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씨가 선물한 여정 #2
이튿날 늦은 아침,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을 펼치며 후르츠산도를 먹었다. 책을 읽을 때 줄거리를 찾아보지 않는 편인데, 이번만은 찾아볼걸 그랬다. 이렇게 목이 메는 내용인 줄 알았다면. ‘괴로움 없는 사랑은 없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입안 가득한 크림도 잊은 채 사정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봉이 씨를 아주 많이 사랑한 덕분에 내가 지금 힘든 거구나. 무척이나 슬프지만 내가 마주하는 괴로움이 알맹이 없는 고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동생네를 떠나 홍선이네 집으로 향했다. 내가 서울에 간 날은 하필 2025년 가장 더운 날이었다. 체감온도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몇 분만 걸어도 땀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봉이 씨가 떠나고 하루도 편하게 잠든 날이 없어서인지,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홍선이네 가는 동안 이미 지쳐버렸다. 그래도 홍선이를 만나니 반가운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해맑게 웃으며 “언니!”하고 다가오는 홍선이를 보며 손을 크게 흔들었다. 집에 들어가 잠시 집안을 둘러보았다. 홍선이의 아늑함과 포근함을 닮은 집이었다. 지난번에 선물했던 내 그림이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서툰 솜씨였지만 마음이 전해진 듯해 다행이었다.
홍선이에게 선물했던 그림
홍선이는 봉이 씨를 떠나보낼 때 함께 울어주며 내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려준 친구다. 아마도 봉이 씨와 내가 처음 함께 살 때부터 지켜보았으니, 오랜 세월 내게 봉이 씨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다고 해도 동물과 함께 살아 본 경험이 없는 홍선이가 내 마음을 꼭 자기 마음처럼 헤아려주어 고마웠다.
한동안 소파에서 늘어져 있다가 해 질 무렵이 되어 함께 산책을 나섰다. 홍선이는 동네 여기저기를 소개했고, 나는 가만히 홍선이 뒤를 따라 걸었다. 저녁임에도 아스팔트 열기가 식지 않아 힘들었지만, 홍선이가 이곳에서 보낼 시간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돌아와서는 내가 먹고 싶어 하던 음식으로 정성껏 저녁을 차려주었다. 우리는 먹는 것을 삶의 큰 낙으로 여겨 하루 종일 끝없이 음식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홍선이는 요리를 나보다 즐겨한다는 것. 홍선이는 내가 서울에 오기도 전부터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재차 물었는데, 그렇게 택한 오늘의 저녁은 감바스였다. 홍선이가 퍽 맛을 낼 줄 안다고 자랑하던 음식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맛있었다.
홍선이가 해준 감바스
저녁 식사를 한 후 우리는 잠들기 전까지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올해로 알게 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서로 채 알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를 들여다보았다. 물론 시시콜콜한 농담도 잊지 않았다. 종알종알 이어지는 홍선이의 말소리에 취한 건지, 수다의 즐거움에 취한 건지 금세 시간이 흘렀다. 평소 조용히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지금 같은 때에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또다시 악몽을 꾸었다. 봉이 씨가 떠난 후, 자주 악몽에 시달린다. 내가 의지했던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이겠지. 악몽 탓에 아침에 눈이 일찍 떠져 오랜만에 요가로 아침을 시작했다. 홍선이는 점심도 내가 먹고 싶어 하던 닭발과 강된장으로 한가득 차려주었다. 헛헛했던 마음이 다시 조금 채워졌다.
국립중앙박물관 입구
점심 식사 후에는 각자의 일정을 소화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인산인해라는 소식을 접했지만 그럼에도 꼭 보고 싶은 전시가 있어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박물관을 향하는 길목부터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들이 온 가족들, 견학을 온 듯한 유치원생들,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외국인들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 원래 이렇게 인기 있는 곳이었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북적이는 인파에 심히 놀랐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내가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마침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꼭 보고 싶던 ‘사유의 방’만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전시는 뒤로 한 채 곧장 사유의 방으로 향했다. 고요한 사유의 방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반가사유상은 한자리에서 온화한 미소로 많은 관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분주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사람들 틈바구니 끼여 반가사유상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았다. 수 세기 전의 반가사유상으로 우리에게 전하려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형상을 넘어, 반듯한 자세와 다정한 미소로 바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위로를 전하려던 듯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안에서
박물관을 빠져나온 후, 인왕산 자락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으로 향했다. 윤동주문학관은 옛 청운 수도 가압장을 개조한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넓은 전시장을 보고 와서인지 다소 규모가 작고,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항일 시인인데 조금 더 큰 전시 공간에서 만나고 싶은 아쉬움이 남아서였다. 하지만 문학관을 모두 둘러보고 나니, 오히려 이런 소박함이 시인의 삶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관은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닫힌 우물’에서는 시인이 서대문형무소에서 느꼈을 공포를 짐작하게 했고, 천창으로 하늘을 볼 수 있는 ‘열린 우물’은 시인의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을 연상하게 했다. 그 하늘은 좁았지만 광복을 향한 시인의 열망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전시실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원고 원본과 생애를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문학관을 나설 때는 처음의 아쉬움보다 먹먹함과 감사함이 마음에 남았다.
