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전시] 시적이고, 덧없고, 주저하는 존재, 이사무 노구치의 아카리

2025-11-25


본다는 것 #8


 

이사무 노구치(野口勇)의 아카리(明かり) 조명을 가까이서 처음 마주한 건 15년 전 교토 기온 하나미코지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마치야에서였다. 오카미상을 따라 올라간 2층의 작은 방, 벽 한쪽에는 족자가 걸려 있고 작은 경대와 선이 얇은 나무로 만들어진 옷걸이, 천장에 달린 어스름한 전등과 다다미 바닥에 세워진 사각 등의 빛이 방 전부를 채우던 곳. 나는 이곳에서 사흘을 보내기로 했다.


낯선 공간, 익숙하지 않은 어둠 속. 방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형태가 있는 듯 없고, 무게가 있는 듯 없다.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아마도 방 안 전체를 구석구석 환히 비추는, 눈부신 형광등이 없어 그러했을 거라.   

 

방 한편에 자리 잡은 사각 등은 종이에 감싸여 빛을 부드럽게 확산시키며 흘렀다. 그 빛은 미처 미치지 못한 다다미 방 네 귀퉁이에 그늘을 만들었고 이는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郎)가 예찬한 음예(陰翳)가 깃든 공간이었다. 


이 사각 등이 바로 이사무 노구치의 아카리明かり, UF1-C 모델이었다. 



明かり, 아카리는 일본어로 빛, 등불을 뜻하는 단어로 이사무 노구치가 기후현의 전통적 산업인 제등에서 영감을 받아 1952년에 만든 조명이다. 닥나무 껍질 안쪽으로 와시(和紙)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대나무 골조를 조각처럼 다듬어 그 나무틀에 종이를 붙여 제작한다. 노구치는 낙엽과 벚꽃의 아름다움처럼 아카리를 ‘시적이고, 덧없고, 주저하는’ 존재라고 묘사했다. 그는 “집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것은 방과 다다미, 그리고 아카리뿐이다”라고 즐겨 말했다 한다.¹


빛을 부드럽게 확산시키는 종이의 성질과 뼈대가 되는 대나무를 사용해 종이의 수축과 주름을 그대로 남긴다. 이 공예품은 단순 조명에 그치지 않고 켜지면 빛을 흘리고 꺼지면 선으로 돌아가며 빛을 조각한다. 특히 동근 형태의 아카리는 어두운 밤하늘을 은은하게 밝히는 보름달 같다. 마치 달빛을 방으로 깊이 끌어들인 듯하다. 그 여운이 짙다.


불현듯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일화, 물론 그가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는 문헌이나 증거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 여부와는 별개로 그 안에 담긴 특유의 감성, “I love you”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달이 참 예쁘네요”라고 했다는 그 비유적인 표현이 떠오른다. 마치 아카리의 빛같다. 


그 후로 자주 아카리와 마주했다. 교토 어느 호텔 방 화장대 위에서, 눈 내린 풍경을 배경으로, 120년 넘은 교토 가옥 안에서, 직선과 노출이 특징인 안도 타다오의 콘크리트 천장에서. 그렇게 한 아름 보름달을 띄어 냈다. 전통과 현대 그 어떤 건축적 구조나 공간 상관없이, 그 빛은 경계를 허물었다.  



이렇게 다양한 공간에서 아카리를 만나 왔지만 한국에서 아카리 시리즈를 부담 없이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서울 삼각지역 근처, 1930년대 지어진 적산가옥에서 <빛과 공간, 그리고 경험>이라는 주제로 이사무 노구치의 의도를 느낄 수 있는 아카리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게다가 요가(light and flow), 티 테이스팅과 명상 드로잉 등 아카리와 함께 공간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아카리 라인업의 형태를 가까이에서 직접 살필 수 있고, 원한다면 현장에서 구입도 가능했다. 



적산가옥 곳곳에 다양한 아카리가 자리하고 있다. 낮은 조도, 그 위로 은은하게 흐르는 재즈 선율을 배경 삼아 아카리 사이를 걷는다. 준비된 소파에도 앉아 바라보고 2층 다락에 깔린 다다미에 앉아서도 바라본다. 그리고 아카리 스탠드가 놓인 책상에서 이사무 노구치의 동화책도 읽어본다. 단순히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잠깐일지라도 그 빛을 경험하게 한다. 



가을의 끝자락, 겨울의 입구에서 잠시나마 벗어난 따뜻함이다. 이 따뜻함을 경험하고 싶다면 조금 서두르길 바란다. 상시 전시가 아닌 점, 11월 30일, 얼마 남지 않았다. 


장소: 춘일가옥 (이태원로2길 10 1층)
전시 기간: 11월 17-30일, 매일 11:00-18:00
전시 요금: 무료
단, 방문 및 프로그램 예약은 모두 인스타그램 @chago_korea 프로필을 통해 가능


1) 노구치 홈페이지 https://www.noguchi.org/




글·사진 | 한수정

우아한 삶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관념과 현실을 분리시킨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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