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씨가 선물한 여정 #3
4일째 아침이 밝았다.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홍선이네를 나섰다. 오늘은 원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날이지만 그전에 움직임 명상을 함께한 유니 님을 만나기로 했다. 움직임 명상이란 몸의 감각에 집중해, 순간마다 내가 원하는 움직임을 통해 나의 내면을 살피는 명상 방식이다.
몇 년 전부터 뇌과학, 요가, 명상 등에 관심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움직임 명상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유니 님이 움직임 명상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 달 동안 유니 님은 안내자로, 나는 참여자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줌(온라인)으로만 이어진 만남이었지만 움직임 명상을 통해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던 사이기에 친숙함이 있었다. 게다가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유니 님은 내게 우울을 잘 맞이하고, 보내주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위로를 건넸다. 그 말은 지금도 마음에 짙게 남아 나를 버티게 해준다. 그런 유니 님을 처음으로 마주할 생각을 하니 소개팅 앞둔 것처럼 반가운 설렘이 있었다. 만난 후에는 비슷한 공감대가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서로의 근황과 명상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 움직임 명상 시간에 줌 화면 속에서, 나와 함께하던 봉이 씨를 기억해 잠시나마 봉이 씨를 떠올리며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원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원주는 제주에서 인연을 맺은 정순과 캄보디아에서부터 알고 지낸 새샘이 있는 곳이다. 정순은 봉이 씨가 떠난 날 한달음에 부산까지 달려와 준 사람이다. 장례에는 일정이 맞지 않아 참석하지 못하지만, 봉이 씨에게 꼭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며 새벽에 부러 시간을 내어 온 것이다. 그날 정순은 봉이 씨를 그동안 만난 고양이 중에서 조금이나마 친밀해진 첫 고양이었다고 회상했고, 차가운 봉이 씨의 몸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봉이 씨가 편안히 떠날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었다. 온갖 감정들이 뒤엉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정순은 봉이 씨도, 나도 함께 다독여주고 안아주며 진심 어린 위로를 전했다.

반갑게 맞이해 주던 케빈이와 하이디
원주에 도착해 비어 있는 정순의 집을 내 집처럼 들어갔다. 정순이 임시 보호하는 강아지들이 나를 먼저 반겼다. 봉이 씨를 떠나보낸 뒤라 다른 동물들을 만나면 힘들 줄 알았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귀여운 생명들을 마주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한동안 강아지들과 놀고 있으니, 정순이 돌아왔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꼭 보는 사이인 데다 연락을 자주 해서인지 이제는 가족 같은 사이가 되어버린 정순이다.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왔어요?”하고 인사하니 정순도 “응”하고 자연스레 답했다. 내게 가족은 여전히 조금 불편한 존재라면 정순은 내가 힘들 때 언제든 품을 내어주는 사람이다. 이 여행의 시작도 정순 덕분이었다. 봉이 씨를 떠나보내고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자기는 항상 원주에 있으니, 오고 싶으면 오라고 무심하게 말해준 사람이다. 원주에서의 첫날은 저녁을 먹으며 잔잔하게 흘렀다.
원주에서의 둘째 날은 반가운 새샘이를 만났다. 캄보디아에서 같은 일을 하며 고민을 나누던 동료였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보자마자 티격태격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서로의 근황과 관심사로 수다를 떨다가 둘 다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 톡토로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톡토로’는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청취자들의 애칭이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얇은 실로 연결된 사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봉이 씨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새샘이는 봉이 씨가 내게 처음 왔을 때부터 지켜봐 온 사람이라 봉이 씨의 장난기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 봉이 씨를 만났는데, 새샘이도 고양이를 무서워하는데 봉이 씨도 사람을 무서워하고 싫어해서 하악질을 하던 탓에 서로 앙숙 같은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새샘이는 아직도 봉이 씨를 조금은 무섭고, 유별난 고양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봉이 씨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어 새삼 고마웠다.
