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음악을 입다][음악] 여린 어깨로 던지는 시속 100마일 돌직구, 랜디 로즈 <I Don’t Know>

2025-11-07


음악 애호가, 티셔츠 수집가, 『음악을 입다』의 백영훈 작가가 들려주는 티셔츠와 랜덤 플레이 리스트.
무작위, 우연, 계획되지 않은 흐름에서 발생하는 사건, 랜덤은 그래서 예상치 못한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오래전 LP와 카세트테이프에서, 아이팟에서, 콘서트에서 듣던 팝과 록과 재즈를
태연하게 오늘의 일상에 랜덤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인생의 헤아릴 수 없는 고민, 반복된 잡념을 오늘의 티셔츠와 플레이리스트로 잊어 보시기를.
적당한 스타일은 덤입니다.


소셜 미디어 피드를 스크롤하다가 사진 하나에 시선이 꽂혔다. 한 장의 오래된 명함. 그 위에 박힌 문구는 이러했다.


“랜디 로즈 – 개인 기타 레슨” (위쪽엔 연락처 전화번호)


1970년대와 80년대 초, 당대를 주름잡았던 헤비메탈 밴드 콰이어트 라이엇과 오지 오스본 밴드의 기타리스트. 비행기 사고로 스물다섯의 짧은 생을 마감한 세계적 록 기타 영웅. 더욱이, 나의 기타 영웅. (솔직히 이 ‘영웅’이라는 단어가 종종 낯 간지럽고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랜디나 제프 벡 같은 연주자에게 바쳤던 어린 시절의 열광을 떠올리면 딱히 주저할 것도 없다.) 


이 명함은 랜디가 어머니가 운영하던 음악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사용하던 것으로, 팬들 사이에서 일종의 밈처럼 회자되던 이미지였다. ‘기타 레슨을 랜디에게 받는다는 건 어떤 경험이었을까?’ 의지는 충만한데 손가락이 굳어버려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는 나 같은 열등생 때문에 분명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랜디의 모습을 그려 보려기도 한다. 자, 쓸데없는 상상을 떨쳐내고 <오지 오스본의 랜디 로즈 트리뷰트(Ozzy Osbourne Randy Rhoads Tribute, 1987)> 앨범을 꺼내 든다. 


랜디 로즈의 연주가 듣고 싶을 때마다 나는 이 앨범을 통째로 재생한다. 화장실에 갈 때,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혼밥을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릴 때, 기대했던 영화가 별로여서 툴툴거리며 극장을 나올 때 — 이어폰을 꽂고 이 음반을 듣는다. 굳이 <Crazy Train>이나 <Mr. Crowley>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앨범의 첫 번째 트랙 <I Don’t Know>만으로도 그 어떤 스트레스든 단번에 날릴 수 있으니까.


초대형 히트곡 <Crazy Train>을 위아래로 출렁이며 움직이는 롤러코스터에, <Mr. Crowley>를 기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한 다크 판타지 드라마에 비유한다면, <I Don’t Know>는 여린 체구와 고운 얼굴의 랜디가 초구부터 던지는 말도 안 되는 강속구다. 그것도 시속 100마일이 넘는 돌직구. 직선적인 리프가 거칠게 질주하지만, 그 밑엔 언제나 멜로딕하고 섬세한 결이 흐른다. 거친 질주와 섬세한 선율, 이 양극이 공존하는 지점이 바로 그의 연주가 가진 고유한 매력이다.


<I Don’t Know>는 오지 오스본의 정규 앨범 <Blizzard of Ozz (1980)>의 첫 트랙이자, 라이브 공연에서는 서막을 여는 대표곡이었다. 오지는 이 곡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성공하면 괜히 뒷골목 철학자(backstreet philosopher)라도 된 양 떠들기 시작하잖아. 난 그런 부류가 아냐. 난독증을 가진 그저 미친 록커일 뿐이지. 그래서 <I Don’t Know>는 내 식으로 말한 거야. ‘나한테 이런저런 질문하지 마, 난 몰라.’라고.”


라이브 앨범 버전에서 이 곡은 더욱 노골적이다. 스튜디오판의 다소 계산된 완급 대신, 랜디는 템포를 반박자 빠르게 리프로 몰아붙이고 명확하고 현란한 솔로를 수놓는다. 오프닝의  공(gong) 사운드가 터져 나오자마자 기타가 폭주한다. 호방하다. 그의 연주는 역시 오지 오스본의 이 랜디 로즈 추모 라이브 앨범으로 들어야 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어둠의 왕자’ 오지 오스본. 그가 랜디 로즈의 연주에 한껏 흥을 받아 노래하는 이 곡의 1981년 공영 영상을 아직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그 공연에서 랜디는 깁슨(Gibson)사의 레스 폴(Les Paul)을 들고 연주하지만, 역시 그의 상징은 폴카 닷(Polka Dot) 무늬가 새겨진 플라잉V다. 랜디와 플라잉V는 당대의 록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오늘, 그 아이콘이 프린트된 스웨트셔츠를 꺼내 입는다. 십여 년 전 해외 직구로 어렵게 장만했는데, 이번 주만 사흘 연속 입었다. 세탁이 귀찮아서가 아님을 밝혀둔다. 이 옷을 세탁기에 던져 넣고 <I Don’t Know>를 또 듣는다. 그동안 흘려들었던 가사가 새삼 귀에 박힌다. 단순한 노랫말 같지만 지금 들어도 더없이 시의적절하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며 물어봐
종말이 가까워졌나요?
마지막 날은 언제인가요?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내가 어떻게 알겠어, 나도 뒤처졌는걸.
나를 보며 답을 찾지 마. 묻지 마. 나도 몰라.


그리고 건조된 옷을 꺼내 다시 걸쳐 입는 것이다.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글/사진 백영훈

1990년대의 팝과 록에 어지러이 매혹당하며, 장래 희망으로 FM 라디오 DJ를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어렸을 적 바람과는 달리 글로벌 IT기업에서 25년 이상 일을 해오고 있다. 전업의 시간 이편에서는 팝을 비롯한 대중문화 딜레탕트로서의 삶을 즐기며, 여전히 팝 키드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악을 입다』가 있다.
· 도서 정보 :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35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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