 욕구에 당황스러웠지만 그 욕구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해야지만 조금이라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집을 떠나 사람들을 만나 실컷 울고 웃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봉이 씨와 나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핏줄로 이어진 여동생이다. 나와는 아주 다른 취향과 성격을 가진 동생이지만 언젠가 봉이 씨가 떠나면 꼭 곁을 지켜주겠다고 했다. 그 일이 이렇게 빨리 닥칠 줄은 몰랐지만. 동생은 일주일 전 부산에 내려와 봉이 씨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그 약속을 지켰다. 봉이 씨의 장례에서 동생은 나의 슬픔을 조금 덜어주었다. 묵직한 슬픔이 나를 사정없이 뒤흔들 때 잠시라도 옅은 유머로 나를 가볍게 해주었다.
그 후, 일주일 만에 서울에서 동생을 다시 만났다. 봉이 씨가 떠난 슬픔에 한동안 밥을 먹지 못했더니 한여름 무더위에 기운이 쭉 빠져 있었다. 우리는 몸보신할 수 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미리 신청해 둔 실내 클라이밍 체험을 하러 갔다. 봉이 씨를 잃은 슬픔에 넋 놓고 있고 싶지 않았다. 이별의 슬픔은 당연하지만, 봉이 씨도 내가 그 안에만 갇혀 지내기를 원치 않을 터였다. 불현듯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는 살면서 내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도전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평소 두려워서 도전하지 않던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몸을 써서 하는 모든 일이 항상 어렵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다. 특히 운동이 그랬다. 운동을 배우면 항상 남들보다 느리거나 다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운동장 구석에서 다른 아이들이 운동하는 걸 지켜볼 때가 많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야 건강을 위해 요가를 시작했지만, 그 전까지는 숨쉬기가 운동의 전부였다.
클라이밍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원주에 사는 친구 정순 덕분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처음 본 스피드 클라이밍과 김자인 선수의 리드 클라이밍은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지?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도전 앞에서 감탄과 경악만 나올 뿐이었다. 그런 충격 속에서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막막한 지금이야말로 그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과 호기심을 안고 도착한 실내 클라이밍장에는 동호회 회원으로 보이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 클라이밍을 즐기고 있었다. 날다람쥐처럼 홀드를 오가고, 높은 벽에 붙어 있었다.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널찍한 클라이밍장과 움직이는 사람들의 광경에 순식간에 압도되었다. 하지만 막상 클라이밍 벽을 마주하니 조금 남아있던 호기심마저 사라지고 주눅이 들었다. 내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선생님은 테이핑 방법부터 클라이밍화 착용법, 낙법 등을 속전속결로 알려주었다. 1단계 코스도 순식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척척 올라가는 1단계 코스도 나는 쉽지 않았다. 거기서도 나는 살려달라며 별안간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클라이밍 체험. 1단계를 정복한 순간.
수업이 끝난 후, 동생과 나는 쉬운 코스를 찾아다니며 1시간 30분 정도 더 클라이밍을 즐겼다. 내가 클라이밍하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의 움직임에 감탄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지만. 처음에는 그들도 나처럼 두려웠을까? 하지만 무엇이 그들을 계속하여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쉽게 그려지지 않는 그들의 시간을 상상하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격려의 소리와 환호성에 젖어 슬픔을 잊고 한동안 클라이밍에 몰입했다.
오랜만에 전신을 사용하는 운동을 했더니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했다. 저녁에는 동생과 맥주와 위스키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의 대화 속에서 나는 봉이 씨를 돌려내라는 의미 없는 말을 자꾸 했고, 그런 내 말에 동생은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위로로 헛헛한 내 마음의 공간을 채워주었다.

글/사진 황주(chantrea)

여기저기 집을 옮겨 다니며 삽니다. 글을 쓰고, 요가를 하며 호기심 많은 할머니로 늙고 싶습니다. 『할 말은 하고 살게 1』, 『 할 말은 하고 살게 2』 , 『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공저)』 를 펴냈습니다.
봉이 씨가 선물한 여정 #1
가장 사랑했던 존재가 내 곁을 떠났다. 캄보디아 프놈펜 동물보호소에서 처음 만나 프놈펜, 바탐방, 시엠립을 거쳐 제주, 부산까지 함께했던 나의 고양이, 봉이 씨. (실제로는 ‘봉이’라고 부르는 날이 더 많았지만, 글에서는 작은 생명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아 ‘봉이 씨’로 지칭한다.) 봉이 씨와 함께 사는 동안 나는 입버릇처럼 ‘봉이 씨는 내 삶의 의미’라고 말하곤 했다. 사람에게 학대를 당해 꼬리가 잘린 채 처음 만난 봉이 씨는 어쩐지 내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 짧은 임시 보호 기간을 거쳐 11년을 함께했다. 나에게도 가족이 있긴 하지만 그 안에서조차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없었다. 나의 본모습을 숨긴 채 꾸며진 모습으로 살아야만 했는데, 봉이 씨와 함께일 때만은 달랐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거짓 없이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이였다. 그랬기에 고양이 봉이 씨는 단지 한 마리의 고양이가 아닌 가족, 친구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런데 지난 2025년 5월, 복막염이라는 치명적인 병이 봉이 씨를 덮쳤다. 11살이 되던 4월, 열 번째 예방접종과 간단한 건강 검진에서 나이 든 고양이답지 않게 아주 건강하고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던 때였다.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먹는 약과 주사를 병행하며 치료했지만, 합병증인 급성신부전증이 찾아왔다. 합병증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봉이 씨가 떠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암담했지만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점점 힘들어하는 봉이 씨를 보며, 나는 직감적으로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 투병하느라 힘들었을 작은 몸에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눈 감을 수 있도록 애쓰는 일밖에. 그 후 봉이 씨는 고맙게도 내게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흘의 시간을 주었고, 내 품에 안겨 2025년 7월 18일, 마지막 숨을 내뱉고 고양이 별로 떠났다.