치악산 계곡에서
새샘이와 헤어진 후에는 정순과 계곡에 놀러 갔다. 2025년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피서. 계곡에 도착해 놀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계곡에 발을 담근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이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해 바다 수영을 즐기는데, 그에 비해 산은 좋아하지 않아 계곡에 올 일은 드물었다. 미끄러운 바위틈을 건너는 일도 자신이 없어 발길을 돌릴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정순이 있어서인지 용기가 났다. 처음에는 혹시 다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지만, 조금 지난 후에는 바위 사이를 기어다니며 이리저리 움직여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바다와는 다른 시원함이 있어 발만 담그고 있어도 한여름의 더위가 가시는 듯했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정순과 막걸리를 마셨다. 계곡에서 발만 담그고 있었는데도 꼭 물놀이하고 온 것 같았는데 막걸리까지 마시니 몸이 노곤해졌다. 그리고 늘 그랬듯 다양한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정순은 언제든 내가 봉이 씨 이야기를 하면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떠난 존재를 애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대개 빨리 슬픔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나 역시 한 달여가 지나면 완벽히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존재를 단숨에 고이 접어 간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내가 봉이 씨를 온전히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평생 동안 봉이 씨를 마음에 품고 애도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봉이 씨를 기억하는 사람은 제법 있겠지만, 가장 많은 추억을 쌓고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할 테니까. 내가 살아있는 동안, 봉이 씨의 추억도 내 기억 속에서 무한하게 살아 숨 쉴 테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봉이 씨 이야기를 언제든 편히 터놓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정순의 그 말이 유난히 고마웠다.

새샘이와 함께 먹었던 치악산 복숭아 맛을 떠올리며…
글/사진 황주(chantrea)

여기저기 집을 옮겨 다니며 삽니다. 글을 쓰고, 요가를 하며 호기심 많은 할머니로 늙고 싶습니다. 『할 말은 하고 살게 1』, 『 할 말은 하고 살게 2』 , 『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공저)』 를 펴냈습니다.
봉이 씨가 선물한 여정 #3
4일째 아침이 밝았다.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홍선이네를 나섰다. 오늘은 원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날이지만 그전에 움직임 명상을 함께한 유니 님을 만나기로 했다. 움직임 명상이란 몸의 감각에 집중해, 순간마다 내가 원하는 움직임을 통해 나의 내면을 살피는 명상 방식이다.
몇 년 전부터 뇌과학, 요가, 명상 등에 관심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움직임 명상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유니 님이 움직임 명상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 달 동안 유니 님은 안내자로, 나는 참여자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줌(온라인)으로만 이어진 만남이었지만 움직임 명상을 통해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던 사이기에 친숙함이 있었다. 게다가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유니 님은 내게 우울을 잘 맞이하고, 보내주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위로를 건넸다. 그 말은 지금도 마음에 짙게 남아 나를 버티게 해준다. 그런 유니 님을 처음으로 마주할 생각을 하니 소개팅 앞둔 것처럼 반가운 설렘이 있었다. 만난 후에는 비슷한 공감대가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서로의 근황과 명상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 움직임 명상 시간에 줌 화면 속에서, 나와 함께하던 봉이 씨를 기억해 잠시나마 봉이 씨를 떠올리며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원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원주는 제주에서 인연을 맺은 정순과 캄보디아에서부터 알고 지낸 새샘이 있는 곳이다. 정순은 봉이 씨가 떠난 날 한달음에 부산까지 달려와 준 사람이다. 장례에는 일정이 맞지 않아 참석하지 못하지만, 봉이 씨에게 꼭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며 새벽에 부러 시간을 내어 온 것이다. 그날 정순은 봉이 씨를 그동안 만난 고양이 중에서 조금이나마 친밀해진 첫 고양이었다고 회상했고, 차가운 봉이 씨의 몸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봉이 씨가 편안히 떠날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었다. 온갖 감정들이 뒤엉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정순은 봉이 씨도, 나도 함께 다독여주고 안아주며 진심 어린 위로를 전했다.