윤동주문학관
다시 홍선이네로 돌아가는 길, 온몸이 축 늘어졌다. 오늘을 가만히 돌아보니 한자리에 머문 시간보다 이동 시간이 훨씬 길었다. 평소 나의 여행은 한 장소에서 오래 즐기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발바닥에 뜨거운 불이 놓여있는 듯해서 발바닥을 자꾸 땅에서 떼야 할 것만 같았다. 언젠가 친구들에게 봉이 씨 덕분에 그나마 땅에 발을 딛고 살 수 있는 거라고 말했었는데, 그 말이 오늘따라 더 크게 다가왔다.
홍선이네로 돌아와 한동안 멍하니 누워있었다. 몸이 지쳐서인지 마음도 더 서글퍼졌다. 저녁을 먹고,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를 듣다가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 때 세상 모든 노래가 꼭 내 이야기 같았던 것처럼, 봉이 씨가 떠나고 나서도 그랬다. 홍선이는 곁에서 조용히 함께해주며 나의 슬픔을 걱정해 주었다. 슬픔이란 감정은 편하지 않은 상대가 아니면 표현하기가 힘든데, 그런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새삼 고마웠다.
홍선이가 담았던 봉이 사진
홍선이는 내가 서울에 온다고 했을 때, 자기 집에 머물며 맛있는 것을 해줄 테니 마음껏 먹고 쉬고 싶은 만큼 쉬다 가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매 끼니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신경 써서 챙겨주었고, 내가 울고 싶으면 우는 대로, 봉이 씨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맘껏 할 수 있게, 함께 공감하며 곁에서 지켜봐 주었다. 마음이 아파 어쩔 줄 몰라 하는 와중에 조금은 숨을 쉴 수 있는 이틀이었다.
윤동주문학관의 열린 우물
글/사진 황주(chantrea)

여기저기 집을 옮겨 다니며 삽니다. 글을 쓰고, 요가를 하며 호기심 많은 할머니로 늙고 싶습니다. 『할 말은 하고 살게 1』, 『 할 말은 하고 살게 2』 , 『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공저)』 를 펴냈습니다.
봉이 씨가 선물한 여정 #2
이튿날 늦은 아침,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을 펼치며 후르츠산도를 먹었다. 책을 읽을 때 줄거리를 찾아보지 않는 편인데, 이번만은 찾아볼걸 그랬다. 이렇게 목이 메는 내용인 줄 알았다면. ‘괴로움 없는 사랑은 없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입안 가득한 크림도 잊은 채 사정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봉이 씨를 아주 많이 사랑한 덕분에 내가 지금 힘든 거구나. 무척이나 슬프지만 내가 마주하는 괴로움이 알맹이 없는 고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동생네를 떠나 홍선이네 집으로 향했다. 내가 서울에 간 날은 하필 2025년 가장 더운 날이었다. 체감온도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몇 분만 걸어도 땀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봉이 씨가 떠나고 하루도 편하게 잠든 날이 없어서인지,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홍선이네 가는 동안 이미 지쳐버렸다. 그래도 홍선이를 만나니 반가운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해맑게 웃으며 “언니!”하고 다가오는 홍선이를 보며 손을 크게 흔들었다. 집에 들어가 잠시 집안을 둘러보았다. 홍선이의 아늑함과 포근함을 닮은 집이었다. 지난번에 선물했던 내 그림이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서툰 솜씨였지만 마음이 전해진 듯해 다행이었다.
홍선이는 봉이 씨를 떠나보낼 때 함께 울어주며 내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려준 친구다. 아마도 봉이 씨와 내가 처음 함께 살 때부터 지켜보았으니, 오랜 세월 내게 봉이 씨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다고 해도 동물과 함께 살아 본 경험이 없는 홍선이가 내 마음을 꼭 자기 마음처럼 헤아려주어 고마웠다.