봉이 씨를 보내고, 봉이 씨가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이, 또 그런 존재가 없는데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단지 육신의 부재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잠시뿐이었다. 봉이 씨가 여전히 집 안을 돌아다니는 듯해 침대 아래를 자꾸만 흘긋거렸고, 책을 읽어도, 아무리 재미있는 영상을 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지난 11년 동안 함께했던 일상의 기억이 밀려들었다. 요가 할 때, 밥 먹을 때, 심지어 화장실에서 샤워할 때조차 항상 봉이 씨가 곁에 있었다. 봉이 씨를 떠나보낼 때는 눈물만 쏟아지더니, 이제는 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글로만 보던 폐부를 찌르는 고통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루에도 수차례 몸을 깊숙이 찌르는 고통을 느꼈다.
반면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찾아오기도 했다. 약속을 정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명확하게 연결을 원한 적은 없었다. 책 『슬픔의 위로』에서는 이런 욕구를 두고 가까운 존재의 부재를 겪는 이들이 느끼는 ‘안전’에 대한 욕구라고 설명한다. 나의 전부였던 존재가 사라지니, 안전에 대한 욕구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생경한 욕구에 당황스러웠지만 그 욕구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해야지만 조금이라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집을 떠나 사람들을 만나 실컷 울고 웃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핏줄로 이어진 여동생이다. 나와는 아주 다른 취향과 성격을 가진 동생이지만 언젠가 봉이 씨가 떠나면 꼭 곁을 지켜주겠다고 했다. 그 일이 이렇게 빨리 닥칠 줄은 몰랐지만. 동생은 일주일 전 부산에 내려와 봉이 씨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그 약속을 지켰다. 봉이 씨의 장례에서 동생은 나의 슬픔을 조금 덜어주었다. 묵직한 슬픔이 나를 사정없이 뒤흔들 때 잠시라도 옅은 유머로 나를 가볍게 해주었다.
그 후, 일주일 만에 서울에서 동생을 다시 만났다. 봉이 씨가 떠난 슬픔에 한동안 밥을 먹지 못했더니 한여름 무더위에 기운이 쭉 빠져 있었다. 우리는 몸보신할 수 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미리 신청해 둔 실내 클라이밍 체험을 하러 갔다. 봉이 씨를 잃은 슬픔에 넋 놓고 있고 싶지 않았다. 이별의 슬픔은 당연하지만, 봉이 씨도 내가 그 안에만 갇혀 지내기를 원치 않을 터였다. 불현듯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는 살면서 내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도전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평소 두려워서 도전하지 않던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몸을 써서 하는 모든 일이 항상 어렵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다. 특히 운동이 그랬다. 운동을 배우면 항상 남들보다 느리거나 다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운동장 구석에서 다른 아이들이 운동하는 걸 지켜볼 때가 많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야 건강을 위해 요가를 시작했지만, 그 전까지는 숨쉬기가 운동의 전부였다.
클라이밍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원주에 사는 친구 정순 덕분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처음 본 스피드 클라이밍과 김자인 선수의 리드 클라이밍은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지?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도전 앞에서 감탄과 경악만 나올 뿐이었다. 그런 충격 속에서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막막한 지금이야말로 그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과 호기심을 안고 도착한 실내 클라이밍장에는 동호회 회원으로 보이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 클라이밍을 즐기고 있었다. 날다람쥐처럼 홀드를 오가고, 높은 벽에 붙어 있었다.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널찍한 클라이밍장과 움직이는 사람들의 광경에 순식간에 압도되었다. 하지만 막상 클라이밍 벽을 마주하니 조금 남아있던 호기심마저 사라지고 주눅이 들었다. 내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선생님은 테이핑 방법부터 클라이밍화 착용법, 낙법 등을 속전속결로 알려주었다. 1단계 코스도 순식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척척 올라가는 1단계 코스도 나는 쉽지 않았다. 거기서도 나는 살려달라며 별안간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클라이밍 체험. 1단계를 정복한 순간.
수업이 끝난 후, 동생과 나는 쉬운 코스를 찾아다니며 1시간 30분 정도 더 클라이밍을 즐겼다. 내가 클라이밍하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의 움직임에 감탄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지만. 처음에는 그들도 나처럼 두려웠을까? 하지만 무엇이 그들을 계속하여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쉽게 그려지지 않는 그들의 시간을 상상하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격려의 소리와 환호성에 젖어 슬픔을 잊고 한동안 클라이밍에 몰입했다.
오랜만에 전신을 사용하는 운동을 했더니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했다. 저녁에는 동생과 맥주와 위스키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의 대화 속에서 나는 봉이 씨를 돌려내라는 의미 없는 말을 자꾸 했고, 그런 내 말에 동생은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위로로 헛헛한 내 마음의 공간을 채워주었다.
글/사진 황주(chantrea)
여기저기 집을 옮겨 다니며 삽니다. 글을 쓰고, 요가를 하며 호기심 많은 할머니로 늙고 싶습니다. 『할 말은 하고 살게 1』, 『 할 말은 하고 살게 2』 , 『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공저)』 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