반갑게 맞이해 주던 케빈이와 하이디
원주에 도착해 비어 있는 정순의 집을 내 집처럼 들어갔다. 정순이 임시 보호하는 강아지들이 나를 먼저 반겼다. 봉이 씨를 떠나보낸 뒤라 다른 동물들을 만나면 힘들 줄 알았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귀여운 생명들을 마주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한동안 강아지들과 놀고 있으니, 정순이 돌아왔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꼭 보는 사이인 데다 연락을 자주 해서인지 이제는 가족 같은 사이가 되어버린 정순이다.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왔어요?”하고 인사하니 정순도 “응”하고 자연스레 답했다. 내게 가족은 여전히 조금 불편한 존재라면 정순은 내가 힘들 때 언제든 품을 내어주는 사람이다. 이 여행의 시작도 정순 덕분이었다. 봉이 씨를 떠나보내고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자기는 항상 원주에 있으니, 오고 싶으면 오라고 무심하게 말해준 사람이다. 원주에서의 첫날은 저녁을 먹으며 잔잔하게 흘렀다.
원주에서의 둘째 날은 반가운 새샘이를 만났다. 캄보디아에서 같은 일을 하며 고민을 나누던 동료였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보자마자 티격태격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서로의 근황과 관심사로 수다를 떨다가 둘 다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 톡토로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톡토로’는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청취자들의 애칭이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얇은 실로 연결된 사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봉이 씨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새샘이는 봉이 씨가 내게 처음 왔을 때부터 지켜봐 온 사람이라 봉이 씨의 장난기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 봉이 씨를 만났는데, 새샘이도 고양이를 무서워하는데 봉이 씨도 사람을 무서워하고 싫어해서 하악질을 하던 탓에 서로 앙숙 같은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새샘이는 아직도 봉이 씨를 조금은 무섭고, 유별난 고양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봉이 씨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어 새삼 고마웠다.
치악산 계곡에서
새샘이와 헤어진 후에는 정순과 계곡에 놀러 갔다. 2025년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피서. 계곡에 도착해 놀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계곡에 발을 담근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이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해 바다 수영을 즐기는데, 그에 비해 산은 좋아하지 않아 계곡에 올 일은 드물었다. 미끄러운 바위틈을 건너는 일도 자신이 없어 발길을 돌릴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정순이 있어서인지 용기가 났다. 처음에는 혹시 다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지만, 조금 지난 후에는 바위 사이를 기어다니며 이리저리 움직여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바다와는 다른 시원함이 있어 발만 담그고 있어도 한여름의 더위가 가시는 듯했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정순과 막걸리를 마셨다. 계곡에서 발만 담그고 있었는데도 꼭 물놀이하고 온 것 같았는데 막걸리까지 마시니 몸이 노곤해졌다. 그리고 늘 그랬듯 다양한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정순은 언제든 내가 봉이 씨 이야기를 하면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떠난 존재를 애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대개 빨리 슬픔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나 역시 한 달여가 지나면 완벽히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존재를 단숨에 고이 접어 간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내가 봉이 씨를 온전히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평생 동안 봉이 씨를 마음에 품고 애도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봉이 씨를 기억하는 사람은 제법 있겠지만, 가장 많은 추억을 쌓고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할 테니까. 내가 살아있는 동안, 봉이 씨의 추억도 내 기억 속에서 무한하게 살아 숨 쉴 테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봉이 씨 이야기를 언제든 편히 터놓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정순의 그 말이 유난히 고마웠다.
새샘이와 함께 먹었던 치악산 복숭아 맛을 떠올리며…
글/사진 황주(chantrea)
여기저기 집을 옮겨 다니며 삽니다. 글을 쓰고, 요가를 하며 호기심 많은 할머니로 늙고 싶습니다. 『할 말은 하고 살게 1』, 『 할 말은 하고 살게 2』 , 『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공저)』 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