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영화] 그곳에 도달한 자들만 볼 수 있는 풍경, <국보>

2025-12-05


본다는 것 #9


참 얄궂다.

야쿠자 가문에서 태어난 ‘키쿠오’는 배우의 재능을 타고났지만 세습을 통해 계승되는 가부키 세계에서 자신을 지켜줄 혈통이 없다. 가부키 명분가의 후계자인 ‘슌스케’는 혈통이 특권이지만 동시에 그가 평생 짊어져야만 하는 압박의 근원이 된다. 야쿠자 두목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10대의 키쿠오는 오사카를 대표하는 가부키 배우‘하나이 한지로’에게 맡겨진다. 그곳에서 그의 아들 슌스케와 온나카타(女形·가부키 공연에서 여성 역을 맡은 남성 배우)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는다. 키쿠오와 슌스케는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서로를 견제하고 동시에 자극받으며 예술의 극을 향해 달린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진짜 배우가 되는 것이다. 



영화 <국보>는 일본의 전통 연극인 가부키를 소재로 삼고 있다. 아니 소재라기보다는 영화 전체를 가부키로 여겨야 할 것도 같다. 175분 러닝타임에 상당 부분이 실제 가부키 공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경의 관문’(세키노토, 関の扉), ‘연사자’(렌지시, 連獅子), ‘두 명의 등나무 아가씨’(니닌후지무스메, 二人藤娘), ‘도조지의 두 사람’(니닌도조지, 二人道成寺), ‘소네자키 동반자살’(소네자키 신주, 曽根崎心中), ‘백로아가씨’(사기무스메, 鷺娘) 등 다양한 가부키 무대가 영화에서 펼쳐진다. 이들 곡은 가부키 그 자체의 미학을 표현하면서도 극을 연기하는 영화 속 두 인물, 키쿠오와 슌스케가 처한 상황과 심리 또한 과감하게 표현한다. 이러한 연출은 1964년부터 2014년을 흐르는 50년의 장대한 이야기 안에서 극의 정서와 인물의 내면을 확장하며 서로 다른 감정의 결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10년, 20년이 그러하듯 그들의 세월도 덩어리째 순식간에 굴러간다. 매일 혹독한 연습을 하고 작품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다시 연습하기를 반복. 영화 속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그 안에서 사라지거나 다시 등장할 뿐. 그렇게 인물 간의 관계 또한 예술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의 이유를 관객이 일일이 알 필요도, 영화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영화는 또렷한 인과를 제시하기보다 가부키라는 예술 무대 위 그리고 그 뒤에 존재하는 인간만을 담는다.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았던 건 아마도 이러한 연출 때문이었을 거라. 그리고 가부키라는 낯설지만 어딘가 묘한, 그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을 스크린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터라. 게다가 1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온나카타로서 살아온 배우들의 노력, 연기가 그러했을 거라. 또한 이 영화의 원작 소설 『국보』의 작가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가 가부키 무대 뒤에서 3년간 직접 쿠로고(くろご·가부키 무대에서 관객의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검은 옷을 입고 배경 등을 움직이는 사람)로 일하며 무대 위와 그 이면까지 관찰해 녹여냈기 때문이었을 거라. 그렇기에 가부키 자체에도 눈이 가지만 예술이라는 무대, 그 위에서 빛나는 존재들의 빛만큼이나 드리워진 고뇌, 그림자에 대해 그들의 삶의 방식에도 마음을 두게 한다. 



영화는 가부키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욕망, 단순히 표면적인 것만이 아닌 내면적으로 가진 인간의 본질과 집착, 부정적인 감정조차도 미(美)로 전환 시킬 수 있는 그런 절실함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곧 탐미(耽美),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일 거라. 어쩌면 키쿠오의 재능도 슌스케의 혈통도 그 절실함 앞에서는 그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자족과 자만 사이에서 유유자적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경지(境地)이다. 만약 어떤 인생이 숭고하다면 그를 둘러싼 표면적인 것 때문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단 한 가지 때문일 거다. 매 순간 고투하는 외로운 이방인이었기에 아마도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 거다. 



온 생을 걸고 자신의 불꽃으로 원하는 목표에 도달한 자만이 볼 수 있는 탐미적 경지. 그것은 강렬하게 피었다가 사라지는 벚꽃의 아름다움일 수도 새하얀 반짝임으로 손끝에 닿았다 사라지는 눈(雪)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그 찰나의 아름다움은 그것에 도달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풍경임에는 분명하다. 


‘きれいやなぁ...’
참으로 아름답다.




글·사진 | 한수정

우아한 삶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관념과 현실을 분리시킨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혼자 떠나는 여행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규슈단편>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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