한동안 소파에서 늘어져 있다가 해 질 무렵이 되어 함께 산책을 나섰다. 홍선이는 동네 여기저기를 소개했고, 나는 가만히 홍선이 뒤를 따라 걸었다. 저녁임에도 아스팔트 열기가 식지 않아 힘들었지만, 홍선이가 이곳에서 보낼 시간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돌아와서는 내가 먹고 싶어 하던 음식으로 정성껏 저녁을 차려주었다. 우리는 먹는 것을 삶의 큰 낙으로 여겨 하루 종일 끝없이 음식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홍선이는 요리를 나보다 즐겨한다는 것. 홍선이는 내가 서울에 오기도 전부터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재차 물었는데, 그렇게 택한 오늘의 저녁은 감바스였다. 홍선이가 퍽 맛을 낼 줄 안다고 자랑하던 음식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맛있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우리는 잠들기 전까지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올해로 알게 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서로 채 알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를 들여다보았다. 물론 시시콜콜한 농담도 잊지 않았다. 종알종알 이어지는 홍선이의 말소리에 취한 건지, 수다의 즐거움에 취한 건지 금세 시간이 흘렀다. 평소 조용히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지금 같은 때에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또다시 악몽을 꾸었다. 봉이 씨가 떠난 후, 자주 악몽에 시달린다. 내가 의지했던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이겠지. 악몽 탓에 아침에 눈이 일찍 떠져 오랜만에 요가로 아침을 시작했다. 홍선이는 점심도 내가 먹고 싶어 하던 닭발과 강된장으로 한가득 차려주었다. 헛헛했던 마음이 다시 조금 채워졌다.
점심 식사 후에는 각자의 일정을 소화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인산인해라는 소식을 접했지만 그럼에도 꼭 보고 싶은 전시가 있어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박물관을 향하는 길목부터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들이 온 가족들, 견학을 온 듯한 유치원생들, 전 세계 곳곳에서 온 외국인들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 원래 이렇게 인기 있는 곳이었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북적이는 인파에 심히 놀랐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내가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마침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꼭 보고 싶던 ‘사유의 방’만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전시는 뒤로 한 채 곧장 사유의 방으로 향했다. 고요한 사유의 방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반가사유상은 한자리에서 온화한 미소로 많은 관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분주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사람들 틈바구니 끼여 반가사유상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았다. 수 세기 전의 반가사유상으로 우리에게 전하려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형상을 넘어, 반듯한 자세와 다정한 미소로 바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위로를 전하려던 듯했다.
박물관을 빠져나온 후, 인왕산 자락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으로 향했다. 윤동주문학관은 옛 청운 수도 가압장을 개조한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넓은 전시장을 보고 와서인지 다소 규모가 작고,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항일 시인인데 조금 더 큰 전시 공간에서 만나고 싶은 아쉬움이 남아서였다. 하지만 문학관을 모두 둘러보고 나니, 오히려 이런 소박함이 시인의 삶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관은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닫힌 우물’에서는 시인이 서대문형무소에서 느꼈을 공포를 짐작하게 했고, 천창으로 하늘을 볼 수 있는 ‘열린 우물’은 시인의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을 연상하게 했다. 그 하늘은 좁았지만 광복을 향한 시인의 열망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전시실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원고 원본과 생애를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문학관을 나설 때는 처음의 아쉬움보다 먹먹함과 감사함이 마음에 남았다.
다시 홍선이네로 돌아가는 길, 온몸이 축 늘어졌다. 오늘을 가만히 돌아보니 한자리에 머문 시간보다 이동 시간이 훨씬 길었다. 평소 나의 여행은 한 장소에서 오래 즐기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발바닥에 뜨거운 불이 놓여있는 듯해서 발바닥을 자꾸 땅에서 떼야 할 것만 같았다. 언젠가 친구들에게 봉이 씨 덕분에 그나마 땅에 발을 딛고 살 수 있는 거라고 말했었는데, 그 말이 오늘따라 더 크게 다가왔다.
홍선이네로 돌아와 한동안 멍하니 누워있었다. 몸이 지쳐서인지 마음도 더 서글퍼졌다. 저녁을 먹고,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를 듣다가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 때 세상 모든 노래가 꼭 내 이야기 같았던 것처럼, 봉이 씨가 떠나고 나서도 그랬다. 홍선이는 곁에서 조용히 함께해주며 나의 슬픔을 걱정해 주었다. 슬픔이란 감정은 편하지 않은 상대가 아니면 표현하기가 힘든데, 그런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새삼 고마웠다.
홍선이는 내가 서울에 온다고 했을 때, 자기 집에 머물며 맛있는 것을 해줄 테니 마음껏 먹고 쉬고 싶은 만큼 쉬다 가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매 끼니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신경 써서 챙겨주었고, 내가 울고 싶으면 우는 대로, 봉이 씨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맘껏 할 수 있게, 함께 공감하며 곁에서 지켜봐 주었다. 마음이 아파 어쩔 줄 몰라 하는 와중에 조금은 숨을 쉴 수 있는 이틀이었다.
글/사진 황주(chantrea)
여기저기 집을 옮겨 다니며 삽니다. 글을 쓰고, 요가를 하며 호기심 많은 할머니로 늙고 싶습니다. 『할 말은 하고 살게 1』, 『 할 말은 하고 살게 2』 , 『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공저)』 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